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62)
262화 광역도발(2)
에드워드가 부대를 이끌고 출격한 이후 푸른바위거성은 방어거점이라기보단 각 도시에서 받거나 구매한 물자의 집적소, 신병의 집합소 같은 느낌으로 변했다. 한적하던 요새는 가득 차진 않았으나 바쁜 공간으로 변했고, 요새에 남은 리안나는 그 어떤 세탁부보다도 빠르고 신명나는 빨래 속도를 선보였다.
기사 조르쥬 드 발로뉴의 부대에 세탁부이자 매춘부로 합류해 성지로 온 한 거인족 여성, 지클린을 뺀다면.
“그 덩치와 힘은 반칙이에요!”
“어머, 너랑 나랑 덩치 차이가 나는 게 내 잘못이니?”
지클린은 깔깔 웃으면서 커다란 빨래통에서 발을 뺐다. 대충 밟아 빠는데도 밴시가 낑낑대며 처리하는 것보다 많은 양의 빨랫감이 처리 당했다. 당연했다. 거인족은 인간보다도 훨씬 큰 키를 가졌고, 꼬마 요정에 비하면 건물에 가까웠다.
뜬금없는 경쟁자의 등장에 경악한 리안나는 자기 키보다 약간 낮은 수준의 거대한 빨래통과, 그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잿물 속 빨랫감들을 가리켰다.
“그렇게 거칠게 밟으면 옷감 상해요!”
“걱정 마. 두꺼운 겨울옷들이니까. 그리고 여기 오는 남자들은 옷을 오래오래 안 갈아입으니까 이 정도는 해야 돼. 읏차!”
“왁! 조심해요!”
지클린은 빨래통을 기울여 물을 쏟아냈고, 리안나는 하마터면 거기 휩쓸려 같이 떠내려갈 뻔했다.
“계속 여관이나 하지! 여긴 왜 왔어요?!”
“그게, 갑자기 겨울 역병이 돌아서, 새로 산 가축들이 반이나 자빠졌지 뭐야. 여관도 이상하게 수익이 안 남고. 빚이 도로 원상복귀!”
세심한 구석이 없는 거인족다운, 방만한 운영의 표상. 리안나는 이마를 짚었다.
“그래서 여관을 폐업하고 순례나 가자, 해버리셨다?”
“조르쥬 경이 먼저 제안하셨지.”
“조르쥬 경이랑 사귀세요?”
“아니. 그냥 우수고객.”
“정부 같은 거 아니에요?”
“기사님 하나만 받으면 돈이 안 되잖아.”
마침 그녀들 뒤를 지나가던, 족제비네 아내가 대화에 슬쩍 끼어들었다.
“근데 남자들이 거인 여자도 안아요?”
지클린은 빨랫감들을 대충 건져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제 고향에도 아낙족과 인간족의 혼혈이 있었죠. 지금 저한테도 호기심에 한두 번쯤 오는 고객들이 많고.”
“저도 남편이 인간이지만, 인간남자란 참…….”
리안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서 인간이 보는 재미는 있더라요.”
“넌 애가 왜 그리 발랑 까졌니.”
“거기 드워프 혼혈 아줌마보다는 더 오래 살았다 이거에요!”
“얼마나 오래 살았든 머리가 안 굵어지면 여전히 애지. 그리고 내 이름은 멧밭쥐야.”
“뭔 이름이 그래요?”
“별명이야. 남편이 족제비니까. 가련해 보이지 않니?”
멧밭쥐는 몸을 배배 꼬았고, 리안나는 뚱한 표정을 지었다. 그 뜻은 단순했다.
‘니가 어딜 봐서.’
하지만 멧밭쥐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리안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마침 돌아온 가르달을 발견하곤 쪼르르 달려갔다.
“드워프 아저씨! 저 아줌마 별명이 멧밭쥐래요! 그거 드워프 기준인가요?”
“멧밭쥐라기에는 키가 좀 있는데. 뭐, 혼혈인 걸 감안하면 틀린 건 아니네.”
“알다가도 모르겠어, 드워프 기준!”
“여하튼 난 바쁘니까 저리 가서 놀아라.”
“노는 거 아니거든요! 그런데 왜 바쁜데요?”
“지금 각 도시에 주문한 제품들이 도착했거든. 그거 갖고 다시 광산으로 가야 돼.”
“뭘 주문했는데요? 무기?”
가르달은 손가락을 들었고 리안나는 그걸 따라 시선을 옮겼다. 사람 키 크기의 커다란 바퀴들이 사람들의 힘으로 굴러오고 있었다. 리안나는 입을 떡 벌렸다.
“신형 고문도구에요?”
“신형 외바퀴 손수레야! 에드워드 경이 고안했지. 가끔은 그 양반 머릿속이 궁금하다니까.”
“손수레요? 손수레가 저렇게 생겼어요? 짐을 어디다 싣는데요?”
“바퀴의 위랑 양쪽에.”
실제로, 공성용 사다리가 잔뜩 적재되어 있었다. 그것은 중국식 외바퀴 손수레였다. 에드워드는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목우유마를 기억 속에서 떠올렸다. 연의를 소재로 하는 다종다양한 책에서 다종다양한 모양새로 묘사한 것 중, 이를 외바퀴 손수레로 그려놓은 책이 있었던 것이다.
“기존의 외바퀴 손수레는 바퀴를 사람과 짐칸을 지나 그 반대편에 둔 형태라, 사람이 결국 짐의 무게를 반쯤 감당해야 하거든. 근데 저건 사람이 균형 잡는 역할만 하지. 무게는 바퀴의 축대가 전부 지탱하고. 축대를 매우 튼튼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난관이 있지만, 장점이 많아.”
“오오. 뭔가 대단하네요.”
“일단 바퀴를 하나만 만들면 되니까 비용이 줄고, 힘이 덜 들고, 많은 짐을 실을 수 있고, 좁은 길도 잘 가고…… 나도 만들어보고서 놀란 게, 못해도 세 배에서 여섯 배는 더 싣더라고.”
“와! 그럼 이제 저걸로 보급문제를 해결하는 거에요? 광산도 돌리고? 무슨 비밀병기 같아요!”
리안나가 감탄해서 말했다. 그러나 가르달은 입을 크게 삐죽였다.
“그렇게 되면 정말 엄청난 이야기겠지.”
“네?”
“그래봤자 수레야. 운송량이 선박만은 못해. 어쨌거나 좁은 폭이나마 도로를 닦아야 하고. 지금 이 땅에 도로가 어딨냐, 도로가. 가다말다 가다말다 반복해야 할걸. 돌아서 가거나.”
“어, 그럼 소용 없어요?”
“없진 않아. 도발용으로는 아주 적당하지.”
“도발요?”
가르달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은 말이다. 적한테 신기한 게 있는 걸 보면 위기감부터 느끼게 돼. 오크도 마찬가지지. 거기 거인족 아가씨, 그쪽 체구에 맞춘 시제품도 있는데, 한번 몰아보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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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는 공주 숙소의 뒤뜰에 긴 의자를 갖다 놓고 여유롭게 앉아 있었다. 이 정원의 소유주였던 늑대인간은 나름 미적감각이 있는 놈이었던 모양이었다. 만족스러운 풍경이었다.
“팔자 늘어졌구만.”
카치운이 다가와 말했다. 그는 에드워드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에드워드는 동료 전사를 돌아보지도 않고 질문했다.
“맡겼던 일은 어떻게 됐소?”
“역시 힘드네. 이 근방 유목민 부족들은 주술사왕의 요새가 넘어가질 않는 한 중립을 지킬 거요. 미친 척하고 어둠의 영역에 더 가까운 곳까지 가봤는데, 다들 마찬가지더라고.”
“저런.”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거지. 문제의 요새를 점령하지 못하면, 목초지를 빌려주고 무역권도 준다는 약속은 전부 공염불이 되니까.”
“그럼 수확이 아예 없소?”
“간 보고 싶거나 모험을 하고 싶은 놈들 좀 모아왔소. 서른쯤.”
“잘 됐구만. 그놈들 잘 챙기쇼.”
카치운은 에드워드의 뺨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
“그런데 어쩌다 맞았소?”
“우리의 물주인 그 공주님한테 새삼 노출 취미가 생긴 줄 알았는데…… 걔는 그냥 이 정원이 마음에 들어서, 왕궁 밖에 나온 김에, 어두워서 잘 안 보이니까, 설령 오크 따위가 보더라도 놈들은 짐승에 불과하니 비밀이 샐 일도 없으니까, 일탈 삼아 한번 야외에서 ‘태초의 부부’ 놀이를 로망 있게 해보고 싶었을 뿐이고…….”
“경은?”
“말을 곧이곧대로 해석해 고무적이며 본격적이고 대담한 노출 플레이를 시도했다가 너 미쳤냐는 소릴 들었지. 젠장. 항상 그렇지만, 여자어는 어려워.”
“맞을 만하네. 잘 노셨구만.”
그때, 시야의 산속에서 연기가 미친 듯이 치솟기 시작했다. 카치운은 놀라서 자리에서 반쯤 몸을 일으켰지만, 에드워드는 느긋했다.
“앉으쇼. 미아가 연막탄 갖고 이것저것 실험해보는 거니까.”
“엥? 연막탄으로? 무슨 실험을 하는 거요?”
“그건 비밀. 그래서 저기까지 가서 하는 거요. 호위로 올리비아를 포함한 성묘수호기사단 기사들 몇 명을 붙여줬고. 입단속은 그쪽이 편하거든.”
“쓸만한 거요?”
“몰라. 될지 안 될지도 모르고. 되더라도 언제 될지 모르고. 이번 전투에선 결국 안 쓸지도 모르지.”
“손수레도 그렇고 별별 잡동사니들을 다 갖고 노시는군. 기사다운 일은 아닌 것 같소만.”
“목수, 대장장이, 땜장이가 할 법한 일들이지. 꺼냈다간 너 기사 맞냐는 소리나 들을 발상들이고. 근데 이젠 입장이 바뀌었잖소. 쓸 수 있는 건 다 써야지.”
에드워드는 환생 전 각종 창작물에서 종종 봤던 것들 중 생각나는 것들을 신중하게 골라내고 있었다. 흔히 영지물이라고 불렀던 소설, 게임, 만화 같은 것들에서 특히.
그러나 아무거나 마구 시도하는 건 금물이다. 지금 기술 수준으로 실현이 가능한 것만 골라내는 데도 골이 깨진다. 예산과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개발기간은 장담할 수 없으며, 그 여파는 에드워드 자신이 감당 가능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고, 당장 쓸모가 있어야 한다.
“머리터질 것 같아.”
“그런 잡동사니들로 이길 수 있는 거요?”
“뭐, 잡동사니들은 어디까지나 보여주는 게 목적인 거요. 그게 보이면 오크 사령관 놈은 안 나오고 못 배길 테니까.”
“어째서?”
“로스트 템플을 헤보면 알 수 있지. 나라도 적이 내 앞마당에 벙커도 없이 멀티를 까면 이 새끼가 미쳤나 하고 뛰쳐나올 수 밖에 없거든.”
“뭔 말을 하는겨.”
에드워드는 카치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주변이 박살나든 말든 성만 지키면 된다…… 그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뇨. 지휘관은 상급자의 의도보다 자기 눈 앞의, 자기 지역의, 자기 부대의 일이 더 신경 쓰이기 마련이거든.”
“그야 그렇소만…….”
“적의 상황에서 생각해보자고. 지금까지는 수적으로 유리하지만, 성 안에 처박혀 있기만 하면 그 수는 점점 깎여나갈 수밖에 없어. 유일한 희망인 원군은 언제 올지 모르지. 거기에 인간 기사들은 상대방이 못 나올 걸 안다는 듯이 활개치는 거야.”
“오크들이 상상 이상으로 신중해서 안 나온다면, 놈들 지원군이 우리 지원군보다 빨리 오면 어찌 되는 거요?”
“그땐 잽싸게 우리 성으로 돌아가야지. 사실 그것도 나쁘진 않아. 여기에 널리는 건 오크들 시체지, 인간 시체가 아니거든. 포위만 안 당하면 말이야. 그러니 최소한 우릴 견제할 부대 정도는 내보낼 수밖에 없어. 몽땅 다 나와주는 게 베스트긴 한데.”
그때, 한 병사가 뒤뜰로 들어왔다. 그는 에드워드를 향해 말했다.
“에드워드 경. 적 요새에서 오크 부대가 출진했답니다.”
에드워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시나. 수는?”
“일천쯤은 된답니다. 주변 부락들에게서 전사들을 흡수하면 더 늘어나지 않을지…….”
“적 우두머리처럼 보이는 놈은 없어?”
“그 소문의 발라민이라는 사령관은 아닙니다. 놈들을 이끄는 게 오크가 아니라 세트렛인이라고…….”
“신중한 새끼. 견제용 부대잖아. 이렇게까지 하는 데도 안 기어나와?”
카치운은 웃어버렸다.
“어쩔 거요?”
“그 요새 내부 병력과 주변 오크만 소환해도 삼천에, 지역 전체면 오천은 넘을 텐데. 지휘관이 세트렛인에 겨우 일천이라. 늘어나면 일천오백쯤 되려나? 약탈방지를 위한 견제용 부대면 적당한 지형을 골라서 모습만 비추려고 하겠지. 우리 다음 수를 제약하려고.”
“우리가 소수면 차례차례 섬멸시킬 거고, 모이면 대치해서 시간 끌겠지. 그런데 놈들 뜻대로 대치해주는 건 기사 양반 취향이 아니지?”
“당연한 소릴.”
에드워드는 몸을 돌렸다.
“이 오크 새끼들에게 좀 더 절망과 희망 풀코스를 안겨줘야겠군. 사양하지 말고 듬뿍 드시라 해야지. 전령, 출진 준비! 흩어져서 약탈 중인 부대들을 다 불러라!”
“예!”
“아, 그리고. 하나 더.”
“예?”
에드워드는 전령을 향해 말했다.
“헬레나랑 페트로스도 불러. 나 좀 보자 그래. 엘프들에게 제안할 게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