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23)
223화 3기사 집합 (2)
결투는 에드워드의 의도대로 흘러갔다. 다만 발터도 실력이 만만찮아서, 백중지세인 과정 하나하나는 치열하고 오래 갔다. 열쇠검과 발터의 ‘옛 검’이 몇 번씩 부딪히면서 사람들 사이에서는 환성과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 검, 튼튼하군.”
잠시 거리를 벌린 발터의 말이었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만이 장점이거든. 그쪽 검도 ‘옛 검’ 치고는 좋아 보이네.”
“그러니 들고 다니지.”
발터는 ‘요정을 죽이는 검’을 허공에서 한번 휘둘러보았다. 에드워드의 검보다 짧지만, 칼등이 근래 유행보다 넓었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날 가운데 홈을 파놓을 정도였다. 날폭의 처음과 끝은 경사가 완만했다. 찌르기보다는 베는 데 더 어울리는 옛날 스타일이었다.
에드워드의 열쇠검은 끝부분이 뭉툭해서 아예 찌르기가 불가능했다. 찌르더라도 날이 관통하는 게 아니라 둔기처럼 사람을 저지할 모양새였다. 당연히 에드워드의 기술도 베기 위주가 되었다.
둘 다 기사인만큼 투구와 사슬갑옷과 추가 방호구로 중무장한 상태니, 베는 기술도 크고 강력해야 했다. 그런 기술들은 체력소모가 심했기 때문에 둘은 겨울 기온에도 불구하고 땀범벅이 되었다.
발터가 먼저 열기를 두고 한탄했다.
“싹 다 벗고 눈밭 위를 구르고 싶군.”
“끝나고 해 볼까? 뒤의 여자들에게 팬서비스 좀 하지 뭐.”
에드워드의 농담에 발터는 웃어 버렸다.
“시작부터 끝까지 여자 타령이군.”
“애비가 셋인 것보다는 부인이 셋인 게 자랑거리 아닌가?”
“뭐냐, 그게.”
“댁 같은 인간이 가장 경멸하던 배신자 이야기지.”
“그대 고향의 기사 이야기인가. 그런 것도 재밌지. 그 이야기 속 날 닮은 기사는, 배신자를 경멸하는 사람은 어떤 인물인가?”
체력 회복할 시간을 벌려는 질문. 에드워드는 속내를 눈치챘지만 그냥 넘어가 줬다. 그도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생김새야 댁 투구 아직 안 벗겨봤으니 모르겠는데, 하는 짓은 비슷했어. 혈혈단신으로 다리 하나를 틀어막고 대군을 막아섰지.”
발터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건 기사의 로망 같은 이야기군!”
실은 삼국지 장비 이야기라고 말해봤자 못 알아들을 것이다. 에드워드는 대신 그도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했다.
“그리고 돼지 잡게 생긴 놈이었지.”
침묵. 에드워드는 계속 떠들었다.
“그리고 돼지고기도 못 팔아먹고 칼 잡은 놈.”
발터의 고개가 갸웃거렸다. 에드워드는 멈추지 않았다.
“복숭아밭에서 제일 막내로 난 놈, 수틀리면 사람 묶어놓고 빠따부터 치는 놈, 술 먹고 자빠져 자다 부하에게 목 따인 놈…….”
발터는 투구 아래에서 이를 갈았다.
“차라리 욕을 해라, 이 자식아.”
“말투가 바뀌었군. 그쪽이 좀 더 솔직해 보이네.”
에드워드는 낄낄 웃은 다음 자세를 바로 잡았다.
“그래도 인기 캐릭터야.”
발터는 에드워드의 해명을 믿지 않고 바로 검을 휘둘렀다.
콰창!
옛 검끼리 다시 부딪쳤다. 서로 싸울 준비가 된 숙련자끼리의 공격은 정말 쉽게 막힌다. 발터는 이를 갈았다.
“그대는 성지까지 왔으나 신의 뜻과 기사도에 진지하질 못하군. 무얼 하러 여기까지 왔는가?”
다시 말투가 바뀌었다. 에드워드는 짧게 반문했다.
“왜? 오면 안 되나?”
“나와 그대가 가진 ‘옛 검’은 신의 뜻을 따르는 자가 써야 하는 법이다. 그대가 ‘옛 검’의 진가를 일깨우는 법을 모른다면, 한낱 ‘검 전달자’에 불과할 뿐!”
“알 게 뭐야. 난 좋아서 이 검 쓰는 줄 아나. 있는 게 이것뿐이라 쓰는 거지.”
다시 검과 검이 크게 휘둘러졌다.
이번엔 에드워드가 거리를 벌렸다. 그는 발터를 향해 열쇠검을 까딱거렸다.
“하나 묻자. 그 잘난 ‘옛 검의 3기사’가 왜 이런 짓을 하는 거냐? 너희 세평을 들었다. 길을 막고 여자들을 위협하는 건 너희 할 일이 아닐 텐데. 누군가의 사주, 맞지?”
“기사가 후원자에 대해 함부로 입을 놀릴 순 없다.”
“있긴 있나 보군. 추측해 볼까. 어떤 여사제를 찾고 있나 보지? 그런데 그 여자가 어딨는지, 어떻게 생겼는지는 잘 몰라.”
모르는 척 찔러보기. 발터가 움찔했다. 에드워드는 속으로 환호했다. 빙고.
“맞췄나? 찍었는데.”
“그게 어쨌단 거냐! 후원자가 요구한 사소한 일에 불과하다!”
“여자들을 위험 속에 내팽개치는 게?”
“기사들을 도발하기 위해 조건을 내걸었을 뿐, 여자들에게는 적절한 보호를 제공하고 있다! 전부 돌려보냈으니까!”
표적으로 의심되는 여성만 골라서 확인한 다음, 되돌려보내거나 가까운 곳으로 호위. 혼자가 할 일은 아니었다. 부하나 동료가 있다는 증거. 아마도 다른 3기사도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에드워드는 생각보다 많은 정보에 혀를 찼다.
“뭐, 역시 생각 없는 결투광은 아니군. 그래서 더 쉽지 않겠지만.”
“또한, 우리가 내건 명분 또한 헛된 것이 아니다! 나는 그대처럼 색욕 죄악에 매몰된 자가 오히려 걱정스럽다! 옛 검을 가졌으면서도, 성지에 왔으면서도 어찌 그리 경망스러운가! 엘프 여전사가 선택한 기사로 보이기에 기대를 걸었건만!”
“헬레나가 죄가 좀 많아.”
“다 들리거든요?!”
어느새 돌아온 헬레나가 항의했다. 발터는 소음을 무시하고 소리를 높였다.
“잊혀진 명검들이, 새 검이 넘치는 세상으로 다시 나오는 건 오직 빛의 부름이 있기 때문! 운명이 우리를 택했다! 그래서 ‘옛 검의 3기사’는 끝없이 수련하고 모험을 갈구하는 것이다! 그대는 무엇을 위해 그 옛 검을 들었나? 그 검의 ‘새 이야기’는 어디 있는가?”
“내 이야기도 급급한데, 검 이야기를 어느 세월에 챙겨? 검이 주인을 따라 가야지, 주인이 검을 따라가냐? 그게 ‘옛 검의 3기사’냐?”
입장 차만 재확인. 에드워드는 먼저 열쇠검을 바닥에 버렸다.
“검 말고 사람 대 사람으로 해 보자고.”
격노한 발터도 검을 땅에 버렸다. 레슬링. 두 기사는 양팔을 벌린 채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당장 괴력을 써서 갑옷을 잡아 뜯거나 뼈를 부러뜨리는 건 쉬운 일이지만, 그래서야 ‘내가 괴력의 저주를 받은 에드워드다!’라고 광고하는 꼴이라 에드워드는 최대한 힘조절을 했다.
물론 발터는 에드워드와 맞상대를 할 만큼 실력이 있었기 때문에, 신경 쓸 구석이 많은 에드워드가 초반엔 좀 더 불리했다. 발터의 투구와 에드워드의 투구가 서로 부딪히며 쇳소리를 울렸다. 두 기사는 서로의 갑옷과 서코트 따위를 붙잡은 채 제자리를 몇 바퀴 돌았다.
그러나 이번엔 역전의 발판이 빠르게 찾아왔다. 등에 진 방패에 화살을 꽂은 남자 하나였다. 그는 다리를 향해 달려왔다. 발터 쪽이었다. 그는 발터를 향해 소리쳤다.
“주인님! 적습입니다! 적습입니다!”
숨이 턱에 차오른 하인의 말에 발터는 기겁했다.
“적?!”
그 순간 에드워드는 적절히 힘을 줘야 할 타이밍을 잡았다. 우드드득. 사슬갑옷이 뜯겨나가는 소리와 함께 발터는 위아래가 바뀌는 경험을 했다.
“으아아아악?!”
쿠우우웅!
발기술을 거는 척하면서 사람을 한 바퀴 돌려 메다꽂은 에드워드는 너스레를 떨었다.
“한눈팔면 쓰나?”
“크으윽! 졌다…….”
발터는 생각보다 순순히 패배를 인정했다. 그의 관심은 여전히 달려온 하인에게 쏠린 상태였다.
“적습은 뭔지 설명해라!”
주인의 패배를 보고 얼이 빠진 하인은 발터의 닥달에 겨우 입을 열었다.
“웬 놈이 천막과 식량에 불을 질렀습니다! 사람들이 나섰지만 죄다 어디서 날아온 지 모를 화살을 맞고…….”
에드워드는 그제야 주변을 둘러보다 검은 연기가 올라오는 곳을 발견했다. 그는 헛웃음을 흘렸다.
“저거 너네 숙영지냐? 털렸구만?”
발터는 비틀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뒤, 하인이 달려온 길을 따라 카치운이 나타났다. 그는 어린 사내아이를 인질로 잡아 목덜미에 칼을 들이민 상태였다.
“길 열어.”
카치운이 나지막이 뱉은 말에 발터는 이를 갈았다.
“야만인 놈! 대체 어떻게 거기 있는 거냐!”
“개천을 건너서.”
카치운의 간단한 설명이었다. 에드워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내가 이겨서 길을 열었으니 꼬맹이는 놓아주쇼.”
“이 기사 말고 더 있어.”
“그럴 거 같더라니.”
“그리고 걔들이 바로 뒤에서 나 쫓아오고 있지. 두 놈 다 있더라고. 그래서 인질을 잡았소.”
과연 그의 말대로 두 기사가 더 나타났다. 흰 서코트에 검은 깃털 문장을 가진 자, 그리고 녹색 서코트에 주황색 바탕과 탑과 별 문장을 가진 자. 그들은 다리 위를 보고 한마디씩 꺼냈다.
“발터 경이 패했는가?”
“그가 ‘옛 검의 3기사’ 중 최약이긴 하지.”
에드워드는 투구 안에서 입을 이죽였다.
“니들 소드마스터 야마토라고 들어는 봤냐.”
“어느 동네 이름인지 모르겠군.”
흰 서코트가 답했다. 에드워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조건을 걸지. 저 파란 옷의 유목민은 내가 설득해줄게. 대신 너희들도 더 이상 날 막지 마라.”
“기사가 인질극에 동조하는가?”
“그럼 잔뜩 지친 나더러, 이미 다리를 건널 권리도 획득했는데, 너희 둘과 연거푸 싸우라고? 그건 기사도냐? 너희는 정말 단순한 결투광이냐?”
진짜 단순한 결투광이라면, 여기서 연거푸 싸우는 게 정상. 하지만 다행히 두 기사는 그러지 않았다. 흰 서코트가 입을 열었다.
“좋다. 우리는 두 싸움에서 모두 패한 셈이니, 연이어 결투를 걸지는 않겠다. 참고로 저 꼬마는 내 종자요, 시르티카 백작의 친인척이니, 해하면 그대들이나 우리나 뒷일을 감당하기 힘들 것이다.”
에드워드는 사내아이를 살펴보았다.
“쟤도 캠벨가 사람이라고?”
“아니. 그의 약혼자 쪽 사람이라고 들었다. 그게 중요한가?”
에드워드는 어깨를 으쓱였다.
“아니.”
에드워드는 카치운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수고했소. 풀어주쇼.”
“저놈들을 뭘 믿고?”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될 일이고. 저놈들 말고 날 믿으쇼.”
카치운은 잠시 생각해 보더니 인질을 풀어줬다. 꼬마는 흰 서코트를 향해 후다닥 달려갔다. 흰 서코트는 검을 검집에 넣고 투구를 벗었다. 은발의 하프 엘프였다.
“나, ‘옛 검의 3기사’ 중 하나인 하겐은 결투의 규칙에 따라 이 다리의 통행을 보장한다.”
“우리 부하들 핏값은 어쩔 건가?”
녹색 서코트, 시구르드가 하겐에게 질문했다. 하겐은 고개를 저었다.
“죽고 다쳐도 그건 싸우는 자의 운명일 뿐이다. 그리고, 여기서 계속 싸우면 다친 자들도 추스르지 못한다.”
에드워드는 뜨악한 표정으로 카치운을 돌아봤다.
“깽판 거하게 친 모양이네?”
“저쪽은 다섯이 넘고 난 혼자인데, 손에 자비를 두면 내가 당하지. 그러게 누가 다리 막고 싸움 걸고 다니래?”
냉정한 판단. 틀린 말도 아니라 에드워드는 더 뭐라 하지 않았다. 그는 뒤의 행렬을 향해 손짓했다.
“냉큼 통과합시다!”
순례자 무리는 쭈뼛쭈뼛 앞으로 나섰다. 순례자들과 기사단원들은 ‘옛 검의 3기사’들을 곁눈질하며 다리를 건넜다.
에드워드가 마지막으로 건너는 짐마차 꽁무니에 붙을 때, 하겐이 입을 열었다.
“검이 주인을 따라가야지, 주인이 검을 따라가느냐…… 인상적인 말이었다. 앵글리아 왕세자의 챔피언.”
에드워드는 움찔했다. 하겐은 계속 말을 이었다.
“발터는 우리 중 최약이지만, 쉽게 패할 인간도 아니지. 게다가 그대 허리춤에 있는 건 앵글리아 왕실로 흘러간 열쇠검이로군.”
하겐, 옛 검 연구자. 단번에 열쇠검을 알아볼 정도인 줄은 몰랐다는 게 실책. 에드워드는 앓는 소리를 냈다.
“어쩐지 순순히 통과시키더라니…… 들켰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