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6)
26화 과부 데보라
에드워드는 트레베리아 왕세자가 얼마나 수성의 천재였는지 리안나에게 설명해 주며 걸었다. 이야기 속 앵글리아 왕세자가 수비군에게 돼지기름 한 통을 받자 그 답례로 뭘 보내야 그들의 사기를 꺾을 수 있을지 궁리할 때쯤, 에드워드와 리안나 앞에는 가장 허름한 꼴의 농민병과 이단심문관이 나타났다.
“뭐 하냐?”
에드워드의 질문에 베로니카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는 너네는 왜 흙투성이로 그쪽에서 나타나. 늑대 인간이라도 쫓았어?”
“탐광꾼의 굴에 갔다 왔거든.”
“저는 흙에 파묻혔어요…….”
베로니카는 미심쩍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에드워드는 밴시가 왜 흙투성이인지 추가로 설명하지 않았다. 그는 베로니카와 함께 있는 남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소몰이꾼 벤슨이었다. 그는 쇠스랑에 기댄 채 가물거리는 눈으로 비틀거리고 있었다.
“얜 여기 왜 있냐?”
“이 친구가 과수원으로 가는 길을 막고 있었어.”
“깡 좋네. 이단심문관을 막다니.”
“어, 죄송합니다. 막은 게 아니라 지키고 있었어요.”
“그게 그거지. 비켜.”
이단심문관의 명령에 벤슨은 옆으로 비켜섰다. 에드워드는 슬쩍 그에게 질문했다.
“데보라를 덮치러 간 것 아니었어?”
“덮치려던 건 아니고 구애하러 갈까 하긴 했는데, 갑자기 걱정이 되어서요. 혹시 누가 그녀를 모함하거나 해치러 올까 걱정되니 지키고 있었죠.”
“밤을 새서?”
“밤 샜죠.”
“순정남이군. 앞으로 매일 밤을 샐 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요?”
벤슨은 혼이 나갈 것 같은 표정을 지었고, 베로니카는 그들을 흘겨보았다.
“바보들, 잡담 그만하고 입 닫아. 내가 이야기할 때는 끼어들지 않도록 해.”
두 사내는 입을 다물었고, 이제 재잘거리는 건 밴시뿐이었다. 리안나가 이 마을 악동들의 행태를 규탄하는 시간은 일행이 과수원에 도착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거의 같았다. 과수원은 마을 사람들의 말대로 아담한 편이었다. 사과나무들 사이의 길을 걷던 벤슨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말했다.
“이런, 제가 왜 여기까지 왔죠?”
“생각하는 게 늦군, 바보 친구.”
에드워드가 핀잔을 주자 베로니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입 닫으랬지.”
에드워드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았다.
과수원 끝에는 틈새를 진흙으로 메운 통나무집이 있었다. 집주인인 과부 데보라는 깡마른 닭들 사이에 팔짱을 낀 채 서있었다. 탁한 금발 머리카락을 가진 그녀는 평균보다는 약간 큰 키에 넓은 어깨를 가졌고, 피부는 혈색이 좋아 연분홍처럼 보였다. 입을 굳게 다물고 일행을 쏘아보는 그 모습에 에드워드는 벤슨을 향해 속삭였다.
“환영받지 못하는 것 같은데?”
“마을 사람들과 사이가 안 좋으니까요. 낯선 사람을 경계할 만하죠.”
“그런가?”
그 둘이 작당을 하든 말든, 베로니카는 안경을 꺼내 쓰고는 자신의 일을 시작했다.
“당신이 마을에서 과부 데보라로 불리나요?”
“그거 말고 다른 호칭으로 불려 본 적이 없긴 해요. 누구시죠?”
“교황청의 이단심문관인 베로니카 캠벨입니다.”
“그렇게 높으신 분이 여기까진 웬 일이죠?”
“우연히 이 마을에 들었는데, 마녀 소동이 벌어지고 있더군요. 그래서 미력하게나마 돕고자 여기 있지요.”
“제가 마녀라고 고발되었나요?”
“아뇨. 누구라고 단정 짓기 전에 제가 그 엉터리 재판을 끝냈죠.”
“감사 인사라도 해 드려요?”
베로니카의 고개가 크게 옆으로 기울었다. 까딱.
“그럴 필요는 없어요. 왜요? 찔리는 것 있어요?”
“있죠. 제 옛 남편들 일요. 들어 보고 온 것 아니에요?”
그때 벤슨이 나섰다.
“데보라, 이분들은 마을 사람들이 소동을 일으킨 괴변들을 명쾌하게 해결해 주고 계세요. 돼지는 병으로 죽은 거였고, 우물이 마른 건 다른 이유도 많다고. 이분들은 마녀를 잡으러 여기 온 게 아니에요.”
“그래요?”
데보라의 시선이 밴시 리안나에게 향했다. 리안나는 베로니카를 흉내내서 고개를 크게 기울였다. 까딱. 데보라는 그제야 웃어 보였다.
“안으로 들어오세요. 서서 이야기하기도 어색하니.”
일행은 데보라를 뒤따라 집안으로 들어갔다. 대충 구조를 둘러본 에드워드가 먼저 입을 열었다.
“혼자 살기엔 좀 큰 집이군.”
“원래 저희 부모님과 살았던 집이죠. 두번째 남편이 죽고 여기로 돌아왔어요. 시어머니와 크게 싸웠거든요.”
“무슨 일로?”
“뻔하죠. 남편의 불행은 여자의 부덕이니 뭐니 그런 이야기죠. 이제 결혼은 지긋지긋해요.”
벤슨의 얼굴이 굳었다. 베로니카는 손을 들어 에드워드의 질문을 제지한 다음, 자신의 질문을 꺼냈다.
“부모는 뭘 하셨죠?”
“과수원요.”
“부모 중 누구의 소유였죠?”
“공동 소유였죠. 두 분 다 이 마을에서는 외지인이셨어요. 산 아래서 왔다는 것 말고는 저도 몰라요. 앉으시죠.”
일행은 데보라네 탁자 주변에 앉았다. 데보라는 잔을 사람 숫자대로 꺼냈다. 그녀가 집구석의 항아리를 열자 술냄새가 공간을 채웠다. 에드워드는 그 냄새에 흥미를 보였다.
“소문의 사과주군. 주교좌성당에 납품한다지?”
“그렇죠.”
“도시와 산 아래보다 더 좋은 술이라니, 멋지네.”
“빛과 땅이 좋아서 사과도 좋은 덕이죠.”
“그래서 약도 잘 만드나?”
큼직한 국자로 술을 뜨던 데보라의 손이 멈췄다. 그녀는 에드워드를 힐끗 보았다.
“아직도 제가 마녀라고 의심하시는 건 아니죠?”
“아니, 그건 아니고. 마을 사람들이 난리 치는 이유를 알아야 아가씨를 보호해 주지.”
“일일이 알아볼 것 있나요? 그저 바보짓이지.”
데보라는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일행은 동의하지 않았다. 베로니카는 자기 앞에 놓인 잔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입을 열었다.
“고발자는 윌킨슨 씨네 삼 자매인데, 사제까지 한편이 되어서 뭔가 꾸미고 있어요.”
“그냥 마녀 소동이니까 나선 게 아니고요?”
“아뇨. 누구 하나를 마녀로 못 만들어서 안달이 났어요. 그런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누가 표적인지는 아직 아무도 몰라요. 그저 주임 사제로서 큰 목소리를 내고 싶을 뿐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누군가 한 명은 쫓겨나거나 죽겠죠.”
“최소 한 명이지. 희생양이 하나란 법은 없잖아.”
에드워드가 덧붙였다. 데보라는 그제야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베로니카가 설명을 이어 나갔다.
“중요한 건 두 가지. 윌킨슨 씨는 누구를 왜 죽이거나 쫓아내고 싶어하는가? 마녀로 몰기 좋은 여자라면 보통은 창녀, 장애인, 과부, 약초꾼 따위죠. 이미 마을에서 손꼽히는 부자가 왜 그녀들을 노릴까요?”
“글쎄요. 상상이 안 가네요.”
“의심이 가는 사건이 하나 있긴 해요. 윌킨슨 씨 댁에 머물렀던 탐광꾼. 그가 뭔가 찾았다면 말이 되지요. 이 집 뒤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다던가요?”
“네. 닭장 지붕으로 떨어져서 식겁했죠. 교회의 부랑자 묘지에 묻었어요. 그가 뭘 찾았을까요? 금? 아니면 은?”
베로니카의 시선이 에드워드를 향했다. 그는 한숨을 푹 내쉬곤 말했다.
“뭘 찾은 것 같지는 않더라고. 별로 깊게 파지도 않았고, 파는 방향도 여기 과수원이랑은 좀 달라.”
“확실해? 너 측량기사 아니잖아.”
“확실해. 눈대중과 감으로 봐도 절대 과수원 쪽으로 파지는 않았어.”
베로니카는 손에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잠시 뒤 그녀는 의문 하나를 제시했다.
“그럼 그 남자는 왜 이 집 뒤의 절벽에 올라갔을까?”
“굴을 어디로 팔까 생각해 보느라?”
에드워드의 답이었다. 하지만 만족스러운 답은 아니었다. 데보라가 끼어들었다.
“먹거리라도 찾고 있던 것 아닐까요? 그 사람, 돈이 없었거든요. 먹을 게 떨어지면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잠시 일꾼 노릇을 하고 곡식을 받아 갔죠. 저도 사과를 준 적이 있어요.”
“절벽 위에 먹을 게 있나요?”
“들풀이라던가? 어쩌면 귀한 풀을 찾았을지도 모르죠.”
“탐광꾼이 약초꾼도 겸한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팬케이크나 죽 따위에 섞을 풀이 그리 멀리 가야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시체에서 뭐 특이한 것 못 봤어요?”
“소지품은 별 것 없었고, 가루 따위가 얼굴에 좀 묻어 있었죠.”
“가루?”
“흙인지 돌가루인지 말린 풀인지 톱밥인지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상황은 아니었지만요. 토굴의 돌가루 아니면 닭장의 파편이었겠죠.”
베로니카의 고개가 다시 기울었다. 까딱. 데보라는 찔끔했는지 입을 다물었다. 어색한 침묵 속에서 에드워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뭐 더 물어볼 것 있어?”
베로니카는 에드워드를 힐끗 본 다음 데보라에게 말했다.
“소몰이꾼 벤슨은 왜 여기 있었죠?”
“지금 여러분과 같이 온 것 아닌가요?”
“아뇨. 이 과수원으로 오는 길을 지키고 있던데요.”
데보라는 대답하지 않았고, 벤슨 쪽을 보지도 않았다. 두 여자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흐르자 벤슨은 당황해서 바로 말을 쏟아 냈다.
“아니, 딱히 무슨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요. 그저 요즘 상황이 불안하길래 몰래 돌아다니는 놈은 없나 했죠.”
하지만, 데보라와 베로니카는 그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베로니카는 담담하게 말했다.
“얼뜨기 청년을 홀려서 경비병처럼 부리는 건 마녀가 간혹 쓰는 방법이죠. 의심 받고 싶지 않다면 주변을 주의하세요.”
데보라는 그제야 벤슨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벤슨?”
“아, 네.”
“호의는 고맙지만, 나보다 마을 안을 살펴보는 게 더 좋을 거예요.”
“네, 그러죠.”
벤슨이 대답하자마자 베로니카는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안 마셔?”
에드워드가 베로니카의 잔을 가리켰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 마셔.”
“나야 좋지.”
에드워드는 잔을 조심스럽게 집은 다음, 단숨에 술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리안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어린애가 술 마셔도 되나?”
그녀는 기사의 탐욕으로부터 술잔을 지키기 위해 황급히 외쳤다.
“밴시니까 괜찮아요!”
밴시는 냅다 술을 들이켰다. 에드워드는 아깝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주교좌성당에 납품할 만한 맛이군.”
“귀족 기사님이 칭찬해 주니 고맙군요.”
데보라가 웃으면서 말했다. 에드워드는 더 말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나간 베로니카의 뒤를 따랐다. 그는 벤슨의 어깨를 툭 치고는 말했다.
“따라오지 말고 더 있을래?”
“어, 아뇨! 가죠. 가야죠.”
벤슨은 데보라의 눈치를 보더니 슬금슬금 에드워드의 뒤에 붙었다. 데보라는 그를 붙잡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밴시까지 나오자 에드워드는 베로니카를 향해 속도를 높였다. 그는 그녀의 등을 향해 말했다.
“뭔가 비범한 여자 같긴 한데.”
“그래?”
“방금 건 괜한 협박 아냐? 그 과부가 진짜 마녀라고 해도 이번 일들과는 별 상관없을걸.”
“뭔가 더 아는 것 같은 눈치긴 했는데 말이야. 이 동네 여자들이 마녀 후보로 창녀와 과부를 꼽는 이유를 좀 알 것 같아.”
“후보가 그 정도로 압축돼? 더 없어?”
“의미 없는 소수표는 몇 더 있었지. 옆집이 닭을 잡았는데, 목 없이 뛰어다니는 통에 자기 집 벽에 피 칠갑을 했다던가.”
“의미없네. 여하튼 이제 대충 마무리하지?”
“중요한 수수께끼들은 못 풀었는데?”
“우리가 그것까지 밝혀서 들쑤실 필요는 없잖아. 예상되는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경고해 준 거로 우리 의리는 대충 다한 것 같은데. 대주교님한테 편지라도 한 통 써 놓던가.”
“기사님, 그거 악마의 유혹 같이 들리는데요.”
리안나가 태클을 걸자 악동 심리 최고 전문가는 최대한 불쌍하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여기 계속 남아 있으면 내일은 마을 악동들이 네 머리카락에 불을 붙일걸?”
“역시, 마을 사람들의 일은 마을 사람들 스스로 해결해야죠! 주체, 자주, 우리 마을끼리!”
밴시의 빠른 태세 전환에 베로니카는 웃어 버렸다.
“애한테 좋은 것 많이 가르쳐 줬네. 뭐, 네 말대로 여기서 마무리하는 방법도 있긴 하지. 무슨 일이 나거든 국왕이나 대주교님한테 찍힐 거라는 경고와 함께.”
에드워드는 벤슨을 돌아보고는 속삭였다.
“들었지? 돌아가서 덮쳐! 아니면 과부를 자루에 넣어서 산 아래로 튀어!”
“데보라의 과수원은요?”
“포기해야지. 나중에 되찾는 방법도 있고.”
“자기 땅을 버리고 도망치면 소유권을 회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여자의 목숨보다 비싸? 너 같은 일꾼이 여자 하나 못 먹여 살리겠어?”
“그런 건 아니지만…….”
“다 들려, 망나니.”
베로니카가 핀잔을 주었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소리만 더 낮췄을 뿐이다. 그러나 그가 벤슨을 충동질하는 사이에 먼저 결론이 도달했다. 물 긷는 소년이 마을에서 뛰어왔다.
“벤슨! 벤슨!”
“뭐야? 무슨 일인데?”
“큰일 났어요! 사람들이 마을 사람들이 마녀를 잡았대요!”
“뭐? 마녀가 누군데?”
“여관 2층의 창녀요!”
벤슨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거 안 됐네. 그런데 왜 날 찾아?”
“벤슨이 그 여자 단골이잖아요?”
“아니, 그렇긴 한데…….”
“그건 중요한 게 아니잖아.”
베로니카가 끼어들었다. 그녀는 소년을 향해 질문했다.
“마녀의 혐의는?”
“우물을 마르게 한 것과 여자들의 악몽요! 게다가 여관 주인 아저씨도, 윌킨슨 씨 댁 일꾼도, 벤슨도 홀렸대요! 이상한 은화도 찾았대요!”
에드워드는 벌레 씹은 표정을 지었다. 그는 검자루를 잡고는 베로니카를 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죽이지는 말고.”
“장담은 못하겠네.”
에드워드는 벤슨, 소년과 함께 먼저 달려갔다. 그제야 벤슨은 자신의 의문을 마저 해소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그 여자 단골인 게 중요해?”
“데보라가 안 되면 그 여자랑 살림 차릴 거 아니에요?”
“누가 그래?!”
“아니, 그럴 기세로 매일 찾아가니까…….”
“오, 그것도 방법이군. 데보라가 안 되면 걔라도 갖고 가. 데보라는 내가 묶어서 데려가지, 뭐.”
“기사님까지 무슨 말씀이세요?!”
베로니카는 사내들의 등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