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18)
218화 집요정은 본래 단결의 도구
허리띠 캐슬린은 가고일 몰래 날아가 등대 꼭대기로 진입했다. 버클 부분을 고개마냥 이리저리 돌려대던 허리띠는 곧 상황을 파악했다.
“아하. 밴시 꼬맹이가 대체 어떤 상태인가 했더니.”
“구경하러 왔나요, 색골 망령!”
밴시는 비명을 질렀다. 캐슬린은 그 비명을 무시하고, 주변을 다시 둘러보더니 말했다.
“여기저기가 무너져서 사람이 발을 디뎌 올라올 곳이 없네. 엘프라도 어렵겠지? 까딱 잘못 디디면 무너지면서 추락할 것 같은데. 아무리 그 젖소 엘프라도 무사하지 못하겠지.”
“그러니 나 좀 꺼내줘요! 나 정도는 들고 날아갈 수 있잖아!”
“기사님이 그러라고 나 보낸 거긴 한데…… 너 그 구멍에서 못 나오고 있잖아? 내가 당기면 일어날 수 있겠니?”
“시도나 해 봐요!”
캐슬린은 밴시의 몸에서 유일하게 자유로운 부분, 즉 머리카락을 붙잡았다. 쭈우우우욱. 허리띠는 당기다 말고 폭소해 버렸다.
“와, 밴시 얼굴 너무 웃겨!”
“장난치지 말고 진지하게 해요!”
“기사님이 이렇게 피부 당긴 얼굴더러 바키 시리즈 얼굴이라고 하던데.”
“바키가 뭔데요?”
“몰라. 광대 아닐까? 표정으로 웃기는 광대들 있잖아.”
“그런 얼굴이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아요?”
“기사님의 성스러운 손아귀에 고문당한 악령이 나란다. 어휴. 위아래로 늘리기 당할 때는 진짜 죽는 줄 알았는데.”
“이미 죽은 망령이 뭐래.”
“너도 죽어봐라, 얍!”
“끼야아아악! 살살 좀 당겨요!”
“살살 당기면 떨어지니?”
한참 뒤, 캐슬린은 투덜거리며 밴시의 머리카락을 놓았다.
“접착제라도 부었나? 왜 이렇게 안 움직여?”
“주문이래요!”
“뭐야, 그럼 헛수고했잖아. 기사님 올 때까지 기다려.”
“오긴 와요?”
“왔어, 다들. 너 의외로 이쁨받는가 보다. 내가 사라지면 찾으러 올 사람은 없을 텐데.”
허리띠는 툴툴거렸다. 하지만 밴시는 감동 먹기보다 탈출이 먼저였다.
“집요정은 사람 안 믿는 게 철칙이래요. 그나저나 허리띠 말고 사람 모습으로 나타나 봐요! 더 세게 당겨야죠!”
“이 모습이나 그 모습이나, 내 힘이 달라지는 건 없어.”
“무쓸모!”
“인정. 방패에 마개에 받침대까지 해 먹는 세탁노예보다야 쓸모없는 침실노예지.”
“이겼는데 억울하다니, 두 배로 억울해!”
밴시는 발악하듯 바동거렸지만 사지가 구속된 채 꿈틀거릴 뿐이었다. 캐슬린은 키득거리면서 그 주변을 날아다녔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김에 뭔가 해놓지 않으면 기사님한테 또 혼나겠지? 뭐 재밌는 것 없나?”
허리띠는 이것저것 막 건드리기 시작했다. 리안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그 모습을 지켜봤다.
“그러다 뭐 잘 못 되면 어떻게 하죠?”
“내가 잘 못 되겠니, 네가 잘 못 되겠니?”
“악령!”
“어머나, 이거 비밀 레버 아닐까?”
덜컥.
허리띠가 툭 튀어나온 빗물받이를 휘감아 내리는 순간, 밴시 리안나가 박혀 있던 벽이 흔들렸다. 그리고 리안나는 벽 속으로 사라졌다.
쿠르르릉!
원형으로 도려내듯 푹 들어간 제단은 곧 아래를 향해 맹렬히 구르기 시작했다.
“밴시 살려어어어어!”
캐슬린은 원형판째로 벽 속을 데굴데굴 굴러가는 리안나의 옆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런 장치는 왜 있는 걸까? 고대인들은 알다가도 모르겠네.”
* * *
“야, 이 새끼 이거 보통이 아니네. 안 잡히는 데는 이유가 있네.”
에드워드는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며 말했다. 통상 돌괴물이라고 하면 급소도 없이 단단하고 느린 괴물을 떠올리지만, 눈앞의 가고일은 빠른 속도를 자랑했다. 그리고 등대는 각 층이 높고 넓어, 놈이 3차원적으로 움직일 공간은 충분히 나왔다.
가고일은 기고만장해서 외쳤다.
“벌써 지쳤냐, 인간!”
불행히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에드워드는 베로니카한테 질문했다.
“돌괴물은 지치는 법이 없나?”
“적어도 자기를 세운 주문이 멀쩡한 동안에는?”
“어디다 동력원으로 팔고 싶군. 가르달, 댁이 공장주면 저거 사겠소?”
“주문을 어디다 설치할 수 있느냐, 주문이 얼마나 오래가느냐, 뭐 그런 게 문제 아니겠소? 아니면 본전치기도 못 하는 거지…….”
“잡기도 전에 뭘 논의하는 거예요? 기사님, 저 이미 지쳤는데요!”
스텔라의 비명이 뒤를 이었다. 그녀는 큼직한 장갑을 낀 채 그물의 한 귀퉁이를 잡고 있었다. 돌괴물에겐 번개가 안 통하기 때문에 그녀의 역할은 육체노동으로 한정되었고, 그건 스텔라가 극히 혐오하는 것이었다.
“마법사를 육체적으로 부려먹다니! 기사님은 너무하셔!”
“그러게 누가 번개 스킬트리 몰빵 찍으래?”
“또 이상한 말씀 하신다! 기사님, 사실 마법사 맞죠?!”
카치운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 대화에 한마디 얹었다.
“마법사가 뭘 묻고 있는 거야, 대체. 그물이나 똑바로 잡아!”
넓게 펼친 그물의 한쪽 끝은 가르달이, 다른 한쪽 끝은 에드워드가 붙잡았다. 그리고 그 그물에는 뭔가 끈적한 물질이 도사렸다. 물고기 잡는 용도의 그물에다, 새 잡는 그물용 송진을 바른 것이었다.
제대로 펼쳐 던지기만 하면, 가고일을 봉쇄하는 것 정도는 무리가 없을 신병기였다.
문제는 통상 신병기가 그러하듯, 단점도 만만찮은 데다 쓰기는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거 괜히 갖고 온 거 아냐?”
한발짝 뒤에 선 베로니카의 평이었다. 헬레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에드워드 경이 손아귀 힘 잘못 주면, 우리도 이 그물에 다 휘말릴 것 같은데요.”
“위험할 때 되면 놔.”
“위험한 때가 언제인데요? 신호할 거예요? 신호하면 제때 뺄 수는 있긴 한 건가요?”
“나 못 믿냐?”
“만티코어 때 생각나요? 올가미 거는 데 실패해서 결국 매달렸잖아요.”
“차라리 그물을 찢으면 찢었지, 너네가 휘말리지는 않게 할게. 됐지? 야, 왼쪽!”
쿠웅!
가고일은 잡담 사이를 가로질렀다. 놈은 활짝 펼친 날개로 에드워드의 목을 노렸다. 돌괴물의 날개 끝은 날카로워 보였다. 정말 날카로운지 실험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던 에드워드는 잽싸게 고개를 숙이면서 그물 뭉치를 날렸다.
그러나 가고일은 그걸 여유롭게 피한 다음, 날개를 접어 순식간에 창문을 통과했다가, 거북이 등딱지가 만들어놓은 큰 구멍으로 다시 돌아왔다.
“하하하하! 느리구나, 인간!”
“삼류 악당 같은 대사네.”
에드워드의 추가 감평이었다. 그리고 헬레나가 토를 달았다.
“세 번 정도 실패했으면 다른 방법 찾아도 되는 것 아니에요?”
스텔라는 무릎을 꿇었다.
“그물 무거워요!”
“일어서, 이 어리광쟁이야! 전열이 무너지잖아!”
가르달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베로니카는 그녀한테 근력강화 주문을 걸며 말했다.
“아까 꿀물 준 걸로 좀 버텨봐요. 꿀값은 해야지.”
“사제님까지 너무하신다!”
카치운도 한마디 얹었다.
“가정의 화평을 기원하러 와서는 이게 무슨 꼴이야. 오히려 우리끼리 싸우게 생겼네.”
“조별과제 같군.”
“그게 뭐요?”
“베로니카한테 물어보쇼. 걔가 대학 나왔잖아.”
베로니카는 굳이 설명하지 않았고, 가고일은 다시 한번 웃음을 터뜨렸다.
“한 번만, 딱 한 번만 성공하면 되는데 그게 어렵지? 그게 너희 한계다! 가정의 화평이고 나발이고, 엉뚱한 소리나 하는 인간들! 제물 의식을 방해한 죄는 죽음으로 갚……!”
쿠르르르르릉!
그때, 갑자기 뭔가가 등대를 흔들었다. 우지끈! 쿵! 쾅! 뭔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소리는 아니었다. 세월의 힘과 중량을 못 이겨 어딘가 잘못된 소리. 에드워드 일행과 가고일은 위를 바라보았다. 베로니카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할 놈도 없는 의식인 줄 알았는데, 뭔가 있나?”
가고일은 멍청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원래 의식에 이런 과정은 없었는데…….”
쿠우웅!
그 순간, 원형 돌판이 어디선가 나타났다. 그것은 가공할 만한 속도로 가고일의 등짝을 후려갈겼다.
“끄악?!”
가고일은 원판과 함께 부딪혀, 절대 닿지 않을 것 같던 그물 안으로 뛰어들었다. 헬레나가 황급히 장갑에서 손을 빼며 외쳤다.
“손 빼요!”
아슬아슬하게 모두의 손이 그물을 놓는 순간, 밴시의 비명소리가 울렸다.
“누가 좀 세워줘요오오오오!”
제단째 달려온 밴시는 끈적한 그물과 가고일과 한 덩이가 되어 등대 안을 질주했다. 돌돌 말린 그물 덩어리는 곧 천천히 멈췄다. 위치는 다시 그곳이었다. 아까 그놈이 등딱지로 뚫어버린 벽 구멍 앞.
가고일은 그물덩어리 속에서 긴 주둥이만 내밀고 말했다.
“대체 이게 무슨 재난이야?!”
에드워드는 짧게 고민한 후 말했다.
“보통 이렇게 서로 투닥거리는 이야기는 그런 클리셰 있지 않아? 모종의 이유로 다들 화합하고 단결해서 해결하는 거…….”
베로니카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게 리안나 덕이란 거니?”
“모두 한순간 한마음으로 그물을 놓았으니 어찌 보면 조건은 충족시키지 않나…… 집요정이기도 하고.”
뒤이어 그물공이 바람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당황한 헬레나가 그걸 붙잡아주려고 했지만, 스텔라가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고 말렸다.
“엘프님, 냅둬요! 지금 저기 손대면 접착제 때문에 엘프님까지 추락한다니까요?”
“앗……!”
헬레나는 움찔해서 손을 거뒀다. 밴시 리안나가 다시 비명을 질렀다.
“다들 나 찾으러 와줘서 약간 감동먹었는데, 역시 간악한 인텔리겐차는 예외군요!”
“난 2차 사고를 예방한 거란다!”
스텔라가 반박했다. 가르달은 손으로 턱수염을 한번 훑어 땀방울들을 털어낸 뒤 말했다.
“광산에서도 철칙이지. 2차 사고를 막으려면, 빠르게 미련을 끊어야 돼.”
“우와! 드워프 아저씨까지!”
카치운은 냉정했다.
“어차피 밴시는 안 죽잖아. 나중에 건지면 돼.”
“그게 당신 딸내미 또래한테 할 말인가요, 이 야만인!”
“아직 시집도 안 간 내 딸들이 왜 네 또래냐?”
“시집은 저도 못 갔는데요! 사제님! 구해 주세요!”
베로니카는 외면했다.
“불행히도 방법이 안 떠오르네. 그리고 전술적 판단은 기사가 해야지?”
에드워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네. 믿고, 안심하고, 떨어져라.”
“기사님, 꼭 지옥 가세요!”
가고일은 어이없다는 목소리로 외쳤다.
“이게 화목한 가정의 힘이란 말인가……!”
“이 머리 나쁜 조각상! 어째서 그런 결론이 나오는 건데!”
“너 그런 집요정 아니었냐?”
“아니야! 집요정은 억울해! 기사님, 꼭 지옥 가세요!”
“왜 나한테만 그래?”
“최종결정권자는 기사님이잖아요! 내가 천국 가면 기사님한테 꼭 죗값 다 받아낼 거야! 일시불로!”
“지옥 가라며. 뭔 수로 받을겨?”
“그럼 천국 가세요! 여자 없고 성가만 나오는 제일 지루한 천국!”
밴시가 악담을 퍼붓는 걸 마지막으로, 산들바람이 불었다. 그물공은 천천히 기울더니 등대 아래로 수직낙하하기 시작했다. 밴시와 가고일은 비명을 같이 질렀다.
“밴시 살려!”
“가고일 살려!”
슈우우우우우웅, 콰직.
카치운은 약간 늦게 등대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보았다.
“다행히 바다가 아니라 방파제 위에 떨어졌네. 좀 있다 찾으러 갑시다. 화평 기원이나 마무리 짓고.”
에드워드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럽시다.”
* * *
명당 자리가 도로 열렸단 소리에 사람들이 바로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에드워드는 귀신같이 몰려온 사람들 옆으로 한 발짝 물러서 중얼거렸다.
“가고일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
“가고일도 사람이 세운 거야. 고대인들.”
베로니카의 말이었다. 에드워드는 창틀에 기대 턱을 주먹으로 괴었다.
“굳이 특정 체격의 어린이를 제물의 규격으로 삼은 다음, 그 선정을 가고일에게 맡기고, 그래도 레버 하나로 제물을 빼돌릴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두는 고대인…… 트롤 같은 새끼들이네.”
“고대인의 기준과 상황을 지금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겠니. 그런데 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왜 하필 트롤이야?”
“트롤이잖아.”
“드워프네 오크 같은 거니?”
“글쎄.”
에드워드는 낄낄 웃고는 턱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는 방파제로 떨어진 그물공에 시선을 돌렸다. 가정 화평 기원 같은 데 관심이 없는 스텔라가, 그리고 제일 짧고 간단하게 소원을 빌고 내려간 드워프 가르달이 먼저 내려가 그물공을 해체하고 있었다.
“와, 드워프 아저씨! 가고일 이거 완전히 박살이 났는데요! 그물이 완충을 못 해 주나 봐요!”
“애초에 그런 용도로 만들어놓은 그물공이 아니잖아. 그나저나 이 망할 밴시 꼬맹이는 어디까지 처박혔길래 아직도 안 나와? 대답도 안 하고.”
잠시 뒤, 끈적한 송진과 돌조각 사이에서 기어 나온 밴시는 한탄을 이어갔다.
“다들 가정의 화평은 잘 기원하고 왔나요, 이 각박한 사람들아!”
“고럼. 덕택에 의미 있는 기원이 됐다. 돈 받기로 했거든. 남들은 돈 주고 기원하는데 우린 돈이 생긴다니까?”
“그럼 고기 사줘요!”
“기사 양반한테 따져.”
평범한 풍경이 돌아왔다. 에드워드는 창틀과 벽에 기댄 몸을 일으켰다.
“자, 부디 우리 이단심문관님네 오라버니께서 넓은 바다와 같은 마음을 회복하시어 여동생의 입신양명 일대기에 그만 간섭하기를.”
베로니카는 그 말을 듣고 빈정거렸다.
“고마워 죽겠네. 네 가족 소원은 안 비니?”
“몇 번이나 말했지만, 가족관계가 시원찮아서.”
에드워드는 씩 웃었다.
“네 가족관계를 걱정해 주는 게 더 편하고 빠를 지경이지.”
베로니카는 그의 어깨를 주먹으로 가볍게 때렸다.
“이런 엉터리 기원 정도로 풀릴 만큼 작은 문제가 아니거든?”
“어쨌든 넌 나한테 빚진 거다.”
베로니카는 에드워드를 흘겨본 다음, 저 멀리 있는 제단 대신 창밖을 향해 작게 중얼거렸다.
“이 망나니가 화평한 가족을 이루고 침대에 누워 죽게 해 주시길 비나이다.”
“뭔가 악담처럼 들렸어.”
“바라는 것도 많네.”
“디테일을 좀 보강해줘. 이단심문관을 포함하는 걸로.”
베로니카는 얼굴을 붉혔다.
“또 슬쩍 추파 던진다. 넌 대체 적당히를…….”
“엘프 여자랑 여마법사를 포함해서 두 다스 정도 추가 주문도.”
베로니카는 전력을 다해 에드워드의 등짝을 후려갈겼다.
* * *
아직 다티니아 식민시를 벗어나지 못한 베레스포드 공작은, 자신의 탁자 앞에 앉은 사람을 보고 눈썹을 꿈틀거렸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해결사 파브리스는 손수건으로 얼굴의 땀을 훔치며 말했다.
“붉은 옷의 앵글리아인 기사를 찾으신다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