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60)
260화 공격대 집결(2)
슬슬 눈이 녹아가는 숲과 그 진창 속에서, 다섯 남짓한 오크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푸른바위거성의 인간 사령관이 눈엣가시 같은 섬요새를 함락시키고 주변에 숱한 감시초소를 세웠단 이야기 때문이었다.
상당히 공격적인 행보지만, 어떻게 보면 방어적인 행보이기도 했다. 그의 다음 선택이 무엇인지 가늠할 수 없는 족장들은 정찰과 순찰을 늘리는 것으로 대응했다.
“젠장. 그래도 섬요새가 함락 당하고 한달은 얌전하던데 말이야.”
한 오크가 입을 열었다. 다른 오크가 바로 반박했다.
“얌전하기는. 그놈들 머릿수가 자꾸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어? 조만간 쳐들어올지도 몰라.”
“그거 다 합쳐도 이 지역의 오크들 숫자만은 못할걸. 그 소문의 앵글리아 국왕이 오기 전에 준비하는 거지, 겨우 그 숫자로 뭔가 일을 벌이겠어?”
“떠돌이 순례객 따위면 그렇지. 하지만 기사놈들은 무시 못해. 기병은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하면…….”
“너희들, 작작 떠들고 앞이나 봐!”
리더가 못 참고 일침을 놓았다. 오크들은 다시 침묵하고는 숲 속을 나아갔다. 한참 뒤, 선두가 손을 들어 무리 전체를 세웠다. 오크들은 몸을 바짝 낮췄고, 리더는 선두한테 가서 그와 같은 방향을 보았다.
기묘한 인간 여자가 있었다.
회색 사제복을 입었는데, 햇빛이 드는 장소 아래 무릎 꿇은 채 기도를 하는 중이었다. 물기를 머금고 초록색을 띄기 시작한 풀밭 위에는 그녀 외의 다른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리더는 당장 판단을 내리기 어려웠다. 다른 동료 오크들이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뭐야, 저거?”
한 오크가 겨우 입을 열었다. 리더는 손가락을 세워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다행히, 여사제한테까지 그 목소리가 닿지는 않은 듯했다. 다른 오크는 좀 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신 나간 여자 같은데. 수도녀나 여사제들 중에 가끔 있잖아. 순례니 고행이니 하는 와중에 미쳐버린 것들.”
“아니면 멍청하게도 일행에게서 떨어져버린 건지도 모르지…….”
다른 오크가 덧붙였다. 리더는 바람 속에서 냄새를 맡아보았지만, 별 다른 냄새를 찾지 못했다. 여자 냄새뿐.
“뭔가 수상한데…….”
“흠. 일단 잡아봅시다. 함정이면 빠져주지, 뭐. 아니면 암컷 하나 공짜로 생기는 거고…….”
“야, 잠깐!”
리더가 말리는데도 불구하고, 한 오크가 무기를 들고 일어섰다. 오크는 근본적으로 전사, 근본적으로 공격 일변도의 종족. 여자 하나가 있대서 물러선다면 웃음거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긴장감 가득한 얼굴로 천천히, 한 걸음씩 내딛으며 전진하는 녀석의 모습에 다른 오크들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리더도 못마땅한 얼굴로 나섰다.
다만 제일 먼저 나선 오크는 여사제에 점점 더 가까워질수록 긴장의 끈도 조금씩 풀렸다.
“뭐야, 별 거 없잖아?”
손이 닿을락 말락 할 위치에서 오크가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 다음 걸음에, 그는 여사제의 앞에 무기가 놓인 것을 볼 수 있었다.
못이 잔뜩 박힌 핏빛 나무몽둥이.
오크의 등골이 오싹해지는 순간, 인간들의 함성이 터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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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소변을 보러 천막 밖으로 나왔던 오크는, 그날 마지막 어둠 속에서 뛰쳐나온 기병무리를 보고 비명을 질렀다.
“저, 적습! 인간들의 기습이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등에 화살이 꽂혔다. 콰직! 기병들은 화살 비 아래를 그대로 질주해, 있으나마나 한 울타리들을 짓밟았다. 화살 세례가 귀신처럼 기병들 코 앞에서 끊어지는 순간, 뛰쳐나오다 만 오크들은 기병들의 말발굽 아래 모조리 죽였다. 불과 비명이 곧 그 뒤를 따랐다.
성묘수호기사단 소속의 수도기사요, 에드워드의 기사인생 선배 중 하나였던 은퇴자 마크는 은퇴를 번복하고 두번째 성지순례를 온 보람을 한껏 느꼈다.
“이거야! 이게 기사의 인생이지! 말 달리는 소리! 불과 비명! 약탈품! 하하하하!”
평소에는 오크들이 보여줬어야 할 광경이었지만 사실 입장이 바뀌지 말란 법도 없었다. 아니, 접경지역에서는 오히려 흔한 일이었다. 그간 시오니아측이 주술사왕의 위세에 눌려 있던 게 컸을 뿐. 그래서인지 그간 마을 농민이나 괴롭히며 겨울을 보내던 무료한 용병들도 자신들의 공격성을 마음껏 폭발시켰다.
“다 죽이고 다 뺏어라! 가져갈 수 없는 건 모두 태운다!”
“꺄아아악!”
“가만 있어! 구해준다는데도 비명이야?”
여자들 비명소리도 뒤이었다. 마크는 노예들과 옥신각신하는 용병들을 보고 검을 허공에다 휘둘렀다.
“야! 그것들 싹 다 검사하고 데려가! 주술의 흔적은 없는지 살펴보라고!”
“이런 거 한두 해 하는 거 아니거든요! 걱정 마시죠! 이게 다 자비로운 빛의 뜻이지!”
오크들이 부리는 노예는 툭하면 고기가 되기 십상이지만, 빛의 진영에서 노예가 되면 최악의 경우에도 죽이거나 잡아 먹지는 않는다. 그게 그나마 위안이라는 게 웃기는 점이었다.
한 엘프 순찰대원이 마크 옆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에드워드 경은 어둠에 잡혔던 노예들을 다 해방시켰다고 들었습니다만.”
“걔는 걔고, 나는 나. 자기 전리품을 어떻게 하던지 그건 전사의 권리고 자유야. 그리고 오크 놈들한테서 뺏을 재물은 많지 않다고. 이런 거라도 챙겨야지.”
“그건 그렇습니다만…… 혹시 엘프나 그 피가 섞인 자가 있다면, 그는 저희에게 넘기셔야 합니다.”
“아, 그리 하지.”
마크는 능글맞게 웃으면서 말했다. 순찰대원은 그가 자신이 에드워드와 아는 사이라며 따라 엘프 군대에 따라 붙었던 걸 새삼 기억해내고는, 한두 번 본 에드워드가 좀 더 나은 것 같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때, 한 경기병이 달려왔다.
“마크 경, 오크들의 보물고와 식량 저장고를 찾았습니다. 보물고는 대장놈 천막 아래에 묻혀 있더군요.”
“그럴 줄 알았어. 욕심 많은 놈들. 다 약탈하고, 식량은 챙길 수 있을 만큼 챙겨.”
“감자도요?”
“그건 맛 없고 가져가기도 힘든데.”
“다 시커먼 게, 썩은 것 같습니다만. 놔둬도 괜찮지 않을까요?”
그 말에 한 노예가 끼어들었다.
“그건 썩은 게 아닙니다! 언감자라는 거예요! 물에 담가서 독기를 빼면 먹을 수 있습니다!”
생소한 이야기였다. 오크들의 겨울 감자 먹는 법 따위야 싸우는 사람들의 관심 밖 이야기니까. 평소에는 그게 먹을 수 있는지 아닌지 신경도 안 쓸 것이었지만, 이번엔 에드워드가 ‘다 태우라’고 했다. 못 쓰게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 지방 오크들도 겨울에 썩은 감자를 먹었는지 어땠는지 모르겠네. 어쨌거나, 그럼 태워야 하나?”
“감자가 불에 잘 탑니까?”
정답은, 아니오. 물기가 많으면 잘 타지도 않는다. 깡그리 가져가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마크의 고민은 길지 않았고, 그는 빠른 방법을 내놨다.
“감자를 저장고에서 다 꺼내. 그리고 죽은 오크 새끼들한테서 창자와 오줌보를 까. 내용물을 그 위에 뿌려둔다.”
엘프 순찰대원은 눈살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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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르티카 백작이 후원하고 시오니아 국왕이 간섭하는 감시자들인 ‘옛 검의 3기사’는 이미 에드워드에게 넘어간 지가 오래였다. 왕은 멀고 백작은 더 멀지만 요새사령관 에드워드는 가까우니까.
“뭐, 국왕 폐하의 뜻도 에드워드 경을 도우라는 것이었으니.”
발터가 말했다. 그는 철광산과 연결된 좁은 굽이길 한가운데 서있었는데, 발치에는 그를 통과하지 못한 오크들의 핏자국이 듬성듬성 남아 있었다.
그 장소는 그가 결투광 노릇을 하며 지키던 다리보다 훨씬 더 일방적인 구조였다. 너비는 사람이 겨우 하나 통과할 만큼 좁은데, 절벽을 발터의 왼쪽에 끼고 오른쪽으로 난 길이었다. 오크도 인간처럼 오른손잡이가 절대다수인 만큼, 발터의 맞은 편에서 오는 오크들은 절벽에 걸려 무기를 마음대로 못 쓴다.
철광산 오크라고 해서 군비가 대단한 건 아니었다. 그게 에드워드네 김을 좀 새게 만들었다. 작전은 순조로웠고, 기습에 밀려버린 오크들은 살길을 찾아 여기저기로 도주했다. 대부분은 발터처럼 매복한 다른 사람들에게 걸렸지만.
“방심은 맙시다, 기사 나리. 오크놈들은 교활해요. 절벽 아래로 떨어져도 살아남을 수 있지요. 우리가 모르는 샛길로 달아날 수도 있어요. 땅을 파고 숨어 있다 해도 이상할 게 없지요.”
한 나이 든 궁수가 발터에게 조언했다. 발터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이 아래에도 우리 편이 있으니까.”
발터는 더는 아무도 등장하지 않는 산길을 따라 철광산으로 들어섰다. 그 광산은 여기저기에 구멍이 난 깔대기 모양의 지형이었는데, 가장자리에는 폐석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중심부에는 조악하고 작은 용광로가 잔뜩 세워져 있었다.
드워프 가르달은 그 틈새를 동동 뛰며 돌아다녔다.
“이 조악한 수준이라니! 군비가 엉망인 이유를 알겠군!”
“소금산이랑 비교하면 웬만한 곳도 미안해지겠지만요.”
엘프 헬레나의 말이었다. 그 말은 틀린 게 아니었다. 주문도 없는데 미리미리 철괴와 무기를 만들어두는 곳은 드물었다. 게다가 전사 종족인 오크들이 먹을 것도 없고 자기들 기술로는 채산성도 떨어지는 철광을 쥐고 있다는 건, 여기로 밀려난 약소 부족이란 뜻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에드워드 경의 허리띠년이 여기저기 알아봐둬서 참 쉽게 점령했군. 참 편리한 도구지. 그리고 참 좋은 일이야.”
“하지만 우리 요새와 이 철광은 거리가 너무 멀어요. 자루의 남쪽 출입구를 못 막으면 결국 다시 뺏기겠죠. 이 지역 오크 사령관의 요새 말이에요.”
헬레나의 말이었다. 그녀는 한없이 진지했다. 이 철광을 회복하는 데도 선두에 나서서 싸웠고, 앞으로의 일도 누구보다 더 걱정했다. 특히 이 다음에는, 하천 일대에서 신식민도시 건설에 걸맞는 터를 찾고 또 이를 지키는 대업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받아치는 게 없는 엘프의 모습에 가르달은 입을 삐죽였다.
“뭔가 심심해졌구만.”
“뭐가요?”
“눈이 돌아갔다고.”
“틀린 말은 아니군요.”
헬레나는 굳이 부정하지도 않았다. 그때 저 멀리서 개 짖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산 너머에서 나는 소리였는데, 거리에 비해서 무시무시하게 컸다.
“늑대인간들의 마을 쪽이군. 허리띠년이 공을 크게 세우긴 했다니까. 저런 게 근처에 있을 줄은 몰랐지.”
가르달이 씹어내뱉듯 말했다. 그 말대로, 에드워드는 공격 직전 정찰에서야 다른 위협요소를 발견했다. 드워프는 헬레나를 돌아봤다.
“그 허리띠한테도 잘해줘야겠다?”
농담 섞인 도발이었지만 헬레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쓸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다 써야죠.”
가르달은 정말 재미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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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런 모독적인!”
늑대인간의 비명이었다. 에드워드는 낄낄 웃었다.
“이야, 늑대인간들이 이렇게 잔뜩 모인 마을이라니. 그것도 하나같이 자아 있는 상위종이야. 웃기지도 않네. 이것도 그 오크 사령관의 작품이려나?”
부자연스러운 위치의 부자연스러운 마을.
에드워드는 손에 든 걸레짝을 방금 비명 지른 늑대인간의 얼굴에다 내던졌다. 양손이 뒤로 묶인 채 무릎 꿇려진 그는 비명을 질렀다.
“안 돼! 안 돼!”
참관하겠다며 따라왔던 베로니카는 그 모습에 폭소해버렸다.
“늑대인간 분간법이라고 떠도는 속설인데, 수컷에게만 소용 있는 방법이라 인기가 없었지. 그런데 이렇게 왕창 모여 있으면 다른 용도로 쓸 수도 있네?”
암캐 소변과 여자 소변을 섞어 잔뜩 묻힌 걸레짝. 입에 게거품을 물고 본능과 이성 사이에서 발버둥치는 늑대인간은, 마지막 남은 한 조각 존엄마저 내팽개친 비참함 그 자체였다. 그의 바지가 온갖 분비물로 축축해지고, 목에서는 인간의 것이 아닌 신음소리가 기어나왔다.
소변 묻힌 걸레짝은 늑대인간들을 하나하나 꾀어내거나 그 진형을 흐트러뜨리는데 나름 쓸만한 화학무기였다. 전황을 결정지을 만한 병기는 아니었지만, 인간에게는 무해하면서 늑대인간에게는 유해한 일방적 냄새라는 게 이점이었다.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은 기본적으로 영생 불임이라던데.”
“그래서 물고 물어서 수를 늘리는 방식을 쓰지. 영원히 목마른 본능…… 비참하지. 너도 봤잖아?”
뱀파이어 율리아. 에드워드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랬지.”
남은 건 비난과 조롱 속에서 공포에 질린 늑대인간 생존자들. 에드워드는 그들을 손가락질했다.
“혹시나 해서 다시 확인해보는데, 얘들은 인간으로 못 돌아가는 것 맞지?”
“못 돌아가. 인간으로서의 육신은 이미 한번 죽은 거나 마찬가지라서. 그래서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은 언데드로 분류되기도 하는 거야. 뭐, 악마는 아니니까 회개는 가능하지.”
베로니카는 철퇴를 고쳐 쥐면서 말했다.
“하지만 그건 영혼의 문제라, 현생이 아니라 지옥의 문지기나 천국의 수문장 앞에서 해야 하지.”
섬뜩하게 들리는 사형선고였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을 무는 영생 따위는 취급 안 한단 말이지.”
“살려주세요! 뭐든지 시키는 대로 할게요! 노예로라도 살려주세요!”
늑대인간들의 애원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늑대인간이나 뱀파이어를 노예로 삼는 건 굉장히 드문 일이었다. 없다고 봐도 된다.
뒤통수를 칠 게 뻔하니까.
베로니카는 자비없이 철퇴를 휘둘렀다. 퍼억! 한 늑대인간이 머리가 찌그러진 채 쓰러져 피거품을 토했다.
교황청 이단심문관이자 시오니아 공주가 다시 선언했다.
“죄인에게 속아주는 것도 죄악이다.”
그 다음은 베로니카의 호위기사들과 왕실 근위기사들이 저벅저벅 걸어나섰다. 곧 불어닥친 피바람 속에서, 에드워드는 어깨를 으쓱였다.
시오니아 전체를 위한다는 명분 그 자체인 철광산 공략, 동시다발적인 공격, 이 지역 사령관이 배치한 게 분명한 늑대인간 마을의 소멸.
이것들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에드워드는 오크 사령관의 요새가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자, 사령관 나리. 이제 어떻게 하실 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