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42)
242화 반항기는 가끔 공동의 문제 (1)
에드워드가 파브리스를 구라치는 닭대가리로 비하하든 말든 현실은 바뀌는 게 없었고, 거짓말쟁이는 따로 있었다.
“사제복 입고 거짓말하면 지옥 안 가나요?”
밴시의 당돌한 질문이었다. 베로니카는 눈살을 찌푸렸고, 스텔라는 리안나의 목을 졸라댔다.
“너 그러다 진짜 죽어!”
“요정은 반권력의 화신! 두려운 건 없다 이거예요!”
베로니카는 별로 성의없는 답변을 내놓았다.
“직업과 안전을 위해 하는 거짓말은 죄악으로 안 쳐. 싸우는 여자들이 입는 바지처럼.”
“기득권의 잣대는 너무 제멋대로야!”
“내가 너 선물도 사주고 귀여워해 주는데 왜 훈시할 기세니?”
“그만큼 부려 먹기도 많이 부려 먹으시잖아요! 공주님이면 공주님답게 돈 좀 팍팍 쓰셔야죠! 엄청난 부자시던데 맨날 짠돌이 짠순이 짓만 하시고!”
리안나가 항의했지만, 베로니카는 짧은 말로 밴시를 굴복시켰다.
“너 고기 금지.”
“안 돼!”
시오니아의 공주가 내린 육류 금수조치에 밴시가 좌절하는 동안, 드워프 가르달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약간 비슷한 질문인데, 시오니아의 공주나 되는 분이 왜 이런 방에서 묵고 있는 거요?”
일행이 모인 방은 그들의 여자 단체방이었다. 대성당 부속 객관이니 허름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고급이라고 하기도 뭣한 방. 베로니카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가능하면 교회에서 지급하는 활동비만 썼거든요. 그리고 공주가 혼자 돌아다니는 옛날이야기들 많잖아요? 돌로 변한 부모님을 구하기 위해 모험을 하는 공주 이야기라든가, 마녀의 시험을 받아 소동물들의 도움으로 통과하는 공주 이야기라든가.”
창가에 선 카치운의 감평은 신랄했다.
“옛날이야기치고도 좀 고약한데. 시오니아의 공주면 호위병들과 수행사제를 주렁주렁 달고 다녀도 모자라. 항카이부 최고의 전사들에 맞먹는 호위병들 말이야.”
“주렁주렁 달고 다녔죠. 메디올리눔 대학까지는요. 이단심문관 직위를 받아 대학 밖으로 나온 뒤에도 힘깨나 쓰는 하인들을 부리고 다녔어요. 앵글리아 왕성 감옥에서 막 풀려난 저 망나니가 실수 연발 대소동을 벌여 다 쫓아버리기 전까지는요.”
에드워드는 아무런 말도 못 하고 머리를 싸맨 채 고개만 푹 숙였다. 베로니카는 그를 다시 힐끗 보고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물리면 죽는다고 말했다?”
“끄으으응…….”
에드워드는 죽어가는 신음소리를 냈다. 그는 나지막하게 불평했다.
“쉴 틈을 안 주고 몰아치니 정말 죽을 것 같다…….”
“네 탓이잖아! 힘들면 좀 쉬라고 난 어제 말했다?!”
“허리에 다리 감고 그런 말 하면 설득력이 있냐?! 명백한 도발이었거든?!”
“남들 앞에서 뭔 소리야!”
짜악!
둘이서 지지고 볶는 모습에 헬레나의 눈이 가늘어졌다.
“시오니아의 공주님이나 되는 분이, 어쩌다 교황청 교리법무성 징계과 이단심문관의 옷을 입고 멋대로 돌아다니게 되었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에드워드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그거야! 동화는 동화고! 세상 어느 공주님이 흡혈귀한테 잡혀 갔다 오거나, 철퇴로 산 것과 죽은 것들 안 가리고 해골을 깨고 다니거나, 고대 악마의 피라미드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
“네 해골도 깨줘?”
에드워드와 베로니카가 다시 아웅다웅할 기세를 보이자, 그 자리에 동석한 파브리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시오니아 왕가는 유서 깊은 기사 가문이지요. 전쟁으로 시오니아의 왕권을 쥐셨고요. 그 성정을 여자들도 적잖이 이어받았다는 게 세평입니다. 물론 공주님은 참 독보적인 분이셨…….”
“네가 감히 내 평을 말하니?”
“왕가의 세평이 그렇단 뜻입니다.”
베로니카는 파브리스를 흘겨본 다음, 아무도 없는 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파브리스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다들 아시다시피, 국왕 폐하께서는 어둠의 군세와 싸울 때 중과부적이요 절체절명인 상황에 빠진 적이 있으십니다. 그때 폐하께서는 빛을 향해 기도하셨지요. 왕가가 아니라 이곳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승리를 달라고.”
가르달은 고개를 끄떡였다.
“유명한 이야기지. 천사가 강림해서 싹 쓸어 버렸다던데?”
“내가 듣기론 빛의 군세가 어디선가 뛰쳐나왔다고…….”
카치운이 덧붙였다. 파브리스는 그들을 무시하고 계속 말을 이었다.
“문제는 그 기도에 내건 조건이었습니다. 가문을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금혼서약을 하셨지요. 안 그래도 수도승 같은 생활을 즐기시는 분이 말이죠. 결국 왕위계승권은 여동생이신 베로니카 공주 전하께 돌아갔습니다.”
일행의 시선이 죄다 베로니카에게 박혔다. 에드워드만 빼고. 그는 파브리스를 향해 말했다.
“다 아는 이야기 빼고 본론만 말해 봐.”
파브리스는 꼽다는 표정으로 에드워드를 한번 봐준 다음, 계속 말을 이었다.
“비텔리아 교황청과 시오니아 총대주교좌 사이의 교량 역할을 위해 유학 중이시던 베로니카 공주 전하께서는 그 소식에 격분하여 왕성에 국왕 폐하를 규탄하는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반항의 일환으로 교황청에서 이단심문관 직위를 받아내셨습니다. 교황청은 시오니아를 쥐고 흔들어 볼 셈으로 그걸 허락했고.”
“왜 화냈는데?”
에드워드의 질문에 베로니카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씹어내뱉듯이 말했다.
“오빠는 아직 젊어서 후계자를 기대할 만했고, 내가 왕위를 계승할 확률은 많이 낮았어. 하지만 오빠는 자기 혼자 신앙의 만족감만 채우고 가문을 단절시키는 짓을 해 버렸지. 나, 가문, 나라 전부 엿 먹였다고.”
파브리스는 세 번째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해석하는 분은 공주님뿐이 아닐까요? 다들 공주님의 신랑감이 누가 될지 꽤나 기대했는데요. 어떤 이가 추측하길, 대륙을 돌아다니시는 것도 신랑감 찾으러 암행하시는 거라고…….”
“반은 그랬지. 하지만 어떤 놈이건 다 성에 차지 않았어. 트레베리아는 자기들끼리 죽이느라 정신없고, 앵글리아는 미친놈들이고, 아퀴타니아는 탐욕스러웠고…… 큰 군세를 가진 유망한 귀족들로 눈을 돌려도 비슷비슷하더라.”
파브리스의 눈이 에드워드를 향했다.
“국왕 폐하께서는 에드워드 경의 동기인 켈러핸 경을 점찍으셨습니다.”
광장에서 만났을 땐 ‘경고’와 ‘통보’에 가까웠던 말투와 달리, 이번엔 정중한 투였다. 에드워드는 입을 삐죽였다.
“거절했다지?”
“예.”
“엄청나게 재미없고 딱딱하고 욕심 없고 경건한 놈이거든.”
“그 점이 국왕 폐하의 마음에 더 든 것이겠죠.”
“난 싫어. 수도승 같은 오빠에 수도승 같은 신랑감이라니, 절대 사양이야.”
베로니카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파브리스는 네 번째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오빠분을 규탄하는 두번째 편지를 쓰셨죠. 국왕 폐하께서 그거 읽으시고는 이틀 동안 침실에서 못 나오시던데요. 대학교에서 배운 막말을 왕가의 편지에 쓰신 건 너무했습니다.”
일행들의 시선이 다시 베로니카한테 박혔다. 에드워드는 기억 속 한 대화를 가까스로 떠올렸다.
“결혼 상대는 스스로 결정하겠다던 그 편지? 거기다 욕을 적어 보냈어?”
베로니카는 계속 벽을 보며 중얼거렸다.
“밤마다 술 마시고 쌈박질하는 놈들이 숙소까지 들리게 욕을 해대면 같이 욕 배울 수밖에 없잖아.”
스텔라는 깔깔 웃어 버렸다.
“대학이니 학당이니 다 그렇죠, 뭐. 그나저나 이제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예요?”
“어떻게 되냐뇨?”
“공주님이랑 기사님요.”
침묵.
먼저 입을 연 건 파브리스였다.
“없던 일 치고 다들 입을 다무는 게, 제가 가장 권하고 싶은 방법이겠습니다만.”
“내가 그렇게 해 줄 것 같니?”
베로니카의 반응이었다. 파브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그럴 가능성이 높다면, 공주의 정체를 그가 밝혔을 리도 없다. 베로니카는 다시 에드워드한테 경고했다.
“도망치면 죽인다?”
“알아, 안다고.”
베로니카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교회사 최초의 여교황과 그 부군보다야 쉽지.”
기준이 너무 무지막지하다는 것만 빼면 맞는 말이었다. 에드워드는 자신이 했던 말을 되새기며 중얼거렸다.
“그건 하다하다 안 되면 ‘에라, 어쩔 수 없지. 여기까지인가 보다’가 통하기라도 하지.”
“뭐야, 중도 포기할 생각이었니?”
“욕심 안 부리고 봉사하겠다는 의미였다고. 너랑 결혼하고 싶어서.”
베로니카는 헛기침을 한번 한 다음, 벽에서 시선을 뗐다.
“알아. 그냥 해 본 소리야.”
두 남녀가 서로 마주 보는 순간, 헬레나가 끼어들었다.
“이것도 성자의 안배려나요?”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성자와 악령선장이 그러고 보니 이상한 말을 했었지. 베로니카를 언급하면 반칙이라고.”
“그들은 베로니카 양의 정체를 알고 있었던 모양이군요.”
“날 시오니아 왕위계승 후보로 밀어 넣는 게 어째서 성자의 계획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르달은 껄껄 웃었다.
“기사양반이 보통 사람이 아닌 걸 알아본 거지. 진심으로 살 생각이면 무대를 줄 테니, 열심히 해 보란 뜻 아니겠나?”
“후불이란 게 이런 경우려나. 성자 양반이 웃고 있겠구만.”
창밖을 힐끗 본 카치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길거리서 웬 노인이 여길 보고 웃고 있는데.”
“고약한 농담하지 마쇼.”
카치운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뭐, 통과만 하면 출셋길은 펼쳐진 셈이군. 에드워드 경한테는 잘된 일 아뇨?”
“남 일이라고 쉽게 말하지 마쇼…….”
에드워드는 다시 좌절하기 모드에 들어갔다. 반대로 스텔라는 빠르게 셈을 하기 시작했다.
“저기, 기사님? 당장 공주님 앞으로 되어 있는 영지만 해도 고정수입이 장난 아닐 것 같은데요? 좌절 마시고 일어나시죠? 제 고정급여와 연구비도 주셔야죠!”
“너 당장의 돈보다 성장 가능성 보고 내 아래서 장기근무하기로 한 거 아니었냐?”
“그 성장 가능성이 지금 극적으로 터졌네요! 제가 환장 안 하겠어요?”
파브리스는 나지막하게 경고했다.
“편하기만 한 길이면, 가끔 왕족과의 결혼을 거부하는 귀족이 나올 이유가 없지요. 게다가 이곳은 성지입니다. 최전선이지요. 당장 국왕 폐하께서 어떤 위기에 처했었는지 생각해 보시죠.”
“어머나.”
파브리스는 덤덤히 두 번째 방법을 꺼냈다.
“결혼 상대가 아니라 그저 공주님의 비밀 애인으로 지내는 방법도 있지요.”
스텔라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게 돼요? 그럼 난 애인의 애인 자리를 노려야 하나?”
“다만 나중에 에드워드 경이 공주님의 부군 되시는 분이나 신하들한테 칼 맞을 확률이 매우매우 상승합니다.”
“어머나.”
“그땐 세트로 칼 맞으시겠죠.”
“기사님!”
스텔라의 닦달 속에서 에드워드는 음울한 신음소리를 뱉었다.
“도망칠 길은 없지. 결혼 수락을 못 받으면, 여기저기서 방해물 취급받고 그렇게 될 가능성이 커진단 말이지.”
“정면돌파하자.”
베로니카의 단정적인 말이었다. 에드워드도 고개를 들었다.
“이젠 죽으나 사나 그 방법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