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3)
23화 탐문 수사
리글리 부부의 집은 마을에서도 눈에 띄게 큰 집이었다. 그리고 그 크기에 맞게 잘 사는 축이었다. 제대로 된 지붕과 굴뚝이 있었고, 깔끔하게 정리된 가재도구 곳곳에서 고양이들이 뒹굴었다.
마을 분위기와 별개로, 리글리 부인은 베로니카의 방문을 반겼다. 늙은 그녀는 남자들뿐인 집안에 영 재미를 못 느끼는 참이었다. 기사의 방문, 귀족 여성과의 수다와 선물 교환은 즐거운 일이었다. 먼저 온 손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리글리 부인과 함께 있던 건 윌킨슨 부인이었다. 그녀는 리글리 부인보다 더 젊었으며, 시골 여자치고는 피부도 흰 흑발 곱슬머리의 미녀였다. 오래전에 세 자매를 낳은 유부녀라고는 믿기지 않는. 한 번에 두 집안의 여자를 조사해 볼 수 있게 된 베로니카는 반색했고 에드워드도 흥미를 보였지만, 그녀는 짧은 인사만 하더니 자기 물건을 챙겨 들고는 자리를 떠났다. 베로니카와 에드워드는 각자 다른 의미에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에드워드는 남 앞에서 입 밖으로 그 욕망을 드러내지 못했지만.
“안타깝군요. 윌킨슨 가와도 이야기를 해 보고 싶은데.”
베로니카의 말에 리글리 부인은 고개를 저었다.
“좀 부끄러운 이야기를 하던 참이었거든요.”
베로니카의 눈길이 집구석의 약병 무더기로 향했다. 리글리 부인은 글을 읽을 정도로 교육받았는지, 병마다 약의 용도가 적혀 있었다. 자양 강장제, 마비약, 모기 기피제, 산트롤 퇴치제, 산트롤 유인제 등등.
“아까 그녀가 챙겨간 건 약병인가요?”
“네. 그 집의 일꾼이 계약과 별개로 딸들을 탐내는 게 불안한데, 방법이 없냐고 묻더군요. 정력 감퇴제라든가.”
에드워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무서운 여자군.”
리글리 부인은 웃으면서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그런 약은 흔치 않죠. 있어도 남자들의 왕성한 기운은 약으로 억누르기 힘들고. 게다가 그런 약을 몰래 먹인다는 게 들통나면 일꾼이 가만있겠어요?”
“그럼, 윌킨슨 부인이 가져간 약은 뭐죠?”
“흔한 자양 강장제죠. 윌킨슨 부인은 아직 젊으니, 남편에게 쓰려는 것이겠죠. 그나저나 답례로 할 물건이 마땅찮은데, 여행에 유용한 약이라도 챙겨 드릴까요?”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베로니카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리글리 부인은 그녀가 선물한 양벚나무 재질의 묵주를 굉장히 마음에 들었는지, 소중히 갈무리하곤 자리에서 일어나 악병 더미로 향했다. 리글리 가의 지붕 안에는 그 외에도 많은 약초가 다발로 묶여서 건조 중이었다. 박하, 탄지, 루타, 타임 등.
“약물학에 밝으시군요?”
베로니카가 물었다.
“젊었을 때 배웠고, 지금도 오가는 사람들한테 배우죠. 얼마 전에는 연금술사들이 지나가기도 했고.”
“연금술사요?”
“네에. 여러분과는 반대 방향에서 왔죠. 암브로즈 시로 간 댔나…….”
암브로즈 시에서 무단으로 연구를 했던 연금술사들. 베로니카는 쓴웃음을 지었다.
“학구열이 높으시군요.”
“그것도 있는데, 아들놈들이 어렸을 때부터 사고뭉치라서요. 일꾼들과 어울려서 술 마시고는 터무니없는 내기를 하고, 레슬링을 한답시고 어디 긁혀서 들어오니.”
“레슬링?”
에드워드가 되물었다. 리글리 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꾼 중에 기사의 하인이었던 자가 있거든요. 주인이 사고로 죽고, 우리 집으로 왔죠. 지금은 남편과 함께 잠시 도시에 갔지만요.”
“아깝군요. 재밌을 것 같은데.”
“어휴. 그래 봤자 농꾼들이 기사를 이길 수 있을 리가요.”
“저는 보면서 훈수 두는 것도 좋아하거든요. 누가 가장 승률이 높던가요?”
“그자를 빼면 여기 벤슨이죠.”
벤슨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제가 이 마을에서는 제일 크잖아요.”
리글리 부인이 맞장구를 쳤다.
“타고난 체구도 있지만, 배우기도 열심히 배웠죠. 덕택에 우리 집은 마을에서 가장 힘 좋은 일꾼 1위와 2위를 함께 데리고 있다니까요? 남편이 제대로 골라온 거죠.”
베로니카는 에드워드를 향해 눈빛을 쏘아 보냈다. 적당히 하고 나가란 뜻이었다. 에드워드는 별 불만 없이 벤슨을 향해 말했다.
“레슬링은 어디서 하지? 좀 봐도 되나?”
“그냥 공터인데요. 지금은 사람 없을 테고.”
“사람이 없으니 미리 봐 두려는 거지.”
에드워드는 벤슨을 끌고 집 밖으로 나왔다. 그는 집 모퉁이를 포함한 주변을 가볍게 한 번 둘러본 다음, 천천히 걸으면서 말했다.
“나한테만 살짝 말해 봐.”
“뭘요?”
“마음이 가는 처자.”
“그건 좀…….”
“이 집안은 비교적 안전할 거야. 약초에 고양이에 재산도 있지만, 마녀로 몰아 공격하기엔 힘센 남자가 너무 많거든. 그런 집안은 공격받지 않지. 고발자부터 족칠 게 뻔하니까.”
벤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 리글리 부인을 마녀로 지목한다면, 그 남편과 아들들과 일꾼들이 몽둥이를 들고나올 것이다. 어쩌면 마을을 두 쪽 내는 소동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가능한 시나리오는 마을 사람들이 전부 이 집안을 죽이려고 할 때인데, 그건 동기가 있어야 해. 빚이라든가, 땅이라든가…… 아니면 다들 이 집안을 찢어 먹고 싶을 만큼 절박하던가. 짚이는 것 있나?”
벤슨은 고개를 저었다. 에드워드도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이 집안은 안전해. 장담은 못 하지만.”
“못해요?”
“치정 싸움이나 감정싸움 같은 건 때로 계산서를 뛰어넘지. 짐작 가는 것 있나?”
도리도리. 벤슨이 다시 고개를 저었다. 에드워드도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이제 네 여자 친구를 이 마녀사냥의 광기에서 구하는 법을 알려 주지. 당장 덮쳐.”
“예?”
“결혼하라고.”
“좀 전의 말씀은 결혼 전의 많은 과정을 생략한 것 같은데요. 그리고 그녀는 아직 제 여자 친구도 아니에요. 게다가 덮치라니.”
“좀 과격하게 이야기했나? 그럼 순화해서, 구애하라고.”
“그 둘이 같은 건가요? 덮치는 건 강간 아니에요?”
“이 빌어먹을 세상은 내숭과 구애가 충돌하느라 남녀 간 밀회의 경계가 복잡하긴 해. 뭐, 마지막까지 싫다 그러면 물러서. 그럼 강간은 아니지.”
“그래도 괜찮은 걸까요?”
“야, 여자들도 남자들더러 사랑을 증명하고 싶으면 3층의 자기 방 창문으로 다리뼈나 목숨 걸고 기어오라 하기 일쑤야. 여튼, 이후의 과정도 들려 줘?”
“제 가족 계획까지 짜 주시게요?”
“가족 계획이 별 것 있나? 토끼처럼 낳고 개미처럼 일하면 그만이지. 아무도 리글리 씨네 토끼나 개미한테 시비 걸고 싶진 않을 거야.”
“개미한테는 걸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럼, 소처럼 일하지 뭐. 더 많은 일을 해서 주인과 주변을 감동시키라고 어느 유명한 삽화가가 말했어.”
“그 삽화가 안 팔리겠네요.”
“아냐, 나름 팔려. 돈 주고 사람 부리는 놈들이 사잖아. 일하는 놈들에겐 못 팔지만.”
벤슨은 생각에 빠졌다. ‘그런가?’ 그러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생각 좀 해 보고요. 너무 나간 것 같네요. 게다가 그 여자는 마녀로 지목되진 않을 겁니다. 산 아래 주교관에 사과술과 밀빵을 납품하는 독실한 여자인데요.”
“사과술과 밀빵? 여기서 산 아래까지?”
“품질이 좋거든요.”
“제빵사야?”
“아뇨. 공용 화덕에서 빵 굽죠.”
“재주꾼이군. 뭐 하는 여자인데?”
“작은 과수원집 딸입니다. 양친은 죽었고, 혼자 살죠.”
“신붓감으로는 나쁘지 않겠군. 경쟁이 심하겠는데?”
“꼭 그렇지는 않지만요. 과수원이 마을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데다 정말 작아요. 절벽 아래라 확장할 수도 없고. 게다가 사소한 문제가 좀 있죠.”
“뭔데?”
“미망인이에요. 남편이 둘이나 있었죠. 아이는 없지만.”
에드워드의 눈이 가늘어졌다.
“어떻게 죽었는데?”
“옛날 일이라 저도 잘은 몰라요. 첫 번째는 산 아래 여자와 바람났다가 그 남편에게 칼 맞아 죽었댔죠. 두 번째는 돈을 더 벌어 보겠다고 반대편 해안가로 내려갔는데, 편지만 돌아왔다더군요. 병으로 죽었다고.”
에드워드는 코웃음을 쳤다.
“지금 마녀 소동과 엮어 생각해 보니 꽤 위험해 보이는군.”
“첫 번째는 4년 전이고, 두 번째는 2년 전 일이랬어요. 마을 안에서 벌어진 일도 아니고요. 이제 와서 들쑤실까요?”
“니 입으로 말했잖아. 경쟁이 그리 안 심하다고. 다들 의식하는 이유가 있다면 가능해. 나라면 네가 마녀의 세 번째 제물이라고 주장할 것 같은데.”
벤슨은 어깨를 으쓱했다.
“제가 그녀한테 갈까 질투하는 여자가 있다면요? 귀족 나리께서 높게 봐주시다니 기분은 좋네요. 그 말대로면 윌킨슨 씨네 막내딸이 저를 눈여겨보고 있단 말인데요.”
“딸이 셋이나 있으면 데릴사위 하나쯤은 얻어도 되겠지. 가을 지나서 첫째가 결혼해도 미혼이 둘이나 남고 그중 막내는 임자도 없잖아. 뭐, 아직은 가설이야. 설령 막내딸이 널 좋아한다 치더라도, 윌킨슨 씨는 다른 목적이 있을지도 모르지. 사실 난 그쪽의 가능성이 더 크다고 봐.”
“왜요?”
“윌킨슨 씨와 주임 사제가 결탁할 이유가 한 처녀의 광기 어린 풋사랑일 리가 있나?”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벤슨이 다급하게 질문했다.
“어떤 걸까요?”
이번엔 에드워드가 어깨를 으쓱할 차례였다.
“찾아봐야지.”
그때 베로니카가 문밖으로 나왔다. 여자들의 긴 수다를 예상했던 에드워드는 의아하다는 투로 말을 건넸다.
“실마리 잡았어?”
“아직.”
곧 리글리 부인이 뒤따라 나와 배웅했다. 베로니카는 벤슨에게 말했다.
“다음 집으로 가자.”
일행은 벤슨, 베로니카, 에드워드 순으로 걷기 시작했다. 리글리 부인의 모습이 멀어지자 에드워드가 말했다.
“마녀사냥은 보통 혼자거나 외따로 사는 여자가 위험하댔지?”
“그게 왜?”
“후보 하나 있어. 저 소몰이꾼의 여자 친구.”
“아직 여자 친구 아니라니까요.”
벤슨이 지적했지만, 베로니카는 신경 쓰지 않았다.
“혼자 살아?”
“과부래. 마을에서 좀 떨어진 곳 과수원. 두 번 결혼했지만, 두 번 다 사별했고.”
“표적으로는 나쁘지 않은데, 몇 가지 조건을 갖췄다고 무조건 다 표적이 되는 건 아니야. 더 알아봐야지.”
“잘났다. 그래서, 리글리 부인한테서는 무슨 이야기를 들었어?”
“최근 마을을 방문하는 손님들 이야기. 대개 순례객들이었지.”
“수상한 것 있었어?”
“작년 여름에 한 남자가 여기 방문했었다는군. 윌킨슨 씨 댁에서 잠시 묵었는데, 탐광꾼이었대.”
“탐광꾼?”
“광맥을 찾아다니는 놈들. 잠채꾼일지도 모르지. 왕실이나 영주의 허락 없이 몰래 캐는 녀석들 말이야.”
“그래서?”
베로니카는 에드워드를 힐끗 돌아보았다.
“아까 이야기 나온 그 과수원집 뒤의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다는군. 발을 헛디딘 것 같대.”
“이런, 젠장. 그럼 뭘 망설여? 바로 그 과수원집부터 가 보자고.”
“아직 모른다고 했잖아. 게다가 무턱대고 과수원 가서 뭐하게? 며칠씩 그 여자 지켜 줄 거야? 거긴 마지막에 가야지. 우선은 마을 안부터 파악하는 게 먼저야.”
틀린 말은 아니었다. 결국 에드워드는 투덜거리면서 베로니카의 말을 따랐다. 두 번째 집은 평범한 농가로 다른 집들과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베로니카는 벤슨에게 말했다.
“넌 돌아가도 좋다. 소몰이꾼. 오늘은 이 근처 집들만 방문한다. 그리고 우린 교회로 돌아갈 것이다.”
“옙.”
벤슨은 별다른 말 없이, 그러나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벗어났다. 그의 뒤통수를 바라보던 베로니카가 중얼거렸다.
“저놈도 거짓말은 못 하는 인간이네.”
“그래?”
“뒷모습과 걸음걸이로도 티가 나더라. 탐광꾼 이야기에 반응하던데.”
“저 치는 작년 여름 일은 알지도 못할 텐데. 지난 겨울인가 올봄부터 고용됐다고 하지 않았나?”
“그랬지. 수상하지 않아?”
에드워드는 턱을 만지작거렸다. 기회가 온 듯했다. 그는 있는 힘껏 베로니카에게 반격해 보았다.
“심증이지? 물증은 아니고?”
“그래.”
“증거 없이 그래도 돼? 주임 사제 앞에서 ‘저는 사내놈 엉덩이 따위나 훔쳐봤습니다’라고 말할 거야?”
증거. 베로니카가 항상 하던 말을 돌려준 셈이었다. 그녀는 안경을 벗고 에드워드를 흘겨보았다.
“맞아. 그러니 저 소몰이꾼에 대한 정보도 캐야지. 그건 네가 캐 와. 사내새끼들과 말 섞는 건 네가 더 잘하겠네.”
본전도 못 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