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17)
217화 화평은 돈으로 삽니다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 돌괴물이 왜 리안나를 납치했는가 하는 의문에, 리안나는 스스로 답을 얻었다. 등대 꼭대기 층 바깥쪽에는 온갖 사람과 동물을 그려놓은 벽화가 있었다. 볼 사람 없는 벽화는 일종의 주술적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등대의 가고일은 이걸 위해 움직였다.
그 벽화 중 하나는 어린이 크기의 구멍이 나 있었다. 그리고 밴시 리안나는 그 구멍에 딱 맞았다. 리안나는 구멍에 끼워진 채 소리쳤다.
“불합리해! 인신공양의 흔적이잖아, 이거!”
“와, 요정이 그런 걸 다 알아? 교회가 회칠로 막아놓았던 구멍이긴 한데.”
가고일이 굵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공교롭게도, 밴시 리안나가 주입 당한 언어 중 하나라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경고가 가능하다는 걸 깨달은 리안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이단심문관의 하녀이므로! 넌 이제 좆됐다!”
“하하하. 난 교회가 무섭지 않다, 꼬마야. 인간의 사제가 여기까지 오는 게 쉽다면 나는 진즉 쫓겨났겠지.”
“세탁 요정도 툭하면 쫓겨나는데, 왜 사람 잡고 물건 훔치는 괴물이 안 쫓겨나는 건데!”
가고일은 한껏 가슴을 피며 폼을 잡았다.
“내가 이래 봬도 이곳 명물이란다.”
“구라 까네! 시민들이 아니라 순례객들만 건드렸지, 너? 그것도 툭하면 구르는 불쌍한 노예 꼬마!”
“어떻게 알았냐?”
“내가 바로 그거니까! 아, 갑자기 살기 싫어진다!”
“잘됐네. 살기 싫어졌으면.”
가고일은 꼬리를 휙 휘둘렀다. 꼬리는 돌무더기 하나를 후려쳤다.
툭! 와르르!
돌 사이로 해골 몇 개가 튀어나왔다.
“신관이 올 때까지 얌전히 있어라? 이번엔 요정이니까, 신관이 올 때까지 안 상하고 오래 있겠지.”
“신관?”
“그래. 신관이 와서 널 제물로 바칠 거다. 이 구멍을 쓰는 게 대체 몇 년만인지 모르겠네.”
“그 이교의 신관이 마지막으로 온 게 언젠데?”
“한 6백 년?”
“야,이 돌대가리야! 그 신관은 진즉 해골이 됐겠다!”
“알 게 뭐야. 난 시키는 대로 하는 거야.”
고장난 돌괴물. 리안나는 말이 안 통하는 놈을 상대로 최대한 떠들어 보았다.
“너 우리 기사님이 얼마나 무지막지한 놈인지 모르지?”
“네가 모시는 기사님이 누군데?”
“어린이와 악령의 재앙 에드워드 드 클레어다!”
“나도 어린이와 악령의 재앙 가고일인데.”
우르르릉! 쿵! 콰앙!
그때, 아래층에서 엄청난 소리가 울렸다. 돌 부딪히는 소리. 가고일은 벙찐 표정을 지었다.
“뭐야? 이런 소리는 처음 듣는데?”
벤시 리안나는 괜히 기고만장해서 소리를 더 높였다.
“사교도와 유적의 재앙이기도 하거든!”
* * *
뒤집어진 돌거북 등딱지가 등대의 층을 가로질렀다. 복잡한 미로 같은 구조가 아니었기 때문에, 등딱지는 바닥을 미끄러지면서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때려부쉈다. 그리고 그 방향을 유도하는 건 헬레나의 글레이브였다.
“밟아서 차는 게 마X오식이야! 지금 네가 하는 건 하키고!”
“뭔지는 모르겠는데, 이게 더 재미날 것 같은데요?”
“사과해! 닌X도와 마X오한테 사과해!”
“그게 누군데요?!”
“마X오는 전설적인 배관공이지. 붉은 옷을 입었고, 괴물 거북이들을 물리쳤으며…… 공주를 구출해.”
“붉은 옷이라. 그런데 왜 하필 배관공이죠?”
“원래 심심한 부잣집 아가씨와 유부녀들을 위로해주는 건 그 집에 방문하는 육체노동자라서?”
상하수도가 보편적이지 않은 세상에서는 배관공이 그리 흔한 게 아니었다. 그러므로 에드워드는 현지 체험자의 후기를 덧붙였다.
“사실, 배관공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지.”
기사와 엘프의 폭주를 따라가기 버거워하던 사제, 베로니카의 얼굴이 구겨졌다.
“꼭 지 같은 음담패설 희극만 좋아하네. 이제 희극인지 뭔지도 모르겠지만.”
“푸하하핫! 소금산의 드워프들한테도 비슷한 농담이 있는데. 환기구나 채광창이 고장났대서 기술자를 불렀더니…….”
가르달이 그 뒤를 이었다. 카치운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드워프도 바람피오?”
“뭐 피지 말란 법은 있나? 오쟁이 진 이야기야 어딜 가도 만국 공통의 음담패설이자 희극 소재지.”
가르달의 답변 뒤를 음울한 표정의 여마법사가 이었다. 저질체력은 숨을 헐떡이면서도 말했다.
“제가 영주 부인한테 쫓겨날 때 생각나네요. 자기도 바람 핀 주제에 남편을 의심해서는, 괜히 마법사인 저한테 신경질이었죠.”
“저런, 그래서 어떻게 했나?”
“바람 상대의 편지를 까서 영주님 서류철에 밀어 넣고 도망쳤죠.”
“이런 가정파괴범을 봤나?!”
“정당방위에요!”
“정당방위가 법전에서 일어나 멱살 잡을 소리 하지 좀 마요.”
베로니카가 어렵게 말했다. 에드워드가 덧붙였다.
“아, 그러고 보니 기사의 편지를 오해한 영주가 전령은 죽이고 부인과 그 하녀들을 성벽 아래로 집어던진 이야기 있었지.”
카치운은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비극이군. 그래서 어찌 됐나?”
“도망쳤던 기사가 간신히 해명에 성공하고, 영주와 기사는 화해했지. 부인의 정절은 칭송받았고. 영주는 새 장가를 들었소. 해피엔딩.”
“뭐가 해피엔딩이야? 영주부인한테는 하나도 해피엔딩이 아닌데?!”
“영주 부인은 명예를 회복했지.”
베로니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는 거지, 해피엔딩이라고 하는 게 아닌데?”
“화해하는 데서 끝나면 그렇지. 근데 다들 영주가 새 장가 든 이야기는 꼭 하더라.”
“여러 가지 의미와 용도가 있겠지. 넌 어떤 의미와 용도로 쓰고 싶어?”
에드워드는 씩 웃었다.
“자기 여자 대우를 그따위로 할 놈이니 웃음거리일 수밖에 없다?”
“후. 50점.”
“80점 줘.”
“싫어. 그런데 왜 100점이 아니라 80점이야?”
“원래 아가씨 앞의 기사는 100점 만점 못 받아. 20점은 나중에 따로 가산점으로 계산하는 거라.”
“……어디서 뭘로 가산점 받게?”
“어디게?”
짜악!
등짝 때리는 소리가 울렸다. 카치운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 조금 전까지 가정의 화목함을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지 않았소? 여긴 그 화평을 기원하는 곳이고. 그런데 어쩌다 주제가 이쪽으로 온 거야?”
“그러게. 뭐, 이것도 중요한 문제긴 하지. 화평한 가족에겐.”
에드워드는 낄낄 웃고는, 개박살이 난 돌괴물들을 돌아보았다.
“다행히 등대 벽은 튼튼하네. 등딱지 얻어맞고도 멀쩡한 것 보면.”
“그 정도니 아직도 남아 있겠지. 하지만 아지지야 대도서관만큼 유지하던 건 아니니까, 조심합시다. 드워프가 건물에 매몰되어 죽으면 그게 무슨 웃음거리야.”
가르달이 말했다. 에드워드는 거기 동의했다.
“뭐, 드워프가 드워프의 건축물에 깔려 죽는 것보다는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겠지만.”
한편, 헬레나는 다음 층 계단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에드워드가 말한 대로, 등딱지를 힘껏 걷어찼다.
쿠웅!
등딱지는 계단을 미끄러지듯 올라갔다.
“계속 이런 식으로 올라가면 될까요?”
“그러면 되겠지. 약하게 차지 마. 도로 내려올지도 몰라.”
“충분히 강하게 찼어요. 뭔가에 걸리지만 않으면 괜찮을걸요.”
그 순간, 등딱지가 도로 내려왔다. 그것도 아주 거칠고 빠른 속도로.
우르르릉!
헬레나는 인상을 썼다.
“뭔가에 걸렸네요.”
“그러게.”
에드워드 일행은 역주행하는 등딱지를 피했다. 헬레나는 글레이브로 그 등딱지를 쳐내 창문이 난 벽으로 보냈다. 이번엔 긁거나 스치는 정도가 아닌 정면충돌이었다.
콰앙!
등딱지가 벽을 뚫고 멀리 날아가 버리는 걸 본 가르달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엘프와 등딱지 조합을 철거반으로 쓰면 싸게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잡생각 그만두고, 정면!”
헬레나가 외쳤다. 그 순간 밴시 납치범이 계단을 통해 뛰어들어왔다. 놈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헬레나에게 덤벼들었다.
“재물손괴죄!”
가고일의 짧은 외침이었다. 헬레나는 글레이브를 크게 휘둘러 놈의 어깻죽지를 베었지만, 가고일은 생각보다 훨씬 단단했다. 쇠와 돌이 긁히는 소리가 터지면서 헬레나는 바닥을 굴렀다.
“조심해요! 보통 놈이 아니에요!”
“하는 말은 베로니카랑 비슷한 것 같은데.”
에드워드의 감상이었다. 베로니카는 바로 항변했다.
“너랑 더 비슷한 것 같은데?”
가고일은 거북이 등딱지가 뚫고 나간 구멍 앞에 착지했다. 그리고 분노를 내뿜었다.
“이 미친 인간 새끼들! 내가 몇 년 만에 이 아래까지 내려온 건지 모르겠다! 등대를 다 부술 셈이냐!”
에드워드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거 네가 던져서 부순 건데.”
가고일은 잠시 구멍을 돌아보았다.
“아.”
짧은 탄식. 그걸 들은 베로니카는 이마를 짚었다.
“지능이 높아 보이진 않네.”
“화목한 가정에 높은 지능은 필요 없는 건가.”
에드워드의 농담에 가고일이 바로 반응했다.
“멍청한 인간 놈들! 이 등대의 용도도 제대로 모르면서 소원을 빌러 오지! 하긴, 그러니 겨우 꼬마 하나를 위해 우르르 몰려왔겠지. 그 꼬마 노예한테 정이라도 들었냐? 엄마, 아빠, 딸 놀이야?”
베로니카는 번개처럼 나무망치를 가고일에게 집어던졌다.
빠악!
“누가 엄마야?!”
“내가 그럼 애아빠냐.”
스텔라는 웃어 버렸다.
“와, 그렇게 대입하면 그림이 끔찍한데요. 아동학대 애아빠…….”
“에이, 솔직히 하류층 가정 평균으로는 그렇게 끔찍한 대우 안 했어. 고기도 꼬박꼬박 먹이는데. 때리지도 않잖아.”
“필요할 때마다 집어던지신 건요?”
“그거는 평소 대우 문제가 아니라 비상시…….”
나무망치에 이마를 맞고 구르던 가고일은 그 대화에 벙찐 표정을 지었다.
“뭐야? 그럼 왜 여기까지 그 꼬마를 구하러 몰려온 거냐?”
“음. 이 등대 설립 목적에 맞춰서?”
에드워드는 돌괴물 잔해를 걷어찬 다음, 스텔라가 들고 온 주머니를 넘겨받았다. 시장에서 사 온 대 가고일 준비물이었다.
“이 등대 설립 목적을 알고 있냐?”
“뭘 기원하는지는 똑바로 알게 됐지. 우리 이단심문관 아가씨가 그새 조사를 해와서 말이야. 뭐, 평범한 등대더라. 값비싼 무역품을 잔뜩 실은 배가 무사히 입항하거나 출항하길 바라고, 그래서 폭풍 따위가 오면 어린이를 제물로 바친 옛 이교 건설물.”
베로니카는 찌푸린 얼굴로 말했다.
“교회가 자리 잡으면서 오래전에 처분해버린 방식인데, 몇 년 전부터 어딘가에 문제가 생겼는지, 제물선정용 가고일이 움직이기 시작했다지. 네 이야기야.”
“흠. 생각보다 잘 아는군. 그래서, 너희 목적은?”
에드워드는 가고일을 향해 열쇠검을 겨누었다.
“말했잖아. 등대 설립 목적에 맞춰서 왔다고. 재산의 보전과 증대. 밴시는 내 노예니까 내놔, 돌괴물 자식아.”
가고일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아직 모르는 게 하나 있군. 한번 올라간 제물을 도로 돌려받길 원하는 자에겐, 오직 죽음뿐이다!”
에드워드는 자루를 풀었다. 굵은 가닥의 그물이 바닥에 흘러나왔다. 그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럼 돈 내고 가져가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