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51)
251화 전방(2)
에드워드는 순찰 도중 한 마을에 들렀다. 최전선답게 목책과 교회와 주택을 줄줄이 이어 어느 정도 요새화한 거주지였다. 하지만 빈약한 봉화대만 있을 뿐 전서구는 없었다.
“전서구는 비싸고 관리하기 힘들어서요…….”
사제의 궁색한 변명이었다. 에드워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전령이 탈 말은 있겠지?”
“예. 밭을 가는 데 쓰는 말이 있습니다.”
촌장이 대답했다. 사실 일에 지친 농경마로는 불충분했다. 그러나 여관도 없는 농촌 마을에서 크게 기대할 수도 없었다.
에드워드는 봉화대로 시선을 돌렸다. 말이 좋아 봉화대지, 공터에 쌓아놓은 장작더미에 불과했다. 정시 연락도 없이, 비상시에만 불을 켜는 게 고작이었다.
“이래서야 진짜 오크 정찰대만 겨우 막겠군.”
“그 이상이 오면 어차피 마을은 잠시도 못 버티고 사라지겠죠. 봉화보다 큰 불이 피어오를 테고요.”
순찰에 동행한 연금술사 미아 루이스의 말이었다. 에드워드는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이런 데가 많아?”
“대부분은 이럴 거라고 봐요. 밤이 오면 목책의 문을 걸어잠그고, 번갈아 경비를 서고, 오크 정찰대가 나타나면 다들 무기와 농기구를 들고 나와 맞서죠. 더 큰 약탈대나 무리를 발견하면 봉화를 올리고요.”
“잘 아네.”
“제가 기사로서 활동하면서 이런 마을들을 주로 도왔거든요. 그 활동비 때문에 상인들의 연구제안을 수락하기도 했고.”
“도와?”
“석회 가루 같은 걸 줘서 오크한테 뿌리게 한다던가.”
“효과 있었어?”
“보관을 제대로 못해서 망쳐놓는 일이 더 많았죠. 오히려 자기가 다치기도 했고.”
교육수준이 낮고 돈 없는 변경 마을들의 한계를 얼핏 엿볼 수 있는 말이었다. 에드워드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방어에 좀 더 돈을 쓰는 게 좋겠어.”
“그럴 돈 없어요.”
“목책 밖의 뽕나무들은 다 뭔데? 여기 비단 산지 아냐?”
“이곳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건 누에를 키워 실을 뽑는 게 고작이에요. 직접 비단을 자을 수 있는 직조공은 소수에 불과해요. 그나마도 상인들이 싸게 사가죠. 세금은 전부 요새사령관이 수취해가지만 그의 주머니에서 도로 나온 일이 없었고.”
“젠장. 요새 예산부터 정비해야겠군. 이 마을들 방어에 보태게.”
“마을 방어를 더 강화해봤자 효율이 안 나와요. 전쟁이 터지면 그냥 마을을 버리고 요새로 대피하는 게 더 낫죠.”
일리 있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고개를 저었다.
“전쟁보다 절도와 약탈이 더 시급한 문제야. 강의 요새와 그 건너편 오크들이 지원을 받고 있다면, 정찰대도 규모가 커지고 공격적이 될 가능성이 있지.”
“마을 하나쯤은 얼마든지 노릴 수 있다는 건가요?”
“기사들이 달려오기 전에 결판내려 하겠지.”
미아와 에드워드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촌장이 슬며시 끼어들었다.
“저기, 사령관님?”
“왜?”
“실은, 포로 하나를 잡았는데 말입니다.”
“포로? 오크?”
“인간입니다.”
“세트렛인인가?”
“아뇨. 오크들이 부리는 노예입니다. 강을 따라서 통발을 설치하고 회수하는 일을 하죠.”
물고기 잡는 놈. 에드워드는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강을 건너가서 잡아온 건가?”
“아뇨! 저희가 아니라 그놈이 건너왔습죠. 감히 구걸을 했고, 마을 여자들이 놈을 불쌍히 여겨서 물고기를 양보해줬지 뭡니까. 알고 보니 하루이틀 그런 게 아니더군요.”
에드워드는 말없이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촌장은 비굴하게 보일 정도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저희가 부려먹기도 애매한지라, 부디 사령관님께서 공물로 쳐주십사…….”
“끌고 와.”
에드워드의 짧은 명령에 마을 청년들이 한 거지꼴의 사내를 끌고 왔다. 수염과 머리카락이 덥수룩했지만 나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포로라기도 기묘했는데, 양팔이 붙잡혔을 뿐 밧줄로 묶여 있지는 않았고 허리도 꼿꼿했다.
에드워드는 그 포로를 향해 질문했다.
“빛의 신앙은 지키고 있나?”
“그렇습니다.”
“어디서 왔지?”
“강 한복판의 오크 요새입니다.”
“이곳 남자들에게 잡힌 지는 얼마나 되었나?”
“어제입니다.”
에드워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요새 안의 오크들의 숫자와, 그들이 보유한 물자에 대해 말할 수 있나?”
“네.”
“최근에 의사 같은 게 충원되는 등 변화가 있나?”
“네.”
순순히 나오는 대답들. 에드워드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전부 말해.”
“풀어준다면 말씀 드리겠습니다.”
“배교자가 아니라면 해방시켜주는 건 간단한 일이긴 한데, 어디 갈 데가 있나?”
“오크 요새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예상 외의 대답. 에드워드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미아가 대신 물었다.
“가족이 인질로 잡혀 있나요?”
“네.”
“아내인가요?”
“네.”
“오크들이 당신 아내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아시나요?”
선선히 나오던 대답이 막혔다. 미아가 에드워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정식 부부가 아닐지도 몰라요.”
“정식 부부가 아니라니?”
“오크들은 남녀 노예를 분리해요. 남자 노예는 가끔 의욕을 진작시켜준다고, 새 인간 노예를 얻을 겸 여자방에 집어 넣죠.”
에드워드는 피식 웃어버렸다.
“취향 한번 고상한 놈들이군. 그러니까, 저 남자는 아내가 붙잡힌 게 아니라, 여자 노예 중 하나와 어찌어찌 연 맺고 정든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런 관계를 결혼으로 인정하고 강 너머로 보내느니, 여기서 새살림 차리게 하는 게 보통이죠.”
“그럼 아무런 말도 안 하겠습니다.”
포로가 먼저 결론을 내렸다. 에드워드는 골치 아프다는 듯 관자놀이를 짚었다. 저주 풀리고 난 뒤에 할 수 있게 된 자유로운 행동 중 하나였다. 그는 낮은 소리로 질문했다.
“그 여자도 너를 남편으로 생각하나?”
“네.”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에드워드는 선서하듯 손을 들어보였다.
“빛의 이름으로, 나 에드워드 드 클레어는 약속을 지키겠다. 정보를 말하면, 널 자유롭게 풀어주지.”
“요새에는 오크 전사가 마흔셋입니다. 노예는 저까지 열두 명인데, 대장을 포함한 금이빨들의 소유입니다. 전사들도 노예들도 전부 식량을 추가로 얻기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오크들은 주로 돼지를 치고, 인간들은 물고기를 잡습니다. 고기잡이가 얼음을 깨고 찬물에 손을 대야 하니 더 고되기 때문입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정보가 줄줄이 나왔다. 노예 남자가 숨을 고르는 사이, 에드워드는 수통을 줬다. 남자는 물을 한 모금 마신 다음 말을 이었다.
“금이빨들은 쇠뇌나 갑주 등 무구를 잘 갖춘 놈들인데, 열 명이고, 웬만한 무기엔 다 통달한 정예병들입니다. 지휘관은 완력이 대단하고 보상을 능숙하게 써서 오크들끼리 내분이 날 일은 없습니다. 무기는 전부 깔끔하게 관리되며, 돌과 화살은 바닥나길 기대할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젠장.”
“나흘 전 요새에 새 방문자가 나타났는데, 세트렛인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건너편의 새 오크 사령관이 보낸 군의관이자 감찰관이라고 했습니다. 그 사령관은 주술사 왕의 칙명을 받았고, 자신을 시험해보려는 오크 유력자들을 죽여 지휘권을 굳혔다 합니다.”
새 사령관의 군의관 겸 감찰관. 인간을 쓰는 데 익숙한. 에드워드는 남자 노예를 노려보았다.
“그쪽도 내 정보를 원하던가?”
침묵. 한참 뒤 정신을 차리고 그 침묵의 의미를 깨달은 병사들이 대경실색했다. 그들은 일제히 칼을 뽑았다.
“이 자식을 살려 보내면 안 됩니다!”
“정보를 캐러 온 겁니다!”
에드워드는 손을 뻗어 그들을 저지했다. 그리고는 노예를 향해 말했다.
“오크 사령관이 요새 지휘관에게 뭘 더 지원한다는지 아나?”
“베테랑들이 후방에 남겨둔 재산의 안전을 보장하고, 더 많은 식량과 무기를 약속했습니다. 그쪽은 절대 굶주리지 않을 겁니다. 병력이 줄어들지도 않을 겁니다.”
“그렇겠지.”
에드워드는 강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크 요새는 시야에 들어오지도 않았지만, 그는 요새 방향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어차피 그 정도 크기의 요새에 병력을 많이 밀어넣을 수는 없어. 지원이 빵빵한 베테랑만으로 수비하는 게 더 낫겠지. 여기 또 올 수 있나?”
“네?”
“뭔 핑계를 대든 또 올 수 있냐고.”
“아마도……. 가능할 겁니다.”
“수통은 가져가라. 조금이라도 변화가 더 있다면 보고해. 올 때마다 식량과 물건을 주겠다.”
노예는 에드워드한테 시선을 못 박은 채 눈을 꿈뻑거렸다. 주변의 병사들은 입에 거품을 물었다.
“사령관님! 이놈을 당장 죽여야 됩니다!”
“빛의 이름으로 맹세했는데 안 풀어줄 수야 있나. 냅둬. 재미나게 돌아가잖아.”
에드워드는 간단히 병사들을 제지한 다음, 포로를 향해 말했다.
“돌아가서 네가 어떻게 해야 목숨을 부지할지 잘 생각해봐라. 살아야 또 올 테니까. 너와 네 아내를 위해 기도하겠다.”
포로는 허리를 꾸벅 숙인 다음, 달리듯 도망쳐 목책 밖으로 나가버렸다. 병사들과 마을사람들은 그가 사라지자마자 온갖 음담패설이 섞인 저주로 그와 그의 아내를 욕했다.
“음탕한 노예년한테 홀린 가증스러운 놈! 분명히 거짓말만 했을 겁니다!”
“변화가 있으면 알려준다고요? 놈이 우리 정보만 팔 텐데요!”
미아도 놀란 눈으로 에드워드를 보았다.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원래 이중간첩은 리스크를 감수하고 쓰는 거야.”
“이런 걸 뭐라고 해야 할까요…… 당돌하다?”
“어떻게 부르든 상관없어. 중요한 건 정보야. 오크 숫자는 대충 뻔히 보이는 정보니까 사실이겠지. 무기와 식량이 충분하다는 것도 아마 사실일 테고.”
“감히 건드릴 생각은 하지도 말란 뜻처럼 들리네요.”
“그래. 재밌지?”
“네?”
“적어도 요새 안의 놈들은 공격을 기획할 생각이나 능력이 없어. 보충병도 없고. 수비적으로 나오는 거야. 오크답지 않은 행동이지만, 아직 겨울이니까. 전쟁하기 좋은 계절은 아니지.”
미아는 납득했다.
“그렇겠군요.”
“그리고 내 수통을 가져갔으니 오크놈들은 노예가 누굴 만났는지 알아챌 거야. 분명히 정보를 더 캐고 싶을 테고, 노예놈을 다시 보내겠지.”
“그럴싸하네요. 하지만 인질이 잡힌 자가 우리에게 결정적인 정보를 쉽게 흘릴까요? 결정적일 때는 분명히 오크 편을 들 거예요.”
“나도 있어. 결정적인 것. 인질만큼 결정적인 거지.”
“뭔데요?”
“희망.”
에드워드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놈한테 요새를 깨고 오크의 노리개이자 씨받이인 아내를 구출해줄 사람은 나밖에 없을 테니까.”
“기사님, 방금 나쁜 표정이 지나갔어요.”
“이런.”
에드워드는 손으로 뺨을 비벼 표정관리를 한 다음 병사들과 마을 사람들을 돌아봤다.
“어쨌든 알았지? 이번 순찰은 이걸로 종료한다. 귀환!”
에드워드는 병사들을 이끌고 마을을 나섰다. 당연하지만, 포로는 이미 보이지를 않았다. 한 병사가 투덜거리듯 말했다.
“사령관님의 지혜는 경외스럽습니다만…… 과연 그렇게 잘 풀릴까요? 아내 이야기부터 거짓이면 어떻게 합니까?”
“지옥 같은 요새로 돌아갈 정도면 인질이 있는 건 사실이겠지.”
“보급도 무기도 빵빵한 요새를 어떻게 공략합니까요?”
“그건 이제부터 기회를 봐야지.”
“괜히 살려줘서 위험해지는 것 아닙니까?”
“그 잠깐의 만남으로 그놈이 뭘 알아 갔겠어? 이쪽이나 저쪽이나 아직 쥔 정보는 별로 없어.”
그때였다. 맞은편에서 전령이 달려오는 것이었다. 그는 에드워드를 보자마자 바로 옆으로 달려와 말을 멈췄다.
“사령관님, 공주님이 보낸 보급마차가 요새에 도착했습니다.”
“그게 그리 급하게 전갈을 보낼 일이야?”
“산 닭들이 도착했는데, 곧바로 도축해야 할 것들이라 합니다. 그리고 사령관님께서도 필히 하사품을 즐기시라는 공주님의 분부입니다.”
상하기 전에 빨리 먹어라. 에드워드는 피식 웃으며 동료들을 돌아봤다.
“닭고기 파티라. 우리 보급도 오크놈들만큼인나 빵빵하니 다행이구만.”
“사령관님 덕에 고기는 원없이 먹겠군요!”
한 병사가 맞장구를 쳤다. 그제야 순찰대의 분위기가 겨우 풀리며 웃음소리가 나왔다.
다만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뒤를 이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