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43)
243화 반항기는 가끔 공동의 문제 (2)
“밴시는 억울해요! 풀어줘요!”
지하실에서 의자에 구속당한 리안나가 소리쳤다. 밴시는 방방 뛰었지만, 의자는 바닥에 못으로 고정되어 꿈쩍도 안 했다.
그 옆에는 허리띠에 붙은 망령 캐슬린이 묵직한 무게추가 달려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아야야야야! 이것 좀 풀고 이야기해요!”
불행히도 간수들과 고문기술자들은 풀어 줄 생각이 없었다. 그들은 여기저기 널려 있는 고문 도구들을 닦고 손질하기 바빴다.
와르르르!
한 기술자가 자루를 풀어 그 안에 든 도구들을 쏟아냈다. 금속이나 나무로 만든 것들이었는데 공구랑 별로 차이가 없어 보였다. 그가 흉측한 도구들을 하나하나 들어 올려 탁자 위에 올려놓을 때마다, 리안나와 캐슬린은 비명을 질러댔다.
“아저씨, 그거 못 뽑는 데 쓸 거죠? 거기 쓰는 거 맞죠?!”
“나한테 손댈 거면 가죽 장인 불러와요! 허리띠를 이렇게 취급하는 게 어딨어?!”
둘의 비명과 애원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집게를 집어 든 기술자는 시커먼 가면을 쓰고 몸을 돌렸다. 건장한 체구의 사내가 무겁게 숨을 한번 내뿜는 순간, 요정과 허리띠는 다시 비명을 질렀다.
* * *
시오니아 왕성의 한 구석. 에드워드는 불신이 가득한 표정으로 파브리스를 흘겨봤다. 파브리스는 덤덤하게 말했다.
“왕성 감옥에서는 왕의 허락 없이 고문 같은 거 안 합니다.”
“진짜?”
“겁은 줄 수 있지만요.”
에드워드의 얼굴이 더 안 좋아졌고 파브리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밴시는 불사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뭐 그렇긴 한데.”
“여기가 빛의 최전선이다보니 요정이나 마법에는 좀 엄격합니다. 이해해 주시죠.”
“스텔라는?”
“왕실 마법사들한테 질답 받고 있을 겁니다. 에드워드 경과는 투리치에서 처음 만났고, 남쪽에서는 아지지야와 그 주변을 거쳐왔다죠?”
“그런데?”
“투리치는 잘 아시다시피 마법사들이 악마소동을 일으킨 곳이고, 아지지야와 그 주변은 음흉한 마법사들의 소굴이니까요.”
“흠. 데스피나라던가?”
“그 폰티아 출신의 음흉한 엘프는 조언을 빙자해서 유망한 기사들마다 손대고 위험에 내던지는 걸로 유명하지요.”
“그런 것 같더라고.”
“시오니아에 오는 기사들 대부분은 모험을 찾으니까 거절하지도 않고요.”
“뜨끔하군.”
“그녀한테 뭔가 사주받은 게 있다면, 귀하의 여마법사도 ‘관리’가 필요하겠죠.”
“난 걔가 데스피나랑 뭔 일 있었다고 들은 적 없는데.”
“있다면 숨겼겠지요.”
“흠.”
“시오니아에서는 대폭동에서 그녀를 봤다는 증언도 있더군요.”
“아, 역배당 거하게 터진 일 말이군.”
에드워드는 그만 낄낄 웃어버렸다. 파브리스는 마주 웃으며 말했다.
“때로는 사교보다 무서운 게 도박이지요.”
“결국 폭동을 못 막은 건 좀 아쉽긴 하지.”
“뭐, 다른 건 몰라도 그 도박장 사건은 제 딸도 얽혀 있어서 그나마 상세한 증언을 구할 수 있겠더군요.”
“올리비아?”
“예. 내기의 결과 때문에 열흘이나 그 도시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죠? 지금쯤 상경하고 있겠군요.”
에드워드는 턱을 슬쩍 긁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거 국왕 폐하께서 좀 좋게 평가해 주지 않을까?”
“그 대폭동을요?”
“대폭동이 내 탓이야? 스텔라 탓도 아니야. 역배당에 빡친 애들이 스스로 도시에 불지른 거지.”
“그건 그렇습니다만.”
“사교도들과 그 타락상을 적발한 데 더 점수를 주셔야지. 악마에 주술사왕까지 얽힌 건데.”
그 순간 뭔가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왔다. 에드워드와 파브리스는 둘 다 소리가 나는 곳을 돌아보았다. 건장한 하인이 몸으로 입구를 막아선 어느 방이었는데, 여자의 히스테리 섞인 목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경의 문제에 더 집중하시죠.”
“남매 관계가 참 안 좋네.”
“국왕 폐하께서는 공주님을 아끼시는 겁니다.”
“아낀다면 진즉 강제로라도 잡아왔어야 하는 것 아냐?”
“거리가 너무 멉니다. 믿을 수 있는 족속도 없고요. 다행히도, 공주님은 생각이 없는 게 아니라 적잖은 호위병과 하인들을 거느리셨죠. 거기다 캠벨가로 연결된 인맥의 도움으로 경호와 연락 문제는 해결했지만…….”
파브리스의 눈빛이 묘해졌다.
“경이 벌인 실수 연발 대소동에 하인들이 죄다 도망가 버렸다죠.”
“손에 쥔 닭뼈가 살인용 투척병기가 되는 놈 근처에 있고 싶진 않다더라고. 나쁜놈들.”
“그랬군요.”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닭뼈를 사람에게 던진 건 아니야.”
“그럼 어떻게 한 겁니까?”
“닭다리 뜯다가 실수로 힘을 잘못 줘서…… 날아간 닭뼈가 어느 하인의 쇠솥에 구멍을 냈지.”
파브리스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됩니까?”
“너무 늙은 닭이었거든. 엄청나게 질겼지.”
“닭 탓입니까?”
“내 허락도 없이 늙은 닭의 잘못이다.”
파브리스는 표정을 바꿨다. 뭐 이런 놈이 다 있냐는 표정으로. 에드워드는 피식 웃었다.
“농담이야.”
“어디까지가 진담이고 농담인지 모르는 게, 참 절묘한 농담이군요. 도망칠 만합니다. 설마 해서 묻는데, 일부러 내쫓으신 건 아니겠지요?”
“그땐 내가 더 남의 도움이 필요한 판인데, 내가 왜?”
“듣고 보니 그렇군요.”
와장창!
다시 뭔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에드워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적당히 좀 싸우지. 나더러 어떻게 수습하란 거야, 저걸.”
파브리스는 짧게 격려했다.
“왕께서는 설령 분노하시더라도 남에게 그 화를 풀지 않으십니다.”
“지금 내가 ‘남’이 아니라는 게 문제지.”
시각에 따라서는 ‘원인’에 더 가까운 존재. 에드워드는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고, 그 한숨이 끝나기 전에 베로니카가 방을 나왔다. 그녀는 문앞을 막는 하인을 밀쳐내고는 에드워드한테로 걸어왔다.
“내가 돌아왔다는 것만 공표될 거야. 우리 둘 사이 이야기는 아직 밝히지 말래.”
“나도 그 정도 생각은 했어.”
“그래봤자, 눈치챌 사람은 눈치채겠지만.”
“오빠분은 잘 설득했어?”
“응.”
짧은 대답이었고, 불신할 수밖에 없는 대답이었다. 에드워드는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힘든 그 답변에 할 말을 잃었다. 파브리스가 해설을 붙였다.
“공주님은 종종 통보를 설득으로 말씀하시죠.”
베로니카는 파브리스를 씹어먹을 것처럼 노려보아 그 고개를 숙이게 했다.
“오빠가 너 에드 다음에 보재. 네가 나 때렸다고 이야기했거든.”
“윽. 자비가 없으시군요…….”
“그냥은 못 넘어가지.”
좌절하는 파브리스를 무시하고, 베로니카는 다시 에드워드한테 시선을 돌렸다.
“포기한다고 했다간 진짜 죽인다?”
“몇 번을 묻냐, 그거.”
“불안하니까 그래!”
에드워드는 피식 웃고는 베로니카의 가느다란 허리를 끌어안았다.
“안 되면 같이 도망칠까?”
베로니카는 인상을 쓰고는 그의 가슴을 가벼운 주먹질로 때려 밀쳐냈다.
“해결책이 안 되는 걸로 농담하지 마.”
“이분 농담이 참 절묘하긴 하지요. 애정행각은 왕성 내에서는 삼가 주십시오. 누가 보면 곤란하니까.”
파브리스에 조언을 에드워드가 맞받아 치기 전에, 한 하인이 좀 전에 베로니카가 나온 방 밖으로 나왔다.
“앵글리아에서 오신 에드워드 드 클레어 경, 들어오시죠. 정리가 끝났습니다.”
에드워드는 베로니카를 돌아봤다.
“뭐 깼어?”
“화병을 좀.”
뒤이어 다른 하인이 화병 파편들과 애꿎은 식물들을 천보자기에 싸서 끌어내는 게 보였다. 에드워드는 아랫입술을 핥고는 발을 내딛었다.
“들어갔더니 저렇게 끌려 나오는 건 아니겠지.”
* * *
시오니아의 국왕이자 성묘의 수호자는 긴 의자 위에 앉아 있었다. 골치 아프다는 듯이 한쪽 손으로 관자놀이를 짚은 그는 햇빛이 들어오는 창문 아래, 물자국이 남은 바닥 위에서 중얼거리듯 말했다.
“먼저 내 여동생을 성지까지 무사히 호위해 준 데 감사를 표하겠소, 에드워드 경.”
“당연한 의무입니다.”
에드워드는 긴장한 채 대답했다. 성묘의 수호자는 과연 베로니카와 닮은 흑발의 남자였다. 이목구비도 어딘가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나이는 좀 더 많았고, 그 얼굴과 표정에 깃든 피로감은 나이보다 더 깊어 보였다. 옷은 비단옷이지만, 왕의 상직색인 자줏빛은 다른 색의 천을 둘러 감추어 자락만 간신히 보였다.
그가 빛의 세계에서 앵글리아의 꺽다리왕 로버트와 함께 가장 많이 회자 되는 자였다.
기적을 불러낸 경건왕.
왕은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각선 쪽 자리를 권했다. 똑같은 길이의 의자였다. 에드워드는 손짓에 따라 그 자리에 앉았고, 뒤이어 하인들이 탁자를 하나 가져와 그 사이에 놓았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경의 동료들은 정중한 대우를 받고 있소.”
“감사합니다.”
“다만 요정과 마법허리띠는 좀 더 깊은 조사를 받을 거요. 이건 규칙이라 나도 어쩔 수 없소.”
“빛의 최전선이니 당연합니다.”
“당신이 어떤 도구를 갖고 있는지는, 때로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증명하기도 하니까.”
에드워드는 찔끔한 표정을 지었다. 리안나는 포획당한 요정이고, 캐슬린은 어디 가서 이야기할 배경이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다행히 성묘의 수호자는 왕성 지하 감옥에 갇힌 그 둘보다, 에드워드의 검에 더 관심을 보였다.
“앵글리아의 왕실 보검을 받았다고 하던데.”
“그렇습니다.”
“좀 볼 수 있겠소?”
에드워드는 허리띠를 풀어 검집째 열쇠검을 내밀었다. 성묘의 수호자는 그걸 받아 칼날을 약간 뽑아 보였다. 햇빛을 받아 검신이 빛나는 순간, 왕이 중얼거렸다.
“좋은 검이군. 앵글리아 왕실이 선뜻 내줬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원래는 그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더 두꺼웠고, 더 길었습니다.”
“알고 있소. ‘옛 검의 3기사’들이 이야기해 줬으니까.”
에드워드가 들어본 명칭이었다. 역시 그들은 파브리스처럼 시오니아 왕실쪽의 영향을 받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 해결사들한테, 공주님을 찾게 하셨습니까?”
“소문을 내면 되려 위험해지니까, 자세한 내막은 밝히지 않았소. 직감한 자들도 일부는 있겠지만, 그만큼 똑똑한 자들은 함부로 입을 열지 않는 법이지.”
왕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숨은 뜻이 없을까 싶은 에드워드는 신경을 곤두세웠다. 왕은 열쇠검의 날을 좀 더 길게 뽑아보고는 화제를 돌렸다.
“옛 왕조들의 역사에서 비극을 맞은 검들 중, 여성과 아이를 벤 걸로 유명한 보검들이 왜 많은 줄 아시오?”
“인간의 역사가 기니까, 그만큼 그런 검도 많은 것 아닙니까?”
“반은 맞는 말이오. 하지만 다른 이유도 있지. 지켜야 할 것을 베는 것만큼 큰 비극과 타락이 없기 때문이오. 뱀파이어가 인간 시절 때 친했던 자들부터 먹이 삼는 것과 비슷하지.”
탁. 성묘의 수호자는 검을 도로 검집에 꽂아넣었다. 그러나 에드워드에게 바로 돌려주지는 않았다. 그는 검의 손잡이로 시선을 돌렸다.
“악마들이 가장 좋아하는 비극이지. 이 검은 그걸 한번 겪고 봉인당했소. 그리고 이름까지 바뀐 채 앵글리아까지 흘러들어 갔지.”
에드워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다고 들었습니다.”
“악마들에게 특히 강력하고, 고대 한 성왕의 소유였으며, 가까운 여자를 베고, 이 땅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어쩌면 또 다른 이야기와 마법을 얻었을지도 모르지. 기묘한 검이오.”
“그런 듯합니다.”
왕은 에드워드에게 검을 내밀었다.
“‘옛 검의 3기사’가 말하는, 검의 봉인이 풀리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요. 그 검이 필요하기 때문이거나, 옛이야기를 반복하기 위해서지. 그대의 검은 어느 쪽일 것 같소?”
에드워드는 즉답했다.
“성자께서는 어느 쪽을 원해 제게 이 검을 맡겼겠습니까?”
성묘의 수호자는 쓴웃음을 지었다.
“빠르고 단순한 대답이로군. 그런 건 내 여동생과 닮았소.”
에드워드는 그게 칭찬인지 욕인지 잠깐 고민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