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46)
246화 격과 예우의 문제
헬레나가 옷 앞섶 단추를 하나 푸는 순간, 에드워드는 이성이 날아갈 뻔했다. 그는 차마 입밖으로 내지는 못하고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악마 새끼들은 유혹을 하려면 이런 걸로 해야 했어.’
그러나 좋다고 덥석 손대기에는 여건이 너무 좋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헬레나의 어깨를 붙잡아 한발짝 밀쳐냈다.
“자, 잠깐 진정하고. 차분하게 이야기해보는 게 어때?”
“당신이 이런 걸 마다하는 인간이었던가요?”
“아니긴 한데.”
“성지에서 저주를 풀면 뭘 하기로 했죠?”
“음. 그게.”
“잊어버렸나요? 당신이 했던 말들 다 기억하는데, 읊어줘요?”
“잊을 리가 있나.”
“설마 체력이 부족한가요?”
“힘들 것 같긴 한데.”
에드워드는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그때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에드워드에게 있기 때문이었다. 바로 베로니카와 시오니아 왕실이었다.
공주와 연을 맺고 왕과 인사한 뒤 바로 다른 여자랑 뒹군다는 건 문제가 될 소지가 너무 컸다.
“음. 먼저 지금까지 따라와준 데 감사하지. 여기저기서 소소한 도움이 되었던 거랑, 나 대신 베로니카 지켜주었던 거랑, 몇몇 괴물들을 쓰러뜨리는 활약을 보여준 것들.”
“인정해줘서 고맙군요.”
“그런 공적을 세운 ‘동료’를 우악스럽게 안는 건 좀 아닌 것 같아. 실례지. 아무래도.”
“그래서 지금까지 서로 합의하에 육체관계는 없었던 것 아닌가요?”
“그 이상의 문제지. 뭐랄까. 억지나 단순히 약속이라는 이유만으로 강행하지는 않아. 보다 존중의 자세로, 그러니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맞겠지.”
에드워드는 정리되지 않은 말을 횡설수설 내뱉었다.
“일단 내가 다른 여자랑 결혼 약속을 한 처지이기도 하잖아. 쌍방에 실례 아닐까.”
그 말에 헬레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베로니카 양의 눈치를 보는 거라면, 이미 합의는 끝났다고 말씀드리죠.”
“합의?”
“베로니카 양이 에드워드 경과 혼인한다면, 그것과 별개로, 저도 에드워드 경과 혼인하기로요.”
에드워드는 잠시 할 말을 잃고 헤맸다.
“중혼이잖아, 그거.”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닐 텐데요? 인간의 결혼과 엘프의 결혼은 별개로 취급할 수 있어요. 베로니카 양이 공주인 것도 문제가 안 돼요. 오히려 다른 종족의 피가 가문에 들어오는 걸 싫어하는 사람들은, 엘프건 인간이건, 그걸 당연하다는 듯 생각하죠.”
틀린 말은 아니다. 보통은 다른 종족과의 결혼을 불인정한 채 언급을 피하거나, 암묵적으로 묵인하는 형태지만. 에드워드는 등이 축축해지는 걸 느꼈다.
“그러니까, 베로니카도 그걸 합의했다고?”
“그때 그녀는, 결국 자신이 당신과 연을 맺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지만요.”
“뭐?”
“제가 그런 결론을 내렸을 때, ‘상상은 쉽게 되지 않지만 마음대로 하라’고 했거든요.”
에드워드는 그제야 헬레나와 눈싸움을 벌이던 베로니카의 심정을 이해했다. 엘프 상대로 뱉은 말을, 공주가 물릴 수도 없으니. 그러나 반대로 말하자면, 베로니카가 머리로는 이해해도 속으로는 삐질 확률이 없다고 못한다.
베로니카는 에드워드가 자길 버리면 죽인다고 했지만, 자기가 에드워드를 버리는 경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안했다. 게다가 아직 정식 부군으로 인정 받은 것도 아니고.
헬레나는 한발 앞으로 더 다가왔고, 그녀의 육중한 가슴이 에드워드의 가슴팍을 짓눌렀다.
“시오니아 왕실을 걱정하나요? 아르데니아의 대가문들은 그들보다 오래됐어요. 내가 원하냐고요? 네, 지금 당장요. 당신은 저주를 풀었고,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음을 증명했으니까요. 사람들의 말이 두렵나요? 당신이 그런 걸 신경 썼나요?”
옷가지와 갑옷 너머로도 느껴지는 그 부드러움에 에드워드는 혼이 날아갈 뻔했다. 그런 그의 정신을 붙든 건 개드립 본능이었다. 그는 드워프 동료의 말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냈다.
“너 진짜로 유부남 취향이었……!”
퍼억!
엘프 여전사의 주먹이 에드워드의 옆구리에 꽂혔다. 그는 허리가 꺾이면서 끔찍한 숨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끄억!”
에드워드가 고통스런 소릴 뱉건 말건, 헬레나는 자기 할 말만 했다.
“두번째 부인도 첫번째 부인과 똑같이 대우 받아야 한다는 것쯤은 알죠?”
소용없음. 그 다음은 멱살 잡고 침실로 끌고 들어갈 기세였다. 에드워드는 간신히 일어서 다시 헬레나의 어깨를 짚었다.
“잠깐, 잠깐, 잠깐!”
“또 뭐죠?”
“알았는데, 다 좋은데, 이래서는 안 돼.”
“무슨 의미죠?”
에드워드는 그 짧은 순간 잔머리를 엄청나게 굴렸다.
안 된다고 하거나 어렵다고 했다간 헬레나를 더 불붙일 뿐이었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거라고 판단할 테니.
그렇다고 순순히 넘어가주면, 본능은 즐거울지 몰라도 당장 내일부터 온갖 일이 꼬일지도 모른다.
“그건 널 너무 싸게 굴리는 거야.”
헬레나의 몸이 굳었다. 에드워드는 숨만 가다듬고는 헬레나의 입술에 기습키스를 했다. 고전적이지만 강한. 엘프 여전사는 저항하지 않은 채, 그러나 놀란 눈으로 혀를 받아들였다.
“읍! 으읍, 음…….!”
끈적하게 혀와 혀가 얽혔다. 에드워드의 손이 헬레나의 허리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잠시 뒤 두 남녀는 강하게 끌어안은 채 입을 뗐다. 얼굴이 붉어진 헬레나를 내려다보면서, 에드워드는 그녀를 살살 달래기 시작했다.
“왕은 왕비 외에는 ‘공식 정부’를 두는 게 일반적이야. 특히 아퀴타니아 쪽이 그렇지. 시오니아 왕실도 아퀴타니아계고. 지금 내가 널 안는다면, 넌 기껏해야 그 정도 대우만 받겠지. 그거 알아? 인간 왕실의 정부는, 국왕 대신 온갖 욕을 먹는 게 일이야.”
“전 그래도 상관이 없…….”
“난 상관 있어.”
에드워드는 단호하게 말했다. 헬레나는 할 말을 잃은 채 어물거리기 시작했고, 에드워드는 그 때를 노려 바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정식 부인과 공식 정부는 엄연히 다른 거야. 네가 그렇게 취급받는 걸 보고 싶지 않아.”
“하지만…….”
“그대로 공식 정부로 간주된다면, 왕실 사람들은 네가 다른 엘프 남자와 결혼하지 말란 법도 없다고 막말을 해도 넘어가야 할 거야. 난 네가 그런 불신의 시선을 받는 게 싫어.”
“그럼…… 이대로 가만히 있기만 해요?”
헬레나가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 에드워드는 그녀의 턱을 들어올렸고, 엘프는 귀까지 움찔거렸다. 조금 전까지의, 냉정함과 욕정의 사이 그 어딘가에 있던 눈빛이 아니었다. 남자의 독점욕과 가학심까지 자극하는, 암사슴 같은 눈으로 바뀌어 있었다.
에드워드는 자신의 가슴팍에 찌그러진 엘프의 가슴에, 움찔거리며 튀어오르는 허리에, 부비적거리는 허벅지에 마른 침을 삼켰다. 그는 그녀를 당장 침대로 끌고 가고픈 탐욕 때문에 속으로 기도문을 외워야 했다.
“여기 사람들은 네가 어떤 여자인지 몰라. 아르데니아의 대가문이라는 것도 실감을 못하지. 같이 증명하자고. 아르데니아의 여전사와 그 반려로서.”
헬레나는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에드워드는 그녀를 여자 단체방쪽으로 슬금슬금 끌고 들어가서, 그 안에 한발짝 넣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키스했다. 이번엔 좀 더 짧았다. 다시 엘프의 입술과 혀를 농락한 뒤, 에드워드는 낮게 말했다.
“여긴 성지야. 기회는 널렸고, 푸른바위거성은 그 발판이 되어줄 만해. 조금만 참아. 방법은 내가 바로 찾아낼 거야.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즉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헬레나는 정신을 못 차린 듯 주저하다 약간 더듬는 투로, 몽롱한 표정으로 답했다.
“더 구체적으로 약속해줘요.”
에드워드는 다시 머리통을 굴렸다. 생각 같아선 ‘며칠 안에 분위기와 기회를 봐서 바로’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말이 꼬여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간신히 답을 찾아냈다.
“땅, 영지를 얻는 데 아르데니아의 도움을 명시하고 널 아내로 맞겠어.”
“영지요? 봉토를 말하는 건가요?”
“기왕이면 탈환이 더 낫겠지. 너와 내가 같이 땅을 쟁취하면 돼. 둘의 결합으로 땅을 온전히 통치하는 거지.”
“그게 쉬운 일일 리가…….”
“말했잖아. 전쟁이 코앞이고 기회는 널렸다고. 우리 둘이면 안 될 게 어딨겠어? 큰 땅일 필요도 없어. 요충지기만 해도 돼. 그러기만 해도 너와 나를 무시할 놈은 없어.”
에드워드는 헬레나의 귀에 바짝 붙어 속삭였다.
“나한테 네가 필요한 만큼, 네 격에 맞는 위치를 선물해줄게. 시오니아의 공주한테도 밀리지 않을.”
그 숨결에 헬레나의 귀가 빠르게 까딱거렸다. 에드워드는 웃으면서 마무리를 지었다.
“진정하고, 잠깐 쉬고 있어. 그걸 위해 해야 할 일이 좀 있거든.”
그리고 헬레나가 뭐라고 답하기 전에 문을 닫았다. 냉정하고 모멸차게 닫는 걸로 보이면 안 되니까, 살살.
탁.
에드워드는 문이 닫히는 순간, 손으로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
‘피눈물 나게 아깝네, 젠장.’
그는 엘프도 느끼지 못할 만큼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쉰 다음,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로비에서는 드워프가 스텔라를 붙잡고 있었다.
“좀 놔봐요, 이 납덩이 같은 종족!”
“어딜 가, 임마!”
“어머나, 기사님?! 벌써 내려오셨어요? 색정적 거사는 어쩌시고?”
“보류.”
에드워드는 힘없이 말했다. 베로니카도 놀란 눈으로 그를 봤다.
“의외네?”
“넌 대체 헬레나랑 무슨 합의를 한 거야?”
“네가 뭘 들었건 들은 그대로겠지. 엘프는 거짓말을 잘 안 하니까.”
“그땐 네가 나와 연 맺을 줄 몰랐을 거라지.”
“몰랐지…….”
“근데 그때가 언젠데?”
“베르세바의 물귀신 소동쯤.”
“뭐야! 가장 최근까지도 너 나랑 결혼한다는 생각은 아예 없었던 거야?”
“내 사정 이제 다 알잖아! 넌 변할 기미가 안 보이고! 상상도 못하던 게 당연하지!”
에드워드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공주님이 평기사를 부군으로 점찍는 것도 쉬운 결단은 아니긴 하지.”
“알면 잘 해라? 너, 공적 세워야 돼. 자기 세력과 동맹을 빠르게 만들어야 한다고.”
베로니카의 앞에는 그새 작성된 편지들이 한두 통 놓여 있었다. 소개장을 써줬던 기사들은 물론이고, 그녀가 알고 있는 귀족들이나 사제들한테 보내는 것도 있을 터였다.
에드워드는 베로니카의 맞은편에 털썩 앉았다. 카치운이 그를 향해 물었다.
“어떻게 달랬소?”
“그저 좋다고 앞뒤 안 가리는 건 양쪽 모두에 실례고, 특히 헬레나가 정부로 폄하되는 게 두렵다, 뭐 그 정도?”
“나름 잘했구만. 용케 절제하셨소.”
“여자들이 나도 모르게 합의했는데 그 결과가 폭주로 향할 기세니 어쩌겠소. 젠장. 여자들 사이에서 중심 잡는 건 나도 경험이 별로 없단 말이야.”
“내 탓이니?”
베로니카가 도끼눈을 뜨고 에드워드를 바라보았다. 물론 그녀 탓이 아니라 그의 탓이었다. 에드워드는 어깨를 으쓱했다.
“내 모자란 덕성으로 공주님께 폐를 끼칠 수는 없으니 말이야.”
“저 혓바닥을 아주 그냥…….”
“당분간은 공주님과의 신혼 생활에 충실한 게 맞겠지.”
“아직 신혼 아니거든?!”
“차이 있나?”
베로니카는 얼굴을 붉히고는 고개를 돌렸다.
“혼전 관계는 함부로 하는 게 아닌데. 실수했어.”
“하면 되잖아, 결혼. 젠장.”
에드워드는 베로니카 앞에 놓인 편지들 중 하나를 집어들었다. 에드워드가 모르는 사람 앞으로 보내는 편지였는데, 성자의 선택을 받은 기사를 향한 지지와 지원을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그는 피식 웃었다.
“실망시키면 안 될 여자들이 많은 것도 죄야.”
“네가 그런 말을 다 하네.”
베로니카가 투덜거리듯 말했다. 에드워드는 작게 중얼거렸다.
“어쨌거나 이제 진짜 2라운드군.”
그게 공주 베로니카와의 결혼이건, 엘프 헬레나와의 결혼이건. 영지를 얻어야 진전이 생긴다. 에드워드는 베로니카에게 물었다.
“혹시 지도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