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49)
249화 자대배치(3)
레피림은 주술사왕 주변을 쉽게 떠나지 못했다. 그녀는 그의 선봉을 깨부순 게 에드워드고, 이번에 푸른바위거성에 사령관으로 부임하는 것도 그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그러나 주술사왕은 별로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게 지금 앵글리아 국왕 로버트의 군대보다 급한 문제인가? 아니면 시오니아 내부 공작보다 긴요한 일인가?”
“성자의 선택을 받은 기사가 온다니까!”
“기적을 본 옥셀레 주교한테 사명을 받은 조르쥬 드 발로뉴 같은 기사도 오고 있네. 알레마니아에서 출발한 ‘늑대들의 악몽’은 다행히도 오는 중에 죽었고 그 부하들은 흩어졌지. 내 목을 노리는 기사들의 이름을 백 명은 더 말해야 할까?”
“특별하다니까!”
“특별하긴 하지. 고대 악마 다쉬사베스와 주술사 니코스가 엮였으니. 하지만 그건 지옥 내부의 일이고 나와는 상관없어. 설령 에드워드가 지금 당장 네년을 쳐죽이더라도 나한테 해가 되는 게 뭐가 있지?”
반박불가. 레피림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주술사왕과 그녀는 긴밀한 동맹관계가 아니었고 오히려 서로 의심을 하는 판이었다. 또, 주술사왕은 악마를 숭배하고 그 명령을 따르는 평범한 세트렛인이나 사교도가 아니었다. 그가 가진 악마의 신용도는 굉장히 낮았다.
“에드워드 드 클레어가 특별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 그 자를 없애봤자 신임 요새사령관이 부임할 뿐이야.”
“더 커지고 나면 후회할걸.”
“아무리 그래도 악마가 종용하는 일에 내가 직접 나설 의무나 의리는 없어.”
“그럼 이대로 손 놓고 구경만 할 거야?”
레피림의 질문에 주술사왕은 코웃음을 쳤다.
“내가 언제 그런다고 했나?”
“응?”
“그 자가 신임 요새사령관이라고 했지 않나? 그럼 같은 급의 장수가 담당하는 게 맞지.”
레피림의 눈빛이 기묘해졌다.
“보통 그런 식으로 아랫것들부터 보낸 구닥다리 악마는 곧 자기가 나설 수밖에 없게 되고 패퇴하는데.”
“악마는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건 속세의 일이다. 그리고 내가 이끄는 건 악마숭배결사 따위가 아니야. 국가지.”
주술사왕은 탁자 위의 지도로 시선을 돌렸다. 어지러이 널린 말들을 보며 그는 중얼거렸다.
“국가는 국가의 규칙대로 움직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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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는 비단 생산지들의 호화로움과 번잡함에 흔들리지 않았다. 이미 흔들리고 있었으니까.
“자대배치 때도 비슷한 기분이었으려나. 훈련소 끝났다 싶었지만 다시 시작되는 두려움. 뭐, 그래도 그때보다는 낫긴 하지. 편지 써주고 주말마다 찾아올 여자친구를 만들고 훈련소 입소하거나, 아예 여자친구랑 같이 군대 오는 일은 없었으니.”
“기사님이 이상한 소리 하신다.”
짐수레를 몰던 밴시 리안나가 조잘거렸다. 그녀는 베로니카가 잔뜩 안겨준 선물 중 육포를 물어뜯으며 말했다.
“하긴 왕궁이 아니라 촌구석으로 가게 됐으니 실망감이 크긴 하겠네요. 밴시도 그러니.”
“넌 왜?”
“기왕이면 왕궁에서 공주님의 하인이 되고 싶었다 이거에요. 촌구석 야전에서 군대 세탁물 처리라니.”
“하긴.”
“급이 너무 다르단 말이에요.”
에드워드와 베로니카의 급이 다르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에드워드는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대신 스텔라가 밴시의 정수리를 쥐어박았다.
“듣는 사람들 사기 떨어지는 소리 계속 할래? 우리 일행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많거든?”
“밴시가 그런 것까지 신경써야 하나요!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아옹다옹하는 둘을 신경 끄고, 에드워드는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비단생산지들은 근처 도시들에 시장을 차려 비단을 판매했는데, 각 도시의 궁전은 관련 상인들의 집합소 같은 곳이었다. 그의 눈앞에 있는 게 그 궁전이었다.
“영주가 아니라 상인연합회가 지배하는 도시라.”
“이 도시의 영향권 안에 있는 영주들은 뽕나무밭의 경비 하청업자 정도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더군요.”
헬레나의 말이었다. 에드워드는 피식 웃었다.
“상인의 기세가 센 곳들은 다 그런 소리 듣지. 아르데니아와 그 주변 영주들도 비슷할걸.”
“조심해요. 상인들이 당신을 우습게 보거나 시험하려 들지도 몰라요.”
“적당히 환영하고 환송해야 할 귀찮은 짐덩이 정도로 생각할지도 모르지.”
다행히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상인들이 먼저 나와 에드워드를 맞이한 것이다. 그들은 에드워드한테 머리를 조아리지는 않았지만, 혓바닥을 적당히 굴릴 줄은 알았다.
“어서 오십시오. 환영합니다. 베로니카 공주님의 편지로 이미 내용은 대강 파악했습니다. 불편함 없이 쉬다 가시지요.”
에드워드는 말 위에서 인사를 받았다.
“배려에 감사드리오.”
“연회를 준비했으니 연회장으로 가시죠.”
공주의 부군이 될 남자라는 사실 때문인지, 그들도 적당히 눈치는 살피는 투였다. 한 상인이 에드워드 옆에 붙어서 쉴 새 없이 이야기를 꺼냈는데, 주로 자기들 푸념이었지만 종종 중요한 이야기 같은 게 지나가기도 했다.
문제는 연회장에서 시작됐는데, 헬레나의 위치가 에드워드랑 뚝 떨어진 것이었다. 헬레나는 불쾌한 표정을 지었고 에드워드는 바로 수습을 시도해야 했다.
“엘프 레이디는 아르데니아의 대가문 출신으로 내 동행이고, 그녀의 가신들과 사병들에 앞서 도착한 것이오. 어쩌다 섞인 용병이 아니니 자리를 변경 좀 합시다.”
“예?”
상인들과 그 하인들은 헬레나의 큼직한 글레이브를 곁눈질하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엘프 여전사라는 존재는 그들한테 상당히 생소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큰 말썽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은 탓인지, 조치는 곧바로 취해졌다.
“이거 실례했습니다. 여기까지 엘프 용병은 종종 온 일이 있지만 대가문 출신이 온 적은 없어서요.”
“용병이라.”
“대개는 범죄자나 추방자 출신이지요. 아니면 엘프가 용병으로 뛰는 경우 자체가 많지 않으니까요.”
엘프의 숫자는 인간에 비하면 많지 않은 편이고, 자기들끼리 뭉쳐 다니기 때문에 그런 편견이 강할 법했다. 상인은 헬레나의 글레이브를 계속 곁눈질하더니 말했다.
“싸우는 여자도 이곳에서는 보기 힘들지요. 보기 힘든 조합의 레이디께서 오셨군요.”
“여전사라는 게 흔한 건 아니지요.”
“이곳은 뽕밭과 직조공 일자리가 많으니까요. 여자들이 굳이 무기를 들 일이 없지요. 변방 요새들이 무너지지만 않는다면, 이 땅은 평화롭고 풍요로운 낙원 그 자체입니다.”
에드워드는 그 과장된 언사를 믿지 않았다. 상인들의 도시는 항상 상인들에게만 낙원인 법이다. 하지만 그도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 말씀대로, 싸움이 온전히 ‘싸우는 자’의 일일 때에 세상이 평화로운 법이지요. 다만 엘프 레이디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무기를 잡는 곳 출신이니 이해해주시오.”
“뭐, 엘프는 그럴 법도 하지요. 숫자가 적으니. 인간이 하면 정말 별종이기 마련인데 말입니다. 뭐,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서도.”
“그렇겠지요.”
“여기도 여기사 하나가 있답니다.”
“여기사라. 나도 여기사 한둘 아는데.”
“그럼 에드워드 경이 아는 분일지도 모르겠군요.”
“이름이 혹시 올리비아요?”
“아뇨. 다른 사람입니다.”
“흠. 그럼 모를 것 같은데.”
“미아라는 이름을 씁니다. 평민 출신이고, 원래는 연금술사였다는군요.”
에드워드의 표정이 기묘해졌다. 그 이름을 모르는 헬레나는 얼굴을 갸웃거렸다.
“누군지 안다는 반응이군요. 그게 누구죠?”
“어…… 맞는지 확신은 못하겠는데. 아마 90%의 확률로 내가 아는 사람이지 않을까.”
상인은 계속 말했다.
“앵글리아에서 거대 꼽등이 떼를 퇴치한 공으로 기사가 되었다더군요. 칭호만 기사인 게 아니라, 수련도 했던 모양입니다.”
“얼음과자 언니 맞네!”
구석에서 음식을 탐하던 밴시가 소리쳤다. 에드워드는 헬레나와 스텔라의 눈빛에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얼음과자?”
“언니?”
둘의 목소리에 에드워드는 진땀을 빼며 웃는 낯으로 말했다.
“내가 아는 사람 맞는 것 같은데. 앵글리아 사람이 어쩌다 여기까지 온 거요? 역시 순례?”
“뭐, 그것도 있겠죠. 정확히는, 한 상인이 거대 꼽등이 사건에 흥미를 갖고, 누에와 해충에 대해 연구하려고 불렀다더군요.”
에드워드는 아랫입술을 핥았다. 어쨌거나 전력이 하나라도 아쉬운 상황. 베로니카의 연락이 닿았을지 어떨지는 몰라도, 안 부를 이유가 없었다. 에드워드는 자기 옆에 앉은 헬레나를 향해 몸을 숙여 속삭였다.
“내가 아는 여자인데.”
“하룻밤을 보낸?”
“부정은 안 할게.”
“그래서요?”
“실력과 신념이 있는 연금술사지. 그리고 우린 손이 하나라도 필요한데.”
“당신 좋을 대로 해요.”
“그래도 돼?”
“스텔라 양이 그러는데, 신분 문제로 평민은 잘해봐야 공식 정부밖에 못 되니까 별로 걱정할 건 없다더군요. 요하나 양 이야기였지만, 다른 여자들도 마찬가지겠지요.”
에드워드는 약간 떨어진 곳에 앉아있는 스텔라를 쏘아보았다. 그녀는 에드워드와 헬레나의 대화를 들을 만큼 가까운 곳에 앉지는 않았지만 대충 둘 사이에 무슨 대화가 오갔을지는 아는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고개를 돌려서 외면했다.
에드워드는 어딘가 서늘한 헬레나의 눈빛을 피하면서, 상인에게 도로 고개를 돌려 질문했다.
“혹시 지금 여기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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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인지 다행인지, 연금술사 미아는 부재중이었다. 에드워드는 그녀에게 남기는 편지를 급하게 한 통 쓴 다음, 상인들의 환송을 뒤로 하고 푸른바위거성을 향했다. 헬레나는 연회 내내 도끼눈을 하고 에드워드에게 접근하는 귀족 여성들을 살폈고, 스텔라는 연회 끝난 뒤부터 계속 깐족거렸다.
“귀족 여성은 엘프님이 전담하고 평민 이하는 제가 전담해서 감시할 것 같은데요?”
“젠장. 미아랑 그런 관계였던 건 맞는데 하룻밤뿐이었고, 지금 그 생각으로 만나려는 게 아니라고.”
“저희한테 그러셔도 소용 없어요. 저흰 그녀가 누군지도 모르는걸요.”
헬레나와 스텔라 모두 앵글리아 밖에서 에드워드와 만나 합류했으니 당연히 모른다. 에드워드는 계속 투덜거리는 방법밖에 없었고, 헬레나는 그런 그를 흘겨보았다.
“업보에요.”
“엘프들한테도 그런 개념이 있어?”
“없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요? 잡담은 그만하고 요새나 보시죠. 저기가 당신의 첫 부임지니까.”
헬레나의 말에 에드워드는 고개를 돌렸다. 과연 커다란 요새가 에드워드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쟁이 나면 만 명도 들어간다는 요새. 그러나 지금은 한적하고, 경비병만 몇 명 돌아다니고 있을 뿐이었다. 밝은 갈색의 성벽은 비교적 멀쩡했지만, 해자는 말라붙은 데다 흙먼지와 잡동사니가 쌓여 바닥이 높아진 상태였다.
“연회 내내 상인들이 돈 더 내라는 소리만은 피하고 싶다는 속내가 드러나던데, 이 요새를 보니 그럴 만도 하다 싶네요.”
비단 생산과 판매를 담당하는 도시들을 지키고, 순례자와 교역상들의 교통로를 감제하는 일종의 전방 감시기지. 크지만 상당히 오래 관리가 허술했던 땅. 에드워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돈 들어갈 곳이 많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