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13)
213화 광역회복템은 필승 조건
현상범의 의기양양한 목소리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기사 나리, 당신 부하들과 짐꾼들이 아직 무사할 때 이 초소를 떠나는 게 어때? 지금이라면 아무도 당신들을 탓하지 않을 거야. 물론, 내 동료들도 당신들을 쫓아가지 않을 테고.”
“회유냐?”
엘프, 드워프, 유목민 전사, 마법사, 사제를 동반한 기사. 부랑자들이 주술을 배웠는지, 주술 도구를 가졌는지는 모르나 섣불리 상대하고 싶을 전력도 아니었다. 에드워드 일행이 빠진다면, 초소는 진짜 빈 오두막에 불과했다. 현상범은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정의의 수호자 노릇을 자처한다면, 언젠가 당신들 음식에도 독이 들어갈 거야. 못 먹고 못 마시면서 싸울 텐가? 누가 간첩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데리고?”
확실히 불리한 조건이긴 했다. 이 초소에는 우물이 없으며, 물항아리에는 언제든 독이 들어갈 수 있다. 지금부터 물 한 모금 못 마신다.
남은 인력이 손님들과 그 하인들뿐이라는 문제는 더 컸다. 그들 중 누구도 믿을 수 없다. 서로 처음 보는 데다 숙련도도 제각각이고, 전의가 높지 않은 사람들이 뭉치는 것만으로도 골치 아프다. 게다가 사교도가 숨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제대로 단결이 될 리가 없다.
에드워드는 경계병한테 시선을 돌렸다.
“이곳 영주랑 연락할 수단이 있나?”
“전령을 보낼까요?”
“이미 늦은 것 같은데. 추격을 뿌리친다고 장담을 못 하겠군. 전서구는?”
“그게, 그런 건 비싸서…….”
“봉화는?”
“그것도 없습니다.”
봉화 역시 불만 피운다고 되는 게 아니다. 정기적인 신호 교환과 관리는 돈이 든다. 지형 때문에 아예 소용이 없거나, 날씨 때문에 신호가 안 보일 수도 있는 등 생각보다 불확실한 통신수단이다. 없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이해심을 발휘하지 않고 혀를 찼다.
“이거 초소 맞냐?”
“영주님이 재정적으로 좀 난감하셔서…….”
경계병은 자기 탓이 아님을 강조하며 뒤로 빠졌다. 에드워드는 베로니카한테로 시선을 돌렸다.
“괜찮은 거냐, 시오니아 국경.”
“왜 나한테 따지니? 여기 담당자가 나야? 시오니아 사람 전체야?”
중독된 사람들을 살피던 베로니카가 한숨을 내쉬었다.
“야, 현상범. 이단심문관과 그 호위 기사가 사교도를 놓고 그냥 갈 거라 생각하니?”
“너희 여행의 목적이 여기서 죽는 거라면, 얼마든지 남아라. 아니라면, 만회는 다른 데서 실컷 하라고.”
현상범이 웃으면서 말했다. 여유만만한 웃음이었다. 에드워드는 스텔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야, 비서.”
“네?”
“마차로 가서 ‘그거’ 가져와.”
“엑. 그 귀한 걸 쓰시게요?”
“설명하기 참 힘든데, 별것 아닌 것들에게 협박당하니까 살살 빡치기 시작했어.”
“돈은 누구한테서 받으시게요?”
에드워드는 쓰러진 수도사한테로 시선을 돌렸다.
“수도사 양반, 댁이 살면 저 현상범은 내 거요. 딜?”
“꾸르르르륵…….”
동의인지, 거부인지, 모를 소리가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에드워드는 동의로 해석했다. 스텔라는 두말없이 달려가, 천으로 싸맨 길쭉한 것을 가져왔다. 현상범은 코웃음을 쳤다.
“흥. 뭘 하는지는 몰라도, 소용없을 것이다.”
스텔라가 그 물건을 안은 채 베로니카 옆에 앉았다. 이단심문관은 에드워드를 흘겨보았다.
“웬일이니, 네가 이런 걸 내놓고?”
“성능 테스트. 전갈 소동 때는 생각보다 쓸 일이 없었잖아.”
“쓸 거면 좀 빨리 내놓지.”
“왜, 회복에 지장이 될 정도로 늦었어?”
“그 정도는 아닌데.”
“그럼 됐지, 뭐.”
에드워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수도사가 벌떡 일어났다. 그는 분노의 고함소리를 내질렀다.
“이 망할 년, 감히 신성한 음식에 독을 타!”
베로니카는 그의 어깨를 붙잡아 쓰러뜨리듯 도로 눕혔다.
“아직 회복은 안 되었으니까, 안정을 취하세요.”
현상범은 의외의 광경에 놀랐다.
“뭐야, 마지막 불꽃 뭐 그런 건가? 저놈이 어떻게 일어났…….”
그러나 수도사만 일어난 게 아니었다. 스텔라가 천천히 일어나 중독자들 머리맡을 지나가자, 사람들은 차례차례 일어났다. 다들 거친 숨을 몰아쉬거나 여전히 배를 움켜잡고 있었지만, 숨이 넘어갈락 말락하던 상황은 벗어난 꼴이었다.
에드워드는 혼잣말로 투덜거렸다.
“먹일 필요도 없구만. 역시 광역회복템은 RPG의 필승 아이템이라니까. 근처에 두기만 해도 해독되네. 시발, 그런데 왜 내 저주만 안 풀어줘? 버그야?”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대왕의 지혜로 만든 독을 저리 쉽게 없애다니!”
현상범은 경악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에드워드는 자신이 지을 수 있는 가장 기괴한 표정을 지어 현상범을 돌아보았다.
“뭘까아아아아요?”
현상범이 알 리가 없었다. 그녀가 할 말을 잃고 입만 뻐끔거리는 걸 본 에드워드는 낄낄 웃어 버렸다.
“야, 하늘 높은 줄 모르던 듣보잡 쫄따구를 사기템으로 초단기 역관광하는 맛이라는 게 이런 거구만.”
가르달은 웃어버렸다.
“악질이시구만.”
카치운도 동의했다.
“시오니아 오자마자 성격 나오네.”
베로니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좀 진지했으면 더 좋겠어.”
헬레나는 그녀를 흘겨보았다.
“지금도 좋긴 좋다는 거네요.”
스텔라는 품 안의 물건을 내려놓고 리안나의 뺨을 때려보기 시작했다. 짝짝짝.
“밴시한테는 좀 아깝죠? 유니콘의 뿔.”
에드워드 일행을 제외한 사람들 전부가 침묵했다. 제일 먼저 그 침묵을 깬 건 현상범이었다.
“유니콘의 뿔? 진품이라고?!”
스텔라는 여전히 기절한 리안나를 뒤에 둔 채, 유니콘의 뿔을 감싼 천을 풀었다. 반토막이 났지만 효력은 여전한, 길쭉한 원뿔이 모습을 드러냈다. 스텔라는 그걸 가리키며 말했다.
“이게 겨우 절반이야. 똑같은 길이의 물건이 더 있단다?”
“내 물건을 왜 네가 자랑하냐.”
에드워드가 태클을 걸었다. 스텔라는 깔깔 웃어 버렸다.
“뭐 어때요? 이미 이겨놓은 것만큼 기분 좋은 게 어딨다고. 주인의 승리를 기뻐해 주는 바람직한 비서로 해석해 주세요.”
가르달이 퉁명스레 말했다.
“저 저주받은 혓바닥은 유니콘의 뿔이 해독 못 해주나?”
“그게 되면 유니콘이 아니라 메시아지.”
카치운이 덧붙였다. 졸지에 메시아가 재림해야 고칠 혓바닥을 가지게 된 스텔라는 계속 나불거렸다. 에드워드는 그 쓸데없는 주절거림을 무시하고 현상범한테 말했다.
“먹을 필요도 없는 것 보면, 너네 패거리가 만든다는 독은 잡스러운 독인가 보다.”
“이이익! 저 붉은 옷의 사제도 인정한 독인데! 이렇게 쉽게! 이렇게 쉽게!”
현상범은 바닥을 구를 기세로 몸부림을 쳤다. 에드워드는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다시 말했다.
“잡독.”
“대왕의 지혜가 가르쳐준 레시피란 말이다! 아무리 유니콘의 뿔이라지만, 이렇게 쉽게 풀리다니!”
그 말을 들은 헬레나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인간 사제 기준으로는 고급 독일지라도, 유니콘 기준은 다를 수 있지요. 특히 유니콘의 뿔은 주술과 마법 따위로 만든 독에 강하다는 이야길 들은 적이 있어요.”
베로니카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 유니콘은 기준 자체가 상당히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고차원적이긴 했지요.”
“뭐야? 아직도 유니콘이 너한테 안 온 거 신경 쓰이냐?”
에드워드가 낄낄 웃으며 말했다. 그 순간 일행의 여자들 모두가 에드워드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 에드워드는 찔끔해서 웃음을 멈췄다. 그는 여자들의 눈치를 살피다 말했다.
“유니콘 개새끼.”
여자들은 눈초리를 거뒀다.
“이제 어쩔 거요, 기사 양반? 독은 해독했지만 수적 열세는 변한 게 없소. 스파이도 못 잡았고.”
카치운이 물었다. 에드워드는 유니콘의 뿔을 살펴보더니 말했다.
“보통 한번 쓴 아이템은 색이나 질감이 변한다던데. 이건 안 그러네. 독을 가진 범인 앞에서 변한다면 사람 찾기 기능까지 추가인데 말이야. 그건 좀 아쉽군. 너무 강력한 아이템이어도 단점이 있네.”
“범인 찾기는 무리겠군요. 어떻게 할까요?”
헬레나가 옆에 둔 글레이브를 잡으며 말했다. 답은 이미 정해진 상태였다. 에드워드는 어깨를 크게 으쓱했다.
“고작 열둘이니까 나가서 다 쳐 죽이지, 뭐. 부랑배 따위니. 상황을 빨리 끝내면 간첩이건 뭐건 무슨 소용이겠어?”
“간단하군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주의해요. 주술 도구 정도는 갖고 있을지도 몰라요.”
에드워드와 헬레나가 성큼성큼 걸어가 방을 나갔다. 카치운과 스텔라가 그 뒤를 따랐다.
“가르달, 여기 좀 지키쇼.”
“아, 나도 말 탈 수 있으면 나가는 건데!”
카치운의 당부에 가르달이 큰소리로 푸념을 했다. 베로니카는 그를 점잖게 말렸다.
“아직 음식에 독을 넣은 범인도 못 찾았잖아요. 그놈이나 경계해야죠.”
손님들 중 한 사람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게다가 독을 먹은 사람들이 아직 회복되질 않고 있으니 말이죠.”
뒤이어 밖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사람과 말의 비명소리, 그리고 칼 부딪히는 소리. 몇 명은 창문에 기대 밖을 구경했고, 몇 명은 소리에만 귀 기울였다.
“보여?”
“젠장. 너무 어두워서 누가 누군지……. 그래도 불리한 것 같지는 않은데.”
“역시 기사는 기사야. 강하군.”
“마법사도 따라갔잖아.”
이미 해가 졌기 때문에 밖을 보는 건 별 소용이 없었다. 새하얀 번갯불이 잠깐 번쩍일 뿐. 그래서 베로니카는 제자리에 앉은 채 밖에 귀 기울였다.
“오래 안 걸리겠네.”
“끄으으으윽! 네놈들은 대체 뭐 하는 놈들이냐! 유니콘의 뿔 같은 걸 가진 놈들이 이런 데에서!”
현상범이 이를 갈면서 소리쳤다. 현상범은 사방을 향해 저주를 퍼붓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에드워드를 개발바닥, 베로니카를 대탕녀, 헬레나를 백돼지, 가르달을 똥무더기 등으로 비하하는 말들이 쏟아져나왔다. 가르달은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며 인상을 썼다.
“영주 부부랑 주교랑 부농들을 저 혓바닥으로 해쳤나?”
베로니카는 입에 담기도 힘든 욕설들 앞에서도 태연했다.
“그럼 독보다 더 쓸모있는 혓바닥이겠네요. 스텔라 양과 대결시키면 재밌으려나요?”
“푸하하하하! 혓바닥 최종대결이군!”
가르달이 폭소했다. 현상범은 이를 갈았다.
“망할 사제년! 네년이야말로 혓바닥을 뽑아 그 기사놈의 엉덩이에 처박아줄 테다! 네 목구멍엔 놈의 양물을 잘라 처박아줄 테고! 감히 내 독을 무시하다니! 나는 대왕님의 가르침으로 일어섰…….”
“시끄러워, 삼류. 넌 ‘죽음의 주술사’가 아무나 받아먹고 소동을 일으키라고 뿌린 레시피 중 하나를 받았을 뿐이야.”
“닥쳐! 내 독은 그런 저급한 게 아니야! 너도 해독 못 했잖아!”
“바보는 너야. 교회에 독극물 전문가는 널렸어. 내가 그중 하나가 아닐 뿐이지. 진짜 강한 독이란 건, 그런 독극물 전문가도 애먹고, 주술사네 며느리도 레시피를 모르는 극악함을 말하는 거야. 그런 걸 아무렇게나 바람과 속삭임에 실어 내려줄 리가 없잖아.”
“닥쳐! 난 선택 받았어! 대왕님이 날 선택하셨다고!”
“그래, 선택했겠지. 그리고 너 같은 놈들은 널렸지. 유니콘의 뿔이 아니어도 언젠가 된통 당했을 거야. 부랑배 열둘 따위, 아무것도 아닌 기사를 만난다던가.”
그때 한 손님이 베로니카한테 슬쩍 다가왔다.
“저기, 그런데, 사제님? 그거 진짜 유니콘의 뿔입니까?”
“네. 왜요?”
“저는 약재상인데, 좀 더 가까이에서 봐도 될까요? 그런 보물은 난생처음이라…….”
베로니카의 시선이 약재상의 허리춤을 향했다. 단검 하나 없는 비무장. 그의 검은 짐짝과 함께 한 구석에 있었다.
“긁거나 하지 않는다면요.”
“오오, 감사합니다…….”
약재상은 조심스럽게 베로니카를 향해 더 다가와, 유니콘의 뿔로 두 손을 뻗었다. 그 순간 가르달의 투구 위로 묵직한 게 떨어졌다. 쿵! 다른 손님 하나가 검을 뽑아 가르달의 등을 후려친 것이었다. 유니콘의 뿔을 향하던 소매 속에서도 칼날이 튀어나왔다.
“다 쳤냐, 등신아?”
그러나 가르달은 미동도 안 했다.
베로니카도 칼날을 피하지 않았다. 지붕이 뚫리면서 헬레나가 뛰어내렸기 때문이었다.
콰직!
엘프의 발길질이 자칭 약재상의 등뼈를 박살내며 주저앉혔다.
“크악!”
자칭 약재상은 짧은 비명과 함께 엎어졌다. 꿈틀거리는 인간을 딛고 일어선 엘프는 곧 드워프와 그 갑옷의 내구성을 무시한 인간의 말로를 보았다.
“도끼질 좀 곱게 하죠? 다 튀잖아요.”
콰득!
뼛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가르달은 소매로 얼굴을 훔치곤 말했다.
“기사 양반이 직접 올 줄 알았는데?”
“곡예는 저한테 맡기겠다더군요.”
“에이, 아가씨를 구하는 역할은 기사가 맡아야 하는데.”
“그럼 바깥 놈들은 누가 잡아요?”
헬레나는 반시체 위에서 내려왔다.
“이런 얕은수에 걸려들다니, 시오니아 사교도도 별 볼 일 없군요.”
“초조한 게지. 독이 쓸모없게 된 데다, 바깥은 승산을 장담하기 어렵게 됐으니.”
베로니카는 한숨을 내쉬고는 철퇴를 쥐었다.
“이 두 놈의 하인들도 한 패겠죠? 1층에 내려가서 족치죠. 시오니아로 돌아오자마자 사건에 해결사 노릇이라니, 이건 대체 누구 운인지.”
엘프와 드워프는 동시에 바깥을 가리켰다.
“에드워드 경한테 따지시죠.”
“기사 양반한테 따지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