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19)
219화 검과 검과 검 (1)
파브리스의 딸이자 사제이며 기사인 올리비아는 짜증부터 냈다.
“망할 놈의 남부 갈래길은 왜 수십, 수백 개나 되는데?!”
“요충지만 가려내는 게 편하지 않겠습니까?”
한 수하의 말이었다. 올리비아는 낮게 으르렁거렸다.
“내가 그걸 몰라서 이러고 있겠냐? 그걸 기준으로 잡아도 가짓수가 무지막지하게 늘어난단 말이다!”
길 같지도 않은 길까지 포함해서. 올리비아는 지도를 들여다보며 낑낑거렸다.
“편한 길로 갈까? 빠른 길로 갈까?”
“아버님과는 다른 길로 가야겠지요. 라케티트는 어떻습니까? 거기엔 온갖 기원의 명소들도 있다던데. 여행자들이 들를 만한 곳 아닐지요?”
“베로니카 아가씨는 사제야. 그런 데 혹하지 않아. 게다가 만티코어도 잡은 기사가 그런 불확실한 명소들이나 돌아다니고 있겠어?”
“다른 일행들이 있지 않습니까?”
“베로니카 아가씨가 그들까지 고려해 경로를 정하지는 않겠지. 아직 우리가 풀려난 걸 모를 테니 허를 찌르겠다는 식으로 숨지도 않을 테고…….”
사실 에드워드 일행은 랜덤을 빙자해 내키는 대로 가고 있다. 하지만 그걸 알 리 없는 올리비아는 코웃음을 쳤다.
“게다가 그 망나니 자식이 가정의 화평을 바란다니, 그런 일이 일어날 리 없잖아. 아직 미혼이고 앞으로도 미혼일 얼간이 자식인데.”
“엘프가 있으니 미혼으로 남지는 않을 텐데요.”
“때때로 이종족과의 결혼은 인간과의 결혼과 별개로 취급되지. 그리고 그자는, 처를 둘이나 두는 게 아니라 엘프네 사냥개 노릇이나 할걸.”
올리비아는 지도를 구겨 접었다. 그리고는 말머리를 북쪽으로 돌렸다.
“어쨌든 북상한다. 어딘가에서는 단서가 잡히겠지.”
“파브리스 님과 경쟁하게 생겼군요.”
파브리스 일행은 증원된 무리를 두셋씩 쪼개 주요 요충지로 흩어졌다. 베로니카의 행방을 모른다는 게 가장 큰 원인이었지만, 올리비아와 파브리스 간 불화 역시 큰 원인이었다. 올리비아는 다시 한번 코웃음을 쳤다.
“내가 먼저 찾아낼 거다.”
* * *
베레스포드 공작은 눈앞에 앉은 기사한테 당황하지 않았다. 그의 정체가 베로니카와 에드워드의 추적자라는 것을 알고도 당황하지 않았다. 대신 그에게 물 한 컵을 권했다.
“숨 좀 돌리지 그러나.”
“대단히 감사합니다.”
파브리스는 물을 바로 들이켰다. 그리고는 목이 갈라지는 듯한 신음을 내뱉었다. 베레스포드 공작이 다시 대화를 시작했다.
“내가 멀고 먼 앵글리아 출신이나, 베르세바 엘프들의 감옥에 대해서는 오는 길에 들은 바 있지. 소문이 사실이던가?”
“돌거인의 우물요? 전부 사실이더군요. 끔찍합니다. 베로니카 아가씨의 당부 덕에 그나마 빛이 닿는 곳에서 지냈지만요.”
“당신의 주군께서 꺼내주셨나?”
파브리스는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
“결론부터 꺼내자면, 아니오. 아가씨의 편지에 제 이실직고를 합했을 뿐이죠. 베르세바 엘프들이 며칠 고민해보더니 풀어주더군요. 높으신 분들께 말 한마디 전하는 게 왜 그리 힘들던지. 하긴, 그러니 감옥이지만요.”
베레스포드 공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는 사람이 많아서 좋은 일은 아닐 텐데, 입이 싸군.”
“공작님도 아시는 일 같은데요. 뭐, 도움을 청하려면 결국 사정을 아는 사람이 늘어야 하겠죠. 그러니, 좀 도와주시죠.”
“일 없네.”
“제 주인께 빚을 지우는 일인데요. 공작님께 필요한 일 아닙니까? 시오니아 사람들의 호의를 사는 거요.”
“대신 숙녀께 분노를 사겠지. 그리고 난 내 제자의 뒤통수를 때리는 취미 없네.”
파브리스는 입맛 쓰다는 표정을 지었다.
“완고하시군요.”
“아니면 앵글리아 왕실이랑 일 못 해 먹지.”
“제자분도 그 완고함을 이어받은 걸까요?”
베레스포드 공작의 얼굴이 결국 일그러졌다.
“그 썅노무 새끼…… 는 7살 때부터 애늙은이 같았고, 한결같았지. 내 밑에서 배우든, 왕 밑에서 구르든. 검 같은 놈이야. 한 번 완성되면 고치기 힘든.”
“흠. 타고난 성정인가요. 골치 아픈 기사군요.”
파브리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베레스포드 공작은 그를 붙잡듯 말했다.
“추적은 권하지 않겠네. 지금쯤이면, 어느 길로 가든 시오니아 국경도 이미 넘었을 테고.”
“방해꾼이 따라붙을수록 여행과 사랑은 불타는 법이라고 하지만, 지시를 받은 이상 손을 놓고 있기도 어려워서요.”
“어느 길로 갔는지는 아나?”
“붉은 옷의 앵글리아인 기사를 물어물어 찾아가면 되겠죠. 제가 공작님 앞에 선 것처럼요.”
“내가 그래서 트레베리아인과 아퀴타니아인과 알레마니아인과 마메르티니아인을 다 만나봤지. 이곳 사람들이 칼같이 분간해줄 줄 아나?”
뼈 아픈 지적이었다. 다티니아의 식민도시는 붉은 옷의 사제들과 기사들이 모였다 흩어지는 곳. 게다가 귀족들은 대개 아퀴타니아어를 쓰니까, 언어로 구분하기도 힘들다. 설령 모국어를 쓰는 경우를 보더라도, 그게 앵글리아어인지 알레마니아어인지 현지인이 알아들을 리가 없다.
잘못된 정보를 물었다간 엉뚱한 일행을 쫓아갈 확률이 컸다.
“은발 밴시 있는 일행은 드물겠지요?”
“귀족행렬에서 노예 꼬맹이를 누가 신경 쓴다고. 머리수건이라도 하나 썼다간 바로 놓칠 것을.”
격침. 파브리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뭐, 재주껏 쫓아가야죠. 압송은 못 해도 시선에는 넣어야 하니까요. 제가 찾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이 찾겠죠.”
“다른 사람들?”
“제 동료들입니다. 같이 풀려난 사람도 있고, 시오니아에서 돌아다니는 사람도 있지요.”
“당신 주인께서는 사람을 너무 헤프게 쓰는군.”
“그러게 말입니다.”
“자네는 어디로 가볼 생각인가?”
“그 망나니 기사 양반이 모험을 쫓아갈 만한 곳부터 뒤져야겠지요?”
“자네를 따돌릴 생각이면 최단거리로 도망쳤겠지.”
“그 추론은…… 이미 한 번 써먹어서요. 아가씨는 아마 빙빙 돌아서 갈 겁니다. 슬픈 일이지요.”
“저런. 이제 자네 동료들이 길마다 다 막거나 쫓게 생겼군.”
파브리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다행히도 제 주인께서는 거기 특화된 재주꾼들도 데리고 계시죠.”
베레스포드 공작은 뚱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들으면 마왕인 줄 알겠네.”
* * *
카치운은 마왕 같은 표정으로 잡상인들을 노려보았다. 가족의 일로 에드워드한테 도움받고 일행들과 친해지면서 요즘은 만담이나 하고 있지만, 그는 현상금 사냥꾼 본래의 냉정함을 잊지 않았다.
잡상인들이 가져온 ‘사연 있는 검’들 앞에서 그는 자신의 곡도를 뽑아 날 끝을 까딱거렸다.
“이걸로 내리쳐서 멀쩡한 놈만 사는 건 어때?”
잡상인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시내에서 위협을 목적으로 함부로 칼을 뽑는 건 법률 위반이라는 항의는 소박했고 연기처럼 덧없었다.
“특별사법관 호위면 검 좀 뽑았다 해서 난리 날 일 없겠지.”
에드워드가 말했다. 뒤이어 스텔라가 식전주를 홀짝이며 끼어들었다.
“제가 뭐랬어요? 별 볼 일 없는 것들일 거라 그랬죠?”
잡상인들이 내민 검은 진품인지부터가 의심스러운 것들이었다. 설령 진품이어도 써먹기에는 문제가 많았다. 너무 먼 이국의 물건이라 검이 맞는지부터 의심 가는 모양새라던가, 오래전 기술과 유행이 기준이라 검신의 폭과 날의 단면 등 스타일이 다르다던가. 아예 재료부터가 청동 등으로 낙제인 경우도 있었다.
완전히 녹이 슬어서 손끝으로나마 건드리는 것도 꺼려지는 물건이 나왔을 땐, 에드워드도 어이가 달아났다.
“저런 걸 사는 놈들이 있나?”
“에드워드 경만 모험에 나선 게 아니잖아요. 수많은 기사가 각지에서 온갖 괴물들과 싸우고 있어요. 성지까지 왔는데, 기연이나 행운을 기대하고 옛 검에 손대는 사람들이 왜 없겠어요?”
스텔라의 손가락이 에드워드의 허리춤을 향했다.
“반대로, 좋은 검을 들고 성지까지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지요.”
에드워드는 인상을 쓰곤 열쇠검의 폼멜을 짚었다.
“이게 좋은 검 같냐?”
“기사님 괴력으로도 안 부서지는 검이면 좋은 검이죠.”
“쓸데없이 두껍고 큰 데다 무게중심도 안 좋고 끝은 뭉뚝한데?”
근래 좋은 한 손 검의 조건은 다이아몬드형 단면의 검신을 지닌, 칼끝이 매우 뾰족한 형태. 폭은 끝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스타일이 주류다. 열쇠검은 정반대다.
“이야기가 있는 검은 변할 수도 있다던데.”
카치운의 말이었다. 에드워드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 이야기도 간혹 들리긴 한데, 빛의 진영이건 어둠의 진영이건 검은 그냥 새로 만드는 게 보통이더라고.”
잊혀진 옛 검들을 대신하기 위해, 세상에 새로이 내던져지는 무기와 선물들. 즉 몇몇 영웅적 경우를 빼면, 좋은 검을 들고 성지에 왔다는 기사들의 ‘보통’ 이야기는 대개 유명한 대장간에서 만들어지고 유명인사가 축복한 검으로 이루어진다.
“열쇠검은 그저 세상에 ‘나와 버린’ 낡은 검 중의 하나뿐일 수도 있어. 그런 건 특정 목적으로만 겨우 쓰이지.”
스텔라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묘하게 잘 아시네요?”
“아지지야 대도서관에서 열쇠검의 기록을 봤잖아. 이런 거 전문감정하는 교수한테서도 상담했고. 그때 들은 거야.”
“아, 그때…… 또 뭐 들은 거 없어요?”
“검의 정체랑 그 특정 목적이 무엇인지는 들었지. 성인과 악마가 날 성지로 내모는 이유 중 하나가 그건가 싶은데.”
“뭔데요?’
“대단한 건 아니야. 신경 꺼.”
에드워드는 폼멜을 놓고 전용잔을 집었다.
“어차피 지금은 봉인 때문에 능력이 안 나온대.”
“그 봉인은 어떻게 푸는데요?”
“검의 주인이 죄를 저질렀고 이전 이야기가 비극으로 끝났기 때문에, 회개해야 한다네. 근데 내 죄도 감당하기 힘든 판에, 검에 묻은 남의 죄를 어떻게 대신 해결해?”
구석에서 살점 붙은 돼지 다리뼈를 핥던 리안나가 그 말에 반응했다.
“절대 무리죠.”
리안나는 돼지 다리뼈랑 함께 숙소 천장에 거꾸로 매달렸다. 그녀는 다리뼈를 끌어안은 채 소리쳤다.
“기사님한테 동의한 것도 죄인가요! 고기는 지켰다!”
에드워드는 그 말을 무시했다. 그는 도로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내가 내키는 대로 검을 휘두를 테니, 그 사이에 뭔가 이야기가 만들어져 저절로 풀리길 바라는 게 고작이지.”
새 이야기를 거치면서 봉인이 깨지거나 새로운 힘을 얻는 경우. 베로니카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 경우는 정말 사람이 문제인데. 평범한 검이나 창이 전설의 위치에 올라서는 건 그걸 쓴 사람이 영웅이기 때문이야.”
“알아. 기사 모험담 중에 종종 있거든. 구전에 따라 검의 존재감과 대우가 달라지는 거.”
“대개는 이야기꾼이 덧붙이는 양념에 불과하지만, 간혹, 진짜가 있지.”
“기사님이 영웅 되면 되죠! 만티코어도 잡았는데!”
스텔라가 호들갑 떨듯 말했다. 몬스터를 쓰러뜨림과 동시에 종교적 미덕의 실현.
“말이 쉽지.”
에드워드는 입을 이죽였다. 환생자인 그가 적응하지 못하는 몇 가지 중 하나가 이 세계의 종교관이었다. 환생 전에도 열렬한 종교활동이 없었는데, 새삼 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결국 기사 동료들과 함께 취사선택한 ‘미덕’만이 그에게 남았다. 목숨 걸고 싸워 이기는 것. 그리고 그걸 위해서 필요한 모든 걸 허용하기. 그러나 그게 종교적 미덕으로 연결되느냐는 미지수다.
잠자코 듣던 카치운은 자기 몫 식전주를 싹 비우고는 말했다.
“설령 봉인을 풀어도 그 순간 검이 괴력을 못 이겨 부서진다면, 의미가 있나?”
결정타. 에드워드는 쓴웃음을 지었다.
“괴력을 버티는 게 봉인 덕이라면, 확실히 그렇지.”
때마침 점심 메인 메뉴가 나왔다. 커다란 고기, 고기, 고기들. 각자의 손칼이 바쁘게 움직일 때, 카치운이 덧붙였다.
“그래도 잡상인들 이야기 중에 건질 건 있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