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40)
240화 가장 하고 싶은 것
“한번 안아봅시다, 기사양반!”
쿠웅!
묵직한 드워프의 뜨거운 환영이었다. 키로는 에드워드를 따라잡을 리가 없지만 옆으로는 넓은 게 그들 종족의 특징이었고, 가르달은 에드워드를 와락 끌어안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드워프는 기사의 허리를 부러뜨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강하게 끌어안았고, 에드워드는 자기 괴력이 순간 가르달에게 넘어갔나 의심했다. 그는 숨을 뱉으면서 가까스로 답례 인사를 꺼냈다.
“쿨럭! 환영해줘서 고마운데 좀 놓고 이야기합시다!”
가르달은 껄껄 웃으면서 에드워드를 놓아주었다.
“갑자기 동쪽으로 달려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직감했지. 기사양반은 보통 사람이 아니니까 분명 성산에서 계시라도 받았을 거라고.”
“계시라.”
성산의 아침에서 ‘옛 검의 3기사’ 중 하나가 찾아와 의미심장한 말들을 늘어놓기는 했다. 에드워드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게 계시라면 참 불친절한 계시지. 어디로 가란 말도 없었으니.”
“엥? 계시 받은 거 아뇨?”
“그냥 사람이 제일 없을 만한 곳으로 달려간 거요. 서쪽으로 가봤자 끝에는 바다밖에 더 있겠어?”
드워프는 잠시 생각해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성산에 잠깐 올라가보긴 했는데, 고독해질 수는 있어도 누군가의 눈을 피하긴 어렵더군. 사람이 많으니…….”
“뭐야, 성산에 가봤소?”
“아, 성지까지 왔는데 명소는 다 돌아봐야지!”
“즐거웠나 보군.”
“고향놈들에게 평생 자랑할 거요.”
“그 정도였소?”
“드워프가 수명이 인간보다 길지만 할 일도 많거든. 순례 오기가 쉬운 거 아뇨.”
에드워드는 그럴싸하다고 생각했다.
“확실히, 순례라는 게 보통 일이 아니긴 했지.”
“우린 특히 거칠고 힘든 일도 많았으니까요.”
엘프 헬레나의 말이었다. 가르달보다 몇 발짝 더 뒤에 서 있던 그녀는 평소대로 침착한 모양새였다.
“밴시가 먼저 와서는 방 하나 새로 잡고 정리를 하더군요. 당신이 몸 닦을 수건이랑 갈아입을 옷까지 전부 준비해 놓고요.”
“미리 시켜놨거든. 다 잘해 놓았나 보네.”
“더 필요한 것 있어요?”
에드워드는 헬레나와 눈이 마주쳤다. 에드워드는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잠시 망설였다.
“음. 그게, 뭐 할 거냐 하면 말이야.”
“대충 알 것 같네요. 방해하진 않을게요.”
헬레나는 몸을 홱 돌렸다.
“자세한 건 ‘다음에’ 이야기하죠. 그러니 ‘집중’하시고.”
헬레나는 여자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에드워드는 가르달을 돌아봤다.
“쟤 화난 거요?”
“전혀 아니라고 보는데. 왜 화났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요?”
“음. 성의의 문제?”
가르달은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여자 기분 보는 건 안 익숙할지 몰라도 엘프 연놈들 표정과 속내가 따로 노는 건 잘 알지. 드워프 기본 소양이거든. 화난 건 아니니 걱정 마쇼. 뭣보다, 지금은 걔 말대로 ‘집중’할 시간 같소만.”
에드워드는 그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
“베로니카는?”
“곧 돌아올 거요.”
“방은?”
가르달의 굵고 짧은 손가락이 복도 구석을 가리켰다.
“객관이라도 성당 부속 건물이라, 거리 좀 있고 조용한 곳을 빌렸소.”
에드워드는 고개를 크게 한번 끄덕인 다음, 그 방으로 나아갔다. 방문을 열어보니 깨끗하게 정돈된 상태였고, 물에 적셨다 한번 짜낸 수건 몇 개가 준비되어 있었다. 에드워드는 옷과 갑옷을 한구석에 벗어던지고는, 그걸로 먼지투성이인 머리와 상체를 닦기 시작했다.
쿵쿵쿵.
뭔가 가볍지만 빠른 발소리가 복도를 울리더니, 문이 벌컥 열렸다.
“너 언제 왔어?!”
붉은 옷의 사제 베로니카였다. 에드워드는 상체를 닦다 말고 화들짝 놀라 버렸다.
“뭐야, 노크는 좀 하고 들어와! 준비 좀 하자!”
“준비는 얼어 죽을! 적당히 분위기 잡으면 내가 호락호락 넘어갈 것 같아? 저주 풀긴 풀었나 보다?”
“풀었지! 성자 유스타스도 보고 악령 선장도 보고 시서펜트도 지렁이처럼 집어삼킬 것 같은 향유고래도 봤지!”
“뭐야, 그게?”
에드워드는 대답 대신 검지 끝으로 자기 뺨을 긁었다. 평소엔 손등 등으로만 하던 행동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손끝으로 하는 걸 보자, 베로니카의 눈이 가늘어졌다.
“진짜 풀었나 보네?”
“왜 못 믿냐?”
“네가 그렇게 쉽게 바뀔 것 같진 않았는데. 지금 내 눈으로 보기에도 그렇고. 회개했어? 성자께서 뭐라던? 혹시 교리법무성에 심사받아야 할 기적의 증거 같은 거 있어? 총대주교좌에도 비슷한 기관이 있으니까…….”
에드워드는 계속 말하는 베로니카의 모습에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수건을 구석에 내던졌다. 그리고는 성큼성큼 걸어가 베로니카 바로 앞에 섰다. 베로니카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고, 마지막에는 짧은 질문이 남았다.
“왜?”
“저주를 풀었으니, 오늘 남녀 간에 좀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베로니카는 눈살을 찌푸렸다.
“돌아서. 등짝 좀 때리자. 회개 전혀 안 됐네. 악마한테 속은 거 아냐? 내용물이 전혀 안 달라진 것 같은데?”
“성자 양반이 별로 바꿀 것 없다 그러더라고.”
“그럼 뭐하러 너한테 저주 걸어서 여기까지 보냈대? 그럴 리가 없잖아. 네가 뭔가 해야 하니까 여기 보낸 게…….”
“뭐, 힘자랑 관련 반성은 충분하다 봤는가 보지. 나 하고 싶은 대로 하라더라. 이 저주해제가 선불일지, 후불일지는 모르겠는데, 어쨌든 남은 건 이 순례길의 마지막이지.”
베로니카는 냉큼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너나 즐거운 기억 따위 만들어줄 생각 없…….”
“결혼하자.”
침묵. 베로니카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녀는 에드워드와 눈을 마주친 다음, 그게 진심인 걸 깨달았다.
“진짜? 혹시 결혼한 다음에 일 치르고 이혼하면 된다던가, 그런 생각 하는 건 아니지?”
하지만 불신의 질문이 먼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에드워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자고.”
베로니카는 몇 걸음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아니, 잠깐. 진짜? 진짜 맞아?”
“맞다고.”
“설마 그새 시오니아 왕궁에 갔다 왔어? 여자 못 준대?”
“안 갔다 왔는데.”
“그럼 갔다 와, 바보야! 보상받겠다며?!”
베로니카는 비명처럼 소리쳤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까짓거, 안 받아도 돼.”
베로니카는 충격받은 표정으로 에드워드를 올려다보았다.
“뭐야, 대체. 포기한다고? 보상을? 네가?”
“그렇게 놀랄 일인가?”
“놀랍지! 맨날 보상, 보상 노래 불렀으면서! 근데 요즘 천국의 회개는 그런 식이야? 다른 건 다 그대로인데 그거 하나만 바뀌면 되는 거야? 나 왜 못 따라가고 있지?”
“당황했나 보네.”
“당황스럽지! 너 나랑 결혼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잖아!”
“알아. 상호간에 불이익이 좀 크긴 하지. 안 그래도 승진에 불리한 여사제가 독신마저 깨면 인사고과의 점수가 짤 거고, 기사놈은 교회 전속이 되어서 돈도 별로 못 받으면서 시키는 대로 다 굴러야 하고. 별로 멀지 않은 미래에는 육아퇴직한 여사제까지 먹여 살려야 하지.”
베로니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의 충동 때문에 헛소리 뱉은 거라면, 이해해 줄게. 물러서. 문 좀 열게. 넌 혼자 머리 식힐 시간이 필요하겠어.”
베로니카는 몸을 돌려 문고리를 잡았다. 그러나 에드워드가 바로 팔을 뻗어 문을 짚어 그녀를 막았다.
“생각해 보니까 말이야. 그깟 보상은 여기저기에 다른 기회도 있을 거고, 이 순례도 꽤 즐거웠단 말이지.”
베로니카의 움직임이 멎었다. 그녀는 천천히 에드워드를 돌아봤다. 에드워드는 어깨를 으쓱했다.
“앵글리아의 챔피언이 교회기사로 전업하면, 거기서 끝날지 어떨지는 항상 조언해주시는 우리 이단심문관님이랑 같이 고민해 보는 게 낫겠어.”
“멍청아! 고민이고 나발이고……!”
에드워드는 한 발짝 앞으로 나가 베로니카의 등에 밀착했다. 두 남녀의 숨소리가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베로니카는 고개를 숙인 채 나지막하게 말했다.
“틀에 박힌 욕심을 버리고 뭔가 고민하기 시작한 건 칭찬해줄게. 하지만 이 선택은 아니야. 너, 후회할 거야.”
“그러니까 옆에서 잔소리해 줄 사제님이 필요한 거지.”
“내가 너한테 어디서 왔냐고 물어서 그래?”
“그것도 있고, 일단 미녀고.”
“역시 그거야?!”
“기사가 갈 길을 조언해 줄 사람은 필요하잖아.”
“잔소리 듣고 싶어서 사제랑 결혼한다고?”
“하고 싶은 걸 하려면, 길잡이는 필요하지 않겠어? 간악한 마법사의 간섭이나 뜬금없는 노친네의 안내보다야 훨씬 낫지.”
“난 집안 사정도 복잡해.”
“안 그런 집안이 어딨어? 앵글리아 왕실보다 하드코어한 거 아니면 안 놀라.”
“네 상상 이상일 거라고!”
“만티코어와 악마의 피라미드 따위는 뭐 내가 예상한 문제였겠어?”
에드워드는 베로니카의 어깨를 잡아 그녀를 몸을 마저 돌려세웠다.
“이젠 익숙하기도 하니까 말이야. 교회기사로서 순찰을 돌라면 돌고, 괴물을 잡으라면 잡고, 부대를 지휘하라면 하겠어. 하지만 이번엔 해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고, 그 뒤에는 항상 네가 있어 주길 원해. 진급이고 뭐고 둘이서 다 족쳐보자고. 최초의 여교황과 그 부군 같은 게 나와도 재밌을 것 같지 않아? 아직 여교황은 나온 예가 없지?”
“황당한 말이네.”
“언젠가 나보고 결정하라 그랬잖아. 성자는 나 하고 싶은 대로 하라 그러고. 난 결정했어. 넌 어때?”
베로니카는 떨리는 목소리로 뭔가 말하려다 침을 삼켰다. 그녀는 에드워드 앞에서 모기날개소리마냥 작은 소리로 겨우 입을 열었다.
“절대 후회하지 마.”
“알았어.”
“식전에 물린다는 소리 나오면 진짜 죽여버린다.”
“물리는 게 어딨냐?”
“네 입에서 먼저 이혼 소리 나와도 마찬가지야.”
“아까부터 했던 말들만 계속 반복하는 거 알지?”
베로니카는 다시 침묵했다. 몸이 달아오른 에드워드가 그녀의 어깨를 잡은 손에 살짝 힘을 주는 순간, 여사제는 문손잡이를 놓았다. 그리고는 빨개진 얼굴로 말했다.
“일단 사제복은 벗고…….”
에드워드는 베로니카의 가느다란 허리를 와락 끌어안은 다음, 침대 위로 던졌다. 베로니카는 짧은 비명을 질렀다.
“그것도 못 참니?!”
“이번만 안 참을게.”
“아무리 그래도 사제복 차림으로는 안 돼!”
“신속히 협조해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결국 베로니카는 에드워드의 손길에 힘입어 사제복을 벗어 던져야 했다. 잔뜩 긴장한 베로니카는 나체로 에드워드 밑에 길게 누운 채 마지막 경고를 말했다.
“지금까지 네가 봉사한 여자들한테 했던 것보다 더 열심히 하지 않으면 한 대 때릴 거야.”
에드워드는 헛웃음을 뱉었다.
“침대서 다른 여자들 이야기 먼저 꺼내는 여자는 처음이네.”
“내가 안 꺼내게 생겼니, 이 난봉꾼아.”
에드워드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만하자고 할 때까지 해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