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35)
235화 바위산의 은자들 (1)
“동쪽에 뭐가 있다고 달려나간 거야?”
스텔라가 황당하다는 투로 말했다. 베로니카는 수면부족으로 충혈된 눈을 두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
“시오니아 동쪽에도 성소와 명소들이 있긴 해요. 그거나 얌전히 돌아다니다 오면 다행인데…….”
“차라리 기사님이 시오니아 동쪽 여인네들 골라잡으러 갔다는 게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요?”
리안나는 스텔라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주가 안 풀려서 화난 탓에?”
“아마도?”
“근데 왜 하필 여색잡기예요?”
“기사님이잖아. 전쟁터로 달려가도 이상할 게 없다고. 아니면 오래전에 미뤄뒀던 계획을 떠올렸을지도 모르지. 뱀파이어 건 말이야.”
베로니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리안나는 그걸 캐치해서 입을 다물었지만, 스텔라는 아니었다.
“뱀파이어가 에드워드 경의 저주받은 손을 잘라내고 새 손을 붙여버리자고 했던 거 기억나? 어둠은 어둠 나름대로 저주 해제 방법이 있단 말이지. 해도해도 안 되면 그런 데 희망을 걸…….”
“그런 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당신이 더 문제라고 보는데요!”
베로니카가 살벌한 목소리로 말하자 스텔라는 깨갱해 버렸다.
“기사님이 그런 제안 걷어차고 사제님을 택하던 게 인상적인 장면이긴 했죠.”
헬레나는 좀 다른 걱정을 꺼냈다.
“스텔라 양의 첫 걱정대로, 단신으로 시오니아 군대에 합류해서 미친개처럼 싸워보겠다고 나선 건지도 모르죠. 좌절한 기사들 중에는 그런 부류들 꽤 있지 않아요?”
거의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죽을 때까지 싸우기. 베로니카는 이마를 짚었다.
“하긴 동쪽이면 주술사 왕이 있지요. 그에게 맞서는 빛의 부대들도. 이 얼간이가 엉뚱한 생각을 한 게 아니어야 할 텐데.”
* * *
오크, 오거, 세트렛인 등이 한데 모이는 데는 조건이 몇 가지 필요하다. 매우 강한 우두머리가 그중 하나다. 그러므로, 그 우두머리만 죽이면 나머지는 알아서 흩어진다. 또, 그 우두머리의 통솔력이 닿는 범위만이 유효하므로, 경우에 따라서는 목소리가 닿지 않기만 해도 무리가 와해되는 극단적인 예도 있다.
그러나 죽음의 주술사가 지휘하는 군대는 그런 예가 없었다. 세트렛인 하나가 위임받은 권한을 상징하는 장식물로 가득한 갑옷을 입고 한 무리의 선두에 섰다. 지휘자의 종족이나 병종 구성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본질적인 면에서는 차이가 없는 그런 무리가 도시 앞에 늘어섰다.
그 도시의 성벽 위에는 ‘죽음의 주술사’와 악마 레피림이 있었다.
“겨우 기사 하나에 얼마나 많은 역량을 쏟아부으란 말이냐?”
주술사 왕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레피림은 성벽 아래 도열한 군대를 가리켰다.
“저 무리 중 하나만 있어도 그 기사를 죽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야.”
“저 무리 백이 있어도 어렵다. 시오니아 내부까지 쳐들어가야 할 것 아닌가? 겨우 기사 하나를 목표로 잡고 그런 대작전을 벌이라고?”
“부가적인 목표로 잡아도 돼.”
“그가 마침내 군세 앞에 나타난다면 모를까, 일부러 그러기는 어렵다.”
“죽음의 주술사가 언제부터 안 된다, 안 된다는 말만 했지?”
“악마와 그 하수인들도 처리 못 하는 기사를 내가 큰 수고를 들여 겨우겨우 제거할 이유가 ‘언젠가 내 방해물이 될지 몰라서’뿐인 건 부족해.”
레피림은 발끈해서 말했다.
“은자 유스타스의 지명을 받은 기사야! 내 계획에 초를 치고, 고대 악마 다쉬사베스와 결탁하기까지 했어! 밀리온을 노린 당신의 계획도 하나 좌초시켰잖아!”
“그 사건은 분명 들여다볼 가치가 있긴 했네만, 사연 있는 순례기사가 하루에도 몇 명이나 건너오는지 알기는 하나? 내가 그런 자들을 일일이 다 신경 쓰라고? 나는 내 기준으로 추려낸 자들을 견제하기도 바빠.”
“네 기준?”
“성묘의 수호자는 오랜 적이지. 그의 신임 근위기사단장인 패트릭 켈러핸은 쟁쟁한 악마들의 온갖 유혹을 뿌리치며 어둠의 군세를 짓밟고 있네. 앵글리아의 꺽다리 왕은 바다를 단숨에 건너올 기세고. 서쪽만이 아니라 내 배후에 있는 국가들까지 고려하면, 할 일이 많아.”
“네가 행정관이냐? 주술사답질 않네.”
“불을 뿜거나 번개를 내리치는 것보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더 강력한 법임을 오래전에 깨달은. 너희 악마들도 그렇지 않았나?”
레피림은 낮게 으르렁거렸다.
“악마가 인간에게 훈수를 받을 정도는 아니다.”
주술사 왕은 코웃음을 치고는 도로 군사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럼 잠자코 기다려라. 순례기사라면, 전장에 나서기는 하겠지. 그때나 처리하면 될 일이다. 어떤 놈인지 얼굴은 봐뒀으니까 말이다.”
레피림은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놈이 네놈 눈앞에 갑자기 나타나 주면 정말 좋겠네.”
* * *
일부의 걱정이나 기대와 달리, 에드워드는 주술사 왕의 군세에 돌격한다는 선택지 따윈 생각도 안 했다.
시오니아 동부. 밀리온에서는 말로도 며칠 거리지만, 아직 동부 국경지대까지는 안 닿는 어느 농촌.
“요즘은 겨울이어도 소란스럽군요. 기사님도 전쟁에 나가시는 겁니까?”
에드워드가 신세를 진 오두막집의 주인이 물었다. 에드워드는 그가 차려준 식사를 쓸어담다시피 입에 넣으며 고개를 저었다.
“난 내 개인적인 일을 해결하기 위해 길을 가는 거요.”
“임무를 완수한 다음 말이지요? 고생이시군요.”
집주인 가족은 에드워드가 타고온 말도 챙겨 주었다. 말을 빗질하던 여자애가 감탄해서 말했다.
“기사님들의 군마는 처음 봐요! 농경마랑 비교도 안 되네요!”
그 말에 에드워드는 밭으로 시선을 돌렸다. 길고 긴 밭이었다. 그러나 쟁기는 빈약한 수준이었다. 조금 더 작으면 말 대신 사람이 끄는 인쟁기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그래도 스스로 쟁기를 가질 정도면 나름 잘 사는 집이었다.
그러나 사람 사는 곳으로는 끄트머리에 가까운 장소였다.
“교회기사님이 밀리온에서 한달음에 동부까지 달려오셨다니까, 뭔가 큰일 나는 줄 알았지 뭡니까.”
집주인이 말했다. 에드워드는 비운 죽그릇을 한쪽으로 치우며 말했다.
“그간 이쪽으로 온 기사는 없소?”
“보통은 좀 더 북쪽의 평야지대를 통해 동부 국경까지 가지요. 거기가 주전장이거든요. 여긴 산지가 코앞이라. 산을 넘을 일이 있다면 모르겠습니다만.”
에드워드는 동쪽의 산맥으로 시선을 돌렸다. 바위산들. 까마득하게 높고 험했다.
“쉽게 넘을 곳이 아닌 것 같은데?”
“예. 그래서 요새들을 우회해 침범하는 오크 습격대도 이곳에는 잘 안 오죠. 사람들이 안 찾는 험지니까요. 어떻게 보면 접경지대보다 벽촌이지요. 옛날에는 이곳에도 왕국이 하나 있었다는데…….”
“알고 있소. 좀 심하게 옛날 이야기지.”
에드워드는 열쇠검의 자루를 어루만졌다.
“여기 오기 전에 ‘옛 검의 3기사’한테서 이야기를 잠깐 들었지. 어떤 왕국들이 이곳에 있었는지.”
“들어본 적 없는 기사분들이군요. 유명한 분들인가요?”
“나름.”
“그렇군요. 촌구석이라 그런 소식은 늦어서요.”
에드워드는 피식 웃었다.
“국경이 무너지면 여기가 최전선이 될 텐데, 그럼 기사들 이야기도 흔히 접할 수 있을걸.”
“뭐, 산세가 험하니 어떻게든 막겠지요. 그리고 국경이 무너질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장담은 마쇼. 난 마법으로 하늘에서 오크들이 쏟아지는 것도 봤어. 얼마 전엔 밀리온 남쪽의 도시에서 주술사 왕의 수작질을 적발했고.”
“와아!”
주변 촌민들에게서 감탄 소리가 나왔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걱정스러운 의견을 교환했다. 여기까지 기사가 와서는 불길한 소식들을 전해주니 동요되는 것도 당연했다.
잠깐의 휴식을 끝낸 에드워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람 발길이 안 닿는 옛길을 찾고 있는데. 혹시 짚이는 곳 있소?”
“끊긴 산길이라면 알지요. 헌데 무엇 때문에 그런 곳을 찾으십니까?”
에드워드는 짧게 말했다.
“잠깐 혼자 있으려고.”
* * *
촌민들이 알려준 길은 반대쪽에서 오는 사람 따위를 기대할 수 없는, 끊기고 망가진 옛길이었다. 에드워드는 말을 그 마을에 맡긴 채 그 길을 걸었다. 길과 길이 아닌 곳의 경계가 희미한 곳을 몇 번씩 넘나든 끝에 그는 어느 지점에서 드러누워 버렸다.
“난 등산이 싫어. [딥 블루 씨>의 흑인 요리사가 옳은 말을 했다니까. 죽는 방법이 널린 판에 뭐하러 돈 쓰고 힘 쓰고 산에 가서 죽느냔 말이야.”
에드워드는 산악인들이 싫어할 소리를 연달아 내뿜었다. 하지만 그가 택한 길이었다.
저주나 예언의 문제로 광야를 수십 년 헤매었다는 예는 대개 그 땅이 그렇게 넓기 때문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이유로 그만큼 돌아다녀야 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돌아다니는 거리를 빡세게 늘리면 좀 더 짧은 시간 안에 뭔가 걸리지 않을까.’
짧은 계산, 부족한 추론이었다. 그러나 짚이는 바가 없지는 않았다. 시오니아 터에 존재했던 옛 왕국의 ‘사악한 것을 물리치는 검’이 단서가 되어 줄 것이라는.
“결국 이 검 봉인 깨서 써보라고 날 여기 불러들인 거 아냐?”
에드워드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바위 사이 찬 바람들은 대답이 없었다. 그는 도로 몸을 일으켜서 다시 바위산을 헤매기 시작했다.
여행경비가 떨어질 것은 걱정하지 않았지만, 산속에서 조난당하는 건 꽤나 가능성 높은 상황.
“나 죽기 전에 뭔가 답이 오긴 오는 거냐!”
에드워드는 걷다 말고 버럭 소리를 질러버렸다. 그 순간 바위계곡 사이로 맹렬한 바람이 불면서 먼지구름을 잔뜩 일으켰다. 에드워드는 기침을 하면서도 계속 외쳤다.
“내가 죽는 거 두려워할 줄 알아? 아니거든? 왜게? 시발, 죽는 게 한 번이어야 두렵지!”
실은 한 번이건 두 번이건 겪고 싶지 않은 일이므로 허풍 섞인 말이었다. 그는 먼지구름 속에서 결국 발걸음을 멈췄다. 어디가 앞이고 뒤인지 잠시 헷갈릴 지경이었다. 그는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겨우 인공적인 물건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뾰족뾰족한 바위산 가운데서, 무너진 모래먼지들 틈바구니에서. 무릎 높이 정도의 작은 비석이었는데, 어떤 문구도 없이 문양만 하나 있었다. 에드워드는 그 문양을 알았다. 아지지야 대도서관의 환영들 사이에서 본 것이었다.
열쇠검의 첫 활동지역이었던 어느 고대 왕국의 문양.
에드워드는 두 번째, 세 번째 비석도 찾아낼 수 있었다. 다 똑같은 모양, 똑같은 문양이었다. 간격은 넓지만 줄줄이 이어져서 ‘길’을 제시하고 있었다. 원래는 그 고대 왕국의 길을 이루던 표지석인 모양이었다.
에드워드는 열쇠검을 뽑아서 내려다보았다.
“열쇠검이란 이름은 나중에 붙은 거고, 원래 이름은 따로 있다고 들었는데…… 이래서야 원래부터 그 이름이었다고 해도 믿겠군.”
에드워드는 비석 행렬을 따라 내달렸다. 그 끝에 놓인 것은 그늘 아래 가려진 바위굴이었다. 그 안을 슬쩍 들여다보자, 습기와 냉기가 동시에 얼굴을 간지럽혔다. 굴 안은 좁고 어두웠다.
‘들어가? 말아?’
에드워드가 망설이는 사이, 노인의 목소리가 그 안에서 나왔다.
“왔으면 들어올 것이지, 뭘 망설이고 있는 거요?”
들어본 목소리였다. 그리고 들리면 안 되는 목소리였다. 에드워드는 식은땀을 흘렸다. 그가 답하기도 전에 다른 목소리가 그 뒤를 이었다.
“바닷길도 처음 딛는 게 어려운 법이잖소.”
역시 아는 목소리였다. 에드워드는 뒷걸음질을 칠 뻔했다.
은자 유스타스, 그리고 포경선의 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