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27)
227화 파리굴 (1)
어둠 속에서 카치운은 기절한 경비원을 치웠다. 주변을 둘러본 그는 더 깊은 어둠 속을 향해 손짓했고, 곧 두 여성이 나타났다. 베로니카와 헬레나. 셋은 관객도 팀도 사라진 전차경주장 내부에서, 전차 창고로 나아갔다.
“괜찮아요. 이제 아무도 없어요.”
헬레나가 말했다. 카치운은 그제야 투덜거렸다.
“그 난장판이 된 길거리를 헤쳐서 여기로 돌아오다니. 무슨 일이 일어나기라도 하는 거요?”
“그걸 확인하려는 거죠.”
베로니카가 말했다. 그녀는 쇠창살로 분리된 각 공간마다 주차된 전차들을 보고 말했다.
“아무리 경량화를 해도 행운의 부적 따위는 하나쯤 있겠죠.”
“보통 그런 건 마부가 갖고 있지 않나?”
“마부는 고용된 사람에 불과해요. 말과 전차는 소유주가 따로 있잖아요.”
“아, 기사양반 데려갔다는 그 시장처럼?”
경기가 뜨거워질 때쯤, 밴시 리안나가 쪼르르 달려와 전해준 쪽지는 스텔라의 글씨체였다. 하지만 내용은 에드워드가 말한 것이었다. 밤에 남몰래 전차를 살펴보라는 좀 이상한 주문이었다.
“에드워드 경이 뭔가 수상쩍은 걸 발견했으니 끼어든 것 같긴 한데…….”
헬레나는 창살 너머에서 전차들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창살 밖은 관찰이 불편한 장소였다.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자물쇠 따기 재능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겠군요. 전 아니에요.”
“기사양반이라면 그 괴력으로 자물쇠를 망가뜨릴 텐데.”
“잠입에 어울리는 방법은 아니죠. 다행히 고급 자물쇠는 아니네요.”
이단심문관은 주머니에서 여러 개의 쇳조각을 꺼냈다. 헬레나와 카치운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귀족가 아가씨가 어쩌다 그런 걸 익힌 거요?”
“탈출용. 미안하지만 전문가는 아니에요.”
헬레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올리비아 경이 베로니카 양을 ‘가둘 수 없다’고 한 이유를 알겠군요.”
“딱 두 번 있었죠. 그때 원래 열쇠랑 끝부분이 같은 픽만 고르면 열 수 있다는 걸 깨달았고.”
“맙소사.”
“제일 허술한 자물쇠의 경우지만요.”
몇 분 지나지 않아 자물쇠가 덜컥하고 열렸다. 카치운이 작게 중얼거렸다.
“이단심문관한테도 유용한 기술일 것 같긴 하네. 용의자의 보석함이나 비밀창고 따위 전부 열어 버릴 것 아뇨?”
“전문가 아니라니까요. 제일 수준 낮은 자물쇠 정도여야 연다는 이야기지. 아무 자물쇠나 다 열고 다닐 전문가면 이미 진즉에 여러분 앞에서 제 솜씨를 뽐낼 기회가 있었겠죠.”
카치운은 웃어 버렸다.
“비싼 자물쇠 사야겠군.”
“집안 분위기가 어지간히도 딱딱한가 보군요. 딸이나 여동생을 가두는 집은 별로 좋은 이야기가 안 들리던데.”
“딱 두 번 징벌 삼아 가둬진 적 있었던 거지, 항상 그런 분위기였던 건 아니에요. 성인이 된 이후에는 제가 제 부하들 이끌고 나가거나 말거나 크게 간섭도 안 했고. 호위만 충분하면 말이죠.”
“지금은 오빠분이 그게 부족하다고 보고 쫓아오니.”
“그렇죠…… 자세히 이야기는 하기 힘드니, 전차를 살펴보는 데 집중하죠.”
베로니카는 녹색 전차를 살펴보았다. 곧 그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과연. 주술도구가 보이네요.”
“주술요? 옛 전투에서는 사제가 출정 전에 전차를 축성했다고 들었는데.”
“이젠 전투용이 아니라 경주용, 도박용이니까요. 이걸 축성해 주는 사제 따윈 없겠죠. 그러니 사제의 눈을 피할 수 있는 거고…….”
“안 좋은 부적인가요?”
“시오니아 국경쯤, 에드워드가 우리 앞에서 춤춘 거 기억해요? 벼룩 때문에.”
“아아, 그 벼룩 주술인가요?”
“벌레는 좀 다르네요. 쇠파리예요.”
베로니카의 손이 전차 안쪽으로 들어가 털뭉치 하나를 꺼냈다.
“자기 말에 자폭용으로 붙일 리는 없고, 경쟁 전차를 위한 물건이겠죠. 아마 전차끼리 가까워질 때 작동하지 않을까…….”
“그럼 이게 매번 우승하고 다녔겠군요.”
“전차 소유주들도 생각이 있으면 주술방호 역시 해놨겠지만, 이게 가위바위보처럼 상성을 타는 주제에 복잡하기도 해서…… 적당한 부적을 조합하는 게 은근히 골치 아프겠군요.”
“인간은 쓸데없는 데 열정적이군요. 어쨌든, 이게 에드워드 경이 말 한 ‘수상한 점’일까요?”
베로니카는 창살 밖으로 나가, 조명용 화로에 털뭉치를 던졌다.
화르르륵!
그 순간 구더기들이 불 속에서 사방팔방으로 뛰쳐나가 꿈틀거렸다.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는 모습에서, 전차에 주술이 걸려 있을 거라고 추측은 했겠죠. 하긴, 마상창시합도 종종 주술이나 마법의 힘을 빌리려다 망신당하는 기사가 나오는 판이니.”
“이번엔 그 추측이 맞았군요. 어떤 문제가 있는지는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베로니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주술, 흉악범 패거리가 쓴 벼룩 주술과 판박이에요.”
* * *
복잡한 함성이 거리를 울렸다. 이미 어두컴컴해진 거리에서 횃불이 춤을 췄다. 불빛은 벽을 기어올라 하늘을 찔렀고, 그건 연회장 안에서도 보였다.
연회는 대저택의 정원 한복판에서 이뤄졌는데, 아직 겨울인데도 공기가 따뜻해서, 일부나마 여러 꽃이 피고 있었다. 스텔라는 연회장을 둘러싼 지붕 없는 기둥들을 보고 말했다.
“기둥마다 불의 주문을 새겨놨네요. 호사스러워라. 돈이 있다고 되는 게 아닌데.”
“그럼 뭐가 필요한데? 숯?”
가르달이 물었다. 뒤이어 드워프의 간이대장간이 정원 한복판, 식탁 옆에서 불을 뿜었다. 정원의 열기 중 일부는 그게 담당했다.
“시간이 필요하죠. 그것도 엄청 긴 시간요. 지식도 필요하고.”
“시간과 지식이 들어가면 난방비가 공짜가 돼?”
“보통은 그 전에 왕조가 하나는 망하고도 남아요. 엘프들도 그냥 숯이나 장작 갖다 쓰고 말지, 이렇게는 안할 걸요.”
“보는 눈이 있으시군요, 마법사님. 이 정원은 시오니아의 옛 왕조들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특별한 공간이랍니다. 파괴당한 적도 있지만 기어이 복구해냈죠. 그 효과가 극에 달했을 때는 정원 전체를 겨울에도 꽃밭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저택의 주인이자 연회의 개최자인 시장이 설명했다. 가르달은 망치를 쥔 채 입꼬리를 틀었다.
“복고풍 좋아하시는군.”
그때 밖의 함성 소리가 더 커졌다. 드워프의 망치질 소리를 덮을 정도로. 스텔라는 눈살을 찌푸렸다.
“전차경주는 이미 끝났을 텐데요.”
시장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관객들의 소란이 이어지는 것이지요. 사람들한테 활력이 넘치고 있어요.”
“마상창시합도 이 정도로 과열되진 않는데.”
“실은 응원팀마다 시의 정책이 엮였거든요.”
“그게 무슨 말씀이죠? 설마 경주 결과에 따라 시의 정책도 바뀐단 건가요?”
스텔라의 질문에 시장은 어깨를 으쓱했다.
“경주의 흥행을 위해, 시험 삼아서 몇 가지 정책을 그렇게 해봤죠. 결투와 비슷한 논리죠.”
이기는 쪽에 신과 행운이 있다. 에드워드는 그 말을 듣고 웃어 버렸다.
“시의 정책은 엮이는 사람이 너무 많은 일 같은데.”
“고대에는 응원팀이 곧 시민의 정당으로 발전했다고 하더군요. 순서가 거꾸로지만, 그걸 재현해 본 것이지요. 재미있지 않습니까?”
가르달은 퉁명스레 대답했다.
“전혀.”
솔직한 드워프는 왕관 모양처럼 생긴 쇠부품을 찬물 담긴 물통에 담았다.
치이이이이이익!
쇠가 식는 소리와 함께 수증기가 치솟아 올랐다. 그는 그걸 마지막으로 한번 살펴본 다음,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망치질로 각도를 좀 바꿔봤소. 이제 상대방 전차를 더 잘 작살낼걸.”
“조금 전과 어떤 차이가 있는 거요?”
시장의 질문에 드워프는 코웃음을 쳤다.
“나무를 더 잘 써는 각도.”
그건 바퀴축에 달아서 옆 전차를 공격하는 용도의 것이었다. 스텔라는 그걸 눈여겨보았다.
“안 무겁나요, 이거?”
“쇠니까 무게는 좀 있지. 그래도 공방 모두가 가능한 거야.”
자기 바퀴축은 지키면서 남의 전차를 박살내는 부품. 시장은 웃으면서 손짓했고, 하인이 그걸 잽싸게 식탁 위에서 치웠다. 연회장 식탁 바로 옆에서 망치질하는 걸 아무렇지 않게 여기던 드워프는 거위고기를 뜯기 시작했고, 밴시는 그를 저주했다.
“밴시가 언제부터 드워프 아저씨 간이대장간까지 정리해줬냐 이거예요! 업무 외 노동이다!”
“해라.”
에드워드가 명령을 추가했고 밴시는 더는 항변 없이 뒷정리를 시작했다. 대신 작은 소리의 투덜투덜이 이어졌다. 에드워드는 시장에게 사과했다.
“버릇없는 꼬맹이가 대화에 끼어들었군요.”
“아뇨. 보는 재미가 있는 노예였습니다. 연회 내내 재밌더군요. 역시 먼 곳에서 온 요정은 그 자체로도 볼거리입니다”
졸지에 연회 광대 겸. 시장은 몇 마디 덧붙였다.
“역시 명성이 자자한 에드워드 경다운 소유물입니다.”
“흠. 제 이름을 밝히진 않았는데?”
“저도 나름 정보망이 있어서요. 만티코어를 잡고 투리치에서 명성을 떨친 분이라지요? 바다를 건너오자마자, 반역에 직면한 어느 백작가를 구원하기도 하셨다고. 그 반역자가 지인임에도 불구하고 일벌백계의 위엄을 보이셨다 들었습니다.”
“이야, 잘 아시네. 아주 구체적이야. 무명의 기사도 기꺼이 초대해주는 호인인 줄 알았는데, 원하는 게 있으신가 보군?”
“그저 즐거운 시간을 갖길 원할 뿐입니다. 충분한 먹거리와 볼거리와 함께요.”
에드워드는 피식 웃었다.
“볼거리라. 뭐, 저도 성지 와서 재밌는 걸 많이 봤지요.”
“호오. 어떤 겁니까?”
“시오니아에 와서 몇 가지 사건을 겪었지요. 대충 이 땅이 어떤 곳인지 알 사건들. 역순으로 말하자면, ‘옛 검의 3기사’ 같은 공격적인 떠돌이들이 넘치고, 가고일의 등대 같은 뭔가 잘못된 옛 유적들이 있고, 흉악범이 주술사 왕의 속삭임에 홀려 독극물과 주술을 마구 쓰는 나라.”
“저런. 거친 사건들을 겪으셨군요.”
“오늘 여기서 그 총합을 만날 것 같은데.”
“예?”
그때 거리의 소란을 뚫고 긴 피리 소리 같은 게 울렸다. 카치운의 명적. 에드워드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한때 토토에 미쳐봤거든요. 돈 잃으면 사람이 반쯤 미쳐요. 여기 있는 전속 비서 여마법사처럼.”
“호오, 그래서요?”
“그래서요, 는 뭐가 그래서요야…… 전차가 몇 대가 부서지든 그 주인들이 우는 놈 하나 없이 다들 만족스럽다는 듯 웃기만 하는 VIP석은 좀 안 이상하쇼?”
에드워드의 말투가 바뀌었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식탁 주변의 VIP들을 바라보았다.
“당신들은 사실 승부에 관심이 없어. 뭔가 따로 원하는 게 있다는 이야기겠지. 그게 뭔지는 나도 아직 잘 모르겠군. 사실, 당신들이 밝혀야 할 문제겠지.”
에드워드의 손끝이 열쇠검 손잡이에 닿았다.
“그리고 하나 더. 내가 호위하는 이단심문관은 우리 정체를 숨기려고 교회 인맥으로 공작을 했어. 거기다 성지는 온갖 이야기를 가진 붉은 옷의 교회기사들과 사제들이 널렸지. 그런데 날 귀신같이 알아채는 사람이 있다?”
“있을 수도 있죠.”
“그 내용까지 꽤 정확하게? 내 호위대상인 사제 아가씨가 보통 음흉한 게 아닌데.”
베로니카가 들으면 등짝 때릴 소리였다.
“물론 날카로운 사람은 있겠지. 압도적인 정보망을 가진 사람도 있겠고. 하지만 그런 사람이 흔치는 않아. 흔한 곳이라면, 그래. 지옥이 현세보다 그런 놈이 흔하지.”
연회장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할 얘기가 좀 많을 것 같은데?”
그 순간 시장의 눈이 뒤집히며 곤충의 겹눈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