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52)
252화 치킨 레이스(1)
스텔라는 무쇠솥들 앞에 앉아있는 카치운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언제부터 급양관으로 전직한 거예요?”
“임시야. 이 닭들을 처리할 때까지만. 손이 한둘이 필요한 게 아니잖아.”
카치운이 대답했다. 그의 말대로, 베로니카가 보낸 보급마차들은 생닭을 잔뜩 실어왔고 그 숫자는 무시무시했다. 산더미처럼 쌓인 닭장에서 닭들의 울음소리가 메아리쳤다. 스텔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이 많은 닭들이 다 어디서 났을까요?”
“비단 산지들은 폐기물로 누에 번데기가 쏟아지잖아. 그걸로 닭을 키운다더라.”
“아하.”
“드물지만 그걸 직접 먹는 곳도 있다지.”
“엑. 벌레를 먹어요?”
“난 안 먹어. 그런 눈으로 보지 마.”
카치운은 그 말이 끝난 후 솥뚜껑을 열었다. 노랗게 감도는 기름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닭고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소금과 후추를 친 다음, 껍질을 바닥에 두고 몇 시간을 약불에 천천히 익힌 요리였다.
“늙은 닭은 조리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게 단점이라니까. 이래도 꽤나 질기겠지.”
카치운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그래도 삶는 게 고작인 다른 사람들의 솥보다는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스텔라는 비장의 향신료를 뿌리는 그에게서 시선을 떼어 닭장만큼 쌓인 닭털로 시선을 돌렸다. 폐기물들. 닭털은 솜털이 없어 방한용 옷의 충진재로도 못 쓴다. 그저 버리는 것이 보통.
“누에는 참 쓸모가 많네요.”
“그러니까 키우는 거지만. 뽕나무도 이래저래 쓸모가 많은 나무고.”
스텔라는 잠시 침묵했다가 말했다.
“마법사는 어느 쪽이려나요? 누에? 닭털?”
“뭐야. 아직도 연금술사 아가씨가 두려워?”
“그야, 그 여자는 혼자 이야기를 다 만든 캐릭터잖아요. 만나서 도움을 청하고 도움을 받고 주고 해피엔딩에 뜨거운 밤까지 보낸 뒤 ‘다음에 또 봐요’까지, 딱! 너무 강력한 적이라고요.”
“그런 것 치고 헬레나 양은 별 반응이 없던데.”
“평민 출신이라잖아요. 귀족 여성들 이야기에는 못 끼죠.”
“평민은 네 담당이다, 이거냐.”
“거기다 인텔리.”
“연금술과 마법이 같은 거야?”
“영역이 일부 겹치긴 해요.”
“걔도 번개 쏘고 불꽃 터뜨리고 그래?”
“아마 못하겠지만…… 교양7과와 점성술과 연금술 일부는 이제 더 이상 저만의 영역이 아닌 게 되죠.”
“딱 하나는 마음에 드네. 더 이상 네 엉터리 약에 안 시달려도 된다는 거.”
“아저씨! 필요할 땐 잘 써놓고서!”
스텔라의 비명 섞인 항의에 카치운은 낄낄 웃어버렸다. 그는 그릇에 푹 익은 닭고기를 덜어내며 말했다.
“영주들한테 전속 마법사와 전속 연금술사가 같이 있는 게 드문 일도 아니잖아. 부유하고 강한 자라면 전속 사제와 전속 주술사와 전속…… 또 뭐더라? 여하튼 그런 것까지 거느리게 되지.”
카치운은 작은 그릇 하나를 스텔라에게 내밀었다.
“하물며 왕실에 그런 사람들이 안 붙을까? 왕실 마법사만 있으면 오히려 업무 과다로 죽을걸?”
“기사님이 미래의 왕이 된다면 확실히 그렇긴 한데요…….”
“공주님과 엘프 여전사의 머리채 잡기 싸움을 일보 직전에 막았다던 네 영웅담이 벌써 빛을 다 하려 한다.”
“단순한 질투가 아니라고요. 조언자의 위치는 중요해요. 베갯머리 조언 한 방에 나가 떨어지는 다른 조언자도 드물지 않다고요.”
스텔라는 닭고기 한 점을 집어, 조금씩 뜯어 맛보았다. 과연 질기기 짝이 없었다. 엄청 늙은 닭이었다. 주변의 사람들은 그것도 좋다고 마구 먹고 있었지만.
“번역이나 문서 작성 같은 업무까지 위태로울지도……. 저만의 영역이 더 필요해요. 회계라도 건드려 봐야 하나.”
“기사 양반을 파산시킬 일 있냐?”
“절 도박에 빠뜨린 건 기사님과 아저씨를 포함한 악당들이거든요?”
“카드 게임에 졌을 뿐이잖아.”
“제 뒤에 점원을 두고 그 반응을 살펴 패를 파악한다는, 사악한 필승법 때문이죠! 회피하기는!”
카치운은 다시 낄낄 웃었다. 그는 자기 몫의 닭고기를 그릇에 덜면서 말했다.
“뭐, 너만의 영역이 더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한다.”
“그렇죠?”
“근데 그게 개인적인 친분관계까지 똑같아야 하거나 지지 않아야 한다는 건 아니야. 좀 다른 이야기지. 네가 이제까지 기사 양반을 따라다니면서 뭘 해냈는지 생각해 봐. 프리지아 학당 출신의 수재 여마법사는 드물잖아?”
“제가 한 거요? 최근에는 역배당으로 대폭동 일으킨 게 고작이네요. 역사도 짧은 학당인데요, 뭘.”
“중증이군.”
“그나마 기사님 바로 옆 방을 확보한 게 위안이 되네요. 확 저질러 버릴까 보다.”
“친분관계를 따라잡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
그때, 성벽 위에서 병사가 소리쳤다.
“사령관님이 돌아오셨다! 성문을 열어라!”
그 말과 함께 문이 열렸다. 에드워드와 한 무리의 병사들이 줄줄이 성벽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바로 옆에는 연금술사 미아 루이스가 바짝 붙어 있었다. 스텔라는 입을 삐죽였다.
“아주 달달하네. 훼방 좀 놔야지.”
“잘 해봐라.”
“제가 직접 할 건 아니에요. 다른 사람을 보내야지.”
스텔라는 카치운의 솥에서 닭고기 몇 점을 더 빼내 자기 그릇 위에 올리고는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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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라가 장전하여 쏘아보낸 다른 사람은 보급마차와 함께 온 지원군이었다. 그리고 베로니카가 따로 보낸 감시관이기도 했다. 자신의 집무실에서, 에드워드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자신의 눈앞에 당도한 여자를 보았다.
“올리비아 경.”
“에드워드 경.”
성묘수호기사단의 하얀 서코트를 걸친 여기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사고치셨더군요. 아아, 공주님의 가련한 심신을 짐승처럼 농락하다니…….”
“아니, 걔야말로 내가 본 여자들 중에 제일로 짐승 같았…….”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올리비아는 단호하게 그의 헛소리를 잘라냈다. 에드워드는 껄끄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베로니카가 보냈어?”
“공주님은 훌륭한 사제이기도 하셨죠. 그런 분이 당분간 에드워드 경과 떨어지게 되셨으니, 혹시나 빛의 주문이 부족한 일은 없을까 걱정하셨던 겁니다. 그래서 사제인 제가 왔지요.”
“너 주문 몇 개까지 축적이 가능한데?”
“두 개입니다.”
“교리와 이단과 괴물에 대한 지식은?”
“사제 양성과정은 물론 성묘수호기사단에서도 배우는 것이지요!”
“어느 대학 나왔는데?”
“전 대학 아니라 주교님 아래서 배운 경우입니다.”
주문의 축적 개수야 노력으로 어떻게 되는 문제는 아니지만, 나머지 분야에서 대학 나온 사제들보다는 아무래도 역량 부족. 사실 대학 나온 사람이 더 드물고, 올리비아처럼 주교 아래에서 배우는 게 보통인 판이다. 에드워드는 뒤통수를 긁적였다.
“뭐, 사제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긴 하지.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어. 식사부터 해.”
“당신은 안 먹을 겁니까? 공주님이 보낸 겁니다.”
“먹어야지. 근데 일 좀 처리하고. 그리고 난 질긴 거 싫어해서 조금이라도 더 익히려는 생각도 있고.”
“공주님이 직접 내린 하사품이니 혹여 먹지도 않는 일은 없길 바랍니다.”
“먹어야지. 마누라님의 내조인데.”
올리비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직 확정은 아닙니다.”
“확정이라고 보는데.”
“설령 확정이어도, 당신의 역할은 종마에 그칠 수도 있지요. 앞으로 잘 하셔야 할 겁니다.”
에드워드는 웃어버렸다.
“아이고, 무서워라.”
올리비아는 그를 흘겨본 다음, 말을 이었다.
“저는 이번 하사품의 호위와, 에드워드 경에 대한 감시와, 지원을 목적으로 파견된 것이니 적어도 이 세 분야에서는 양보가 없을 줄 아십시오.”
“감시라. 어떤 감시인데? 내가 태업하느냐 안 하느냐 그런 걸 보러 온 건 아닌 것 같은데.”
“여자 문제겠죠.”
헬레나의 말이었다. 그녀는 미아를 힐끗거렸다.
“공주님이 세번째 부인에 대한 문제는 꽤 신경 쓰실 테니까요.”
미아는 어깨를 으쓱했다.
“귀족여성이어야 말이죠. 그나저나 기사님도 대단하시네. 공주님을 꼬시다니. 그 사제님이 공주님이었다는 것만큼이나 놀라운 이야기예요. 저와 만났을 때는 서로 티격태격만 하시더니.”
“그간 일이 좀 많았어.”
“하긴, 그렇겠죠.”
올리비아의 눈길이 미아를 향했다. 그녀의 질문은 직설적이었다.
“연금술사는 지금 연인이 있습니까?”
“없습니다만.”
에드워드와 대화할 때와 다르게 딱딱한 말투의 대답이었다. 질문이 하나 더 이어졌다.
“앞으로 결혼할 계획은?”
“학문하는 여자들이나 수도생활하는 여자들이나, 쉽게 결혼합니까?”
올리비아의 신분은 수도사이자 사제이며 기사. 수도사가 결혼하려면 환속해야 한다. 질문을 되돌려준 셈이었다. 올리비아는 결혼하지 않는 여성에 대한 경멸을 드러내지 않았다. 다만 다른 의미의 말을 뱉었다.
“뭔가에 전념한다는 건 같지만, 제게 있어 남녀관계는 일탈이겠지요.”
같은 취급을 하지 말란 뜻이었다. 미아와 올리비아 사이에 냉전 기류가 흐르자 에드워드가 다시 나섰다.
“그나저나 저 닭들 말인데, 왜 저리 많아? 번데기 때문에 그래?”
다행히 올리비아는 넘어가줬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있지만,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인근 도시들에 멋진 닭 키우기 경쟁이 붙었죠.”
“응? 멋진 닭?”
“잘 키우면 멋있는 새 중 하나긴 하거든요.”
식용으로 쓸 때는 별 의미가 없지만, 큰 볏과 깃털은 분명 매력요소긴 했다. 에드워드는 그 말에서 한가지 상황을 더 파악했다.
“그 닭들을 공주님이 전부 사들였다? 내가 걔 아는데, 보통 짠돌이가 아니거든? 절대 비싸게 주고 샀을 것 같지는 않은데?”
올리비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주 싸게 사셨죠. 유행이 끝나면서 애완용 닭들의 가치가 대폭락했거든요. 지금 인근 도시들은 닭모이로 소모되어 가득 올라간 곡물값과, 반대로 값이 폭락한 닭들의 시체와, 재산이 증발해 거지꼴로 전락하는 사람들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에드워드는 스텔라를 돌아봤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같은데.”
“인간의 욕심이 거기서 거기 아니겠어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스텔라가 할 말 같지는 않지만. 에드워드는 다시 올리비아를 보았다.
“예나 지금이나 군대 식재료는 폭락한 놈이 들어가는군.”
“어쨌거나 왕실의 하사품이니, 도살하기도 전에 죽어 폐기하는 일은 가급적 줄이셔야 할 겁니다.”
“어쨌거나 고기니까, 그럴 일은 없을 거다. 여기 사내놈이 몇인데. 계속 늘어나고 있고.”
“그렇겠죠. 남은 닭들을 연명시키기 위해, 성 안의 곡물을 약간 써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해. 그 정도 여유는 있으니까.”
“감사합니다.”
올리비아는 짧은 감사인사를 남기고 방을 나갔다. 에드워드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거나 고기지.”
“붉은 고기는 아니지만요.”
헬레나의 말이었다. 소와 돼지고기는 붉은 고기, 닭고기 등 새고기는 하얀 고기. 용맹을 상징하는 건 피와 같은 붉은 색이며, 그 용맹을 충전해주는 것도 붉은 고기로 간주된다. 하얀 고기는 그런 이미지가 약해서, 인기로는 그 다음 순위. 에드워드는 피식 웃었다.
“여기까지 오는 순례자들과 병사들은 굶주린 인간들이라서 별 문제 없을 거야. 정 다 못먹겠다 싶으면 근처 마을에다 내다 팔지 뭐.”
“공주님의 하사품을요?”
“현금화하거나 다른 식품으로 바꿔먹지 말란 말은 없었잖아. 폐사한 건 경비견들 먹이로나 던져주면 될 테고. 어차피 계속 이어질 풍요도 아닌데 좀 즐기지, 뭐.”
에드워드는 주변의 여자들을 돌아봤다.
“다들 아직 식사 안 했어? 같이들 먹지. 먹으면서 할 얘기도 좀 있고.”
스텔라는 식은 닭고기가 든 그릇들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야기가 길어져서 식었네요. 뭐, 계속 오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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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진동하는 닭장 냄새 속에서 에드워드는 자신의 판단착오를 겸허히 인정해야 했다.
“시발.”
그의 앞에는 새로 도착한 기사들과 함께, 먼저 온 것보다 많으면 많았지 결코 적지 않은 수의 닭장들이 쌓여 있었다. 선두에 선 자들은 ‘옛 검의 3기사’들이었다.
“시오니아 국왕 폐하의 명으로 그 분의 은혜를 전하는 바…… 잉? 닭이 이미 와 있어?”
어딘가 멍청하게 들리는 소리였다. 에드워드는 자기 뒤의 부하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요새사령관배 닭고기 요리 경진대회 연다. 목표는 전량소모.”
“어, 저기 사령관님?”
“왜?”
“또 오는데요?”
다음 마차 행렬은 도시 문장을 건 깃발들이었다. 그 위에 그득그득 쌓인 닭장들을 보고 에드워드는 다시 중얼거렸다.
“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