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26)
226화 도박은 모든 죄악의 총합 (3)
에드워드는 화끈하게 부서지며 몇 바퀴 회전하는 전차를 보고 아연실색했다.
“이거 어떤 면에서는 마상창시합보다 거친데?”
마부가 모랫바닥을 질질 끌려가며 오체분시 되는 모양새까지 나오자 환성이 더 커졌다. 밴시가 돼지 껍데기 튀김을 우물거리며 말했다.
“마부가 죽고 말만 계속 달려도 골인으로 인정해 준대요.”
“인명 경시의 극치구만.”
“마상창시합이 더 그렇지 않나요?”
에드워드는 뭐라 말하려다 말았다. 마상창시합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난전 속에서 한 기사가 그만 죽어 버렸는데, 말에서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다들 그가 죽은 것을 경기 끝나고야 알았더라는 이야기. 그건 일부 기사들 사이에서 용맹의 예로 언급되기도 했다.
“기사들도 남 말할 처지가 아니긴 하군.”
에드워드는 쓰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 옆의 스텔라는 초조한 표정으로 응원용 수건을 깨물어 댔다.
“제길. 전차들이 너무 가지각색이에요. 선수들 파악하는 데만도 꽤나 고생하겠는데요.”
오래전의 풍습을 부활시킬 경우, 여기에는 온갖 시행착오가 뒤따른다. 그건 스포츠건 뭐건 동서고금이 다 마찬가지였다.
기병이 대세가 되면서 전차의 제작 노하우는 사라진 지가 오래. 대부분 문제는 거기서 시작했다. 대부분은 수레 제작자들이 ‘이렇게 하면 좋지 않을까’ 정도의 망상으로, 경험 없이 제작한 경량 전차들은 달리다가 자기 혼자 부서지기도 했다. 스텔라는 거의 증오에 가득 찬 눈으로 전차들을 살펴보았다.
“차라리 튼튼하게 만들어서 다 박살 내고 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겠…….”
“튼튼하게 만들면 무거워서 따라잡지도 못하겠지.”
“가볍고 튼튼한 목재 뭐 없어요? 차라리 갈대를 엮어 보라 그럴까?”
“저기 있는 것 같은데. 갈대.”
재료마저 무제한 코스. 에드워드는 형형색색의 전차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룰마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무한 경쟁의 정글로 만들었구만.”
“구경하기는 재미나네요. 인간과 말이 쓰레기처럼 굴러가!”
밴시 리안나는 막말을 하면서 다음 간식을 꺼냈다. 헬레나가 그 모습을 흘겨보았다.
“저걸 보면서 뭘 먹을 생각이 드니?”
“저만 그런 거 아닌데요!”
과연 온갖 잡상인들이 관객석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베로니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마상창시합이건 전차경주건, 잡상인은 필수 요소지.”
“저도 여기서 돈 벌 수 있으면 좋겠는데, 텃세가 장난 아니더라고요. 그냥 포기했어요. 나쁜 인간들. 밴시만 만만하지.”
밴시의 다음 간식은 잼 바른 빵조각들이었다. 불행히도 그중 하나가 바닥에 흘러 떨어졌다. 툭.
“앗! 아까워!”
리안나는 황급히 빵 조각을 쥐어 들었다. 그러나 하필 잼 바른 부분이 바닥으로 떨어져서 모래투성이가 되었다.
“에이, 반대쪽으로 떨어졌으면 털어 내고 먹는 건데…… 먹을까.”
에드워드는 나지막하게 그녀를 제지했다.
“흙 먹지 마라…….”
“근처에 악마가 있나 봐요. 될 일도 안 되는 거 보면.”
“그런 농담도 하지 말고.”
에드워드는 VIP석으로 시선을 돌렸다. 덩치가 다른 사람의 두 배는 될 것 같은 권력자들이 거기 있었다.
“저기 있는 건 개최자들인가?”
“그렇겠지. 큰돈 들여 유적을 보수해 재사용하고, 전차를 만드는 데 투자하고, 마부를 수배한 양반들일 거야.”
베로니카가 답했다.
“그럴 가치가 있는 일인가, 이거.”
“마상창시합은 기사들의 무대고, 기마술 대회는 유목민들이 싹 쓸어 가지만, 전차경주는 아직 아무나 덤벼들 수 있는 영역인 거지.”
베로니카의 말이 끝나는 순간, 새 경주가 시작되었다. 스텔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두 눈 똑바로 뜨고 잘 봐 둬요! 어느 시합이건 선수를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승리의 길!”
“그래서, 이틀 만에 다 파악하겠어?”
카치운의 질문이었다. 스텔라와 올리비아가 한 내기는 단순했다. 이틀 뒤 경주에서 5개 시합 중 이기는 전차를 가장 많이 맞추는 사람이 승리.
올리비아가 이기면, 그녀는 어떤 제약도 없이 베로니카 곁에 있을 수 있다.
스텔라가 이기면, 올리비아는 자발적으로 열흘간 이 도시에 머문다. 사실상 떨어져 나가란 소리다.
“기왕 엿 먹일 거, 기사님한테 좋은 거 해 주라는 조건까지 걸어 볼 걸 그랬어요. 그럼 아예 겁먹고 안 나올지도 모르는데. 정실부인 왕언니 마님이 강력히 반대하시는 통에…….”
“걔는 그냥 사제가 아니라 수도사제거든요? 수도사가 결혼하면 안 되거든요?”
“뭐 어때요. 시시때때로 우리 방해하려는 앤데. 계속 방해할 거면 환속도 각오하라죠. 환속이 뭐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니고.”
“그건 상속 순위가 돌아온 귀족가 차남 같은 케이스나 해당되는 이야기고! 수도사가 사고치고 환속하는 건 이야기가 다르잖아요!”
에드워드는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사실 사고 친 건 묻고 그냥 가는 게 수도회 트렌드지…… 아델레 누님처럼.”
“이상한 비유 들지 마!”
“뭐, 여기저기에 그럴 수도사들 보이네.”
전차경주장에 관객 중에는 사제와 수도사도 분명 드문드문 보였다. 베로니카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여기서 구경하고 있는 입장이긴 하다만…….”
“돈은 안 걸었으니 쟤들보다야 낫지, 뭐.”
“죄악의 총합에서 한 발 뺀 정도야.”
베로니카의 냉소적인 말과 달리, 스텔라는 갈수록 뜨거워졌다.
“정말 경기 수준 못 봐 주겠네! 기사님! 기사님이 출전하면 안 돼요?”
“난 저런 거 할 줄 모르는데.”
“마부들은 뭐 며칠이나 더 연습했겠어요? 가르달 씨가 전차를 제작하고, 기사님이 나서면…….”
“드워프는 저딴 거 안 만들어.”
가르달이 먼저 반응했다. 그는 밴시의 빵조각 하나를 뺏어 먹으면서 말했다.
“남자의 전차는 닥치고 무겁고 튼튼하게 만들어야 돼. 다 깔아뭉갤 기세로 나가야 제맛이지.”
“노예 요정의 빵 껍질 뺏어 먹으면서 남자다움을 논하지 말라 에요!”
“간에 기별도 안 갈 간식에 목숨 걸기는.”
에드워드는 가르달의 말에서 어떤 맥락을 잡았다.
“드워프들은 전차를 쓰나?”
“소금산은 안 쓰지만, 평야 지방의 몇몇 가문이나 전사들은 쓰지. 흔한 건 아니오. 인간 기사를 고용하는 게 더 낫거든.”
“흠. 그럼 여기에 드워프 기술자도 있을까?”
“아마 드물걸.”
“왜 그렇게 생각하쇼?”
“아까 어떤 놈이 나한테 일해 볼 생각 없냐고 말 걸더라고. 풀때기 사촌 같은 전차는 안 만든다고 거절했소.”
“젠장. 어느새? 그놈 누군지 아쇼?”
“저기 있네.”
드워프의 굵은 손가락이 VIP석보다 한두 단 더 아래를 가리켰다. 그러나 에드워드는 누군지 정확히 가려내진 못했다. 중요한 것도 아니고.
“흠. 가르달.”
“뭐요?”
“내가 마부로 뛴다는 건 일단 불가능하거든? 이 미쳐 날뛰는 손아귀 힘으로 말 몇 마리를 동시에 컨트롤하라니, 솔직히 힘들거든?”
“그런데?”
“하지만 드워프 기술자라면 이 경기에 개입할 수 있지 않겠소?”
가르달은 인상을 팍 쓰면서 밴시의 간식 봉지에 다시 손을 찔러 넣었다. 밴시가 발광하는 걸 무시하고 드워프는 덤덤히 말했다.
“기술 현장 떠난 지 좀 된 상인이지만, 풀때기 같은 전차 만드는 데 손을 대기는 싫은데.”
“내가 짚이는 바가 있어서 그렇소. 한번 찔러나 봅시다.”
가르달은 빵 조각을 입에 털어 넣고는 풀때기처럼 씹었다.
“뭐, 에드워드 경의 부탁이라면야.”
* * *
잠시 뒤, 에드워드와 스텔라, 밴시 리안나는 전차경주장 내부의 한구석을 거닐었다. 그곳은 일종의 피트 스탑이나 정비고 같은 곳이었다. 바퀴에 엄청난 마찰열이 발생해 연기가 치솟는 전차들, 거기에 끼얹는 물통, 기진맥진한 말과 사람들.
에드워드는 녹색으로 칠한 전차 앞에서 드워프 가르달을 찾았다.
“이 팀이 우리 드워프 기술자 양반한테 컨택한 팀인가?”
드워프는 에드워드를 보자마자 분노의 목소리를 토했다.
“그 미친 얼간이들이 나무로 볼베어링을 만들었더라니까?!”
“볼베어링이 뭔데요?”
밴시가 질문했다. 드워프는 계속 말했다.
“내륜과 외륜 사이에 구슬을 끼워 넣어 마찰을 줄이는 장치야! 개념 자체야 고대 시절부터 있던 거지만, 제대로 만드는 새끼는 내가 두 눈 뜬 이래 한 놈도 못 봤어! 근데 그걸 나무로 만들었더라니까?”
“상상이 안 가는데. 제대로는 굴러가요, 그거?”
“여기 기술 수준으로 굴러가겠냐?”
에드워드는 낄낄 웃었다. 가르달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물었다.
“나머지 여자들이랑 카치운은?”
“경기 분위기가 험악해져서 조기 철수. 알고 보니 전차경주 이거, 팬덤도 아주 악질이던데. 곧 패싸움 날 것 같소.”
“저런.”
“그리고 사제와 엘프가 있으면 일이 안 꼬여.”
“응? 무슨 일?”
“여긴 도박장이고 동시에 팬덤을 이용한 정치질의 영역이오. 승부에 장난치려는 놈들이 없을 거란 생각이 안 들거든?”
“승부 조작?”
“매수도 있겠고, 기술적인 영역도 있겠고, 거기다…….”
“주술이나 마법의 영역도 있겠죠.”
스텔라가 덧붙였다. 그녀는 자신의 고깔모자를 고쳐 쓰고는 말했다.
“아무리 경량화에 목숨 걸어도 행운의 부적 정도는 달아 놓을 테니까요.”
가르달은 납득했다.
“안 좋은 이야기들이 나올 것 같으니 사제 아가씨를 일찍 돌려보냈구만.”
“뭐, 그런 거지. 이 팀 스폰서는 만나 봤소?”
“아직 거래 전이오. 일찍부터 공짜 조언을 캐내려고 하는 게 마음에 안 들어서 좀 윽박질러 놓긴 했는데.”
“잘했소. 원래 잘하는 건 공짜로 해 주지 말랬어.”
“명언이군. 누구 말이오?”
“도시 하나를 불태우려던 혼돈의 범죄자.”
“젠장. 명언은 꼭 미친놈 입에서 나온다니까.”
그때였다. 커다란 그림자가 일행의 뒤로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한 것은. 에드워드는 그 그림자가 누군지 곧 알아챘다. VIP석의 말도 안 되게 커다란 뚱보들. 그들은 비단옷을 입고 한껏 미소를 지었다. 선두의 한 남자가 입을 열었다.
“훌륭한 기사여, 그대의 수하 덕에 우리 전차가 다음 경주는 우승을 거머쥘 것 같군요.”
에드워드는 피식 웃었다.
“이기려면 기술자보다는 마부를 찾는 게 더 좋지 않겠소? 벤허 찾아, 벤허.”
“오오. 말을 잘 몰기로 유명한 자입니까? 그도 성지순례자입니까?”
“뭐, 여긴 없겠지만.”
“안타깝군요.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미 많은 마부가 있으니 아쉬움을 달랠 수 있을 겁니다. 흠. 같이 오셨다던 사제분은 어디 계시는지?”
“경기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것 같아서 숙소로 먼저 보냈소만, 문제 있소?”
그 순간 경기장에서 분노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비명이 또 그 뒤를 이었다. 스폰서 대표는 허리춤에 찬 손수건을 꺼내 이마를 닦았다.
“여자분들이 듣기 좋은 이야기는 아니긴 하지요. 특히 사제분은요. 우리도 자리를 옮겨야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