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38)
238화 지불은 가능한 한 빨리 (1)
에드워드의 난리법석은 그가 열쇠검을 들어 바위를 쳐볼까 고민하는 시점에서 끝났다. 카치운이 말렸기 때문이었다.
“칼 내구도를 시험해보게? 그러다 깨 먹으면 손해 아뇨?”
“얼마나 단단한지는 좀 알고 싶은데. 기억 안 나쇼? 흰코뿔소 한 마리를 매달고도 멀쩡했던 봉인이잖아. 그런 응용이 가능하다는 확신이 있으면 좋겠는데.”
“생각은 이해하지만 참으쇼.”
“젠장. 설명서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에드워드가 투덜거리면서 열쇠검을 들고 살펴보았다. 그러나 더 특별한 것을 찾지는 못했다. 카치운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주 풀면서 설명 뭐 없었소?”
“아니, 전혀.”
“저주는 어떻게 푼 거요?”
“말하기가 좀 해괴한데…… 바다귀신이랑 성자랑 다툼하는 데 가서, 고래 뱃속에 들어갔다가, 결국 성자 편을 들고 나왔소.”
“뭐야, 그게. 신비한 지저 호수에 몸을 담그고 회개하니 저주가 풀렸다, 뭐 그런 식이어야 하는 거 아뇨?”
“그건 어느 동네 전설이요?”
“비슷비슷한 건 흔하잖소. 거 참. 회개하고 저주 풀었다는데, 하는 언행은 별로 달라진 게 없구만. 보상품은 한아름 안겨주고서.”
에드워드는 낄낄 웃었다.
“그간 괴물과 사교도 많이 죽인 걸로 가산점 받은 거 아뇨?”
“거기서 만난 성자가 누구고, 무슨 말을 했소?”
“성자 유스타스.”
카치운의 미간이 좁아졌다.
“죽은 줄 알았는데?”
“죽었지. 영으로 나타나더라고.”
“저런. 역시 장본인이 풀어줘야 하는 거였나 보군. 그가 뭐라고 했소?”
“하고 싶은 거 하라던데.”
“언젠가 내가 댁한테 했던 말과 비슷하군. 흠. 회개 잘 했다 이건가. 자세한 사정을 모르겠군. 그래서, 이제 어쩔 거요?”
에드워드는 멈칫했다. 카치운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생각해 본 거 없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는 했는데, 그게 뭔지 나도 모르겠어.”
카치운은 별 한심한 놈을 다 본다는 표정을 지었다. 에드워드는 얼굴을 붉히며 항변했다.
“아, 그냥 내 맘대로 하면 되는 거겠지!”
“볼수록 내용물이 바뀐 건 별로 없는 것 같은데. 혹시 이 저주 해제, 선불 아뇨?”
“선불? 저주도 선불, 후불이 있나?”
“비유하기가 좀 힘든데, 그, 왜, 그런 거 있잖소. 네가 그렇게 매달리고 일단 우리편 인증을 했으니 저주는 풀어주는데, 너 하는 거 보고 다시 걸어버리는 수가 있다…….”
에드워드의 낯빛이 더 어두워졌다. 붉으락푸르락 희로애락을 마구 오가는 그의 얼굴을 감상하던 카치운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그쪽 같은데? 하고 싶은 걸 하라는 말도 그렇고.”
“망할 놈의 빛과 어둠! 거 더럽게 깐깐하네! 하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에드워드는 잠깐 성질을 낸 다음, 문득 생각났다는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잠깐, 카치운. 댁만 왔소?”
“밴시도 왔는데요! 자기 검은 애지중지하면서 밴시는 막 꼬집고 던져대는 악덕 주인!”
바위 위의 밴시가 항의했다. 에드워드는 그걸 싹 무시했다. 카치운도 마찬가지였다.
“나 혼자요. 문제가 좀 생겼거든.”
“무슨 문제?”
“백작의 부하들이 수도에 도착했소. 당신이 떠나고 이틀 뒤였나. 따라잡았더라고.”
에드워드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손등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는 깜짝 놀라서 손을 뗐다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아, 이제 긁거나 짚어도 되지. 그나저나, 백작의 부하들이라고? 누구?”
“누구겠소?”
“올리비아?”
“걔 아빠. 그와 그의 부하들이 총대주교좌 성당과 거기서 배정해준 숙소 근처에서 죽치는 통에, 베로니카 양은 밖으로 못 나오고 있소.”
에드워드는 입술을 좀 더 깊게 말아 깨물었다.
“젠장. 질긴 놈을 다시 만나는군. 그래서?”
“일단 당신을 다시 불러오기로 하고 내가 밴시와 출발했지. 나머지는 사제 아가씨의 호위. 금방 따라잡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렸네. 설마 여기까지 오게 될 줄도 몰랐고.”
“놈들이 베로니카를 강제로 끌고 간다던가?”
“총대주교좌 성당은 시오니아 국왕도 못 건드리니까 그건 아닐 거요. 다만, 나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
“젠장. 베로니카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소?”
“몰라. 그녀가 결정하기 전에 나머지 사람들이 결정하고 나 보낸 거니까.”
에드워드는 앓는 소리를 한번 낸 다음, 밴시를 향해 외쳤다.
“야, 내려와! 바로 돌아가자!”
“안 때릴 거죠?”
“안 때려!”
리안나는 바위의 완만한 각도를 골라 쪼르르 미끄러져 내려왔다. 요정이 미끄럼틀을 몇 번 타는 동안, 카치운은 산 아래를 가리켰다.
“가는 건 육로요.”
“마법의 길은 어쩌고?”
“지나와보니 폐쇄됐더만. 인간에겐 일방통행이었지 뭐요. 그것도 성자의 배려거나 악령의 술수겠지.”
“인간에게는?”
“밴시는 마음대로 들락거릴 수 있었소. 하지만 쟤만 가라고 할 수도 없잖아.”
에드워드는 리안나를 내려다봤다. 리안나는 식겁해서 외쳤다.
“저만 먼저 보내봤자 중간부터는 저도 걸어가야 되는데요! 설마 그 거리를 걸어가라고요?!”
“알아. 안다고. 카치운, 여기가 익숙한 지형이랬지?”
“그렇소.”
“말도 데려왔고.”
“당신이 산 아랫마을에 맡긴 말까지. 혹시나 싶어서 끌고 왔소. 천운이지. 말 타고 바로 돌아가면 돼.”
그때 밴시가 끼어들었다.
“그런데 기사님. 바위 뒤쪽으로 산 아래를 보니까 모래먼지가 왕창 일고 있던데요.”
“그게 뭐?”
“군대끼리 맞붙는 것 같았어요. 거리는 좀 있는데.”
에드워드는 카치운을 돌아봤다. 카치운은 어깨를 으쓱했다.
“국경지대 근처거든. 시오니아 왕국군이 동쪽의 세트렛 병단이나 오크 부족과 붙었을지도 모르지.”
에드워드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카치운이 물었다.
“왜? 가서 끼어들게? 사제 아가씨 문제 해결하러 가야 하는 거 아뇨?”
“그렇긴 한데…… 아까 말한 선불, 후불 이야기가 좀 걸려서.”
“아아.”
카치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빛의 싸움에 꽁무니 빼면 저주가 도로 걸릴지도 모른다?”
에드워드는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런 걱정이 있네.”
“그런데, 그게 하고 싶은 걸 하는 거요?”
밴시가 뚱한 표정으로 대신 답했다.
“열쇠검의 새 모양을 실험해보고 싶으셔서 근질근질한 건지도요. 저주가 풀렸으니 싸워 보고 싶은 건지도 모르고.”
에드워드는 찔린다는 뜻이 내포된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카치운은 한숨을 내쉬었다.
“뭐, 일단 상황이나 한번 봅시다.”
“그래, 봐야겠지.”
카치운과 에드워드의 시선이 다시 리안나를 향했다. 밴시 리안나는 놀란 눈으로 그들을 올려다봤다.
“왜요?”
잠시 뒤, 리안나는 밧줄이 묶인 채 다시 바위 위로 던져졌다.
“내 팔자야아아아아아!”
* * *
시오니아 국경을 침범한 부대 ‘주술사 왕’의 휘하로, 세트렛인이 지휘하는 오크-세트렛 연합부대였다. 규모는 본격적인 침공 전에 탐색전을 거는 듯한 정도. 숫자는 방어측 시오니아 군대보다 약간 더 많았지만, 압도적인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주변을 마구 약탈하고 불태우며 전진하는 통에, 끼치는 피해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시오니아 군대는 성묘수호기사단 인원을 중심으로 인근 영주들이 연합했는데, 기병전력에서 앞서 나가는 덕에 한때 승기를 잡는 듯했다.
그러나 시오니아 왕국군에게 큰 불행이 닥쳐왔다. 시오니아 기병대가 취약한 적 기병대를 격파하고 추격하다, 검은 용 깃발 아래 모인 약탈품에 신경이 팔리고 만 것이었다.
어둠과의 국경지대 영주들은 무역 따위의 혜택을 못 본다. 지력이 있는 땅도 어둠과의 전쟁으로 피폐해지기 일쑤다. 부유하기보다는 가난하므로, 적의 보물에 눈이 돌아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게 빼앗긴 물건들이면 더욱.
첫 단추가 잘못되면서 패배가 몰려왔다.
“각 부대를 수습해라! 철수한다! 서둘러! 회랑까지 탈출해서 재정비한다!”
시오니아 부대 지휘관인 성묘수호기사단원이 소리쳤다. 그러나 그가 지휘할 수 있는 병력은 바로 근처의 기사단원들로만 한정되었다. 전열은 이미 붕괴되었고, 전령 열둘을 보내도 소용이 없을 지경이었다.
“이 무슨 추태인가! 미끼에 낚여 큰일을 그르치다니!”
지휘관은 분노로 몸을 떨었다. 기사단의 규율은 엇비슷한 규모의 적을 상대로 도주하는 걸 허용하지 않았지만, 이제 그가 지휘할 수 있는 기사의 수만 따지면 적전도주를 허용하는 비율을 넘기고도 남았다. 한 참모가 그를 다시 다독였다.
“어쩔 수 없습니다! 여기서 병력을 조금이라도 수습하지 못하면, 놈들의 약탈은 견제가 없어 더 기세가 오를 겁니다!”
“알고 있다!”
불명예를 감수한다는 결정을 내린 지휘관은 회랑으로 빠르게 말을 몰았다. 조만간 이 치욕을 갚기를 간절히 원하면서.
다행히도, 그의 기회는 날이 저물기 전에 왔다.
회랑에서 약간 더 거리가 있는 지점, 패잔병이 된 시오니아군을 맞는 한 기사가 있었다. 너덜너덜한 붉은 서코트에 원통형 투구를 쓰고, 파란 비단옷을 입은 궁기병을 뒤에 세운 기사.
그는 뒤의 동료를 향해 말했다.
“산 위에서 봤을 땐 이기는 싸움에 숟가락 얹는 판이 될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성자 양반, 이 꼴이 날 거 알고 날 여기 보낸 것 같지?”
“뭐, 그렇겠지. 이제 어쩔 거요?”
기사는 씩 웃으면서, 마주오는 한 경기병한테서 창을 뺏어 들었다. 그리고는 자신 쪽으로 달려오는 기사단원들을 향해 말했다.
“멈춰라!”
기사단원들의 속도가 느려졌다. 붉은 서코트의 기사는 지휘관을 향해 마주 말을 몰아갔다. 둘의 거리가 아주 가까워져서야 서로의 말이 멈췄다.
붉은 기사는 만신창이가 된 기사단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기사단의 규율은 적이 세 배 이상 되지 않으면 후퇴하지 않는다, 아니었나?”
“외부인이 함부로 말하지 말라, 교회기사!”
한 기사단원의 외침에, 붉은 기사는 킬킬 웃었다.
“이 말을 여기서 다시 하네. 첫째, 난 교회기사가 아니다. 이단심문관에게 개인적으로 고용된 몸이지. 둘째, 그 이단심문관 아가씨한테 빨리 좀 돌아가 봐야겠거든?”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에드워드는 기사단원들을 향해 말했다.
“적은 추격에 서둘러 나서, 대열이 흐트러지고 선이 길어졌으며 심지어 일부는 끊어지기까지 했다. 오합지졸도 아니고, 규율을 지키는 기사단원이라면 역공에 나설 역량이 충분할 테지?”
궁기병의 뒤에서 꼬마 요정이 중얼거렸다.
“높은 데서 그거 다 보고 온 건 전데요.”
붉은 기사는 검을 뽑아 들었다. 그 빛은 저물기 직전의 태양 빛을 받아 밝게 빛났다.
“꼬맹이도 아는 걸 기사가 모른 척하고 물러설 건가? 성자 유스타스의 인도로, 그의 이름으로 깨어난 옛 검과 그 기사가 여기 왔다!”
기사는 그 말만 남기고 말을 달렸다. 무리 중 기사단 소속이 아닌 기사들이 웅성거렸다.
“방금 그가 뭐랬지? 성자 유스타스?”
“빛의 검이다! 빛의 검이 전장에 나타났다!”
“무용을 드러낼 시간인가!”
보다 무모하고 자유로운 기사들, 아직 돌격해 보지도 못하고 패배를 맛보길 거부한 기사들 몇몇이 그 호언장담에 끌려 방향을 바꿨다.
축복받은 무기를 들고 적진에 뛰어든 자의 이야기는 오래 사랑받는 역전극의 신호였다. 그 가능성과 낭만에 눈이 돌아간 기사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궁기병은 약간 늦게 출발했다. 그는 기사단원들을 힐끗 보고는 핀잔을 던졌다
“하긴 자발적 고자들이야 여자들한테 자랑할 무훈이 필요 없겠지.”
“뭐가 어째, 이놈이!”
결국 분기탱천한 기사단원들까지 가세했다. 뒤쫓아오는 기사들을 본 밴시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단순하기가 멧돼지 급이야.”
밴시의 촌평이 끝나기도 전에, 전방의 오크들은 돼지 멱 따는 듯한 비명을 질러댔다.
세트렛 지휘관이 난입한 기사한테 비명횡사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