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15)
215화 소원은 명소에 (2)
다행히 항구도시까지는 별다른 방해나 사건 없었다. 거리도 생각보다 멀지 않았다. 밴시 리안나는 시오니아의 항구도시를 보자마자 의문을 드러냈다.
“다티니아의 식민도시랑 별로 멀지도 않네요?”
베로니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해안 하나에 항구 하나만 있으란 법은 없지. 시오니아 서부 해안선은 길어. 그리고 물동량을 소화하려면 어느 도시든 커질 수 있고. 무엇보다도, 여긴 시오니아로 바로 들어갈 수 있는 항구야. 다티니아 녀석들의 항구와는 다르지.”
에드워드는 베레스포드 공작의 말을 떠올렸다. 큼직한 규모의 부대는 시오니아 권력자들의 거부반응 때문에 바로 상륙을 못한다던.
“병사가 필요하다지만 ‘새 권력자’는 두렵단 말이지.”
“무리의 대장들이 분란을 일으키는 경우도 부지기수니까.”
베로니카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특히, 본거지의 다툼에서 밀려난 귀족들은 눈에 뵈는 게 없어. 어떻게든 새 근거지를 가지려고 전쟁을 찾아다니지. 시오니아 입장에서 보면, 위험한 칼 같은 놈들이야.”
에드워드는 배신자 찰리를 떠올렸다. 주인을 뒤에서 찌른 기사라 해도 수요가 있어 고용했다 또 등을 찔리는 이야기.
“음울한 이야기군.”
“그래, 정말 음울하기 짝이 없었어. 쓸만한 군대와 고귀한 덕성을 동시에 가진 인간을 찾는 건 불가능했지.”
“응? 그런 인간을 찾았어?”
“내가 왜 소개장 쓰고 다니겠니, 이 인간아.”
“그 소개장 받는 사람들 중에 용병대장 같은 사람은 거의 없지 않았어? 보통 기사들이었는데.”
베로니카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큰놈보다는 그냥 적당히 쓸만한 애들 여럿 보내는 걸로 노선을 변경했지…… 기사도 귀하니까. 병사야 다른 데서 어떻게든 마련하면 되고.”
“흠. ‘대장’이 아니라 ‘기사’를 수입해 부대를 붙여보겠다? 그 부대는 기사한테 안 넘어갈 것 같냐?”
“감독관 따위를 붙일 핑계는 생기거든.”
“시오니아 귀족들의 사정도 복잡하구만.”
베로니카는 에드워드를 흘겨보았다.
“좀 쓸만하다 싶은 애들은 다 소개장 써줬더니, 남는 건 죄인 기사더라.”
“그 죄인 기사가 제일 최강이더라는 건 개그군.”
“스스로 최강을 자처하면 낯 안 간지럽니?”
그 대화를 듣던 스텔라가 가르달에게 작게 속삭였다.
“제일 싸게 샀다는 게 소개장 안 써줘도 된다는 의미였군요?”
“뭐, 월급도 포함해서 한 소리 아니겠냐마는…….”
가르달은 도시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온갖 대형조각상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성벽 밖에 별별 조형물이 다 있군. 왜 이런 걸 성벽 밖에 세워놨지?”
“이곳 사람들이 세운 것 아니에요. 이곳 사람들이 정착하기도 전에 있던 선주민들의 작품이지.”
“선주민? 내쫓은 거요?”
“다른 도시랑 싸우다가 박살났어요. 그 뒤 다른 사람들이 빈 터에 들어온 거죠. 벌써 천 년도 넘은 옛이야기라더군요.”
“전쟁에서 진 도시를 원 주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재건했다 이거군. 그럼 온 도시가 유적지겠는데?”
“또 유적이야! 유적은 지겨워…….”
리안나가 중얼거렸다. 에드워드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유적이 우리 가족이 되었다…….”
“뭐에요, 그게.”
“그런 게 있어.”
에드워드는 낄낄 웃었다. 카치운은 심드렁했다.
“이번에 방문하기로 한 등대부터가 그런 유적 아뇨? 반파되었지만 명소로 유명한. 저 조각상들도 그런 것 같은데?”
카치운이 가리킨 조각상은 수많은 사람으로 우글거렸는데, 코가 떨어져 나간 짐승의 상이었다. 불에 그을리고 비바람에 둥글게 깎여서, 물개처럼 보였다. 에드워드는 그 첫인상을 필터 없이 입 밖으로 냈다.
“물개상?”
“사자상이야. 닳은 거지.”
사자가 아니라 물개처럼 보이는 그 조각상 주변 사람들은 뭔가 열심히 기도하는 듯했다. 베로니카는 그들로부터 시선을 돌렸다.
“기도를 하려면 교회에 갈 것이지, 천 년도 더 전에 버려진 조각상 따위에 기대다니.”
“주술사 찾는 거랑 비슷한 심리겠죠. 뭘 비는 걸까요?”
“저 정도로 인기 많은 건 몇 없어. 보통은 금전운…….”
“좀 빌고 올게요!”
리안나는 마부석에서 뛰쳐나가려다 베로니카한테 제지당했다. 그녀는 말을 바로 옆으로 몰아 몸으로 가로막으며 말했다.
“이단심문관의 하녀가 그런 거에 의존하면 되니?”
“교회가 소원 안 들어주는데요, 뭘!”
“스텔라 양?”
“넵! 합법 응징하겠사와요!”
지시에 따라 옆자리 스텔라가 리안나랑 티격태격하기 시작했다.
“이젠 기사님 명령도 모자라 사제님 명령도 받나요, 부역자!”
“억울하면 네가 돈으로 날 부려봐! 목구멍이 상전이지!”
“그 돈 벌려고 금전운 찾는 건데!”
에드워드는 그 티격태격에 별로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분수대에 소원 빌겠다고 동전 던지던 사람들 생각나네. 나도 그런 거나 하나 만들어서 돈 긁어모으고 싶었는데.”
베로니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 분수대인지는 모르겠는데, 그 돈 거둬서 빈민구제에나 쓰면 되겠다. 너도 그런 데 소원 빌어봤어?”
“난 안 빌었는데, 시원한 거나 하나 먹었으면 좋겠다고 빌었다가 큰일난 양반 하나는 알지.”
“그 분수, 상수도 아냐? 분수 주제에 태업이 좀 심하네.”
에드워드는 문득 환생 직후 크게 놀랐던 일 하나를 떠올렸다. 분수의 물이 우물물보다 깨끗한 식수 취급받던 것. 환생 전의 분수야 사람이 입에 댈 물이 아니었고, 조금만 관리를 안 하면 흙과 풀과 벌레의 천국이 되었으니까.
“뭐, 동전으로 물을 더럽힌 탓일지도.”
“흘러나가는 곳에 동전 던지는 걸 두면 딱히 마실 물을 더럽히는 것도 아닐 텐데.”
“왜? 조금 전까지는 교회 사람으로서 그런 거 용납 못 한다는 것 같더니?”
“교회 앞에다 그런 거 만들면 자동기부…….”
“와오. 교회가 좋아하겠다.”
둘의 대화를 듣던 가르달이 짧은 감상을 냈다.
“닮아가는구만.”
에드워드는 바닥에 엎드린 채 대가리가 깨진 거대 사자조각상 옆을 지나치면서 문득 스핑크스를 떠올렸다. 대가리가 날아가 버린 바람에 그게 사람 머리의 스핑크스와 같은 것인지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가르달.”
“왜 그러시오?”
“아침엔 다리가 네 개, 점심엔 다리가 두 개, 저녁엔 다리가 세 개인 게 뭐요?”
“오크인가?”
“왜 오크요?”
“오크잖아.”
“반박을 못하겠군.”
오크들이 들으면 항의할 대화였다.
뒤이어 일행은 반파된 거대 등대를 성벽 등 장애물 없이 온전히 시야에 넣었다. 반파라고 해도 제일 위만 좀 부서진 정도였다. 성벽과 바다 등 장애물이 없다면 전력질주해 몇 분 만에 도착할 거리. 하지만 등대로 가는 그런 지름길 따위는 없었고, 도시로 들어가는 게 먼저였다.
일반인들은 별다른 검사가 없이 통행세와 관세만 불고 통과됐지만, 무장한 기사는 자기 신분을 증명해야 했다. 경비대 간부로 보이는 사람이 서류들을 둘러보다 말했다.
“붉은 옷의 교회기사라! 혹시 에드먼드 경을 아시오?”
“내 이름은 에드워드인데.”
“아니, 에드먼드 경.”
“모르겠소. 그 사람도 앵글리아인인가?”
“그렇소. 여기보다 동쪽으로 북상했다더군. 아르데니아에서 만티코어를 잡았다 들었소.”
에드워드는 뿜을 뻔했다. 베로니카가 그의 등에 손을 얹었다. 간부는 그걸 못 보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이단심문관과 엘프와 드워프를 동반한 특이한 일행이라던데. 불의 마법을 통달한 대박사의 인솔을 받는다 들었소.”
“요정은 무시당했어?!”
리안나가 입을 열었지만 스텔라가 곧바로 그 입을 틀어막았다. 카치운은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베로니카는 웃음을 참으며 물었다.
“그 이단심문관도 여성인지?”
“그렇다 들었소. 젊은 여자인데, 머리카락도 옷과 같은 붉은색이라고 하더군요. 사제님은 아십니까?”
“글쎄요. 이단심문관은 사람들의 생각보다 많아서요. 저와 소속이 다를 수도 있고.”
간부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둠과의 싸움에는 전력을 다해야지요. 에드먼드 경도 여기 와주면 참 좋을 텐데.”
“왜, 만티코어라도 나타났소?”
에드워드의 질문에 간부는 손을 크게 내저었다.
“돌괴물들이오. 명소마다 가끔 나타나는 것들인데, 하필이면 최고 명물인 등대에 꼬였지 뭐요.”
가고일 등 기원과 주술적 의미를 담아 만든 석상이 진짜로 움직여버리는 사태. 그저 자기 임무에 충실하면 다행인데, 가끔은 어디가 고장 났는지 함부로 사람을 공격하는 예가 있다. 집단매장지 언데드나 잡던 초짜 모험가들이 상대하기에는 난이도가 있고, 떠돌이 해결사가 잡기에는 돈이 안 된다. 단순한 돌덩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저런. 그럼 등대는 출입금지요?”
“자기 일은 자기 책임이라면, 들어가는 걸 말리지는 않지요. 일단 시에서 개당 현상금을 걸어놨으니 잡아보려면 잡아보시구려. 큰놈일수록 비싸게 쳐준다 들었소.”
“큰놈도 있소?”
“모르겠소. 느리고 무해한 것도 있지만, 돌덩이 주제에 날쌔고 숨는 것도 교묘한 것도 있다더군. 자세한 건 등대 관리사무소에 가서 물어보는 게 빠를 거요.”
“관리사무소도 있나?”
“등대 앞에. 입장료는 받아야지.”
“이놈의 도시는 성문 통과료도 모자라 등대 입장료까지 받네.”
“그러게 말이오. 에드먼드 경이라면 시에서 쌍수들고 무료로 환영할 것 같은데.”
에드워드는 투덜거렸지만 자기 정체를 밝히진 않았다. 밴시 리안나만 스텔라한테 입이 콱 막힌 채 바동거렸다. 성문을 통과한 뒤, 에드워드는 베로니카를 향해 말했다.
“네 짓이지?”
“헛소문이 잘 도네. 효과가 좋아.”
“에드먼드가 뭐냐, 에드먼드가.”
“에드먼드는 내가 붙인 가짜 이름이지만, 사실은 진짜 있는 일행이야. 만티코어를 잡지 않았을 뿐이지, 몇몇 괴물을 해치우기도 했고.”
“여성 이단심문관과 붉은 옷의 교회기사, 드워프, 엘프, 박사 말이야? 거 놀랍게도 비슷한 구성이네.”
“엘프와 드워프 정도는 성지에 흔히 보이거든. 그래서 몇몇 일행을 우리네로 착각할 소문을 흘려놨어.”
“우리랑 일행의 구성이 비슷한 여성 이단심문관이 흔한가?”
“정확히는, 기사랑 동행하는 붉은 옷의 여사제가 비교적 흔해졌지. 그리고 다른 일행과 합쳐진 무리로 이동한다면, 엘프, 드워프 등과 같이 있을 수 있고. 착각하기는 딱 좋지.”
그걸 들은 가르달은 혀를 내둘렀다.
“어떻게 우리가 도착하기도 전에 그런 가짜소문을 흘리셨소?”
“편지겠죠.”
헬레나가 대신 답했다. 베로니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 지인들과 교회 인맥으로, 뒷공작을 좀 했죠.”
에드워드는 입을 삐죽였다.
“그렇게까지 네 오빠를 엿 먹여야겠냐?”
“오빠도 작정한 것 같아서, 나도 작정한 거야. 절대 얕볼 수 없다고.”
“네 오빠는 대체 뭐 하는 사람이냐? 돌괴물 잡아서라도 등대 가긴 가야겠어. 가서 얼른 화목한 가정을 위해 기도해야 돼.”
“널 위해서 한 일이기도 하거든?!”
짜악!
등짝 때리는 소리가 울렸다. 리안나는 스텔라의 저지를 겨우 뚫고 한마디 꺼냈다.
“저렇게 등짝 후려갈기는 이단심문관은 우리 사제님이 유일할 거라는 데 한 표!”
결국 밴시는 잠시 마차를 세운 다음 대롱대롱 매달렸다. 리안나는 악을 썼다.
“요정을 이렇게 매다는 일행도 하나뿐이라는 데 한 표!”
에드워드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원칙적으로 표는 인당 하나다.”
“어라, 그럼 어디에…….”
“그리고 요정은 투표권이 없지.”
“투표권을 보장하라!”
“여기서 빌지 말고 명소에 가서…….”
그 순간,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졌다.
“응?”
에드워드가 고개를 드는 순간, 뭔가가 홱 하고 날아들어 리안나를 낚아챘다. 주변 사람들한테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돌괴물이다! 가고일이야!”
밴시는 하늘로 높이 치솟으며 소리쳤다.
“이젠 사람 같지도 않은 것들까지 요정을 매달려 든다!”
에드워드는 멀어지는 리안나를 보며 중얼거렸다.
“언제는 안 그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