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4)
24화 탐정 놀이 (1)
스트롬니스 마을에는 여관이 있었다. 물론 손님이 드문 만큼 여관업만으로 연명할 수는 없었다. 방은 3개뿐이었고, 아래층의 술 마시는 공간이 더 넓었다. 그곳에는 마을의 사내들과 일꾼들이 모여 맥주를 마시며 잡담이나 도박 따위를 하곤 했다. 마을을 달궜던 마녀 소동에 대해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손님 하나가 그 분위기를 바꿨다.
선동과 날조로 승부하는 자, 에드워드는 베로니카에 대한 불평부터 쏟아 냈다.
“쓸모없으니 가서 술이나 마시래. 레이디가 기사한테 할 말이냐, 그게?”
“마을 여자들이 들으면 로망이 깨질 대화군요.”
왜곡된 뉴스에 한 청년이 내린 평이었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작님네 마누라님의 바가지가 더 정겹겠더라고.”
기사가 공작부인을 그렇게 부르는 것도 남자들의 로망을 깨는 말이었지만, 그것을 지적하는 간 큰 놈은 없었다. 대신 ‘공작님네 마누라님의 바가지’는 어떤 것인가 물어보는 놈은 있었다. 에드워드는 대답했다.
“첫째 딸내미 들어간 수녀원으로 아몬드와 설탕 보내야 하는데, 또 깜빡하면 가만 안 두겠대. 애들 신발은 제일 싼 거로 두 켤레씩 사 오라 하고. 원정 중인 남편한테 보낼 편지냐, 그게.”
이야기를 듣던 여관 주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맥주잔을 내놓았다. 에드워드가 갖고 다니는 그의 전용 잔으로 손잡이는 통 쇠였다. 그것엔 맥주가 가득 담겨 넘실거렸다.
“낭만이 없군요. 품목만 비싼 거로 바뀌었는데요.”
“명예 뒤에는 육욕이 있고, 그 뒤에는 생활이 있지.”
“명언이십니다. 그 이단심문관님은 금혼 서약하셨나요?”
“몰라. 하지 않았을까?”
“그러면 명예만 남나요?”
“글쎄. 뒤로는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지. 이야기 못 들었나? 공작님네 첫째 딸.”
“수녀원 가서 원장 코스 밟는다는 그분요?”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금혼 서약을 들어가자마자 했는데, 지금 애비 모를 딸이 둘이지.”
사람들은 탄성을 질렀다. 여관 주인이 황급히 질문했다.
“공작님 교육이 그리 엄하다는데, 딸이 그런 일탈을 벌여요?”
“엄하니까 억눌린 반동이 튀어나온 거지, 뭐.”
아직 결혼도 못 한 총각들은 그 말에 깊은 감명을 받고 육아 원칙에 대해 논하기 시작했다. 에드워드는 그 뒷말을 생략했다.
‘사실 그 둘 중 하나는 내 핏줄일지도 모르지.’
물론, 그건 입이 찢어져도 할 수 없는 말이었다. 베레스포드 공작이 눈에 불을 켜고 쫓아올 테니까. 신심이 옅은 수도자들이 사고 치는 거야 비밀도 아니고, 새로운 일도 아니기에 큰딸의 임신 따위는 공작도 별말이 없었지만, 에드워드가 그녀와 관계한 남자 중 하나라는 건 곧 쓰러져 죽어도 지켜야 할 비밀이었다.
동네 사내들의 이야기는 이제 귀족 여성들의 은밀한 음행과 평민 여성들의 고삐 풀린 색정, 그리고 둘 모두에게 공통적인 위선에 대한 화제로 넘어갔다. 안 들키면 이미 절반은 용서받는 죄악에 관하여. 한 사내는 에드워드의 눈치를 보다 말했다.
“그래도 기사님 역시 이단심문관님 엉덩이에 눈길이 가죠?”
살짝 위험한 발언이었지만, 에드워드는 관대하게 넘어갔다.
“처음엔 그랬지. 걔가 좀 색스러워야. 그런데 여행 첫날부터 좀 시달리다 보니까…… 좀 그렇더라.”
“벌써 마누라 들인 기분이세요?”
“소름 돋는다야.”
“그래도 남에게 양보하긴 싫으실 거 아니에요?”
에드워드는 의외의 질문에 잠시 고민에 빠졌다. 사내의 질문은 영리했다. 베로니카를 음담패설의 소재로 삼아도 되냐는 뜻이었다. 에드워드는 그녀를 음담패설로부터 제외시켜야 할 필요를 느꼈다. 이유야 여러 가지 있다. 그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네. 많이 아깝겠어. 언젠가는 내가 주물럭거려야 이제까지 갈굼받은 것을 본전이라도 찾지.”
이미 결혼한 사내들 사이에서 웃음소리가 나왔고, 총각들이 그 뒤를 이었다. 결국 화제는 에드워드가 찜해 놓았음을 선언한 베로니카 대신, 마을 여자들과 다른 어딘가의 여자들에 대한 품평으로 흘러갔다. 대개는 여자들이 들으면 화낼 이야기였다.
“저는 제 딸이 방종하게 굴면 다리 몽둥이를 부러뜨려 놓을 것 같네요.”
여관 주인의 말에 한 청년이 이죽거렸다.
“아저씨는 딸 없잖아요. 위층에 창녀는 하나 있지만.”
“이런 깡촌도 창녀가 있어?”
에드워드가 물었다. 청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동네 일꾼들의 훌륭한 휴식처이자 이 여관의 장기 투숙 고객이죠.”
에드워드는 가장 사내다운 질문을 꺼냈다.
“예쁘냐?”
일꾼들 사이에서 다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웃음소리에서 답변을 예상한 에드워드도 마주 웃어버렸다.
“역시, 좀 모자란가 보군.”
청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평민 기준이면 나쁘지 않은데, 귀족 나리께는 추천하고 싶지는 않네요. 술기운을 빌리신다면 몰라도.”
“쳇. 난 술기운 있으면 사람 건드리기 힘든데.”
“왜요?”
에드워드는 대답 대신 허리춤에 찬 주머니에서 꽈배기 모양의 쇳조각을 꺼냈다. 그는 그것을 손가락 사이에 놓고 밀가루 반죽처럼 주물러댔다. 남자들 사이에서 감탄이 나왔다.
“힘 조절이 안 되거든.”
“그거 철 맞아요?”
한 청년이 이의를 제기하자 에드워드는 탁자 위에 쇳조각을 놓았다. 청년들은 서둘러 그걸 집어 만져 보았다. 어떤 건장한 남자는 단단히 꼬인 쇳조각을 자기 힘으로 풀어 보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기사님의 잔 손잡이가 특이한 이유를 알겠군요.”
“와, 기사님. 이런 힘이면 밤마다 여자 열둘은 천국 보내시겠습니다?”
“이딴 힘 없어도 보냈어. 오히려 지금은 여자를 만지지도 못해. 이딴 손으로 어디 잘못 만졌다간 여자를 진짜 천국으로 보내 버리기 십상이니까. 웃기는 저주지. 혼자 놀기도 쉽지 않고.”
“그거 저주였어요?”
“축복 겸이지. 성인이 걸었으니.”
이야기를 듣던 여관 주인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왜 전용 잔을 갖고 오셨는지 알겠군요. 두 분은 금혼 서약 안 하셨어도 별 육체적 문제없이 성지까지 가시겠네요.”
“그러게. 전에 악령 계집 하나로 재미 좀 본 게 마지막이었군. 악령은 죽여도 안 죽잖아.”
이야기책 같은 말에 청년들 사이에서 감탄성이 나왔다. 한 청년이 다급히 물었다.
“예뻤어요?”
“예쁘니까 사람을 유혹할 수 있지.”
악령을 두들겨 패서 여자로 바꾼 거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청년들이 곧 떠들썩해졌다. 돼지치기들의 말이 뒤를 이었다.
“이번에 죽은 그 돼지 새끼한테 여자 악마나 깃들었어야 하는 건데.”
“암퇘지를 데리고 살 거냐?”
“니 미래의 마누라는 암퇘지가 안 될 것 같냐?”
청년들의 잡담을 듣던 여관 주인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보통 그런 이야기는 악령의 유혹을 물리치는 건데 말이죠.”
에드워드는 다른 방법을 제시했다.
“즐길 거 다 즐긴 다음 기지나 완력으로 물리치는 이야기도 가끔 있지.”
“맞습니다. 악마를 농락하고 부자가 된 농사꾼 이야기도 있잖아요.”
청년들이 맞장구를 쳤다. 에드워드는 낄낄 웃어 버렸다. 그때 한 깡마른 청년이 깨달았다는 듯 말했다.
“어, 근데 기사님? 데리고 다니시는 그 밴시도 잘 안 죽죠?”
에드워드와 청년들과 여관 주인의 얼굴이 썩은 사과처럼 일그러졌다. 에드워드는 그를 손가락으로 지목했다.
“야, 쟤 묻어.”
에드워드가 명령하자, 음담패설을 나누던 청년들은 준엄한 도덕의 집행자가 되었다. 그들은 죄인의 양팔을 붙잡아 위층으로 끌고 갔다. 죄인은 당혹감에 소리 높였다.
“아니, 그냥 물어본 건데요!”
사내들이 계단 딛는 소리에 2층 첫 번째 방의 문이 열리면서 창녀가 나왔다. 부스스한 붉은 머리카락에 푸석푸석한 피부, 깡마르고 길쭉한 얼굴. 분명 미녀는 아니고 세월의 풍파도 느껴졌지만, 그래도 예의상 미녀 소리 정도는 들었을 시절의 끝자락을 아직 붙잡긴 했다. 만약 좀 더 늙고 못생겼다면, 창녀라기보단 고전적인 마녀상에 더 가까웠을 것이다.
청년들은 죄인을 그 여자의 방에 밀어 넣었다. 여관 주인이 크게 소리쳤다.
“그 자식의 죄악을 지갑과 불알서 다 뽑아내 버려!”
쿵! 문이 닫히는 소리가 여관 전체를 울렸다. 청년들이 손을 툭툭 털면서 계단을 내려오는 동안, 에드워드는 빈 맥주잔을 여관 주인에게 돌려줬다.
“한 잔 더.”
“그러죠.”
맥주가 가득 찬 잔이 새로 나왔다.
여관 주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걱정이긴 합니다. 사내는 늘어나는데, 여자는 없어요. 지참금이 아니라 신붓값이 돌게 생겼죠. 어떤 집은 아직 덜 자란 여자애를 미끼로 일꾼을 고용한답니다. 다 크면 결혼시켜 주겠다고요.”
“그 약속 안 지키지?”
여관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못 견디고 달아날 때까지 뺑이 치게 하죠.”
“그럴 줄 알았어.”
“딸 있는 집마다 그러기 시작하니, 결국 일꾼들도 전보다 어린 여자애들까지 넘보는 판입니다. 위층 여자가 아니었으면 사고 칠 놈들 많았을 겁니다.”
“매춘굴은 하수구와 같아서 없으면 궁전도 큰일 난다고들 했지.”
“틀린 말이 아니군요. 누가 한 말입니까?”
“성 아우구스티누스. 인쇄공과 양조자의 수호성인이시지. 모르나?”
“저는 미라의 성 니콜라오께 가호를 빌죠.”
“여기부터는 그분의 영역인가 보군. 창녀도 그분의 가호 아래 있나?”
“월세 낼 때마다 빌어 주긴 하죠. 밥값 낼 때도요.”
“싫어하고 질색하진 않나?”
“전혀요. 무슨 의심하시는지 상상이 가는데, 마녀는 아닙니다. 차라리 허물 쓴 공주님이라고 하면 몰라도. 그보다 윌킨슨 씨네 셋째 딸이 마녀라고 하면 이 동네 일꾼들은 다 믿을걸요.”
청년들 사이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에드워드도 같이 웃었다. 또 윌킨슨 씨.
“그녀는 고발자잖아.”
“아님 말구요. 진지하게 하는 소리는 아닙니다. 그 집안 셋째 딸 때문에 달아난 일꾼이 벌써 둘이거든요.”
“왜?”
“아까 말씀드렸잖습니까? 딸을 미끼로 일꾼을 부려 먹는 집이 있다고. 가장 독하게 저지른 집이 윌킨슨 씨죠.”
“인망이 없구만. 윌킨슨 가의 불쌍한 세 번째 노예는 누구야?”
“방금 기사님이 묻은 놈요.”
에드워드는 위층의 방문을 올려다보았다. 방음이 잘 안 되는 시골 여관답게 침대와 바닥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에드워드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신 다음 화제를 돌렸다.
“여기 남자들은 전부 구멍 동서야?”
“예.”
여관 주인이 빠르고 확고하게 답했다. 에드워드는 웃어 버렸다. 여관 주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 여관 오는 사내새끼치고 저기를 한 번도 안 들른 놈이 없습니다. 여행객들 빼고요. 여행객들은 지쳐서 자거나, 산에서 내려가서 더 좋은 년 살 돈이 있거나 둘 중 하나죠.”
“장사 잘 되는구만. 창녀는 하나뿐인데, 서로 싸움 안 나나?”
“화장실에 사람이 모이면 줄을 서는 규칙이 생기죠. 순번제입니다.”
“내가 오늘 불쌍한 누군가의 차례를 뺏어 딴 놈에게 준 거야?”
“하루에 한 명만 받는 건 아니니까 괜찮습니다. 다들 자기 차례가 되자마자 득달같이 오는 것도 아니고. 돈 없다고 참거나, 그냥 마을 여자와 붙어먹는 애들도 있죠. 누구와 누구라고는 말 못 하지만.”
불륜, 또는 혼전 성관계. 에드워드는 낄낄 웃어 버렸다.
“소몰이꾼 벤슨도 여기 오나?”
“벤슨요? 단골이죠. 힘은 좋은데, 여자가 안 닿으니 자기 순번은 한 번도 안 빠뜨립니다. 순번이 빌 때도 올라가죠. 정말 좋아하는 여자 이름을 부르면서 위층 여자랑 놀더군요.”
“과수원집 과부?”
“아세요?”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고 들었어. 연애 상담을 해 주고, 가족 계획도 짜 줬지.”
“친절하시군요.”
“연애 시도 한 편 써 줄 걸 그랬어.”
그 연애 상담과 가족 계획 상담이 가서 덮치고 임신시키라는 처방이었음은 말하지 않았다.
“그럼, 벤슨이 그 과부 좋아하는 건 다들 알겠네?”
“남자들은 다 알죠.”
“여자들은?”
“남자들이 아는 걸 여자들이 모르겠습니까?”
무서운 진리였다. 에드워드는 쓰게 웃으면서 말했다.
“안 그래도 비밀을 잘 못 지키는 성격 같던데.”
“말이 많지만, 성실한 친구죠. 리글리 씨는 복 받은 겁니다. 그런 일꾼을 얻었으니. 딸이 있었으면 사위 삼았을 텐데.”
“그런데, 오늘은 안 왔군.”
“그러게요. 아래는 순번이 꽉 차서 포기했고, 어제부터는 마녀 색출이니 뭐니 온 마을이 난리라 못했는데.”
“드디어 과수원 과부한테 갔나?”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귀족 기사님이 상담까지 해 주셨으니.”
에드워드는 낄낄 웃으면서 맥주잔을 마저 비웠다.
“만약 그렇다면, 결과가 기대되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