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25)
225화 도박은 모든 죄악의 총합 (2)
전차경주장은 커다란 석조 건물로 도시의 성벽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가까이서 잘못 보면 도시의 이중성벽으로 착각할 정도의 거리였다. 크게는 몇만 명까지 수용하는 이 건물에서 사람들의 함성이 터져 나오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여마법사가 여사제의 옷자락을 붙잡고 늘어지는 건 한층 더 보기 힘든 일이었다. 그 여사제가 이단심문관이라면 더욱 그렇다. 스텔라는 필사적이었고, 베로니카는 질색팔색했다.
“구경하고 가요! 사제님! 정실부인 마님! 언니!”
“되는대로 막 부르지 마요! 옛 검의 3기사한테 걸린 지 얼마나 됐다고 딴짓이에요? 걔들이 무슨 짓을 했을지 모르는데, 느긋하게 유람할 시간 없어요!”
“이 강행군을 했으면 따돌리고도 남았겠죠!”
“도박하려고 그러는 거죠? 전차경주에 언제부터 그리 관심이 컸다고 그래요?!”
“시오니아의 명물이잖아요, 전차경주! 사제님도 시오니아 출신이시잖아요! 조국의 명물을 일행에게 소개시켜 주셔야죠!”
“마상창시합만큼이나 개판인 풍습인데요!”
“창시합은 사제님도 보시면서!”
그 다툼을 보던 에드워드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전차경주라. 다른 데서는 못 봤는데. 시오니아 명물이었군.”
“증조부님 세대는 즐겼다는 이야길 들어봤어요.”
헬레나도 입을 열었다. 아르데니아는 엘프 3대를 거슬러 가는 도시. 즉, 그 이전의 이야기다. 에드워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엄청 옛 풍습이구만.”
“웬만한 엘프 공동체에서도 맥이 끊긴 유희인데, 시오니아의 인간들은 심심하면 부활시킨다더군요.”
“여기서 꾸준히 이어온 게 아니고, 부활시킨 거야?”
그 질문의 대답은 베로니카가 대신했다.
“그래! 시오니아 유행도 이미 마상창시합이나 기마술 대회 등으로 옮겨간 지가 오래야! 하지만 전차경주장 유적들은 남았고, 집권세력의 취향이나 정치적 사정 때문에 종종 복구되어 원래 용도로 쓰일 때가 있지!”
“부침을 반복하는 복고풍과 그걸 찾는 사람들이라.”
에드워드가 가장 최근에 본 ‘전차’는 사막의 세트렛인들이 운용하던 것. 그 이전에는 거의 본 적이 없는 낯선 물건이었다. 전장에서 부상자나 물자를 실어날랐던 것들은 전차가 아니라 수레에 더 가까웠다.
“어떻게 생긴 건지, 어떻게 하는 건지 궁금하긴 하네.”
여마법사는 반색했다.
“사제님도 들으셨죠?!”
“에드, 넌 말려야지! 왜 부추겨?!”
에드워드는 심드렁하게 답했다.
“걔가 날리든가 말든가. 그게 내 돈이냐?”
“딸 거예요!”
“거 봐요! 돈 걸어 돈 딸 생각이 땅 위 하늘 아래를 가득 채우잖아!”
한참 티격태격이 진행되는 와중에, 카치운이 끼어들었다.
“신사숙녀 여러분. 말씀하시는 와중에 미안한데, 우리가 아는 얼굴이 따라온 것 같소만?”
일행의 시선이 일제히 카치운을 따라갔다. 뒤이어 거친 숨을 씩씩 내뱉는 남녀들이 에드워드 일행 앞에 나타났다. 정확히는, 여자 하나에 남자 둘이었다. 셋 다 말에 탔는데, 선두의 여자는 흰 서코트를 걸친 성묘수호기사단원이었다. 그녀는 에드워드를 향해 이를 박박 갈고 있었다.
“이놈! 여기 있었구나!”
여자의 입안에서 마르고 갈라진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타다 만 연기 같은 목소리였다. 베로니카는 눈살을 찌푸렸다.
“올리비아?”
에드워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는 얼굴 맞네. 근데 얘 베르세바 감옥에 있지 않았나?”
“자세한 사정 따위 네놈에게 알려줄까 보냐……!”
올리비아는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런데 힘이 너무 빠져서, 검집 중간에 검이 잠깐 멈출 지경이었다.
“아가씨를 내놓고 꺼져라, 불량기사! 아니면…….”
“아니면, 뭐?”
“무력행사도 불사하겠다!”
에드워드는 사람을 빡치게 하는 방법을 시전했다.
“너 나한테 졌잖아. 싸움 개못하면서.”
올리비아는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카치운은 덤덤하게 말했다.
“그 꼴로 싸우겠다니, 용기는 가상하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올리비아의 뒤에 있던 남자가 신음 소리랑 함께 말 등 위로 엎어졌다. 다른 남자 역시 거의 죽어가는 꼴이었는데, 그는 유언처럼 중얼거렸다.
“뭘 하든 다 좋은데, 좀 쉬고 합시…….”
그 꼴을 본 에드워드는 혀를 찼다.
“우리보다 더 빡세게 행군한 것 같은데, 얘들.”
서로가 지쳤으니 장소를 옮기자는 제안은 헬레나의 입에서 나왔다. 잠시 뒤, 올리비아는 여관에서 커다란 물컵을 순식간에 비운 다음 말했다.
“엘프의 중재라 받아들이긴 했지만…….”
“드워프가 중재했으면 안 받아들였을 거란 말처럼 들리는군.”
가르달이 태클을 걸었다. 올리비아는 눈을 흘겼다.
“내 아버지의 시선을 끌고 그 부하를 걷어차 비탈길 아래로 굴렸다던데?”
“그건 드워프식 인사였어.”
올리비아는 대꾸하지 않았다. 베로니카는 방으로 올라가지도 않고 그냥 1층 구석에 찌그러지듯 누워 버린 남자들을 보고 물었다.
“대체 어떻게 쫓아온 거야?”
“오직 아가씨의 안위를 걱정하는 그 일념 하나만으로…….”
“어떻게 쫓아왔냐고. 나 여기 있을 거라고 누가 그러든?”
“기사단의 인맥을 이용했지요. 말단이라서 대단한 정보를 얻지는 못했지만, 그러다 ‘옛 검의 3기사’를 만났고요. 그들에게서 이야기를 들었죠.”
베로니카는 이마를 짚었다.
“빨리도 만났네, 3기사.”
“그쪽도 우릴 찾고 있던가 보더군요. 덕택에 정보교환이 수월했죠. 친절하던데요.”
에드워드는 피식 웃었다.
“그 친절한 3기사가 기사단원의 길을 막고 닥치는대로 결투 걸어대고 있었지.”
“귀하는 사건을 몰고 다니는 자이니, 그자들과 만났을 것 같았습니다.”
올리비아가 응수했다. 베로니카의 경로가 들킨 건 에드워드 탓이라는 것처럼. 에드워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냥 그것밖에 정보가 없던 건 아니고? 너 기사단 말단이지?”
말단이 뭐 제대로 된 정보를 쥐어 보기는 했냐는 반격. 구석에 쓰러진 남정네들이 슬프게 킬킬거렸고 올리비아는 얼굴이 붉어졌다.
“부정은 하지 않지요. 그래도 덕택에 따라잡았으니.”
“베르세바 감옥은 어떻게 나온 거야?”
올리비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번엔 베로니카가 물었다.
“감옥은 어떻게 나왔어? 갑옷과 무기도 돌려받은 걸 보면…….”
“아버지가 베르세바의 군주를 설득했습니다.”
올리비아의 짧은 설명. 베로니카는 입을 다물고는 생각에 잠겼다. 잠시 뒤,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 풀려났군. 파브리스, 그 망할 놈의 세 치 혀.”
“그 능구렁이도 생각이 있기야 하겠지만요. 어쨌거나 풀려난 건 좋지만 아가씨의 흔적을 찾기는 어려워져서, 다들 뿔뿔이 흩어졌죠. 다행히도 저와 아가씨 사이엔 어떤 운명적인…….”
“그만.”
베로니카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올리비아는 있는 힘껏,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빌어먹을 아버지의 잘못이나 아가씨께 제가 대신 사과를…….”
“베르세바야 그 험한 바위계곡 안에 가만히 있기만 하는 사막엘프들이니 별일은 없겠지. 편지들 사이로는 귀찮은 일이 좀 있겠지만. 그나마 수도가 코앞이라 다행이네.”
여행의 끝. 올리비아는 기겁해서 말했다.
“지금이라도 백작령으로 방향을 잡으시죠.”
“이젠 그게 더 위험할 것 같지 않아?”
“수도 도착한 다음이 더 문제니 드리는 말씀입니다. 총대주교좌 성당에 도착한 다음엔 또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리실지도 모르니까요.”
“흠. 오라버니, 지금 어디 있어?”
“수도에 계실 겁니다.”
“거기서 만나도 나 안 내보낼 것 같은데.”
“아가씨가 안 내보낸다고 안 나가는 분이셨습니까?”
“와, 너 그런 식으로 공격할 줄도 아니?”
“그리고 총대주교좌 성당의 위세를 빌리실 생각인 거 다 압니다.”
베로니카는 반박하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곤 중얼거렸다.
“그러려고 교황청 편지 가져오긴 했는데. 그래서, 어쩔 거야? 나 따라올 거야? 잡아갈 거야?”
올리비아는 음울한 표정으로 에드워드 일행을 둘러보았다. 그녀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닿은 곳은 1층 구석에 널브러진 자기 부하들이었다. 하나는 이미 코를 골기 시작한 참이었다.
절대 열세.
“잡아갈 생각이었으면 이 숫자로 흩어지진 않았죠. 이젠 아가씨 감시나 할 겁니다. 총대주교좌성당만 가시면 안 돼요. 오라버니한테도 얼굴 보이셔야 합니다!”
“아, 귀찮아.”
베로니카가 짧게 투덜거렸다. 밴시는 널브러진 남자들을 쿡쿡 찔러보았다.
“감시는 뭐 제대로 하겠어요? 그냥 묶어두고 튀면 될 것 같은데.”
“이 사악한 요정은 발터 경의 칼에 안 베이고 아직도 살아 있네?”
“와! 기득권의 헌병이 폭언을 한다! 왜 저한테 유감 가지시는 건데요?!”
“방금 네 주둥이 밖으로 나온 말을 생각해 봐! 그리고 너 때문에 베르세바의 지하 유적에서 온갖 고생한 거 생각 안 나?!”
“안 나는데요!”
“쓸데없이 당당해!”
“기억하면 고기 주나요?”
그 꼴을 본 에드워드가 말했다.
“오는 길에 도적 안 만난 게 다행이구만.”
“그쪽은 도적 안 만났습니까?”
“좀도둑은 있더라. 지쳐도 그런 거에 털릴 정도로 정신 놓지는 않았지만.”
올리비아는 잠시 아랫입술을 깨물고 생각에 잠기더니, 베로니카한테 애원했다.
“아가씨, 부디 동행을 허락해 주시죠. 저 기사가 호위로는 나쁘지 않다는 걸 인정할 테니…….”
베로니카는 냉정했다.
“네가 뭔데 인정하고 말고 그러니? 안 돼. 돌아가. 봐줄 생각 없어.”
“돌아가다니, 어딜요? 베르세바 감옥?!”
“아무 데로나 가. 제발 나 좀 귀찮게 하지 말고.”
올리비아는 잠시 좌절하더니, 곧 굳건한 표정으로 일어섰다.
“이렇게 된 이상 기사한테 몸을 던져서라도 따라붙고 말겠…….”
“수도사제가 무슨 소릴 하니?!”
베로니카는 기겁했고 에드워드는 전용잔을 찌그러뜨려 버렸다. 그는 손등으로 얼굴의 물을 닦으면서 중얼거렸다.
“이 아가씨 무지 막나가네. 나야 언제든지 환영이긴 한데.”
헬레나는 그를 흘겨보았다.
“숨어서 할 곳 따윈 없을 텐데요.”
“숨어서 뭘 해?”
베로니카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헬레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에드워드 경의 엽색행각은 안 보이는 데로 잠깐 숨었을 뿐이라서요. 독극물 소동의 기사집 작은딸이…….”
“야, 말하지 마, 말하지 마.”
에드워드가 손을 내저었다. 베로니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순례 막바지인데 좀 경건해지지?”
“그때뿐이었어. 성지 오면서 나름 신경 쓰고 경건해진 거야. 그리고 네 눈치도 좀 보고 있고.”
“퍽이나.”
베로니카는 한숨을 내쉬곤 올리비아를 돌아봤다.
“이걸 어떻게 떼어낼까?”
“그냥 달고 갑시다. 기사 양반 좋은 일 시켜줘도 나쁠 거 없잖아.”
가르달의 첨언이었다. 물론 베로니카 도발용. 베로니카는 가르달을 잡아먹을 것처럼 노려봐주었다.
“운명으로 결정하시죠!”
스텔라가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일행의 시선 모두가 그녀에게 박혔다. 밴시 리안나가 냉소적으로 물었다.
“여기사한테 사기 점이라도 치게요, 인텔리겐차?”
“넌 좀 입 다물어!”
밴시의 뺨을 꼬집어 대롱대롱 들던 스텔라는, 손가락으로 창밖을 가리켰다.
“기사의 문제는 결투로 해결하고, 사람끼리의 문제는 내기로 해결하죠!”
“그건 너만 그럴걸.”
카치운이 점잖게 태클을 걸었지만 도박중독자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거대한 전차경주장을 가리켰다.
“이기는 전차를 가장 많이 맞추는 사람 뜻대로!”
올리비아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저 또한 사제의 길을 걷는 자. 도박 같은 걸 해서 신의 뜻을…….”
“에이, 좀 전에 아가씨랑은 운명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면서요? 운명을 의심해요? 수단도 안 가릴 기세더니? 설마 아가씨와 여기사님의 운명보다, 아가씨와 여마법사의 운명이 더 끈끈한 거 아냐?”
스텔라가 몸을 배배 꼬았다. 그건 효과가 있는 도발이었다. 올리비아는 발끈해서 일어났다.
“댁이 어떤 사람인지는 정확히 모르나, 분명 약 잘 파시겠군.”
넌 마법사가 아니라 엉터리 약장수 같은 년이라는 도발이었다. 두 여자의 시선이 뜨겁게 부딪혔다.
카치운은 물을 홀짝이며 에드워드한테 말했다.
“올리비아 경이 이기라고 빌지 마쇼.”
에드워드는 움찔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