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56)
256화 계판(2)
푸른바위거성의 신병 족제비는 울부짖으면서 ‘협상결렬, 즉시 군사행동’의 신호로 정한 붉은 기를 꺼내 흔들었다.
“협상 망했다!”
결과가 절망으로, 절망이 분노로 바뀌는 데는 몇 초면 충분했다. 요새의 기사들과 병사들은 분노해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들의 손에는 닭과 닭장들이 잔뜩 들려 있었다. 외바퀴 손수레에 닭장들을 잔뜩 올려놓은 잡역부도 있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사람들은 밀무역이 과연 옳은 일인지, 협상이 왜 파토가 났는지, 예상과 달리 에드워드가 먼저 검을 뽑는 일이 왜 벌어졌는지 관심이 없었다. 특히 마지막을 관측할 만한 상태도 아니었고. 그저 닭고기가 사라지느냐 마느냐 그것만이 중요했다.
관측할 수 있는 사람들은 입을 다물거나 왜곡에 나섰다.
“놈들이 칼을 뽑았어!”
가르달이 고함을 질렀다. 누가 먼저 뽑았냐는 안 말했다. 드워프 상인의 신뢰도를 지킨 그는 직접 악성재고를 짊어진 노새를 끌고 나섰다. 원래는 그의 간이 대장간을 끌고 다니던 놈이었다. 그 등에 쌓인 닭장들은 무게보다 부피 때문에 무지막지한 높이를 자랑했다.
움직이는 닭장의 산.
“꼭꼭! 꼬끼오!”
화들짝 놀란 닭들의 합창이 여기저기서 시작되자 기괴한 광경이 만들어졌다. 순식간에 지휘관을 잃은 오크들은 빠르게 전의를 상실했다.
그들의 대장은 가장 똑똑한 오크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가장 강한 오크인 게 필수조건이었다. 아무리 기습이라지만, 대장보다 더 빠르게 검을 뽑는 인간 기사는 분명 강한 놈이다.
그런 기사가 기습을 걸었으며, 뒤에서는 마법사가 뭔가 생각보다 큰 규모의 주문을 만들고 있고, 그녀 옆에 있던 엘프 여전사는 무지막지한 글레이브를 휘두르며 달려오는데, 더 뒤에서는 미치광이가 된 병사들이 산더미 같은 닭장들을 들고 몰려온다. 사실 그게 닭장이 맞는지도 확신이 안 들었다. 그냥 크고 소란스럽고 끔찍해보이는 무언가라는 것만이 확실했다.
그리고 자기들 뒤에는 일단 ‘안전해보이는 목책’이 있다.
“도망쳐!”
오크답지 않은 선택지였지만 납득이 안 가는 선택지도 아니었다.
에드워드는 중고거래에서 어처구니 없는 진상을 만났을 때, 택배로 받은 물건이 사기에 가깝거나 사기가 맞았을 때, 군복무중 이북 김씨 정권의 갑작스런 대남도발로 휴가가 날아갔을 때만큼 격노했다.
“돌격!”
그의 고함은 결정적으로 오크들의 전의를 증발시켰다.
“으아아아, 비켜!”
오크들은 앞뒤를 다투며 뗏목 위로 뛰어올랐다. 어떤 오크는 뗏목을 출발시키는 시간도 아까워서 그냥 차디찬 강물에 뛰어들었다. 얼음 위로 오르다 도로 미끄러져 풍덩 빠지는 등 몸개그를 남발하기도 했다.
인간 노예들은 가지각색이었다. 이때가 기회다 싶었는지 무릎 꿇은 자도 있었고, 오크들과 마찬가지 방향으로 도망치는 자도 있었다. 이중간첩은 후자였다.
에드워드는 그것에 신경쓰지 않았다. 그는 아직도 뗏목에 집착하는 근시안적 오크의 뒤통수를 까며 소리쳤다.
“몰아붙여! 목책까지 간다!”
콰르르르릉!
새하얀 번갯불이 강물로 튀면서 물 속의 오크들이 전부 나자빠졌다. 간신히 주문을 완성한 스텔라가 소리쳤다.
“뗏목에 타요!”
오크들이 밀어내던 뗏목은 에드워드네 후속주자들이 차지했으며 곧 닭장과 병사들을 실었다. 에드워드 등 출발이 더 빨랐거나, 짐이 가볍거나, 성미가 더 급한 사람들은 직접 얼음물로 뛰어들었다. 가르달의 노새나 사람들의 외바퀴 수레는 차가운 강물에 처박히며 끔찍한 소리를 냈다.
에드워드의 부대가 강을 건너는 바로 그때, 오크 요새에서 수많은 돌멩이들이 날아왔다.
“투석기다!”
한 병사가 소리쳤다. 겨우 서른에서 마흔 남짓한 오크가 이 정도 양의 돌멩이들을, 한꺼번에 이 정도 거리까지 던지는 건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여러 개의 돌멩이를 장전해둔 투석기 다수가 있는 게 분명했다. 어떤 돌멩이는 닭장을 직격했고, 어떤 돌멩이는 방패에 맞았으며, 또 어떤 돌멩이는 얼음 위를 튕겨 다니다 병사를 덮쳤다.
에드워드는 옛날에 본 어느 전쟁영화를 떠올렸다. 요새에서 쏟아지는 탄환, 첨벙이는 물, 장애물, 비명…… 물론 그 영화 속 광경에 비하면 지금은 애교나 다름 없는 수준이지만.
“그럼 쟤들은 무기를 아예 안 준비했을 줄 알았냐? 달려! 어차피 투석기는 장전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 말이 맞았다. 오크들의 인력식 투석기들은 아무리 간단한 과정을 거친다 해도 도로 장전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목책에 달려가야 하는 오크가 점점 더 많아지면, 투석기에 붙는 오크의 숫자는 더 줄어든다. 당연히 투척물의 중량은 더 줄고, 사격 속도는 더 느려진다.
그저 돌격만이 답.
바깥에 나와 있던 마지막에서 두 번째 오크가 목책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문이 닫혔다. 마지막 오크는 목책측 강변에서 카치운의 화살을 맞고 쓰러져 몸부림치다 헬레나의 글레이브에 등을 찍혔다. 콰직!
에드워드의 부대는 그렇게 강을 건넜다. 얼음물도, 쏟아지는 돌멩이들도, 조준해서 쏴대는 화살들도 그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들에겐 닭이 있으니까.
땡!
금속성 소리가 울리면서 새하얀 연기가 치솟기 시작했다. 연금술사 미아는 자신이 준비한 연막탄들을 마구 목책 앞 장애물에 내던졌다. 구멍낸 금속통이나 나무통 안에 초석, 설탕, 염료 따위를 조합하고 심지를 꽂은 그것들은 형형색색의 연기를 맹렬하게 내뿜었다.
“연막친 곳으로!”
“야, 이 개새끼들아아아아아!”
에드워드는 목책의 장애물을 향해 달려갔다. 그가 목책에 달라붙는 순간 오크들의 쇠뇌가 그를 노렸지만, 카치운이 적절히 저격하면서 모든 방해를 저지했다.
“끝장내버려!”
카치운도 악에 받친 목소리로 외쳤다. 그 순간 에드워드는 장애물을 통째로 ‘들어올렸다’. 당황한 오크들의 비명이 이어졌다.
“놈이다! 괴물 손아귀의 붉은 기사!”
“손아귀 힘만 주의하면 된다며!”
오크 놈들의 새 사령관이 제법 많은 정보를 제공한 모양이었지만, 에드워드는 손아귀힘만으로도 뭔가를 밀어내는 식의 응용이 가능할 정도로 훈련이 된 상태였다. 여행 시작하자마자 베로니카한테 굴렀고, 순례길 내내 이것저것 해볼 일이 많았으니.
그는 손가락을 모두 펼쳐 까딱거리는 것만으로도 장애물 뭉치를 굴려버렸고, 그 장애물들은 오크들이 파놓았던 깊고 깊은 구덩이에 처박혀버렸다. 우지끈! 그러나 오크들은 아주 멍청하지 않았고, 구덩이는 장애물 모두를 합친 것보다 더 깊었다. 아직 해자 정도의 기능은 할 수 있는 상태.
“비켜어어어어어어!”
가르달의 노새가 급커브를 돌았다. 그러나 노새는 불행히도 관성을 못 이기고 옆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노새는 산더미 같은 닭장과 함께 함정으로 뛰어들었고, 뒤이어 손수레들이 도착했다.
“다 처넣어!”
우지끈, 쿵쾅! 쏟아지는 화살과 돌멩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닭장들이 쇄도했다. 나무 닭장은 훌륭한 방패이기도 했다. 어떤 병사들은 아직 살아있는 닭을 붙잡아 오크들에게 집어던지기까지 했다. 예상 못한 투척물에 목책 안 오크들은 기절할 듯이 놀랐고, 그 숫자가 무식하게 늘어나자 공포감까지 느꼈다.
“좀 가져가라고! 돼지 내놔!”
리안나까지 달려와 소리치기 시작했다. 평소엔 나약하기 짝이 없는 요정이지만, 지금 오크 요새는 ‘이 자리에 있으면 안 되는 것’ 모두에 공포심을 드러낼 준비가 충분히 된 상태였다. 정예의 상징인 금이빨마저 리안나와 얼굴을 마주한 채 같이 비명을 지르다 졸도할 지경이었으니.
이젠 오크 요새도 닭으로 넘쳐나기 시작했다.
“같이 죽자, 십새끼들아!”
에드워드가 소리쳤다. 이에 한 금이빨 놈이 ‘오크가 하기에 가장 안 어울리는 말 올해의 베스트 10’에 들 정도로 오크답지 않은 말을 꺼냈다.
“야! 이거 동물학대야!”
에드워드는 시대와 상황과 종족에 맞지 않게 조금 더 살짝 나간 그 똑똑한 금이빨을 칭찬해줬다. 검으로.
콰직!
에드워드는 놈의 어깨죽지를 검으로 내려쳐 쓰러뜨렸다. 오크의 비명은 애처로울 지경이었고 곧 정신나간 닭들이 그의 가슴팍 위를 밟으며 내달렸다. 날카로운 닭 발톱 아래에서 오크는 한번 더, 더욱 애처롭게 항변했다.
“이런 싸움이 어디 있어……!”
이번엔 에드워드도 반박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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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장을 처넣어 구덩이를 메꾸자는 제안은 사실 불안요소가 너무 많았다. 절충해서 놈들의 장애물까지 한꺼번에 넣기로 했지만, 그래도 마찬가지였다. 닭장은 가벼운 것, 무거운 것, 큰 것, 작은 것이 마구 섞여 있었고 닭은 아예 부드러운 생물이었다. 그것도 깃털 때문에 원래 부피보다 더 커보이는 생물. 아무리 처넣어도 사람의 무게를 버틸 수 있을 것인지는 미지수였다.
그러나 오히려 그게 인간들의 광기에 불을 붙였다.
“다 넣으면 되잖아! 유용하게 잘 썼네!”
족제비가 괴성을 지르면서 마지막 닭장을 구덩이에 던져 넣었다. 전투가 끝난 뒤인지라 엄밀히 말하면 ‘낭비’였지만 아무도 거기 태클을 걸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이중간첩의 멱살을 잡아 들어올렸다.
“야, 임마. 투석기 있다고 미리 알려줬어야지.”
“죄송합니다. 그게, 놈들이 어제 갑자기 조립해놓은 거라서…….”
실갱이를 벌이던 와중, 에드워드는 그의 뒤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에 멱살을 놓았다.
콰직!
“응?”
이중간첩의 뒤에는 작은 오두막이 있었는데, 오크 지휘관이 머무는 본채의 별채쯤 되는 장소였다. 그 문을 열어보자, 죽어 널부러진 새끼 오크들이 보였다. 에드워드는 그것들이 왜 죽었는지도 알아챘다.
“어, 음.”
에드워드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여자 노예들이 돌멩이나 바위를 집어들어 오크들의 머리통을 내리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기들이 낳은 것이어도 용서가 없었다. 여자들의 울부짖음은 분노와 혐오로 가득했다.
“바깥은 반쯤 희극이고…… 이 안은 뭐라고 해야 하지? 비극?”
“더러운 것들을 없애는 건 비극이라고 안 하죠.”
뒤이어 들어온 연금술사의 말이었다.
“어차피 오크놈들의 씨는 혼혈을 만드는 게 아니라 그냥 모체만 빌려 쓰는 거란 설도 있으니까요.”
“아, 그거. 나도 알아. 투리치 시의 교수한테서 들었어.”
“박식해지셨네요. 곤충만 잘 아시는 줄 알았더니. 그것도 순례의 성과려나요?”
“글쎄…….”
마지막 피바람이 한바탕 분 뒤, 한 여자가 달려와 에드워드를 지나치더니 이중간첩의 품에 뛰어들었다. 펑펑 우는 그녀를 보고 에드워드는 뒤통수를 한번 긁적인 다음 나왔다. 그는 주변 부하들에게 물었다.
“남은 닭고기들은 어쨌어?”
족제비가 바로 반응했다.
“지금 가져오고 있습니다. 다 구덩이에 던져 넣을깝쇼?”
“전투 끝났잖아. 더는 안 돼. 가져와서 해방노예들에게 먹여.”
“아, 그 수가 있군요! 그런데 너무 굶은 사람들은 갑자기 고기 먹으면 큰일난다는데요.”
“오크들이 그 정도로 굶기며 일 시키지는 않은 것 같던데. 미아, 사람들 상태 좀 봐줄 수 있어?”
“그러죠.”
“좋아.”
대충 뒷수습을 하던 중, 헬레나가 천쪼가리 하나를 들고 에드워드에게 다가왔다.
“첫 점령지에 걸 깃발을 가져왔어요.”
첫 점령지. 에드워드는 씩 웃으면서 그 깃발을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그녀가 펼쳐 보인 깃발은 시오니아 왕국 깃발이 아니었다. 교회 깃발도 아니었다. 에드워드는 오랜만에 보는 그 문장에 눈을 가 늘게 떴다. 매듭 문장.
“이건…….”
“베로니카 공주님이 문장관을 통해 알아보셨다더군요. 당신 가문의 문장이라고. 가르달한테 만들어두라고 했다는데, 깜빡했다가 이제 전달하네요.”
클레어 가문의 문장.
“이거 내걸어도 되는 건가?”
“여긴 시오니아의 이름으로 점령된 곳이 아니에요. 당신 이름으로 점령된 곳이지. 당신의 첫 영토죠.”
그리고 헬레나는 목책의 동쪽 너머 드넓은 평야와 산을 가리켰다.
“그리고 저기까지 전부.”
아직은 예정이지만. 에드워드는 헬레나한테서 강한 압박을 느꼈다.
“열심히 할게.”
“당연히 그러셔야죠.”
에드워드는 그 땅에서 다시 깃발로 고개를 돌렸다. 남의 문장 아래 싸운 시간이 더 긴데다 가족에게 미련이 없어 전혀 쓰지 않던 문장이었다.
“내 가족 문장, 말이지.”
매듭 문장의 뜻은 종류에 따라 다양하지만, 일반적인 그 뜻은 결속과 결합.
에드워드는 오두막을 걸어나오는 부부를 힐끗 한 번 본 다음, 그 깃발을 헬레나에게 넘겼다.
“내걸어.”
헬레나는 냉큼 제일 높은 감시탑까지 올라가 깃발을 걸었다. 병사들이 환호성을 지르는 순간, 에드워드는 작게 중얼거렸다.
“결속과 결합이란 말이지.”
한참 감상에 빠져 있던 그 순간, 한 전령이 와서 새소식을 전했다.
“사령관님, 조만간 공주님이 방문하신답니다. 이번엔 직접 위문품을 갖고 오신다고…….”
에드워드는 제발 또 닭 갖고 오지 말라는 내용의 편지를 부리나케 써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