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39)
239화 지불은 가능한 한 빨리 (2)
군대의 함성이 땅과 하늘을 울렸다. 승기를 잡았던 세트렛인들은 무질서하게 추격했고, 세트렛인과 오크 연합부대간의 틈새는 점점 더 벌어졌다. 대열은 점점 더 길게 늘어졌다. 그들의 지휘관이 그렇게 늘어지고 끊어진 대열 가운데 있었다.
“저놈들을 막으라니까!”
세트렛인 지휘관이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붉은 옷의 기사를 필두로 한 한 무리의 기사들은 굳건함이 없는 적 대열을 따라 달렸다.
“물러나! 후퇴! 다시 대열을 굳혀라!”
상황이 급변하자 내린 판단. 적의 의도는 명확했다. 물러나서 다시 굳히기. 그러나 흐름을 바꾸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고, 그나마 후퇴하는 병력도 즉시 제자리를 찾지는 못했다. 주저함과 혼란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기사대 돌격은 멈칫거리기 시작한 적을 오히려 더 강하게 들이받고, 더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에드워드는 자기 앞을 가로막는 모든 적을 짓밟고 베어 넘기며 소리쳤다.
“안 비키면 죽는다!”
창은 이미 부러진 지 오래였다. 봉인이 풀린 열쇠검이 적의 무기와 방어구를 반토막 내며 길을 열었다. 에드워드는 보석과 깃발로 치장하고 호위병들을 거느린 적 지휘관 앞에 당도했고, 그를 향해 소리쳤다.
“넌 비켜도 뒈져, 이 새끼야!”
* * *
회랑에서 남은 병력을 추스르고 있던 기사단 지휘관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세트렛 군대를 바라보았다.
“무너지고 있어?”
“갑작스러운 돌격에 놀란 정도가 아닙니다. 마치 사람이 몸을 크게 떨다 갑자기 고꾸라진 듯한…… 적이 혼란에 빠진 것 같습니다만…….”
부관이 말했다. 그의 말대로였다. 세트렛과 오크 연합군은 빠르게 후퇴하기 시작했다. 돌격하지 않고 남았던 기사들과 병사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아까 그 돌격에 놀라서 후퇴하는 건가?”
“아냐, 뭔가 그것보다 더 크대.”
“뭔가가 뭔데?”
“뭔가가 뭔가지!”
“돌격한 기사들은 다 죽은 건가?”
웅성거림의 끝은 잠시 뒤 환성으로 나타났다. 피투성이가 된 기사들이 후퇴하는 적병 무리를 뚫고 본대로 돌아오는 광경이 보인 것이다. 에드워드는 새 창에 적장의 머리를 꽂고 그걸 높이 든 채 앞섰다.
“적장의 목이다!”
“맙소사, 설마 본진까지 쳐들어간 거야?!”
“기적이다! 빛의 기적이다!”
에드워드는 별로 기뻐하는 투는 아니었다.
“쟤들이 늦게라도 따라왔으면 병사들까지 아주 그냥 다 작살내는 거였는데.”
“욕심도 많구만. 안 움직이는 오크 무리도 있었소. 괜히 놈들에게 돌격 대상을 정해 줄 필요는 없잖아.”
화살통을 거의 다 비우고 칼에 피를 묻힌 카치운이 덧붙였다. 목표는 안 보이는데 주변 동료들이 다 물러가는 혼란. 웬만해서는 안 물러서는 호전적인 오크들도 덩달아 휩쓸린 게 지금의 상황이었다. 에드워드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것도 일리가 있군. 뭐, 일단 승전이나 즐깁시다.”
기사단측 지휘관이 에드워드를 향해 말을 몰아왔다. 그는 교회기사한테 경의를 표했다.
“정말로 성자와 빛의 검이 선택한 자라고 해도 만용이 아닌가 했는데, 내가 틀렸소. 그대는 어느 교회의 소속이며, 어느 주교님의 명을 받고 있소?”
“다시 말하게 되는군. 비텔리아 교황청 교리법무성 징계과 이단심문관한테 개인적으로 고용된 몸이오.”
“그렇군. 억양을 보니 앵글리아 출신인 듯한데, 어느 가문의 기사요?”
에드워드는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는 결정했다.
“잊을 뻔했는데, 생각해 보니 바쁜 일이 있어서 먼저 실례.”
“이런. 이름을 밝히지 않는 거요?”
“애석하게도 여러분의 환대를 받을 시간이 없소. 급한 일이 있으니. 혹여 내가 필요하거든, 시오니아 총대주교좌 성당에 도착한 여자 이단심문관을 찾아오시오.”
“사명에 투철한 수수께끼의 기사라니! 잊혀진 미덕들이 다시 나타나는군!”
기사단원들이 감탄하거나 말거나, 에드워드는 창을 기사단원 하나한테 넘기고 빠르게 말을 몰았다. 주변 병사들이 무기를 들고 환호하는 가운데를 지나치는 중에, 카치운이 말했다.
“자랑질하기 바쁠 줄 알았는데?”
“그러고 싶은 마음은 하늘을 찌르는데, 그랬다간 진짜 여기서 발이 묶이고도 남을 거요. 손님과 은인에게 대접을 못 하는 건 수치니까. 날 고용하거나 친목 좀 쌓아보려는 사람들도 달라붙고. 하지만 이름을 못 밝히는 기사가 사정이 있다는 투로 말하면 다들 놓아주는 법이지.”
“그렇군. 그런데 그렇게 서두를 것 있소?”
“일이 급하니 별수 있나. 뭐, 이 정도만 말하면 다들 알아서 찾아오겠지.”
“아니, 베로니카 양이 위기인 건 사실이지만 시간이 없는 건 아니잖소. 어쩌면 자기가 알아서 해결할지도 모르는 일이고. 오빠네 가신들 정도야…….”
에드워드는 투구 아래서 뻘쭘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좀 급해.”
카치운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서두릅시다. 여기서 거기까지 꽤 멀다고.”
카치운의 뒤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밴시가 덧붙였다.
“밴시는 상 주세요! 나도 돌 던지면서 싸웠는데! 아까 병졸들도 제 이야기는 한마디도 안 꺼내요! 나 투명요정이야?!”
리안나의 항의에 에드워드는 몸을 더 크게 돌렸다.
“있었냐, 너. 난전이라서 진즉에 떨어진 줄 알았는데.”
카치운이 느긋이 웃으며 말했다.
“작아서 안 보인 거겠지.”
“너무해! 기사도 이야기인데 왜 종자는 포커스가 없냐 이거에요! 반칙이야!”
에드워드는 시선을 도로 앞으로 돌리며 말했다.
“밀리온까지는 참아라. 네 일이 거기 하나 있다.”
“네? 뭔데요?”
“아주 중요한 일이지.”
“그러니까 그게 뭔데요?”
에드워드는 돌아보지 않고 대화를 끝냈다.
“도착하면 알려 줄게.”
* * *
시오니아 수도 밀리온은 출발하기 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동과 서로 나뉜 신구 시가지, 드높은 총대주교좌 성당과 그 부속 건물들.
광장 분수대에서 에드워드는 성당 주변을 살펴보다 말했다.
“백작네 부하들은 안 보이는데?”
“대놓고 감시하고 있을 리가 있나. 저기 서쪽의 술집 옥상 위를 보쇼.”
에드워드는 카치운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한 무리의 남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연초를 뻑뻑 피워대고 있었다. 개중에는 옥상 흉벽에 몸을 기댄 채 홀로 연기를 뿜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의 시선은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다.
“저 중에 하나?”
“확신은 못 하는데, 아마 있을 거야. 나라도 저기 있을 테니까.”
“흠. 저기서 베로니카가 나오냐 못 나오냐 본단 말이지.”
카치운의 말이었다. 밴시는 에드워드의 명령을 받아, 부속 숙소로 먼저 쪼르르 달려가며 소리쳤다.
“도착하자마자 노동이라니, 밴시는 항의할래요!”
“알았으니까 시킨 거 다 하고, 내 여벌 옷이나 챙겨놔라.”
에드워드는 분수대 가장자리에 앉아 긴 한숨을 뱉었다. 너덜너덜한 그의 행색은 사람들의 주목을 별로 끌지 않았다. 그런 기사는 널렸으니까.
그러나 백작의 부하인 파브리스는 감이 날카로운 인간이었다.
“여기서 다시 뵙는군요.”
에드워드는 자기 앞에 나타난 중년 기사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페브X즈?”
“파브리스입니다. 성당이나 숙소에서는 안 보인다 싶더니, 갑자기 너덜너덜한 꼴로 등장하셨네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감시가 완벽하진 않은 모양이었다. 에드워드는 의자에 몸을 기댄 채 말했다.
“밖에 갔다 왔어.”
“예?”
“밀리온 밖에서. 동부 국경지대까지 갔다 왔지.”
파브리스는 잠시 말이 없더니,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시오니아 국왕 폐하도 혹시 뵈었습니까?”
“아니. 아직.”
“보상받기도 전에 전투부터 치르고 오신 겁니까? 생각보다 전투광이시군요.”
“저주 풀러 갔다 왔다.”
“예?”
“동부에 혼자 달려가서 광야의 수도자, 고독한 순례자 흉내 좀 내야 했지.”
“총대주교좌 성당이나 성산에서 안 풀렸습니까?”
에드워드는 쓴웃음을 지었다.
“내 자신의 문제라는 식이라.”
페브리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성산도 요즘은 고독한 장소가 아니지요. 신성하고 영적인 건 변함이 없지만요. 안 알려진 성소라도 다녀오셨습니까?”
“춤추는 수도사들의 수도원을 포함해 여기저기 거치다, 마지막에는…… 말해도 안 믿을걸.”
“별난 곳까지 갔다 오셨나 보군요. 나중에 저희도 좀 알려 주시죠.”
“뭐하게?”
“빛의 성소는 많이 확보될수록 유리한 것이니까요. 시오니아 국왕 폐하께서도 기뻐할 겁니다.”
에드워드는 코웃음을 쳤다.
“거긴 다른 사람들에겐 소용없는 장소였어.”
침묵. 어딘가 거물의 냄새가 나는 이야기였다. 파브리즈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가씨와 총대주교좌 성당이 당신의 저주를 풀어주지 못한 건 아쉽지만, 어쨌든 성지 순례가 당신의 저주를 풀었군요. 순례를 오신 보람이 있겠습니다.”
“그러게.”
“이제 어쩌실 겁니까?”
에드워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파브리스를 말없이 올려다봤다. 파브리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행히도, 제가 그리 늦게 도착한 건 아닌 듯하군요. 왕궁으로 가시죠. 길 안내를 맡겠습니다. 가서 보상을 받으시고…….”
“잘 만났다, 이 납치범 새꺄!”
그 순간 파브리스는 뒤에서 날아온 여자 목소리랑 함께 나자빠지고 말았다. 백태클을 건 여자는 스텔라였다. 파브리스는 당황해서 소리쳤다.
“으아악?! 넌 또 뭐야?!”
“누구긴 누구야! 너한테 납치당했다가 구사일생으로 구출된 여마법사지! 너 잘 만났다! 날아간 내 역배당의 한까지 풀어야지!”
“그게 뭔데?!”
그다음은 스텔라를 불러온 밴시가 끼어들었다. 리안나는 자기 울음에 맞먹는 수준의 성량으로 외쳤다.
“이 기사는 남부에서 여자를 막 납치하고 다녔대요! 여사제도 막 때려눕혔대요!”
“으악, 아냐!”
“요정은 거짓말 못 한다 예요!”
스텔라의 째지는 웃음소리가 뒤이어 하늘을 갈랐다.
“또 저번처럼 완력으로 지랄해보게? 여기 공권력은 내 편이지롱!”
과연 그 말대로, 눈빛이 달라진 경비대원들이 분수대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파브리스는 식은땀을 흘렸다. 에드워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걔 좀 적당히 붙들어놔라.”
“넵! 근데 기사님, 저주 푸셨다면서요? 진짜예요?”
“그래.”
카치운이 에드워드를 향해 말했다.
“저 깡마른 여자가 매달리는 건 거머리 같구만.”
“원한의 무게죠!”
스텔라의 말에 카치운은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말했다.
“스텔라를 자폭시켜도 저놈 부하들을 다 끌어내지 못하면 시간 끌기밖에 안 될 거요.”
“그 시간 동안 할 일이 좀 있소.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릴 위험한 방해꾼은 치워놔야지. 스텔라 좀 지켜주쇼.”
“그러지. 근데 뭐하시게?”
에드워드는 바로 발걸음을 돌렸다.
“내가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것.”
“에드워드 경!”
스텔라와 리안나에게 깔린 파브리스가 다급하게 외쳤다. 에드워드는 뒤를 돌아봤다. 눈이 마주친 파브리스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
“후회할 짓은 하지 마시오.”
에드워드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건 내가 결정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