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14)
214화 소원은 명소에 (1)
스무 명 가까운 방문객 중 2층 손님 둘, 그리고 그 하인 셋이 잠입한 골칫거리들이었다. 바깥의 열둘과 합치면 현상범까지 열여덟. 1층의 사교도들은 멀뚱멀뚱 대기만 하다 결국 엘프, 드워프, 이단심문관에게 제압당했다.
“차라리 다들 잠든 사이에 덮치지, 등신들.”
드워프 가르달의 평이었다. 베로니카는 어깨를 으쓱했다.
“독을 쓰는 게 더 편하고 빠르다고 생각했겠죠.”
그 말에 가르달은 천천히 1층을 돌아보았다.
“일단 손님방과 병사방은 분리가 되어 있군. 2층의 기사네 공간처럼. 아예 생각 없는 설계는 아니구만. 놈들이 이걸 알고 있었을까?”
“몰랐어도 결론은 같겠죠.”
베로니카는 제압당한 사교도들이 갖고 있던 소지품들을 탈탈 털었다. 잡동사니 무더기에는 신분을 증명할 만한 문서들도 있었다. 편지들, 조합 가입증, 졸업장, 회원증 등등. 그 문서들을 찬찬히 살펴본 베로니카는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품 같은데요. 서류들은. 꽤나 일관성이 있어요.”
“허허. 이 망할 놈들. 서류 주인들을 족쳤구만?”
가르달은 무릎 꿇린 사교도들의 뒤통수를 납작한 손바닥으로 후려갈겼다. 만신창이가 된 놈들은 저항할 여력도 없었다. 베로니카는 모 도시의 약재상 조합 회원증을 돌돌 말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네, 이 서류의 주인들은 어딘가에서 시체로 뒹굴고 있겠죠. 이놈들은 서류에 맞춰 인원을 편성해 여기 잠입한 것이고. 정말, 사교도들은 날이 갈수록 대범해진다니까요.”
“베로니카 양, 에드워드 경이 돌아왔어요.”
헬레나가 복도에서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에드워드, 카치운, 스텔라가 귀환했다. 다만 에드워드는 기묘하게 몸을 뒤틀어대서 베로니카를 당황시켰다.
“너 왜 그래? 악령 들렸어?”
“악령보다 더 귀찮고 악랄한 게 붙었어, 젠장!”
에드워드는 서둘러 서코트를 벗었다. 그리고 그 아래 것들도 벗어다 내팽개쳤다. 베로니카와 헬레나는 더 당황했다.
“뭔데? 대체 뭔데?”
카치운은 별말이 없었고, 스텔라는 설명 대신 2층으로 뛰어올라 갔다. 에드워드는 손등으로나마 몸을 벅벅 긁으며 말했다.
“주술 걸린 벼룩이야, 젠장!”
그제야 베로니카는 사태를 파악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 무슨 주술인지 알겠다.”
“뭔데요?”
헬레나의 질문에 베로니카는 간단히 설명했다.
“주술사들이 흔히 받는 의뢰 중에 그런 게 있거든요. ‘내 물건을 훔쳐 간 도둑놈이 질병에 걸리게 해줘’ 같은. 그것을 응용한 모양이네요.”
“에드워드 경이 물건을 훔쳤나요?”
“그럴 리가 있냐! 난 무고해!”
에드워드가 말했다. 베로니카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니 응용이죠. 벼룩으로 기사와 그 말을 괴롭히려는 게 목적 같네요.”
“위험할까요?”
“잘해봐야 장난질에 불과해요. 그런데 쟤한테는…….”
“손아귀 힘 때문에 긁을 수도 없고 벼룩을 잡아낼 수도 없단 거군요.”
에드워드는 두 여성의 태평한 대화에 불만을 드러냈다.
“내 몸 그만 감상하고, 이거 주술 좀 풀어줘. 바지까지 벗고 싶어진다고.”
“스텔라 양이 해결하러 간 것 같은데, 좀만 기다려 봐.”
베로니카의 말대로, 스텔라가 다시 나타났다. 그녀는 밴시의 마법약병을 들고 있었는데, 축 늘어진 밴시도 한 세트였다.
“늦어서 죄송해요! 이 꼬마 밴시가 기절해도 이건 안 놓더라고요!”
결국 에드워드가 계단으로 뛰어갔다. 잠시 뒤, 마법약을 흠뻑 뒤집어쓴 꼴이 된 에드워드가 작게 중얼거렸다.
“좀 낫네.”
벼룩들이 펄쩍펄쩍 뛰며 죽어 나가는 게 헬레나의 눈에 보였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에드워드가 벗어놓은 옷도 주워 들어 그 마법약 아래에 뒀다.
“거대 괴수도 잡는 사람이 벼룩 때문에 위기라니.”
“그래도 겨우 그런 걸로 죽지는 않겠죠.”
베로니카가 웃으면서 말했다. 에드워드는 이를 갈았다.
“얼른 이 저주 풀어야지, 잘못하면 저급한 주술사 때문에 위기에 빠지는 일도 일어나겠어.”
“엄살 부리지 마. 아주 약한 주술에 불과하니까. 그런데 그런 저주는 보통 주술사를 죽이면 풀리는데…… 놓쳤어?”
“잡았어. 카치운과 스텔라 덕에. 근데 안 되더라. 이것도 그 대왕 주술사인지, 샤먼킹인지 하는 놈이 내린 지혜겠지. 별 잡스러운 지혜 다 보겠네.”
“잡스러운 주술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죽음의 주술사’를 무시하지는 마. 그걸 받아먹는 머저리들 역량이 그것밖에 안 되는 거야.”
대화를 듣던 카치운도 한마디 거들었다.
“최하급 쫄따구가 보잘것없다 해서 보스까지 그렇단 법은 없지. 시오니아는 그의 음모와 저주가 스며드는 최전선이니 방심은 맙시다.”
“괜찮은 거냐, 시오니아.”
에드워드의 말에 베로니카는 얼굴을 찌푸렸다.
“여느 나라와 다를 것 없어. 지방마다 천차만별이지. 영주와 교회가 신경 쓰지 못하면, 사교도가 스며들거나 오크가 침공하는 거야. 시오니아 왕가의 직할령쯤 되면 앵글리아 본토만큼 평온해.”
“왕실 영토 가봤냐?”
“당연한 소릴…….”
헬레나는 그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제 서품을 받은 뒤 시오니아에 온 적이 있나요?”
“유학 전에요.”
그 답에 카치운은 피식 웃어 버렸다.
“유학 전부터 집안에 반발해서 싸돌아다니셨소? 귀족 영애치고는 별종이구만.”
베로니카는 그를 흘겨봤다.
“아니면 비텔리아로 유학 가고 앵글리아까지 방문할 일 없었겠죠.”
“하긴. 덕택에 기사 양반이 목숨을 건졌지.”
카치운의 말에 에드워드가 슬쩍 빈정거렸다.
“내가 그냥 빚졌나? 거래지. 그냥 구해준 거면 그 성정을 찬양하고도 남았을걸.”
“그냥이라. 레이디한테 그렇게 도움받은 기사는 어떻게 해야 하더라?”
“……목숨 걸고 레이디한테 봉사해야 하지. 젠장. 이러나저러나 결론은 같구만.”
“그거 보쇼. 뭘 해봐도 댁은 사제 아가씨한테 목메였다니까.”
카치운과 가르달이 낄낄 웃는 사이에 리안나는 눈을 떴다. 두 남정네의 웃음소리에 불길함을 느낀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리안나는 곧 바닥에 쏟아진 마법약을 보았다. 그리고 자기 약병을 같이 잡고 있는 스텔라도.
“인텔리의 사보타지다!”
스텔라는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오히려 리안나를 이리저리 흔들면서 말했다.
“우리네 사건은 항상 얘가 비명을 지르는 걸로 끝내야 허전하질 않더군요.”
아무도 부정하질 않았다.
* * *
그래도 시오니아 국경 입문 신고식은 밴시의 비명이 아니라 현상범을 포함한 사교도들의 교수형으로 막을 내렸다. 그들은 에드워드의 포로였기 때문에 베로니카의 즉석 재판이 가능했다.
짧은 협상 끝에, 베로니카는 독의 레시피를 캐냈다. 그리고 사교도들은 ‘고통 없는 교수형’을 받았다.
에드워드는 공중에서 춤추는 사교도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타란티노가 옳았다니까.”
“유감이군. 어떻게든 재판소까지 데려가서 매달고 싶었는데. ‘고통스러운 교수형’으로 말이오.”
죽다 살아난 현상금사냥꾼 수도사의 말이었다. 근처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린 사교도들은 말이 없었다. 에드워드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런 새끼들은 안전빵이 최고요.”
“기사님, 또 벼룩에 시달리는 일이 두려워서 그런 거 아녜요?”
스텔라가 장난스레 물었다. 에드워드는 차마 부정하지 못했다.
“주술 해제법이야 다양하게 있겠지만, 겪는 것 자체가 고통스럽긴 하지.”
“앞으로 악마들이 기사님 괴롭힐 때 중요한 참고가 되는 것 아니에요?”
“걔들이 몰라서 그 수법 아직 안 썼겠냐?”
“어라, 그러네요. 왜 안 쓸까요?”
“사제나 모기장이면 파훼될 테니 그러는 거겠지, 뭐. 아니면 내가 직접 주술 건 새끼 족치러 갈 거고.”
한편, 밴시는 종이를 들고 폴짝폴짝 뛰었다.
“내가 기절한 게 너무 아까워! 밴시의 대모험에 공백이 생겨버렸어요! 내 마법약이 기사님 구한 거라도 시시콜콜하게 써야지!”
“줘봐.”
카치운이 그 종이를 홱 뺏어 읽어보았다. 몇 초 뒤, 그는 그 종이를 에드워드한테 펼쳐보았다.
“이거 앵글리아어요?”
아니었다. 글자도 아닌 게, 제대로 줄을 맞추지도 못하고,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데, 그나마도 몇 자 되지 않았다. 그 사이에 어린애 낙서가 몇 개 그려져 있을 뿐. 에드워드는 뚱한 표정을 지었다.
“앵글리아 문학에 대한 모독인데, 이거…….”
가르달은 껄껄 웃었다.
“요정이 하는 일이란 게 다 그렇지. 쟤는 며칠만 더 있으면 저 종이를 다른 용도로 쓰거나 잊어버릴걸.”
에드워드는 문득 그림일기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자기 일 외에는 제대로 할 줄 모르거나 작심삼일이란 건가. 집요정도 단순하구만.”
에드워드는 낄낄 웃고는, 시체를 실어나를 준비를 하는 짐꾼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시오니아 국경을 통과하기 전, 그 필요성이 크게 감소해 대부분 정리하고 몇 명만 남은 상태였다.
“사교도들의 시체를 돈으로 바꾸려면, 그 현상금을 내건 곳으로 가야겠지?”
베로니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오니아의 항구도시 라케티트에 사는 귀족 중 하나가 피해자인 영주와 친척이래. 현상금도 그 사람이 걸었다네.”
“흠. 귀족이라. 네 오빠와 연관 있냐?”
“그저그런 중소 귀족이고 연 같은 건 없어. 그쪽으로 방향을 트는 건 마음에 안 들지만, 오빠네 추적자들이 내 경로를 예상하는 것도 막을 겸 좀 돌아서 가면 나쁠 것 없겠지.”
지그재그 노선. 스텔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시오니아만 도착하면 사제님 오빠분네 부하들은 손가락 빨 거랬는데.”
“그 예상은 저번 납치극 이후로 폐기했다고 말했잖아요.”
베로니카가 조금 작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넌 네 집안과 화목해질 필요가 좀 있겠어.”
“너한테 듣고 싶은 소리는 아닌데. 베레스포드 공작님께 들었어. 너, 후보생 생활 내내 본가로 돌아가지도 않았다면서?”
“뭐…… 집은 아니지만 전령 역할로 가족과 몇 번 만난 적은 있는데.”
그 말을 듣던 수도사가 끼어들었다.
“화평한 가족관계를 원한다면, 그 도시의 등대를 가보시오.”
“등대?”
“고대에 건설된 등대인데, 지금은 세월의 힘을 못 이기고 반파되어 있지요. 그래도 명소라오. 가족의 화평을 기원하는 장소로도 유명해 방문객이 끊이질 않는다지.”
베로니카는 코웃음을 쳤다.
“갈 일 없어요. 그런 데 기웃거리는 건 성직자가 할 일도 아니고…….”
“뭐, 사제 아가씨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들은 그런 기원이 필요할 수 있지요.”
수도사의 눈길이 카치운과 가르달에게 멈췄다. 그 둘은 뭔가 생각이 있는 표정이었다. 카치운이 먼저 입을 열었다.
“가는 길이면 방문해봅시다. 돈 드는 일도 아니잖아.”
“흠. 나도 찬성이오.”
가르달이 맞장구를 쳤다. 베로니카의 시선이 묘해졌다.
“카치운 씨는 사정이 대충 짐작 가는데…… 가르달 씨는 왜요?”
“상회를 오래 비웠더니 이 머저리들이 좀 걱정되기 시작했소. 저번에 오로트 왕실과 협상하는 데 물 먹었다는 편지도 신경 쓰이고…….”
베로니카는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에드워드는 낄낄 웃으면서 자신의 말로 향했다.
“뭐, 일단 가보자고. 안 그래도 그 둘은 가족과의 편지도 당분간 못 받게 생겼는데.”
그리고 그 원인은 베로니카의 사정 때문이었다. 경로를 이리저리 바꿔대면, 편지가 제대로 도착을 못 하고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체계적인 우체국 따위는 없고, 교회, 상회, 여행자 등이 우편업무를 대행하는 시대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편지가 실종되거나 몇 년 뒤에야 도착했더라는 이야기가 드물지 않다.
결국 베로니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가족의 화평이라. 중요한 일이긴 하지.”
에드워드는 헬레나를 돌아보았다.
“넌 어때?”
“가르달처럼 상회를 운영하는 것도 아닌데, 그리 자주 편지를 주고받거나 걱정할 일은 없죠.”
“흠. 그런가.”
“당분간 당신과의 일에만 충실해도 별문제는 없는 셈이에요.”
장수하는 데다 시간 감각이 좀 다른 엘프 기준의 말이었다. 하지만 스텔라는 묘하게 해석했다.
“사제니이이이이임?”
“무슨 말 하고 싶은 건지 알겠는데, 닥쳐요.”
가르달은 뚱한 표정으로 말했다.
“암말과 젖소를 싸움 붙이는 암고양이라. 에드워드 경도 화평한 가족이 좀 필요하긴 하겠…….”
그 직후, 사교도의 일격도 무시했던 드워프 전사는 일행의 여자들에게 제압당해 시체들과 함께 질질 끌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