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34)
234화 성지에 도착해도 쉴 시간은 없다 (2)
“사제님이 너무 늦는데요?”
여자방 침대 위를 뒹굴거리던 스텔라의 말이었다. 그녀의 분홍색 머리카락을 유심히 살펴보던 리안나가 덧붙였다.
“여마법사의 염색약이 빠지는 것보다야 빨리 오겠죠.”
“이거 염색 아니고 마력 부작용이거든?”
“그게 그거죠.”
“자기과시용으로 머리색을 스스로 바꾸는 마법사들과 난 경우가 다른 거야.”
“원래 색깔로 돌아갈 수 없어요?”
“있는데.”
“그런데 안 하고 있잖아요. 그럼 그게 그거지, 뭐. 잘난 척이 하늘을 찌르는 마법사가 자기과시 안 할 리가…….”
“요 얄미운 꼬맹이!”
스텔라는 벌떡 일어나 리안나랑 침대 위 레슬링을 시작했다. 헬레나는 눈 하나 깜짝 않고 첫 질문에 뒤늦게 답변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일이 많았으니까요. 보고할 게 많겠죠. 오래 걸리는 것도 당연해요.”
“흐흥. 어쩌면 기사님 저주 풀어 줄 방법 찾고 계실지도.”
“이거 놔라예요, 먹물!”
스텔라의 가느다란 팔에 헤드락이 걸린 리안나가 발버둥을 쳤다. 스텔라는 팔에 더 힘을 주면서 계속 말했다.
“만약 기사님 저주가 안 풀리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매우 안타까운 일이겠지만, 풀릴 거라고 봐요.”
“정말요?”
“공이 많잖아요?”
“흐흥? 공 많이 세운다고 다 풀리는 건 아니라던데. 엘프 전사의 기준인가요? 아니면 기사님의 뜨거운 손길을 기대하는 건가요?”
“걸리면 풀리는 게 모험담의 정석이죠.”
대답 회피. 스텔라는 리안나를 풀어 주고 다시 침대 위를 뒹굴거렸다.
“세상이 정석대로 흘러가나요, 뭐. 저주 못 푼 채로 죽는 사람의 예도 있는데. 심하면 자손들도 그 저주 갖고 태어나거나.”
“그런 건 어둠의 저주에 더 많죠. 에드워드 경의 경우는 그것들과 경우가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
“왜죠?”
“성인께서 걸었으니까요.”
헬레나는 문짝을 힐끗거렸다.
“성인께서는 희망과 진보가 있는 결말을 바라겠죠.”
스텔라는 반대쪽으로 뒹굴거렸다.
“안 풀려도 재밌을 것 같지 않아요?”
“대체 어디가요?”
“일상생활이 많이 불편하고 정상적인 ‘사랑의 밤 보내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그 괴력은 여러모로 유용하잖아요. 저주 못 풀어도 교회 기사로 봉사하면 꽤나 출세할걸요. 저주 걸린 몸이라고 진급상한선 같은 게 걸리겠지만, 대신 재물은 알뜰하게 챙길지도.”
“그래서요?”
“저주를 못 풀면, 일상생활에서 밤까지 여러 가지로 사제님이랑 엘프님이랑 저한테 의존해야 하는 게 크지 않을까…….”
“왜 셋이 다 엮이죠?”
“무슨 의미예요, 그거? 나만 빼고 두 분이서 갈라 먹겠다 이거에요?”
“그건 또 무슨 의미죠?!”
“생각해 봐요. 저주 못 풀고 의기소침해서 돌아온 기사님을 사제님이 거두고 엘프님이 함락시키고 제가 보좌하면 뜯어먹기는 아주…….”
“돈 이야기인가요!”
“영주급 인사의 후원금을 기대하고 싶지만, 그게 여의치 않으면 경력과 전리품이라도 챙겨야죠? 그리고 여자로서도 은근히 괜찮은 이야기 아니에요? 기사님한테 목줄 채우고 자기한테 의존시키고 싶은 욕망 없어요?”
“어, 없어요!”
“괜찮아요. 솔직히 말해 봐요. 우리뿐이잖아요. 우리가 기사님한테 기대고 싶은 것도, 기사님이 우리한테 기대게 하고 싶은 것도 우리 마음대로라면 좋잖아요?”
스텔라의 속삭임이 헬레나의 긴 귀 안으로 파고들었다.
“우리 셋이 제대로 연계하면, 기사님 농락하는 건 일도 아니라니까요? 어차피 여자 좋아하는 기사님한테도 나쁜 이야긴 아닌데?”
리안나가 기어이 한마디 얹었다.
“악마보다 사악한 혓바닥.”
스텔라는 깔깔 웃었다.
“뭐, 안 풀리면 그렇게 일을 굴리는 게 좋겠다는 희망 사항이죠.”
헬레나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외면했다.
“에드워드 경이 들으면 스텔라 양을 절대 가만 안 놔둘 것 같군요.”
“에이, 사실 사제님도 그런 결말 바라고 있을지 누가 알아요? 저주 풀 방법 따위 모르면서 그냥 성지 오면 해결되겠지 하고 끌고 온 거잖아요. 지금쯤 도서관 구석에서 죄책감과 희망 사항에 몸부림치면서 기사님을 생각하고 있을…….”
덜컹. 문이 열리면서 베로니카가 들어섰다. 약간 핏발이 선 눈을 한 그녀는 서늘한 시선으로 스텔라를 내려다보았다.
“악녀 하려면 혼자 할 것이지, 다른 여자들까지 못 끌어들여서 안달이군요?”
스텔라는 기겁해서 침대에서 뛰어내려 리안나 뒤에 숨었다. 리안나는 뚱한 표정으로 항의했다.
“방금까지 신나서 떠들던 주제에 왜 밴시 뒤에 숨냐 이거예요.”
“아니, 사제님. 이건 어디까지나 여자들끼리나 하는 망상이고 이야기죠. 그렇게 되길 바란다는 게 아니고요! 아니, 잠깐! 집게는 왜 꺼내시는데요?!”
“보고 끝내자마자 문서고 가서 저주 푸는 법 찾고 있던 내 수고를 무시하고 폄훼한 사악한 혓바닥에 응징을 내려야죠.”
“아, 그러셨어요? 몰랐네. 잠깐, 몰랐다고요! 그리고 불법 고문이에요!”
“괜찮아요. 그런 게 합법인 곳에 외주 줄 테니까.”
“고문이 외주도 있어요?!”
“왜 없을까요?”
“어, 듣고 보니 그렇…… 꺄아아아아악! 외주 준다면서요! 왜 집게 들이미시는데요!”
“그 혓바닥은 제가 직접 뽑으려고요! 외주는 그다음!”
“권한 남용이다! 가라, 밴시 방패!”
“난 또 왜요?!”
티격태격대는 여사제와 여마법사, 그리고 그 사이에 낀 밴시를 보면서 헬레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에드워드 경이 이 꼴을 안 봐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랬다면 얼마나 구시렁거렸을지.”
* * *
언덕은 흙보다 바위가 많았으며, 무릎에도 못 오는 관목이 듬성듬성 자라 있었다.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는 그곳은 침묵 또는 기도가 별빛 아래 맴돌았고, 밤샘기도를 위한 커피 냄새가 그 사이 섞였다. 그리고 아래로는 곳곳에 불이 켜진 도시가 내려다보였다.
삼삼오오 모인 은자들과 순례자들을 지나친 에드워드는 정상에서 숨을 몰아쉬었다. 아직 빛이 남아 있을 때 올라왔지만 해는 빨리 져서, 불빛 없이 내려가긴 힘들 판이었다. 그는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았다.
[어린 왕자>의 저자가, 그리고 그 주인공인 비행기 조종사가 올려다본 밤하늘이 이랬을까 싶을 정도로 감상적인 밤하늘이었다.본능적인 종교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장소.
에드워드는 혼잣말로 뭔가 말하려다 말고 관뒀다. 그의 시선이 도로 언덕과 그 주변을 향했다. 그는 한참을 말없이 어둠 속을 보다 자리에 앉았다.
문제는 아침 해가 뜰 때까지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그는 새벽 햇빛 속에서 한 순례자가 내민 커피잔을 정중히 거절했다. 그리고는 얼굴을 푹 숙인 채 중얼거렸다.
“이젠 어쩌란 건지 모르겠네.”
“원하던 건 찾았는가, 기사여?”
에드워드는 굵직한 남자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녹색 서코트를 입은 기사가 그 앞에 서 있었다. 밤샘으로 뇌가 돌아가질 않던 에드워드는 그가 누군지 바로 떠올리질 못했다.
“뉘시더라?”
“벌써 잊어버렸다니, 좀 애석하군. 하긴 잠깐 스쳐 지나가긴 했지. 옛 검의 3기사, 시구르드요.”
에드워드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아아, 기억났소. 그런데 당신이 어떻게 여기 있는 거요?”
“어떻게, 라니?”
“우리보다 한참 더 뒤에 있을 줄 알았소. 아니면 안 따라오거나.”
“당신을 따라온 적 없소. 내 수행원들의 핏값을 받으러 온 것도 아니고. 난 ‘그냥’ 여기 있는 거요.”
에드워드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불편하게 지새운 밤 때문에 몸 곳곳이 비명을 질렀지만, 그는 아픈 것도 잊고 말했다.
“내가 뭘 해야 하는 거요?”
“무슨 뜻이오?”
“댁도 원하는 게 있으니 내 앞에 선 것 아니요? 아니면 뭔가 경고하기 위해서나. 내 주변에 나타났다 사라진 것들은 다 그랬소. 포경선의 선장부터 치매 걸린 주술사에 사막의 노친네까지.”
“내가 경고하면, 당신이 신의 말씀을 들을 수 있소?”
에드워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시구르드가 다시 말했다.
“스스로를 의심하고 있잖소.”
“솔직히, 그렇소.”
“자신이 신의 말씀을 들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시오?”
“어제까진 긴가민가했는데, 그런 것 같소.”
“왜 그렇소?”
내가 여기 사람이 아니니까. 에드워드는 그 말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오려던 걸 간신히 집어넣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어슴푸레한 새벽 햇빛 속의 도시를 바라보던 그는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역시 신앙의 문제인 거요?”
“여기까지 온 신앙 충만한 순례자들 중에, 신의 말씀을 들은 자가 몇이나 되는 것 같소?”
에드워드는 주변을 돌아봤다. 다들 여전히 기도 중이거나 커피를 마시는 중이었다. 잡담 같은 것도 어렴풋이 들려왔다. 다들 아무렇지도 않았다.
“없나 본데.”
“그렇소. 신의 응답은 그런 식으로 내려오는 게 아니기 때문이오.”
“그럼 성소에서 저주를 풀고 병이 낫는 사람들은 뭐요?”
“그건 신의 응답이 아니오. 신의 자비고 계획이지.”
“내 저주를 푸는 건 신의 계획이 아니오? 이대로 계속 저주 걸린 채 싸워야 되는 거요?”
“그건 내가 짚어 볼 수 있는 바가 아니오.”
빙빙 도는 말. 에드워드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내가 저주를 풀려면 뭘 해야 하는 거요?”
“어떤 방법을 고르시겠소? 한 예언자는 황야를 40년 동안 헤매고, 한 은자는 동굴에서 괄태충을 구워 먹으며 연명했소. 한 성자는 죽을 줄 알면서도 떠난 곳으로 돌아갔지.”
“도움이 안 되네. 그리고 경전 이야기는 하지 맙시다. 난 경전 구경도 제대로 못 해 봤소.”
책은 귀한 것이었고, 특히 경전은 성직자들이 독점하다시피 했다. 공작의 서재에 있는 책들은 책장 하나를 채우는 게 고작이었는데 왕국에서 제일가는 독서가 취급을 받았다.
시구르드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소. 경전을 읽지 못하니 설교를 듣고, 벽화나 스테인드글라스를 감상하지. 당신만의 문제는 아니오.”
“그럼 나만의 문제는 뭐요?”
“당신이 지금 가진 의문으로 돌아가는 거요.”
“무슨 의문?”
“당신이 왜 신의 말씀을 들을 자격이 없는가 하는 것.”
에드워드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수수께끼는 질색인데.”
“한 가지 조언하자면.”
겨우 힌트가 나왔다.
“어떤 쪽으로든, 당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걸 관두는 게 좋을 거요.”
에드워드는 침묵했다. 시구르드는 언덕 아래로 발을 돌렸다.
“당신이 신의 말씀을 못 들을 이유는 없소. 신을 시험하려 들지 마시오. 당신을 시험하시오.”
* * *
에드워드는 바로 숙소로 돌아왔다. 졸린 눈을 비비던 밴시 리안나는 에드워드를 보자마자 기겁했다.
“저주 풀었어요?!”
“아니.”
“와! 그럼 그대로 교회 기사 전직하시는 거예요?”
“아니!”
에드워드는 서코트 위의 허리띠를 풀어 열쇠 검을 빼내고는, 밴시한테 내던졌다. 허리띠 캐슬린은 당황해서 외쳤다.
“어, 왜 그러세요?!”
“한 가지 해 볼 게 있어.”
“뭔데요?”
“그런 게 있으니까 너네는 나 따라오지 말고 여기서 기다려.”
리안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제님이나 엘프님도 안 불러요?”
“부르지 마.”
에드워드는 마구간에서 자기 말을 꺼내 그 위에 올랐다. 리안나는 에드워드를 향해 질문했다.
“그럼 어디 갔다고 전해요?”
에드워드는 아랫입술을 한번 핥은 다음 말했다.
“혼자 바람 좀 쐬고 온다 그래.”
에드워드는 그 말만 남기고 바로 말을 몰았다. 허리띠 캐슬린은 하늘 높이 날아올라 그가 가는 방향을 확인해 보았다. 리안나는 그녀를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기사님 어디로 가시는지 보여요?”
캐슬린은 황망한 목소리로 답했다.
“어…… 동쪽으로 가시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