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47)
247화 자대배치(1)
에드워드는 바로 출전 준비를 서둘러야 했다. 때문에 리안나를 급히 찾았다.
“아무리 영웅이래도 여왕의 부군이라는 것에만 머물면 기둥서방 내지는 종마 소리나 들을 텐데 ‘부군의 정부’ 같은 게 있다면 더 안 좋은 소리들이 꼬일 것이라는 건 이해를 했는데요, 그게 밴시를 왕실 지하 감옥에 두고 잊어버릴 이유가 되나요?!”
로비에 도착한 밴시 리안나의 항의였다. 일행이 그녀의 존재를 잠시 잊고 있던 탓에, 해방이 늦은 것이었다. 그녀가 풀려난 건 에드워드가 준비 중 밀린 세탁물의 존재를 깨달았을 때였다.
“알아서 풀어줄 거라고 생각했지.”
“감옥 사람들은 ‘찾으러 오겠지’라고 생각했대요! 둘 다 귀찮아서 밴시를 방치했어!”
“밴시만 방치했나요! 허리띠의 하녀도 방치했지요!”
캐슬린이 거들었다. 허리띠 밖으로 튀어나온 그녀는 비극의 주인공마냥 몸을 비틀었다.
“이제 손병신 아니시라고 하녀의 봉사와 헌신을 잊으시다니 너무하세요! 기사님이 지옥 가기 전에는 저도 못 풀려나는데!”
“내가 천국 간다는 선택지는 없는 거냐?”
“하녀를 왕성 감옥에 방치하는 기사님이 어디가 천국 가실 분이던가요?”
“말 잘했어요, 색골망령!”
두 노예가 합심해서 항의하는 드문 광경이 에드워드의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그는 별 것 아니라는 식으로 반응했다.
“왕실에 항의해.”
“해봤죠! 눈썹 하나 꿈쩍 안 하던데요!”
법적 절차였을 뿐이니, 그녀들의 항의는 왕실에 도착하기는커녕 최말단 간수의 관심사도 못 됐을 게 뻔했다.
그리고 묵살은 기득권의 강력한 도구였다. 에드워드가 그녀들의 항의를 어디서 개가 짖는 소리쯤으로 취급하자, 소란은 곧 잦아들었다. 그리고 지친 채 쫑알거리는 그녀들에게는 필연적으로 연대의 와해가 찾아왔다.
“어머나, 세탁하녀가 왔네? 빨래 많이 밀렸더라. 얼른 가져가라?”
“먹물이 왜 밴시에게 작업지시를 내리나요!”
“이젠 내가 차기 왕실 마법사이기 때문이지! 아, 공주님이 너 돌아오면 고기 금수조치 풀어준대.”
“네?”
“오늘 저녁은 송아지 고기다?”
“현시간부로 노동현장에 복귀하겠습니다!”
“야, 밴시! 이탈하지 마!”
캐슬린이 당황해서 말했지만 리안나는 쏜살같이 달려나가버렸다.
“고기도 못 먹는 망령이랑은 같이 큰일 못한다 이 말이에요!”
“야! 저게!”
혼자 남은 캐슬린은 에드워드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에드워드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문제 있냐?”
“그게…… 그 뭐냐, 성지에서 기사님을 잘 모시는 데 어떤 노력이 더 필요할까 하는 문제가…… 아하하하.”
“올라가. 그리고 내가 부르기 전까지는 사람 모습으로 튀어나오지 말고 죽은 듯이 있어.”
“넵.”
캐슬린도 쏜살같이 도망쳐버렸다. 스텔라는 깔깔 웃으면서 말했다.
“기득권의 위치에서 보는 노예들의 재롱은 각별하네요.”
“네가 언제부터 기득권이었냐?”
“차기 왕실 마법사면 기득권 하고도 남죠!”
“박사도 못 땄는데?”
“기사님!”
비극과 희극 속에서 가르달이 들어왔다. 그는 에드워드를 향해 말했다.
“기사 양반, 아는 사람이 오셨소만.”
“누구?”
“베레스포드 공작.”
에드워드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과연 곧바로 베레스포드 공작이 숙소로 들어섰다. 얼마 전 봤을 때와 별 차이 없는 모습이었다. 그는 정중한 인사말로 스텔라를 ‘치운’ 뒤, 에드워드와 마주 앉았다.
“밀리온에는 언제 오셨습니까?”
“방금.”
“국왕은 안 만나시고?”
“왕한테 일정이 있댄다. 알현도 순서라는 게 있으니 말이다. 시간 잠깐 비는 김에 너부터 찾아봤다. 아랫사람 다루는 건 여전히 험하군.”
“요정과, 망령과, 도박중독자 한정이죠.”
“공주님 하인들 다 도망간 건 기억 안 나냐?”
에드워드는 움찔했다.
“그건 그때까지도 괴력을 주체 못해서…….”
“그 이유가 가장 크긴 하지. 닭뼈로 쇠솥에 구멍낸 게 결정타였다던가?”
“다 아시는군요. 베로니카 양이 공주님이었다는 것까지요.”
“나도 앵글리아 왕실에게서 나중에 들었다.”
공작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래서 너와 그녀의 사이에 훈수 놓다 실수로 까발리는 건 피하려 했고.”
“말씀대로긴 했네요. 시르티카 백작령을 못 먹는다는 것. 거긴 그녀의 영지가 아니니까.”
“그래.”
짧은 대답 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공작은 그 침묵을 더 작아진 목소리로 뚫었다.
“진짜로 연 맺을 줄은 몰랐다.”
“윽. 패트릭에게서 들으셨습니까?”
“그래. 먼저 만나고 왔거든. 네가 정신 차리고 고백하더라도 차일 줄 알았지. 아무리 영웅이래도 공주님이 평기사를 선택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상류계층을 귀족이라고 쉽게 묶지만, 그 격차와 성격과 종류는 천차만별. 백작이어도 영토의 크기와 역사가 웬만한 왕실보다 오래된 가문도 있고, 덩치가 작으나 다른 귀족의 봉신이 아닌 독립 영주도 있다. 왕실 등 통치가문들보다야 격이 모자라지만 서로 결혼하더라도 흠이 되지 않을 만큼의 격과 위세를 자랑하는 귀족들도 있다. 베로니카의 위장신분이자 외가 친척인 캠벨 가문이 대표적이었다.
에드워드는 일단 격이 높은 쪽에는 안 속했다. 모계가 베레스포드 공작가와 앵글리아 왕실에 연이 있긴 하지만, 그 족보 따지자면 세대를 상당히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게다가 앵글리아의 작위는 장자상속제이므로 삼남인 에드워드의 격은 더 낮아진다.
빛과 어둠의 싸움, 그리고 그 혼란 속에서, 신분이 낮은 상대와 결혼하면 불이익을 준다는 건 사실 명확히 자리 잡은 법규나 개념이 아니었다. 별 볼일 없는 평민과 결혼하는 정도의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면 대개의 경우는 그래도 동등결혼으로 인정 받는다.
하지만 결혼은 비슷한 계급이나 가문끼리 하는 게 보통이고, 차이 나는 결혼을 곱게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뭐,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연으로 크게 낙심하는 것도 약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만, 안 해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나 보군. 어떻게 노력할 거냐?”
“푸른바위거성으로 가서…….”
“가서?”
“잘 싸워야죠.”
베레스포드 공작은 ‘이 새끼가?’ 하는 표정으로 에드워드를 쏘아보았다. 에드워드는 간단히 해명했다.
“좁은 머릿속으로 거창한 설계까지 하면 그게 오만이고 패착이 되겠죠.”
“말이나 못하면. 너도 패트릭만큼은 해야 체면이 설 거다.”
근위기사단장이 될 만큼 병력을 끌고 오거나 공을 세우기.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나 따라온 순례자들 데려가라.”
“예?”
“국경 지날 때만 해도 버글버글하더니, 성지 도착하니 다 흩어지더라. 얼마 안 남았는데, 마저 다 데려가. 쌈박질 장소와 밥만 준다면 좋다고 따라갈 사람들이니. 내가 계속 달고 다닐 수도 없잖냐.”
“아니, 공작님도 여기서 싸우실 생각 아니십니까?”
“내가 왜? 그 새끼 도착하면 바로 귀향할 거다.”
순례자 상당수는 성지를 방문하자마자, 또는 몇 번의 싸움 끝에 귀향해버린다. 시오니아에 순례자가 몰려와도 고정적으로 남는 사람은 갈 곳 없고 불러주는 곳 없는 사람들 정도.
“이래저래 따라온 사람들 계속 달고 있어봤자 그 새끼가 나더러 같이 싸우자고 할 테고.”
“그 새끼요?”
“그 새끼.”
주어는 욕설 섞인 대명사 처리. 에드워드는 입을 다물고는, 의외의 선물로 관심을 돌려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덕택에 병사들 따로 모을 수고는 덜었군요. 감사드립니다. 기사도 있습니까?”
“몇 명 있는데, 걔들은 따지는 게 많지. 잘 꼬셔봐라.”
“감사합니다.”
그 순간, 2층에서 헬레나가 편지 몇 통을 들고 내려왔다. 그녀는 베레스포드 공작을 보자 덤덤히 인사했다.
“오랜만이군요.”
“오랜만입니다, 아르데니아의 레이디. 편지 보내러 가십니까?”
“네. 본가에요.”
“편지가 많은 걸 보니 아가씨를 기다리는 분들이 많은가 보군요.”
“네. 안 돌아갈 테니까 여기로 오라고 썼죠.”
“예?”
헬레나는 짧게 요약했다.
“가문의 가신과 사병들을 보내라고 했어요. 싸울 사람이 필요하다고.”
“오오. 빛의 교회 전체에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계속 에드워드와 함께 싸우시려고?”
“아내가 남편과 함께 전선에 서는 게 이상한가요?”
베레스포드 공작은 다시 에드워드를 돌아보았다. 아까와 같은 표정이었는데, 이번엔 생각이 입 밖으로 나왔다.
“이 새끼가?”
에드워드는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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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뒤, 새 무구를 들고 돌아온 가르달은 너덜너덜해진 에드워드를 발견했다.
“공주님을 끼고 중혼이라니 제정신이냐고 욕 좀 먹었지…….”
“푸하하하하! 엘프는 눈치가 없는 법이지!”
가르달이 호탕하게 웃으면서 에드워드 앞에 새 서코트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에드워드가 주문한, 어깨에 붙이는 작은 방패 같은 방어구도.
“시오니아 녀석들은 맨날 전쟁 중이라 그런지, 드워프 도시들처럼 상품을 미리 만들어 쌓아놨더군. 덕택에 재료 구하는 시간은 줄였소. 일단 급한대로 이것들부터 장만했는데.”
“수고했소. 대금은?”
“사제 아가씨가 냈소. 이제 눈치 안 보고 사재 턴대.”
“와우. 군자금이 해결되는 건가?”
“명세서 작성해서 내라는데.”
“젠장. 짠순이 기질 어디 안 가는군. 창과 방패는?”
“몇 개씩 준비해놨소. 뭐, 에드워드 경의 실력이면 또 어디서 마법의 무기와 갑옷이 굴러들어올지도 모르지만…….”
“그땐 또 그거 나름대로 쓰겠지.”
에드워드는 숨을 가볍게 들이마신 다음, 숙소 밖으로 나갔다.
대성당 객관 밖은 이래저래 모인 순례자들, 잡병들, 그리고 드물게 보이는 기사들로 북적거렸다. 에드워드는 그들의 숫자를 대충 눈대중으로 세어보았다.
“30명.”
“정확히는 33명이에요. 기사가 다섯인데 둘은 말도 없어요. 잃어버렸대나.”
먼저 나와서 세고 있던 스텔라의 말이었다. 에드워드는 그녀의 말대로 거지꼴이 된 기사 둘을 발견했다. 너덜너덜한 서코트에 찢어진 사슬갑옷, 찌그러진 투구를 가진 사내들이었다.
“저 둘은 어디서 왔대?”
“공작님 따라서요. 나머지 셋은 공주님이 부른 사람들이에요.”
기사가 말을 못 타면 부끄러운 일이지만 회개나 순례 중이라면 참작이 된다. 에드워드는 그들이 이곳에 온 게 체면 때문인지, 돈 때문인지, 순례 때문인지는 굳이 따지지 않기로 했다.
나머지 셋은 시오니아의 공주가 불렀다고 하기엔 일행이 너무 조촐해서, 각자 종자가 한둘에 불과했다. 에드워드가 누군지 얼굴이나 보려고 잠깐 들른 것일 가능성이 컸다.
“기사 다섯에, 순례자 스물여덟. 시작은 작군. 그래도 다들 여기저기서 사람들을 불러주니 앞으로 더 늘어나겠지.”
그때 사람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말에 탄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들의 뒤에서 나타났는데, 와인빛 비단으로 만들고 갖은 보석으로 장식한 옷을 입은 여성이 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나타난 것이었다. 에드워드는 그 호위대상이 누군지 알아봤다.
“베로니카?”
“이런 차림은 처음 보지?”
말 위에서 베로니카가 에드워드를 내려다보며 웃었다. 공주로서 행차한 그녀를 보고 에드워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힘 좀 줬네.”
“만날 사람들이 많거든. 나 돌아온 것도 공표됐고.”
“파파라치들이 없는 게 다행이군.”
“그게 뭔데?”
“있어. 왕족과 유명인들 따라다니면서 뭐하고 있는지 소문내고 다니는 놈들.”
“와, 다 교수형 시켜버리고 싶은 놈들이네.”
베로니카는 말에서 내렸다. 그녀는 세 기사가 부리나케 달려와 인사를 건네는 데 성심껏 답해준 다음, 다시 에드워드한테 말했다.
“저 셋은 내가 당장 붙여줄 수 있는 백수들이야. 전에 나한테 ‘기사도식 헌신’을 읊은 적 있지. 요금과 별도로 손수건을 한 장씩 내려야 했어.”
상대가 처녀든 유부녀든 누구든, 레이디한테 헌신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자신의 기사도를 증명하는 과정이자 놀이.
에드워드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공주 차림으로 나타나더니 저런 남자들을 보여주는 그 의도가 뻔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나 잘났고 인기 많다. 나한테 잘해라?’
“공주님, 남자 다루는 솜씨가 좀 가혹하신데.”
“나, 너 못 따라가.”
“엥?”
“공주를 변방 요새에서 죽치게 할 수는 없대. 여기서 처리해야 할 일도 많고. 며칠에 한번 꼴로 너 찾아가는 방식이 될 것 같아.”
에드워드는 잠깐 벙찐 표정을 지었다가 이마를 짚었다.
“주말부부냐…….”
“재밌는 표현이네.”
베로니카는 쓴웃음을 지었다. 에드워드는 실망감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설마 전쟁 끝날 때까지 그래야 하는 건 아니겠지?”
“들어가서 얘기 해도 될까? 앞으로 모을 수 있는 병력이랑, 받을 수 있는 지원에 대한 이야기도 해야 되고.”
베로니카의 말에 에드워드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곤 팔을 내밀었다.
“그러시죠, 공주님.”
베로니카는 에드워드의 팔짱을 꼈다. 에드워드는 지원병들 앞에 선 카치운에게 말했다.
“지원병들 술집에 데리고 가서 술 한 잔씩 돌리쇼.”
“기사들은?”
“그들은 들여보내. 인사 겸해서 내가 사지.”
에드워드는 그 말만 남기고 베로니카와 같이 숙소로 들어섰다. 로비에서 자기 장구류를 정비 중이던 헬레나는 놀란 눈으로 그녀를 봤다.
“그런 차림은 처음 보는군요.”
“귀환도 공표됐고, 잠깐이지만 여러분과 떨어지게 돼서요. 보여주려고 입었죠.”
두 여자의 시선이 부딪혔다. 에드워드는 베로니카가 옷 보여주고 싶은 대상이 자기뿐만이 아니라는 걸 확인한 다음,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사람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