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2)
22화 한 돼지, 세 남자, 그리고 소몰이꾼
죽은 돼지는 마을보다 더 낮은 곳의 얕게 판 구덩이, 장작더미 위에 있었다. 잽싸게 태우지 않고 내버려 둔 이유는 증거물 취급해서였다. 네 다리를 하늘로 뻗은 돼지의 시체는 푸르딩딩했고, 잔뜩 부풀어 있었다. 항문과 콧구멍에는 약간의 출혈도 보였다.
“찌르면 터지겠지?”
에드워드의 말에 베로니카는 열쇠검을 흘겨보았다.
“칼 아까워.”
“하긴.”
주임 사제는 몸서리를 쳤다.
“그러다 숨어 있던 악마가 튀어나오면 어떻게 합니까?”
“악마의 소행으로 보이시나요?”
베로니카의 말에 주임사제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이 돼지치기가 증인입니다!”
주임 사제의 손끝에는 죽은 돼지를 지키고 있던 청년이 있었다. 그 청년은 베로니카와 에드워드의 시선을 받자 움찔거렸다. 베로니카는 안경 너머로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훑어보았다. 돼지치기 청년은 여자의 그런 시선에 면역이 없는지 얼굴이 벌게졌다.
베로니카가 첫 질문을 꺼냈다.
“너, 이름이 뭐냐?”
“휴이입니다.”
“이 마을에 돼지치기는 너뿐이냐?”
“하나 더 있습니다.”
“둘만 이 돼지의 급사를 봤니?”
“아뇨. 물 떠오는 아이도 보았습니다.”
“이 돼지는 어떻게 죽었지?”
“신을 모독하는 말을 하더니 쓰러져 죽고는 순식간에 저렇게 부풀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해.”
돼지치기는 쭈뼛거리다 겨우 입을 열었다.
“돼지 한 마리 못 구하는 게 어찌 창조주냐고 했습니다.”
주임 사제는 한숨을 내쉬며 기도문을 읊었다. 베로니카는 웃어 버렸다.
“그래?”
그녀는 더 캐묻지 않았다. 대신 명령했다.
“뭐, 좋다. 네 허리에 찬 칼로 저 돼지의 배를 갈라라.”
“예?”
“그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도시면 모를까 작은 시골 마을이다. 돼지치기 청년이 ‘전문 도축업자의 일이니 나는 못 한다’고 빼기는 어려웠다. 그는 다른 핑계를 댔다.
“저는 악마를 다룰 줄 모릅니다.”
“악마 아닐 거야. 갈라. 아, 입은 가리고.”
베로니카의 두 번째 명령에도 돼지치기는 머뭇거렸다. 그러자 에드워드는 베로니카의 등 뒤에서 목을 손날로 치는 시늉을 해 보였다.
결국, 돼지치기는 수건으로 입을 가리고는 구덩이로 내려가 칼을 들고 돼지의 시체를 갈랐다. 무시무시한 악취가 뿜어져 나오자 돼지치기는 헛구역질을 했다.
“맙소사! 악마입니다!”
“그냥 썩은 냄새야!”
베로니카가 소매로 입을 가리곤 소리쳤다. 하지만 돼지치기는 겁에 질려서 물러섰다.
“죽자마자 썩어 푸르게 부푼 돼지입니다! 악마가 있었던 게 분명합니다!”
“그건 네놈이 알아볼 수 있는 게 아니거든? 허튼소리 한 번만 더 꺼내면 내가 직접 네놈을 저승에 보내서 고발케 해 줄 거야! 엉터리 고발자는 천국을 가도 거꾸로 매달리겠지! 배를 갈라서 이쪽으로 보이게 펼쳐!”
베로니카가 윽박지르자 돼지치기는 숨을 참은 채 돼지의 갈라진 배를 벌렸다. 그제야 베로니카는 구덩이 아래로 내려갔다. 그녀는 손으로 돼지의 간을 가리켰다.
“검은색으로 괴사하고, 기포가 생긴 간이야. 보이지?”
“예, 그렇습니다.”
“이 간을 잘랐을 때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면 그건 악마의 소행이 아니라 그저 질병이다.”
돼지치기는 베로니카의 말을 따랐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간은 스펀지처럼 구멍이 뚫려 있었지만,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비었네요?” 돼지치기의 말이었다.
“당연하지.” 베로니카가 답했다.
그녀는 도로 구덩이 위로 올라왔다. 에드워드가 그녀의 손을 잡아 준 다음 말했다.
“냄새 배겠다.”
“그러게. 끔찍하네.”
“그래서 뭐야. 아는 질병이야?”
“돼지 흑병. 어떤 이유로 간에 독소가 차는 바람에 죽는 병이지. 죽자마자 썩어 부풀어 오르는 게 특징이야. 드물지만 신기할 것도 없어.”
뒤이어 구덩이에서 기어 나온 돼지치기가 질문했다.
“악마가 그 질병을 퍼뜨리고 도망친 건가요?”
베로니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화제를 돌렸다.
“나머지 증인 둘, 어딨어?”
다른 돼지치기는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도토리를 줍고 있었다. 그는 동료 돼지치기가 데려온 갑작스러운 방문객에 놀라 꼿꼿이 굳어 버렸다. 베로니카는 바로 심문을 시작했다.
“이름이 뭐지?”
“빈스입니다.”
“왜 그런 걸 줍고 있지?”
“악마가 다시 수작질을 부릴지도 몰라 무사한 돼지들을 전부 소몰이꾼의 우리에 맡겼는데, 갑작스러운 일이라 돼지들에게 먹일 게 없기 때문입니다.”
“겨우 그걸로 되겠어?”
“일단, 다른 사람들까지 불러 돼지가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닥치는 대로 모으고 있습니다. 그게 풀이건, 곤충이건, 나무 열매건.”
“죽은 돼지가 뭐라 소리쳤는지 들었나?”
“물론입니다.”
“뭐라고 했지?”
“어, 그게…….”
돼지치기 빈스는 뜸을 들였다. 그는 기억을 더듬는 것처럼 눈을 몇 번 깜빡였다. 베로니카가 인상을 확 쓰자 그는 서둘러 말했다.
“악마의 사악한 연회를 열겠다고 했습니다!”
주임 사제는 손으로 두 눈 위를 짚었다. 베로니카의 고개가 옆으로 크게 기울었다. 까딱.
“구체적으로는?”
“구체적이라뇨?”
“메뉴라도 말 안 하든?”
“어…… 양배추와 베이컨 스프였습니다.”
동료의 증언에 돼지치기 휴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베로니카는 코웃음을 쳤다.
“너 지금 배고프지?”
“어떻게 아셨습니까?”
빈스가 놀라서 되물었다. 에드워드는 더 참지 못하고 낄낄 웃어 버렸다.
“이제는 세 번째 증언이 어떨지 궁금하고 기대되는데?”
리처드 주임 사제는 얼굴이 딱딱하게 굳은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일행은 빈스까지 데리고 다음 증인을 찾았다. 세 번째 증인인 물 긷는 소년은 밭 가는 소들의 우리 앞에 있었다. 그는 자신의 손수레에 기댄 채 소몰이꾼과 잡담 중이었다. 그들은 일행을 보자마자 고개를 숙였다. 주임 사제는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짓고는 먼저 말했다.
“불성실한 일꾼들 같으니라고! 너희 귀는 뭐로 막혔길래 아직도 여기 있느냐?”
“사제님, 악마를 경계하는 일에 사람이 부족하면 씁니까?”
소몰이꾼이 느긋하게 대답했다. 그의 등 뒤에는 살아남은 돼지들이 소와 함께 갇힌 울타리가 있었다. 소년이 움직이기 전에 소몰이꾼은 그의 어깨를 짚었다.
“얘는 악마의 외침도 들었다고요.”
“그 외침 때문에 왔다.”
베로니카가 말했다. 소몰이꾼 청년은 베로니카의 얼굴에 더 흥미를 보였다.
“와, 멀리서 볼 때는 몰랐는데 미인이시군요. 이단심문관이라기에 좀 더 흉악할 줄 알았는데요.”
베로니카는 주임 사제를 돌아보았다.
“뭔가요, 이 남자는?”
“벤슨이라고, 올봄부터 여기서 일하는 소몰이꾼입니다. 남들이 하는 일의 갑절은 하고 정직한데, 쓸데없는 말이 많아서…….”
베로니카와 에드워드는 눈을 가늘게 떴다. 외부인.
소몰이꾼의 체격은 에드워드에게 밀리지 않았고, 얼굴도 촌구석 남자치고는 준수한 편이었다. 하지만 베로니카 같은 귀족 기준으로는 한참 아래였다.
“뭐, 됐다. 너에겐 흥미 없어. 저 물 긷는 소년에게 볼일이 있다. 악마의 외침을 들었다고?”
“어, 그랬죠.”
“저 두 돼지치기와 함께 있을 때?”
“네.”
주임 사제가 끼어들었다.
“이런 불성실한 자들이 똑바로 들었겠습니까? 이단과 이교도도 구분 못 할 것들입니다.”
베로니카는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그리고 소년에게 질문했다.
“악마가 뭐라든?”
소년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굵고 낮은 목소리로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의 끔찍한 외침을 흉내 냈다.
“무우우우우울!”
돼지치기 휴이와 빈스는 먼 산을 보았다. 에드워드는 더 참지 못하고 애꿎은 나무를 붙잡은 채 폭소해 버렸다. 베로니카조차도 웃음을 참지 못해 고개를 숙여야 했다. 그녀는 한참 끅끅거리다 겨우 표정을 회복하여 주임 사제을 돌아보았다.
“이 아이는 충분히 성실한 것 같군요. 직업병이 있을 정도니.”
주임 사제는 뭐라고 더 말하지 못했다. 그는 벌레 씹은 표정으로 베로니카의 시선을 외면했다.
이단심문관은 돼지치기들에게 명령했다.
“죽은 돼지에 악마는 없다. 우리가 비좁아 보이니 얼른 돼지들을 빼가라. 이 여름날 그렇게 좁은 곳에 몰아넣으면 없던 병도 걸릴 거다.”
그녀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돼지치기들은 주임 사제의 눈치를 보았다. 먼저 행동에 나선 건 소몰이꾼 벤슨이었다. 그가 울타리를 열자 돼지치기들은 재빨리 행동에 나섰다. 돼지들과 돼지치기들은 산속으로 사라졌다. 물 긷는 소년도 주변의 눈치를 보다 자기 수레를 끌고 사라졌다.
침묵이 찾아오자 주임 사제는 벤슨에게 말했다.
“할 일이 없거든 손님들이나 우물과 윌킨슨 씨 댁으로 안내해라! 우물이 더 가까울 것이다. 난 교회의 일 때문에 잠시 돌아가야겠다. 이단심문관님, 잠시 자리를 비우는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그러시죠.”
베로니카는 선선히 허락했다. 주임 사제는 옷자락을 휘날리며 바람같이 달려갔다. 에드워드가 질문했다.
“윌킨슨 씨 댁이 악몽 꾼 여자애들 집이던가?”
“그렇지. 그러고 보니 딸도 셋이네.”
“또 셋 다 말이 다르려나?”
“아닐걸. 그 셋은 한 지붕 아래니 이미 말을 맞췄을 거야. 하지만 리처드 주임 사제는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겠지.”
에드워드는 리처드 주임 사제가 걸어간 방향을 보았다.
“미행해 볼까? 교회로 돌아가는지, 윌킨슨이라는 인간 집에 가는지.”
“필요 없어. 제아무리 말을 맞추어도 가짜 증언은 어딘가 허점이 생겨. 그걸 파고들면 그만이야.”
가만히 듣고 있던 벤슨이 손뼉을 쳤다.
“놀랍군요! 굉장히 똑똑하신데요? 우물이 마른 원인도 이미 알아내셨겠군요?”
베로니카는 그를 흘겨보았다.
“아니.”
“네?”
“응?”
벤슨과 에드워드는 동시에 의문을 드러냈다. 베로니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우물이 마르는 원인 따위는 천차만별이야. 마을이 커지면서 물의 소비량이 늘었다든가, 수맥이 말랐다든가. 흙이 쓸려와 막았을 수도 있고. 그걸 분간하는 건 토목과 치수 전문가의 영역이지. 애석하게도 난 아니야.”
“그럼, 이제 뭐 해? 윌킨슨 씨 댁 삼 자매를 바로 취조하지도 않을 거면?”
“주임 사제는 시나리오 짜느라고 당분간 나오지 않을 거야. 귀찮은 혹이 떨어진 사이에 다른 일을 좀 해야지.”
베로니카의 시선이 벤슨을 향했다.
“너, 이 마을 사람이 아니라고 했지?”
“예. 레버필드 출신이죠.”
“산 아래군. 어쩌다 여기까지 왔지?”
“원래 그곳의 농장에서 일하다 계약이 끝났는데, 이 마을의 리글리 씨가 돈을 더 주겠대서 왔죠. 시골로 오면 눈 낮은 처녀 하나 얻을 수 없을까 싶기도 했고.”
전형적인 이유였다. 베로니카는 마을의 경작지로 눈을 돌렸다. 구불구불한 산자락에 만들어진 밭들. 솜씨 좋은 일꾼은 언제 어디나 필요하다. 베로니카는 다음 질문을 꺼냈다.
“그래서 신붓감은 얻었어?”
“아직요. 마을에 처녀가 여섯인데 둘은 이미 임자가 있고, 나머지 넷은 저 같은 수컷들이 경쟁 중이죠.”
“그들 중에 윌킨슨 씨 댁 딸은?”
“막내딸이 하나 있죠.”
“나머지 다섯 중에 마음에 드는 처녀 있어?”
“왜요? 이어 주시게요?”
“아니. 윌킨슨 씨네 삼 자매가 마녀로 지목할 후보 중 하나일지도 모르니까.”
벤슨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목소리 크기를 줄여 말했다.
“헛소리라면서요?”
베로니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지목되는 순간, 그 여자는 마을에서 추방되거나 살해되겠지. 사건의 결과와 관계없이. 가해자는 발 뻗고 자는데, 피해자는 사라진 이야기들 알지?”
벤슨의 눈이 이리저리 굴렀다. 베로니카는 웃어 버렸다.
“최소한 네가 좋아하는 여자는 윌킨슨 씨네 막내딸이 아니네?”
“윌킨슨 씨는 욕심이 많죠. 제가 다른 일꾼의 다섯 배를 일한다고 해도 막내딸을 주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그녀는 제가 좋아하는 타입이 아니에요.”
“어떻길래?”
“좋게 말하면 똑똑하고, 나쁘게 말하면 표독하죠.”
교황청의 이단심문관은 고개를 크게 갸웃거렸다. 삐딱하게.
“똑똑한 여자는 표독해?”
“정정하겠습니다. 걔는 그냥 표독합니다.”
둘의 대화를 듣던 에드워드는 낄낄 웃어 버렸다.
“그 친구, 믿어도 될 것 같은데.”
“넌 입 닫아. 벤슨, 돼지치기들은 어떤 자들이지?”
“주임 사제님한테 큰 신세를 지고 있고 있죠.”
“이 마을은 너 외엔 외부인이 없나?”
“네 명이 더 있지만, 지금 둘은 마을 안에 없어요. 볼일이 있어 산 아래로 갔죠.”
“리글리 씨는 어떤 사람이야?”
“윌킨슨 씨처럼 성공한 자영농이죠. 작년에 그의 소를 사고, 농장을 더 넓혔고.”
“소를? 윌킨슨 씨는 재정난을 겪고 있나?”
“투자를 크게 했죠. 올가을에는 장녀를 시집보낼 생각이거든요. 도시의 큰 집으로 보낸다나. 지참금 마련한다고 무리했죠.”
“리글리 씨 집에는 여자가 몇이지?”
“부인 하나뿐이에요. 아들만 둘이죠.”
“리글리 씨는 어떤 사람이야?”
“윌킨슨 가와 이 마을의 여론을 양분하는 집안이죠.”
“서로 사이 안 좋아?”
“그 정도는 아니에요.”
“리글리 씨는 지금 뭐 해?”
“도시로 볼일 보러 나가고 없어요. 그래서 윌킨슨 씨가 마음대로 하는 거죠.”
베로니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리글리 씨 댁으로 안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