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55)
255화 계판(1)
요새 아성의 홀에 모인 기사들과 사관들은 다들 굳은 얼굴로 수군거렸다. 그들은 분명 병사들에 비해 비교적 식단의 폭이 넓고 조미료와 향신료를 좀 더 여유롭게 쓸 수 있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냄새만 맡아도 토할 것 같은 닭국물의 향연은 그들에게도 재난이었다.
“돼지고기가 이젠 웃돈 주고도 못 구할 판이라고…….”
“도시들은 진즉 조미료와 향신료 가격이 연일 뛰어서…….”
“연료값은 또 어떻고…….”
닭고기를 보다 다양하게 소모하기 위한 여타 식재료, 조미료, 향신료, 그리고 연료는 무제한으로 공급되는 게 아니었다. 그것들이 바닥나기 시작하는 순간, 그들에게 남는 건 약한 불에 오래오래 끓인 무제한 닭고기 수프뿐이었다. 악순환의 고리.
에드워드는 잠시 그들이 멋대로 수군거리게 냅두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사령관에게 이 사태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고기가 너무 많이 배급된다고 불만이 나온다는 것도 웃기는 일이지만,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말란 법도 없다.
“폭식과 육식이 기사의 미덕이라고는 합니다만, 이렇게 질리기는 처음입니다. 역시 붉은 고기가 아니라 하얀 고기인 게 문제일까요?”
“양이 제일 문제지요. 한 명당 한 끼에 열두 마리씩 엿새라니, 돌았지…… 후보생 시절도 아닌데.”
품종개량의 역사가 미비해서 덩치가 작은 닭이라 할지라도 삼십 마리 이상은 만만찮은 양이었다. 게다가 잔뜩 늙어서 질기기 짝이 없는. 그리고 ‘그것만’ 먹어야 하는 상황.
“우린 닭을 전달하러 왔을 뿐인데.”
“도망치긴 이미 늦었어…….”
‘옛 검의 3기사’ 중 하겐과 발터의 말이었다. 시구르드는 눈을 감은 채 명상하는 듯 아무 말도 없었다. 에드워드는 스텔라가 겨우 끌어낸 헬레나의 입장까지 확인한 다음, 입을 열었다.
“기사와 사관 여러분, 단조롭고 괴로운 식단과 악성재고는 이미 요새의 전투력을 깎아먹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눈빛이 죄다 에드워드에게 박혔다. 에드워드는 침을 꿀꺽 삼킨 다음, 말을 이었다.
“불행히도 다 먹는다는 것 외의 선택지는 하나같이 만만찮은 단점들이 있어 선택을 할 수 없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방법은 비상수단뿐이며, 나는 이걸 택할 준비가 기꺼이 되어 있다.”
“전부 묻어버립니까?”
한 기사의 질문이었다. 다들 그 말에 눈빛이 반짝였지만, 에드워드는 고개를 저었다.
“조금이라도 더 유용하게 써야 한다는 압박이 존재하는 한, 그럴 순 없다.”
“그럼 말씀하신 비상수단이란 건 대체?”
에드워드는 잠시 뜸을 들이다 말했다.
“오크들의 돼지와 우리 닭을 교환한다.”
좌중침묵. 잠시 뒤 기사들은 서로를 돌아보았다.
“오크? 강 한복판에 박힌 그 오크들?”
“그놈들의 돼지가 탐나긴 하지…….”
“하지만 밀수잖아, 그거…….”
에드워드는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제압하기 위해 바로 말을 이었다.
“이미 제안은 적측에 도달했으며, 적의 답장도 도착했다. 양측의 요새를 오가는 간첩이 다리를 놨지.”
에드워드는 문자가 개발새발 쓰여진 나무껍질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어린애 낙서처럼 보였지만, 문구 하나하나는 오크치곤 예의 바른 답장이었다.
[물건 잘 받았다. 회담 제안을 수락한다. 중간에서 만나자. 일시를 답장 달라.>에드워드는 그 나무껍질을 대충 말아 구석에 내던지고는 말했다.
“이것은 양측 지휘관의 정식회담이고, 오가는 선물은 전부 정보활동에 쓰이는 것으로 회계처리되며, 물자교환이라는 것 외의 자세한 회담 내용은 비공개로 한다.”
닭들을 전부 오크 새끼들한테 떠넘길 것이다. 에드워드의 말은 모두에게 그렇게 들렸다. 한 기사가 손을 들어 질문했다.
“놈들이 매복하거나 함정을 파면 어떻게 합니까?”
“가능성이 높다곤 생각하지 않지만, 그 경우를 대비해 전투태세를 강화할 것이다. 회담이 유혈사태로 끝난다면 양측의 지원군이 모두 뛰쳐나와 육박전을 벌이게 되겠지. 만에 하나 놈들이 자기들 요새로 후퇴한다면, 절대 명령없이 쫓아가지 말 것. 목책 사이에 가려진 함정이 있다.”
“젠장. 역시. 거기만 목책이 허술한 게 어딘가 어색하더라니.”
옛 검 연구가 하겐이 욕설을 중얼거렸다. 사악한 요정을 베는 검의 소유자, 발터는 자기 턱을 쓰다듬었다.
“일단 목책 안으로 들어가지만 않으면 된다는 건가?”
“들어가는 옵션을 완전히 배제하진 않겠다. 함정은 구덩이 형태라니까, 그걸 메울 수단만 준비할 수 있으면 어떻게든 되겠지.”
“뭘로 메울 거요?”
에드워드는 그 질문에 자기 주먹을 들어보였다.
“방법이 다 있지.”
괴력의 존재를 아는 에드워드 일행들은 피식 웃어버렸다. 기사들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깊이 묻지는 않았다.
요새공략보다는 저 끔찍한 닭대가리들을 치우는 게 그들의 희망사항에 더 걸맞기 때문이었다.
“뭐 어쨌거나, 이 작전에는 각별히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선결조건이 많으니. 우선 귀찮은 감시자들을 치워야 하는데…….”
에드워드는 ‘옛 검의 3기사’한테로 시선을 돌렸다.
“계속 닭 드실 텐가?”
“전혀.”
“뭘 하든 난 못 본 거요.”
“사령관 권한의 정당한 행사요.”
3기사는 각자 전력으로 거부했다. 말이 통하는 자들. 에드워드는 미소를 지었다.
“다른 분들은? 동의하지? 좋군. 이제 남은 감시자는 올리비아 경뿐인데.”
그제야 사람들은 다들 올리비아가 자리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로의 사이를 어지러이 오가는 눈빛들을 보면서, 에드워드가 말했다.
“걔는 설득불가 철벽 수도녀이므로 포기한다. 딴 곳으로 보내서 뺑이치게…….”
“다 들었거든요!”
쿠웅!
문이 벌컥 열리면서 올리비아가 홀로 뛰어들었다. 그녀는 에드워드의 멱살을 잡을 기세로 달려왔으나, 연금술사 겸 여기사 미아와 엘프 여전사 헬레나에게 가로막혀 분을 삭혀야 했다.
“기사들을 모아서 무슨 작당을 하나 했더니, 한다는 짓이 고작 밀무역입니까!”
“쳇.”
에드워드는 짧은 불평을 드러냈다. 모인 기사들은 다들 닭똥 씹은 표정으로 수도녀를 바라보았다.
“젠장…….”
한 기사가 조용히 욕설을 읊는 순간 올리비아는 다시 폭발했다.
“공주님의 부군 되실 분이 아무리 사사롭다 하나 악을 행하려 하시다니요! 필요악이라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법의 정의가 살아 있으며, 빛께서 굽어 살피사……!”
그 순간, 고소한 냄새가 올리비아의 입을 틀어막았다. 냄새의 출처는 돼지기름이었다. 소금에 절여놓은 비계 한 조각을 단검 끝에 꽂아 촛불에 들이댄 자, 카치운은 올리비아의 침묵을 비웃었다.
“방금 침 삼켰지?”
올리비아가 부정 못하는 순간, 에드워드는 기습을 걸었다.
“야, 쟤 잡아!”
그 순간 수많은 사람들의 손이 올리비아에게 달려들어 그녀의 팔과 어깨를 붙잡았다. 그 중에는 헬레나도 있었다. 그 완력들 때문에 올리비아는 꼼짝달싹도 못한 채 구속되었다.
“뭐, 뭐하는 짓들입니까!”
“후후후, 입으로는 싫다고 하지만 몸은 정직하군!”
“그거 그럴 때 쓰는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만!”
눈이 돌아간 기사들은 항변을 무시하고 밧줄을 꺼내 그녀를 묶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포로 꼴이 된 올리비아를 보고 에드워드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법? 베르세바 국법은 조까고 공주님 납치하려 한 주제에 어디서 혓바닥을 놀려?”
“저는 시오니아인이므로……!”
“알아. 그리고 난 앵글리아인이다.”
에드워드는 냉정한 명령을 내렸다.
“성묘수호기사단원께서 수행 중 잠시 이성을 잃으셨다. 가둬.”
“옙!”
몇몇 기사들이 올리비아를 끌고 나갔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코너를 돌아 사라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미아가 걱정스레 말했다.
“뒷일은 어쩌죠?”
“뭘 걱정해?”
에드워드는 어깨를 으쓱였다.
“일 다 끝나거든 입 속에 안심살 스테이크와 갈비짝을 처박아주면 돼. 내일은 다 같이 공범이야.”
미아는 에드워드를 흘겨보았다.
“그런 건 안 변하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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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와 요새의 중간지대. 가능하면 자기 요새에서 가까운 곳 내지는 정확히 반절인 곳이 베스트일 것이다. 그러나 기준과 약속은 통상 눈에 띄는 지형지물을 표식으로 삼기 마련이다.
회담 장소는 양쪽이 다 파괴하거나 옮기지 못한 큼직한 바위덩어리 앞으로 결정되었다. 소금산에서 온 순례자, 족제비는 연신 요새와 요새 사이의 거리를 재보았다.
“여기가 우리 요새랑 더 가까운 거 맞나, 긴가 민가…….”
“더 가까워.”
에드워드가 단정적으로 말했다. 그러나 족제비는 쉽게 믿지 않았다. 사실 에드워드도 확신은 못했다.
“도망칠 생각부터 하지 마요. 닭들한테 돌아가는 꼴밖에 안 되니.”
미아가 경고했다. 에드워드는 요새밖이지만 좀 더 떨어진 후방에 멈춰선 채 대기중인 여자들로 시선을 돌렸다. 여차하면 회담하러 나온 사람들에게 달려올 자들이었다. 여전사 헬레나, 여마법사 스텔라, 그리고 족제비네 아내 등.
“너도 좀 물러서 있지?”
“그래도 명색이 기사인데요.”
“헬레나는 싸울 줄 몰라서 물러나 있는 게 아니야. 마법사를 지키려고 그러는 거지.”
“제 한 몸 정도는 지킬 수 있어요.”
“그새 뭐 좀 배우기라도 했나 보네? 그래도 오크 새끼들은 다 변태 새끼들이라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미아는 피식 웃었다.
“기사님 곁에 있는 것보다야 덜 힘들 것 같긴 하네요. 공주님에 엘프님까지,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예요?”
“이야기가 좀 길어…….”
“여마법사님은 아예 투리치 시 악마소동 때 만나셨다 그러고.”
“정확히는 악마소동 전의 일인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뜸을 들이던 오크 지휘관놈이 목책 문을 열고 나타났다. 에드워드 옆에 있던 옛 검 연구가 하겐이 투덜거렸다.
“망할 놈. 일부러 늑장 피운 거요.”
“나도 늑장 피웠소. 생각하는 건 똑같지.”
불편한 관계끼리의 회담은 상대방을 기다리게 하는 것으로 기선제압을 시도하는 게 흔하다.
열 명이 안 되는 무리의 오크들이 뗏목에 올랐는데, 인간 노예 넷이 동행한 참이었다. 에드워드는 그들이 무릎보다는 얕은 강에 뛰어드는 걸 보았다.
“뭐하는겨?”
“뗏목을 끄는 겁니다. 오크들은 발에 물 적시기 싫다 이거죠.”
부사관의 말이었다. 에드워드는 그 노예들 중 이중간첩을 발견했다. 과연 그 넷은 뗏목 한 귀퉁이씩을 잡고 밧줄로 몸을 엮더니 뗏목을 끌기 시작했다.
인간노예를 부리는 오크들은 위풍당당한 승전 기념식인마냥 강을 건넜다.
“새끼들.”
에드워드는 쓴웃음을 지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오크 지휘관은 에드워드 앞에 도착하자마자, 폭탄선언을 던졌다.
“네가 보낸 평화세는 잘 받았다!”
평화세. 공격하지 않는 대가로 지불하는 세금. 밀수와 마찬가지로, 현지 사령관이 필요하면 어둠의 세력에게 평화세를 납부하는 걸 결단하는 예도 있다.
문제는 에드워드가 절대로 ‘평화세’의 의미로 닭들을 보낸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뭐?”
에드워드의 입가가 씰룩거렸다. 오크 지휘관놈은 콧김을 내뿜었다.
“앞으로 더 많은 닭들을 보내도 좋다! 답례로 돼지 한 마리를 보내지!”
어둠의 세력 중에도 이런 날강도 새끼는 많지 않았다. 회담이랍시고 서로 선물을 주고 받게 되면 오히려 세를 과시한다며 출혈지출을 감수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겨우 돼지 한 마리.
“굉장히 인색하군. 그리고 나는 평화세를 납부하려는 게 아니라 물물교환을 원하는데.”
그것만큼은 물러설 수 없었다. 최소한 받아가는 게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비슷한 전력의 오크들을 상대로 평화세를 납부했다는 이야기가 돌면 동정론도 못 받는다. 비난을 받으면 받았지.
무엇보다도, 기사가 약한 티를 낼 수는 없다.
오크지휘관은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그는 에드워드 앞으로 좀 더 나서며 가슴을 폈다.
“그럼 그 닭들 너희들이 다 먹던가!”
에드워드는 씩 웃으며 오크들 어깨 너머 뗏목 근처에 있는 이중간첩을 쏘아보았는데, 그는 약하게 고개를 저었다.
거짓인지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하나뿐이다. 이 새끼들이 눈치를 깠다.
오크는 쓸데없이 주절거리기 시작했다.
“난 시오니아 놈들이 세를 과시하려는 속셈에는 안 넘어간다. 이 지역의 신임 사령관께서는 주술사 왕의 영도를 받아…….”
오래 들을 것도 없었다. 에드워드는 여전히 웃는 낯으로, 그러나 누구보다 빠르게 검을 뽑았다. 그리고 오크 지휘관이 반응하기 전에, 그의 정수리를 내리쳤다. 콰직!
“끄륵?!”
오크 지휘관은 자기 무기를 반쯤 들어올린 상태로 절명했다.
좌중 침묵 상태. 이미 에드워드가 몰렸다고 생각한 오크들은 경악했고, 주변의 기사들도 깜짝 놀랐다.
서로의 무기가 뽑히자 에드워드가 소리쳤다.
“조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