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58)
258화 부인의 권세(2)
스텔라는 숙취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미아의 공방을 찾아왔다. 미아의 방은 사실 공방이 아니라 그냥 ‘방’이었지만, 그녀가 만드는 약물과 도구들에 혹한 기사들은 그곳을 공방처럼 쓰는 데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았다. 반쯤은 약사, 반쯤은 의사의 영역에 발을 걸친 연금술사는 요새에 여러모로 유용한 존재였다.
좀 사무적이고 딱딱하며 원칙적이긴 했지만.
“숙취엔 설탕물 외의 답이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런 말 하지 말고 신약 좀 개발해봐요…….”
손님용 탁자 위에 엎어진 스텔라의 신음소리 섞인 요구였다. 미아는 덤덤히 말했다.
“기사님이랑 똑같은 말을 하시네요.”
요새에는 기사들이 여럿 있지만 미아가 지금 ‘기사님’이라 부르는 사람은 정황상 하나뿐이었다. 스텔라는 볼멘소리를 뱉었다.
“언니가 기사님한테 숨어들어가기 전마다 사람들에게 술 사주니까, 숙취가 떨어질 날이 없어요.”
“크흠! 노력해보죠.”
“아니면 언니가 기사님한테 숨어들어가는 날을 줄여요. 그냥 대놓고 들어가던가. 무슨 비밀연애도 아니고, 알 사람은 다 아는데..”
“밤은 적당히 소란스러워야 넘어가죠. 무식한 자들이 ‘배운 여자는 엉덩이가 가볍다’고 떠드는 건 피해야 안 되겠어요? 공식 정부가 되면 피할 길이 없겠지만, 그땐 그때고…….”
미아는 애매하고 얕은 웃음소릴 흘리면서 시선을 약솥으로 돌렸다.
“스텔라 양이야말로 대놓고 기사님의 정부가 될 거라고 말한다는 것 같은데.”
“맞아요. 여마법사는 엉덩이가 무거우나 가벼우나 욕 먹는 건 마찬가지니까요. 이미지가 연금술사보다 나쁘니. 기왕지사 욕 먹을 바엔, 늙은 악덕 고용주와 질투 많은 부인이 있는 영주성보다 우리 기사님의 일행이 더 낫다고 봐요. 최소한, 기사님은 제가 안 내키면 저한테 손 안 댈 분이란 게 가산점.”
“그렇군요.”
“뭐, 박사 학위를 딴 다음의 일이겠지만요.”
“그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나요?”
“있어요.남자들은 정부에 질리면 연금을 끊어요. 후원자들은 본전 뽑았다 싶으면 지원을 끊고요. 박사 되기도 전에 기사님한테 안겼다가, 그분이 저한테 흥미를 잃으면 어쩌겠어요? 제가 섣불리 안기고 나면, 남는 건 박사도 못 따고 결혼도 안 하고 정조도 없고 방탕한데 돈 없는 마법사 하나뿐이에요.”
“묘한 데서 기사님한테 신뢰가 없군요. 그분이 버리는 여자가 많았나 봐요?”
“글쎄…… 일단 제가 따라다니면서 기사님이 여자를 버리는 행동을 먼저 하는 걸 본 적은 없어요. 매춘부에게는 돈을 떼먹는 법이 없고, 여기저기서 스쳐지나갔다는 여자들에게도 돈이나 편지를 보냈고, 베니아의 요하나에게는 꼬박꼬박 연금도 보내주고…….”
“그럼 뭐가 문제죠?”
“제가 문제죠.”
스텔라는 쓴웃음을 지었다.
미아는 약솥에서 퍼낸 갈색 액체를 컵에 담고는, 커다란 싸구려 설탕 덩어리에서 설탕 한 조각을 떼어냈다. 그녀는 돌조각 같은 걸 컵에 넣어 한참 저은 뒤, 스텔라에게 내밀었다.
“어떤 게 문제죠?”
스텔라는 컵 가장자리를 물었다. 엄청나게 쓴 맛. 스텔라는 미간을 찌푸리고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말했다.
“베로니카 공주님은 신분부터가 하늘 위를 노는데, 탁월한 역량을 허락 받은 사제이기까지 하죠. 엘프님 역시 공주님한테 개길 만큼 오래된 씨족 출신에, 어디 내놔도 안 부족한 전사며, 그 육체미는 폭력적인 수준이고. 연금술사 언니는 평민 출신이라지만 꽤나 부유한 집안이죠? 이미 일정 수준 이상에 다다른 연금술사기도 하고. 어머나, 기사 작위까지 받으셨네. 다들 혼자서도 잘 사실 분들인데, 남자에게 선물까지 안겨줄 수 있네.”
“제 기사 타이틀은 작위보다는 직업에 더 가까울 것 같지만요.”
“어쨌거나요. 전 돈 한 푼 없고 박사 학위도 못 땄어요. 공주님처럼 높은 신분을 줄 수도 없고, 엘프님처럼 군대를 끌어와줄 수도 없죠. 하지만 수준 미달의 마법사는 비교적 흔하죠. 불안할 수밖에요. 하긴 그러니 유혹까지 해가면서 기사님한테 붙은 거지만.”
“태평하고 여유로운 척하시더니 속으론 고민이 많으시군요.”
“기사님의 색욕이라는 목줄이라도 쥐어야죠. 제 몸은 줄락말락 하면서, 다른 여자들을 틈틈이 부추겨 넣어드리는…….”
“목줄이라. 거꾸로 매인 쪽 같은데…….”
“여자의 권세도 여자의 가치라.”
스텔라는 컵 속의 약을 쭈욱 들이켰다. 그녀는 컵 바닥을 들여다보고는 콩알만큼 줄어든 설탕 조각을 입 안에 털어넣었다.
“크흐! 이거 안에 대체 뭘 넣은 거에요? 설탕을 물어도 쓰네.”
“실험물 19호, 식용가능…….”
“뭘 먹인 거예요?!”
“걱정 마요. 술 깨는 약 실험일 뿐이니까.”
“쿨럭! 오늘은 언니가 기사님 침실로 들어가면 엘프님한테 일러바칠 거예요! 그러고보니 오늘 엘프님네 동료들이 항구에 도착했다던데!”
스텔라는 쿨럭거리고 투덜거리길 번갈아 하면서 방을 나가버렸다. 미아는 약재주머니 더미 뒤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 죄 많은 기사님?”
“왜?”
에드워드가 대답했다. 미아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좋으시겠어요? 바짝 약이 오른 여자들이 기사님의 총애를 얻겠다고 알아서 선물들을 상납하는데.”
“좋다고만은 못하겠네…….”
에드워드는 옷을 차려 입으면서 더미 뒤를 나왔다. 미아는 스텔라에게 그랬듯 실험물 19호를 에드워드에게 한 컵 떠주며 말했다.
“한 잔 더 드시고, 그만 일하러 가시죠.”
사무적이고 딱딱하지만 단둘이 있을 때는 뜨거워지는 직장 동료 같은 느낌. 에드워드는 웃으면서 그 컵을 받았다.
“쓰네, 이거.”
#
아르데니아의 엘프 지원군은 20일에서 30일 정도 걸려 성지에 올 것으로 예상되었고, 실제로 그 일정에 맞춰 다가왔다. 25일째, 아르데니아 지원군이 베로니카 공주의 배려로 시오니아 영토 내 항구에 직접 내렸다는 소식이 도착했다.
에드워드의 집무실에서, 헬레나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느리군요.”
“엄청 빠르게 오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에드워드가 말했다. 스텔라는 그의 허리를 손가락으로 쿡쿡 찔렀다.
“엘프님이 그간 얼마나 스트레스 받았는데요? 연금술사 언니는 남들한텐 사무적인 주제에 틈만 나면 기사님한테 숨어 들어가서 애정행각이지, 베로니카 공주님은 한번 오실 때마다 뽕을 뽑고 돌아가지, 기사님은 설령 혼자 남아 욕정이 뻗쳐도 캐슬린을 꺼내다 공주님 역할 시켜서 놀지…….”
“마지막 거는 굳이 안 말해도 되는데. 너 어떻게 다 알고 있는 거야?”
에드워드는 뜨악한 표정으로 스텔라를 돌아봤고, 여마법사는 장난스러운 웃음기를 흘렸다.
“후후후, 기사님의 밤은 전부 제 손아귀에 있…… 어, 엘프님? 저까지 그런 눈으로 보시면 안 되죠?”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 하시죠.”
“넵.”
스텔라는 엘프의 시선을 피해 슬금슬금 에드워드의 뒤에 숨었다. 에드워드는 슬쩍 고개를 돌려 잠시 여마법사의 얼굴을 살펴봤다. 고양이상의 여마법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왜요?”
“아니, 아니다.”
에드워드는 스텔라와 헬레나의 시선이 자신한테 옮겨가는 순간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헬레나? 네 남동생인 페트로스 말이야.”
“걔가 왜요?”
“걔도 아직 미혼이지?”
“그렇죠. 왜요?”
“베르세바가 생각 나서. 걔들, 순혈 엘프라면 목이 빠져라 찾잖아. 페트로스가 그쪽 엘프 아가씨랑 혼맥을 맺으면 재밌을 것 같은데.”
“흠. 그럼 베르세바쪽 지원을 좀 더 쉽게 받을 수 있겠군요. 하지만 본인 의사가 중요하겠죠. 잘 맞는 짝도 찾아야 되겠고.”
“폰티아는 어때? 거기가 베르세바보다 더 크고 강하지?”
“서로 전쟁까지 벌인 원수 지방이긴 하지만, 3대 전 일이고…… 여기 사정이 급하면 배제는 하지 않을 선택지로.”
“좋아. 어느 쪽이든 타진해보자. 페트로스도 여기 아주 이주하러 오는 거 맞지?”
“그것까지는 아직 몰라요. 선발대 치고는 크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 싶으면 결국 귀국해버릴 거에요.”
“그렇겠지…….”
그 이야기를 듣던 스텔라가 다시 끼어들었다.
“그러고보니 페트로스라는 분, 기사님이랑 친해요?”
“일단 내가 헬레나의 은인이고, 만티코어 상대로 싸울 때도 그 친구랑 같이 있었고…… 서로 악감정 가질 일은 없지. 왜?”
“기사님이 공주님이랑 엘프님이랑 중혼하는 거 알고 계시는 거죠?”
“당연히 알지. 헬레나와 출발하기 전에 이미 그쪽 집안에서 온갖 시나리오를 상상해봤을 테니까. 베로니카가 공주였다는 것까지는 몰랐겠지만, 이젠 그것도 헬레나가 다 편지로 써서 보냈잖아?”
스텔라의 눈빛이 헬레나를 향했다. 헬레나는 덤덤히 인정했다.
“상세히 적어서 보냈죠. 에드워드 경과 베로니카 양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저와 에드워드 경의 관계는 어떻게 진행될지, 그래서 뭐가 필요한지 등.”
“헤헹. 그럼 누나의 폭주에 기겁한 남동생의 비명 같은 건 못 들으려나요?”
“그런 거 없어요. 저는 부인의 위세가 곧 그 권세에 달렸으니,우리 가문의 위신을 걸고 최대한 많이 끌고 오라 했죠. 그리고 걔는 순순히 끌고 오고 있는데, 무슨 말썽이 나겠어요?”
“체. 심심하게……..”
“뭘 기대한 건가요?!”
둘이서 투닥거리는 걸 듣고 있던 에드워드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더니 말했다.
“어쨌건 200명 이상의 엘프들이 도착한다는 데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지. 헬레나?”
“네?”
“내부 정리 좀 해야겠어. 지금 요새 크기에 비해 사람들이 너무 적다 보니 남는 공간을 마음대로 써대는 경우가 흔한데, 일단 엘프들 영역을 우선적으로 선정해서 정리해.”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을 밀어내도 된다는 건가요?”
“그래. 엘프 손님들은 막강한 지원군이니까 그 정도는 해야겠지. 그리고 엘프들에게 필요한 건 엘프가 잘 알 거 아냐.”
“그건 그렇죠.”
“누가 불만을 품거나 권한을 묻거든 내가 ‘부인한테’ 일임했다고 해.”
헬레나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신나게 달려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잠시 지켜본 다음, 에드워드는 등 뒤의 스텔라한테로 시선을 돌렸다.
“섬요새의 목채과 주변 초소 정비에 대한 보고는 올라왔어?”
“섬요새 목책은 내일이면 수리가 다 끝나요. 근데 닭장들을 파묻어놓은 구덩이에서 붉은 침출수가 흘러나온다는 것 같아요.”
“아, 젠장.”
“죽은 닭들이 부패하면서 땅과 물을 오염시키는 듯해요. 섬요새 사람들이야 상류쪽 물을 마시면 되지만, 강 하류에서 말썽이 날지도 모르겠어요.”
“그럼 안 되지. 다 파내서 불태워버려.”
“그러죠. 작업지도 시킬 사람은 부사관 중에서 고르면 되겠고. 아, 제가 할까요?”
“아니. 넌 날 따라간다.”
“네?”
“그동안 건설 지시를 내려놨던 전초탑들 점검하러 간다. 너도 지형 좀 익혀놓고. 여차하면 오크 정찰대라도 찾아 작살내고.”
“어머나. 제가요?”
“내가 너 왜 데리고 다니겠냐? 뒤에서 주문만 쓰라고? 침대서 기다리라고?”
구석에서 잔심부름을 하던 리안나가 기웃거렸다.
“광대로 데리고 다니시던 거 아니었어요?”
“야, 밴시!”
“내가 틀린 말 했냐 이거에요!”
자기 등 뒤에서 리안나와 스텔라가 투닥거리는 걸 무시하고, 에드워드는 할 말만 했다.
“조언자는 조언자답게 붙어다녀.”
스텔라의 눈이 가늘어졌다.
“혹시, 그새 미아 언니한테 무슨 이야기 전해 들었어요?”
“무슨 이야기?”
에드워드는 모르는 척했다. 사실 거짓말도 아니었다. 스텔라는 입을 삐죽이고는 에드워드의 뒤에서 나왔다.
“바로 준비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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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프 군대는 푸른바위거성에 도착하자마자 잘 정비된 보루, 제대로 작동하는 연락망, 요새 주변에 세워진 전초탑, 몰려드는 지원군을 위한 연금술사와 사제들의 의료지원 등을 볼 수 있었다.
누나 헬레나와 재회의 인사를 나누던 페트로스는 에드워드를 보자마자 반갑게 인사했다.
“엘프식 결혼까지 하시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이젠 진짜 처남매부 관계군요.”
“어쩌다보니. 엘프의 짝이 됐으니, 안 그래도 짧은 생을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늘었소.”
“누님이 엄청나게 다급하고 험악한 투로 편지를 보내는 건 처음 봤지 뭡니까?”
“이젠 육체뿐만 아니라, 여자와 가문의 명예가 걸린 일이라.”
페트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놀랐습니다. 굉장히 공격적으로 확장 중이라길래 방어가 소홀한 건 아닌가 걱정도 했습니다만, 그런 것도 아니군요. 잘 정비된 요새입니다. 아, 저건 육포입니까? 굉장한 양이군요. 병사를 늘리면서 비축식량까지 같이 늘리시다니.”
에드워드는 산처럼 널린 닭가슴살 육포한테 시선을 주지 않았다.
“굉장히 많은 닭이 있었지.”
대신 그는 엘프 군대로 시선을 돌렸다. 절도 있는 걸음걸이로, 시가행진을 벌이듯 입성한 엘프 군대. 남자 비중이 매우 높지만, 여자도 적지 않았다. 헬레나는 굉장히 뿌듯한 얼굴로 자신의 동족들을 바라보았다. 에드워드는 그녀를 적당히 추켜세워준 다음, 다시 페트로스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가족단위로 온 거요?”
“상당수는요. 인간과 달리, 전부 싸울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벚나무 씨족의 가신과 동맹 가문에서 자원을 받았습니다. 고용된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고요. 초기 경비는 벚나무 씨족이 대고 있습니다만, 향후 경과가 성공적이라 판단되면, 집정관께서 직접 아르데니아의 현안으로 다루어 더 많은 병력과 지원을 보내시겠다더군요.”
“압박이 대단하군.”
에드워드는 엘프들 다음으로 들어오는 부대들을 살펴보았다. 인간 기사들이었는데, 가지각색의 문장들은 어째 친숙한 것들이 종종 있었다.
“아퀴타니아인들?”
“예. 아르데니아와 동맹 관계인 북부 아퀴타니아 기사들과, 남부 아퀴타니아의 기사들입니다. 성지순례 삼아 붙었죠.”
“엘프들만 오는 줄 알았는데.”
“도중에 이래저래 인원이 더 붙었습니다. 싫진 않으시죠?”
“싫을 리가.”
엘프 여자들에게 홀린 기사들이 없을 거라곤 장담하기 어려울 듯했다. 에드워드는 피식 웃고는 그 다음 행렬로 시선을 돌렸는데, 바로 눈이 커졌다.
“앵글리아인?”
아퀴타니아계보다 더 친숙한 문장들이 줄을 이어 들어왔다. 페트로스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꺽다리왕 로버트의 선발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