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33)
233화 성지에 도착해도 쉴 시간은 없다 (1)
리안나는 비명을 질렀다.
“강행군 그거 사제님만 할 줄 아는 거 아니었어요?!”
“전에도 말했지만 앵글리아 놈들에게는 꺽다리왕 로버트 폐하의 전술행군이란 게 있단다.”
에드워드가 말했다. 헬레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로버트 왕은 기사들만 데리고 행군하나요?”
“비상상황이고 따라올 놈만 따라오면 되지만 못 따라오는 새끼는 나중에 내가 조진다…… 정도의 개념이지.”
자기 페이스가 아니라 에드워드의 페이스대로 강행군을 해 본 베로니카는 눈살을 찌푸렸다.
“길 좀 단순해졌으니 이젠 안내도 필요 없다 이거니?”
“아니, 혹시 모르니 바짝 따라붙어 오라 했잖아. 밀착 호위도 됐으니, 결과적으로 잘 됐지.”
“흥. 어차피 수도 인근부터는 호위도 그닥 필요 없는데.”
“시오니아 국경 넘기 전에도 ‘국경 넘으면 괜찮다’는 소릴 들었지. 그리고 짧지만 굵은 소동을 겪었고.”
“독극물 소동이나 가고일 소동 정도는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닌데.”
“아니, 저거.
에드워드는 마차 밖으로 몸을 반쯤 뺀 채 널브러진 도박꾼 스텔라를 가리켰다. 가르달은 여마법사의 뒤통수를 넙적한 손바닥을 툭툭 때렸다.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아니네. 야, 안 죽었냐?”
“불행한 대폭동을 탈출해 이 강행군을 하는데, 왜 나 빼고 다들 살 만하냐 이거예요…….”
“적응하는 게지. 넌 약골이니까 안 되는 거고.”
“불합리해!”
“불합리하긴. 단련해라.”
“하긴 해야 하는데……!”
카치운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앞만 보았다.
“밀리온이라. 오랜만에 보는구만.”
신앙의 최전선이자 그 사령탑, 오랜 역사를 가진 땅, 메시아가 재림을 약속하고 사망한 곳. 시오니아의 수도 밀리온은 성벽으로 구획이 분리된 곳으로, 지세는 동쪽이 조금 더 높고 서쪽이 더 낮았다. 그리고 동쪽 성벽 밖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있어 급격하게 낮아졌다.
도시는 밝은색 벽돌로 지어졌으며, 곳곳의 큰 교회 건물이 황금으로 도금한 지붕을 올려 그 위세를 뽐냈다.
에드워드는 도시의 모양새를 살펴보다 말했다.
“순례자 일행들은 전부 동쪽으로 들어 가는군.”
“거기가 총대주교좌 성당과 성묘성당이 있는 구시가지거든. 서쪽이 시오니아 왕궁이 있는 신시가지야.”
헬레나는 그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적은 동쪽에서 오는데 ‘성묘의 수호자’는 교회 뒤 서쪽에 있나요?”
“동쪽은 계곡 때문에 공격하기 힘들어서 적은 신시가지부터 공략한대요. 여기까지 올 수 있을 때 이야기지만.”
“온 적 없나요?”
“없진 않아요. 역사서를 돌아보면, 악마, 오크, 세트렛인만 상대할 수 있으면 다행일 정도죠.”
국경에서 먼 도시라 해도 적의 군세에 맞닥뜨려 불타는 이야기는 꼭 있다. 그게 악마의 군세여야 한다는 법은 없다. 반란군일 때도 있고, 외국군일 때도 있다. 굳건한 것 같던 방어선이 다 무너지면서 적이 육박하는 예도 있다.
베로니카는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그런 일이 안 벌어지길 바라며 힘쓸 뿐이지요.”
에드워드는 카치운을 돌아봤다.
“아까 하는 말 들어보니 초행길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소. 여기까지 온 적 있지. 그땐 항카이부의 용병부대로 왔고, 남쪽에서 온 게 아니라 북쪽에서 왔지만.”
“왜 계속 성지서 안 싸우고?”
“기억 못 하시오? 트레베리아 왕위 계승 분쟁 쪽이 용병 몸값을 더 쳐줬다고.”
베로니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시오니아로 오는 용병이 급감해서 난리라고 듣긴 했죠. 트레베리아 출신자나 그곳을 경유해서 오는 순례자들도 줄었고.”
에드워드는 순례자들의 꽁무니를 가리켰다.
“저렇게 줄줄이 들어가는 행렬이 줄어든 거라고?”
베로니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줄어든 거야.”
“거 참. 도시가 1년 내내 꽈꽉 차겠군.”
“그렇게 순례 무리의 돈과 인력을 빨아들이는 게 시오니아의 버팀목 중 하나지.”
베로니카는 먼저 앞으로 말을 몰았다.
“우리도 가자. 네 저주 풀리는지 안 풀리는지도 봐야지.”
에드워드는 피식 웃었다. 시오니아 국경을 넘자마자 저주가 풀리진 않았으니, 밀리온의 성문을 통과하더라도 별 효과가 없을 거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러나 정작 성문이 가까워지자 에드워드는 심장이 쪼그라든 것 같은 표정으로 손아귀에 쥔 철쪼가리를 만지작거렸다.
“아, 제발 좀.”
에드워드는 성문을 통과하는 순간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철쪼가리는 여지없이 접혔다.
“에라이, 시발.”
에드워드는 땅바닥으로 철쪼가리를 집어던졌고, 밴시가 쪼르르 달려가 그걸 주웠다.
“쓸모없으면 제가 가질게요!”
고철을 획득한 리안나는 희희낙락하며 주머니에다 그걸 챙겨 넣었고, 에드워드는 벌레 씹은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역시나 잠시 말이 없던 베로니카가 침묵을 깼다.
“일단 총대주교좌 성당에 가서 도착 보고할게. 숙소는 그쪽에서 잡을 거야. 거긴 왕실도 맘대로 못 건드리니까 오빠가 헛수작 부릴 일은 없겠지.”
“왕실 보고는 언제 해?”
“내 일 끝나면. 근데 저주 풀고 가는 게 순서 아닐까? 저주 걸린 기사에게 상속녀를 내려준다고 할 순 없을 테니.”
에드워드는 잠시 생각해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것도 그렇군. 그럼 난 일단 여길 돌아다녀 봐야겠어.”
“안 쉬고?”
“몸이 달아서 못 쉬겠어.”
“미리 말해두겠는데.”
베로니카는 에드워드를 힐끗 곁눈질하고는 말했다.
“회개의 문제는 결국 네 몫이라, 네가 ‘뭔가’ 인정하지 않거나 빛이 원하지 않으면 결국 못 풀 수도 있어.”
“뭐, 그 정도 각오는 했다. 못 푸는 게 내 탓이거나 어쩔 수 없는 문제라는 결말 따위.”
“의외로 덤덤하네?”
“사실 속내는 좀 쓰리지만.”
베로니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못 풀면 고민 정도는 같이 해줄게. 볼일 끝나거든 총대주교좌 성당으로 찾아와.”
“풀고 찾아오면?”
에드워드가 농담을 던지자 베로니카는 코웃음을 쳤다.
“하고 싶은 것부터 하던가.”
에드워드는 어깨를 으쓱한 다음, 나머지 일행들을 돌아봤다.
“그럼 좀 있다 봅시다.”
“꼭 저주 푸쇼.”
“막상 풀고 나면 그 괴력이 아쉬울 것 같군.”
카치운과 가르달이 한마디씩 던지고는 인파에 스르륵 밀려가듯 베로니카를 따랐다. 밴시와 스텔라가 탄 마차가 그 뒤. 에드워드는 헬레나를 돌아봤다.
“넌 안 따라가?”
“여기서 베로니카 양을 걱정할 필요는 없겠죠. 제 볼일은 어디까지나 당신과의 문제뿐이니, 당신이 저주를 어떻게 풀려고 하는지 지켜볼 생각이에요.”
에드워드는 웃어버렸다.
“갑자기 자신이 없어지는데.”
* * *
어디가 아프거나 저주에 걸렸다는 이유로 성지에 오는 사람들은 가지각색이었다. 어떤 자는 교회에서 설교를 듣더니 나았고, 어떤 자는 계곡으로 내려가 몸을 씻었더니 나았고, 어떤 자는 교회에 들어가 기도를 했더니 나았다.
사람이 기도로 기적을 행사하는 세상에서는 눈앞에서 그런 광경이 펼쳐져도 이상한 게 아니었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은혜를 입는 건 아니었다. 그 기준은 아무도 모른다. 굳이 성지의 기적이 아니라 일개 사제한테서도 치료받을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이 왔다 가기도 했고.
에드워드는 기도에도 불구하고 피부병이 낫지 않은 한 순례자에게 물어보았다.
“앞으로 어쩔 생각이오?”
순례자는 얼굴을 덮은 딱지를 손가락으로 긁더니 말했다.
“기적 대신 좋은 의사를 만나는 것도 신의 안배지요. 어떻게든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안 된다면?”
“신의 뜻이겠지요.”
순례자는 그 말만 남기고 터벅터벅 걸어 교회를 나갔다. 성묘교회의 화려한 장식물들을 돌아본 에드워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저렇게 생각할 수 있으면 편하겠군.”
“베로니카 양 앞에서 했던 말과는 다르군요.”
헬레나의 핀잔에 에드워드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는 하는데, 가끔씩 고개를 드는 생각이 하나쯤은 있잖아.”
“모든 것을 원망하는 마음 말이죠. 조심해요. 어둠은 그런 마음을 먹고 나타나요.”
에드워드는 언젠가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간절한 사람이나 초짜 주술사가 ‘아무나 내 이야기를 들어줘!’라고 했다가 진짜 ‘아무나’ 와버린다는 것.
헬레나는 팔짱을 낀 채 물었다.
“끝내 저주가 안 풀리면, 여기까지 데려온 베로니카 양도 원망할 건가요?”
“아니…… 그건 아닐 것 같은데.”
에드워드는 교회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헬레나는 그의 뒤에 따라붙으며 물었다.
“베로니카 양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뭘?”
“서로 눈치는 오가는데 말이죠. 당신이 직접 말한 적은 없잖아요. 단순히 육욕의 대상으로 보나요, 아니면 진지하게 반려로 고려하나요? 후자라면, 이유가 있나요?”
에드워드는 회피술을 사용했다.
“저주 풀러 다니는데 연애 이야기 하기는 좀 그렇지 않아?”
“교회 안에서 나왔잖아요. 그리고 사랑하고 번성하라는 건 빛의 교리예요.”
“그렇긴 한데, 그걸 내가 왜 너한테 말해야 해?”
“물어볼 수는 있죠.”
에드워드는 헬레나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대답 안 하는 것도 자유라고 하면서 넘어가는 수도 있다.
“뭐, 일단 감옥에서 꺼내 준 것만으로도 고맙지. 여기까지 오는 건 힘들 때도 아슬아슬할 때도 있었지만 꽤나 재밌었고. 앵글리아 왕실 챔피언이거나 평범한 순례자여서는 경험하지 못할 일들이 많았잖아.”
“괴물 물리치기요?”
“괴물이야 다른 사람들도 여기저기서 물리치고 있고…… 그보다는, 다쉬사베스의 피라미드라던가.”
헬레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베로니카 양은 떠나지 않고 돌아왔죠. 당신이랑 함께 싸우기 위해서요.”
에드워드는 멋쩍은 표정을 짓고 주먹 끝으로 관자놀이를 긁었다.
“도움도 종종 받았지.”
“만티코어 때는 죽기 직전인 걸 살려놨죠. 시서펜트 때는 꽤 아슬아슬했어요.”
“알아. 우수하고 담대한 사제지.”
“그리고요?”
에드워드는 결국 가르달식을 썼다.
“왜? 너 진짜 유부남 취향이야?”
헬레나는 에드워드의 오금을 걷어차는 걸로 답변을 대신했다. 에드워드는 낄낄 웃고는 자리를 떠나는 엘프 여전사의 뒷모습을 보았다.
“거 참을성 없기는.”
에드워드는 마지막 행선지를 봤다. 저주를 풀거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떠도는 자들이 밀리온에서 방문하는 장소 중 하나. 메시아가 숨을 거두었다는 돌바위 언덕이었다.
“골고다 언덕 같은 건가…….”
에드워드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린 다음, 해를 확인해 보았다. 거의 지기 직전. 자그마한 돌언덕 곳곳은 밤샘기도를 준비하는 순례자들의 모닥불이 별빛처럼 반짝거렸다.
수도회에 들어오라거나, 100일쯤 기도해보자는 곳들을 제외하면 남은 희망은 이제 그곳뿐이었다.
에드워드는 아랫입술을 한번 핥고는, 태산에 등정하는 것과 같은 심정으로 발을 딛었다.
“에너지드링크가 간절하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