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63)
263화 미끼는 원래 단맛에 쓴맛
“급보! 급보!”
오크 전령이 비명을 지르며 요새로 뛰어들었다. 그의 어깨에 꽂힌 아르데니아 엘프식 화살이 사태의 위급함을 드러냈다. 그는 순식간에 아성까지 달려가 오크 사령관 발라민 앞에 무릎 꿇었다.
“보고 드립니다! 출진했던 부대가 전멸했습니다! 지휘관 전사!”
발라민은 탁자를 주먹으로 쾅 치며 일어났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 내가 분명히 정면대결은 피하라 했는데! 고지에서 모습만 보여줘도 놈들은 멈출 거라고 했잖느냐!”
“안 멈췄습니다! 전혀 안 멈췄습니다!”
오크 전령은 자세한 설명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부하들 사이에서의 웅성거림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발라민은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아무리 그래도 훈련을 받은 부대인데…… 그렇게 빨리 당했다고?”
이 자루형 토지 안에는 방어 거점이 될 만한 건축물이나 지형지물이 적다. 그건 기사들만이 아니라 오크들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였다. 그래도 나름 신경 쓴 배치였는데, 인간 기사들은 그걸 무시하고 쳐들어갔고 이겼다.
“마을을 짓고 채굴을 시작한 것 같다는 말에 이놈들이 미쳤나 했더니만…… 적들의 실력이 보통이 아닌 모양입니다.”
한 오크 부하가 말했다.
“우릴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멈추질 않고 그대로 돌격해와……!”
다른 오크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이를 갈았다. 발라민은 황급히 다음 질문을 꺼냈다.
“그래서, 적 부대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나? 이 성을 향해 오고 있나?”
이 정도로 오만한 적이라면 바로 공성전을 진행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사다리 정도는 얼마든지 언제든지 급조할 수 있다. 그리고 엘프 정예병들은 그 정도 발판만 있으면 웬만한 장애물이나 성곽쯤은 뛰어넘을 수 있는 괴물들이다. 200명 남짓한 엘프들을, 그리고 중무장한 기사들을 앞세워 공성전을 시도한다는 건 불가능한 계산이 아니었다.
그러나 전령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전투 직후 동쪽으로 계속 진군하다 방향을 꺾어서, 엘프 부대들을 데리고 서남쪽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서남쪽? 이 요새와 반대 방향 아닌가!”
“그게, 한 정찰대원이 인간들의 대화를 엿들었는데, 엘프들의 식민도시를 건설할 터를 찾아본다고…….”
“뭐라고?!”
요새 코앞을 스쳐 지나가는 기동, 존재를 무시하는 개척. 대놓고 깔보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계속 나빠지는 상황에 상처난 자존심까지 겹치자 오크들은 말 그대로 눈이 돌아갔다.
“놈들은 이 성을 공략할 생각이 없군요. 게다가 우리가 안 나올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당장 출격합시다! 이대로 있다간 바깥의 오크 부락들은 전멸합니다!”
“철광의 채굴이 재개되게 놔둔다면 그것도 문제입니다!”
“우리 지원군보다 적 지원군이 먼저 올지도 모릅니다! 적 부대에 시오니아 왕실 문장도 있었다 하잖습니까! 그 전에 승부를 보는 게 나을 수도 있습니다!”
“적진에 공주가 있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그녀를 생포해 인질로 삼으면 일발 역전도 가능할 터인데!”
발라민은 주변의 소음 속에서 머리를 핑핑 돌렸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근래 들어온 정보들이 방금 전의 전황보고랑 뒤섞여 소용돌이쳤다.
얼마 전에는 이상한 수레가 철광산과 적 부대 근처에서 보이기 시작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운 좋게 실물 하나를 노획해 관찰할 수 있었는데, 좁고 험한 길을 가기 위해 고안된 것 같다고 했다. 엄청난 키의 거인족 여성이 밀가루 포대를 거기다 싣고 뛰는 걸 봤다는 정보도 있었다.
철광산에서 인근에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단순히 끼니를 잇기 위한 연기는 아니고, 흡사 용광로를 달구거나 숯을 만드는 것처럼 자욱했다고 한다.
시오니아의 공주가 따라 왔다던가, 기사들이 여자들과 시시덕거리고 있다던가…….
“아니, 잠깐! 지도를 봐라!”
발라민은 지도를 짚었다. 조악하게 만들었지만 주변 지형 정도는 표시된 지도였다. 그의 손가락이 한 고갯길을 가리켰다.
“놈들이 기동하는 곳은 주위보다 높고 경사가 가파른 절벽을 끼고 있다. 이곳을 빠져나가 하천지대로 가려면 필연적으로 좁고 가는 내리막길을 지나가게 되는데…….”
“오오오! 그런 곳을 지나가려면 대열을 허물 수밖에 없습니다! 뒤에서 공격하면……!”
“잘하면 절벽 위에서 덮치듯 공격할 수도 있습니다!”
극적인 해결법. 갑자기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발라민은 전령을 향해 다시 고개를 돌렸다.
“엘프 부대가 인간놈들과 다 같이 있는 게 분명한가?”
“분명합니다! 똑똑히 봤습니다! 그들이 선두였습니다!”
그럼 성을 비워도 엘프 부대가 빈집털이를 시도한다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
“잠시…… 잠시만 기다려라.”
발라민은 부하들을 내버려두고 다른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은 전에 쓰던 회의실이었다. 문짝은 커다란 자물쇠와 쇠사슬로 봉해져 있었고, 발라민은 열쇠를 꺼내 그 문을 열었다.
악마 레피림이 두고 간 철퇴가 아직 거기 있었다.
레피림은 발라민이 철퇴를 잡는 걸 보지도 않고 사라졌다. 마치 선택은 네 몫이라는 듯. 신중한 성격의 발라민은 당장 자루를 쥐진 않았다. 대신 잠시나마 생각할 시간을 갖기 위해 회의실을 봉인했다.
발라민은 침을 삼켰다.
이걸 잡으면 돌이킬 수 없다.
그러나 악마의 선물이 요새에 남겨졌다는 사실은 이미 다른 오크들이 다 알았다. 언제 누가 자물쇠를 따거나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훔쳐갈지 몰랐다. 도둑 오크는 악마의 힘을 손에 넣는 순간 발라민부터 죽이고 요새를 손에 넣을 가능성이 컸다. 계속 미뤄두면 불안요소만 커진다.
발라민의 머릿속은 다른 오크들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상상으로 가득찼다.
‘사령관의 예상이 빗나가기 시작했어.’
‘병력 1천 명만 날렸네.’
‘신중하긴 개뿔. 더 불리해졌잖아.’
‘처음부터 전력으로 맞부딪혔어야 했어.’
‘끼리끼리 논다고, 오크도 아닌 세트렛인을 지휘관으로 기용해놓고는.’
‘도움이 안 돼.’
‘악마의 선물을 왜 구경만 하고 있지?’
‘내가 그걸 가지면 이 지역의 대족장쯤은 되지 않을까?’
모든 상황이 발라민의 감정을 정당화하기 시작했다.
발라민은 철퇴의 손잡이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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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시 리안나는 거인 여성 지클린의 손수레에서 내리자마자 토하기 시작했다.
“축대에서 나는 소음 때문에 죽는 줄 알았어요! 역시 수레는 사람이 타는 게 아니야!”
“잘 타는 사람도 있는데 뭘.”
에드워드가 말했다. 마찬가지로 지클린의 손수레에서 뛰어내린 가르달이 말했다.
“예컨대 나 같은 드워프 말이지. 나무에 기름칠을 해도 소음이 나는 건 별 수 없구만.”
“시승 소감이 어떻소?”
“걸작이오. 적재량이 확 늘어나니까, 짐 말고 사람을 좀 태워서 움직여도 되겠어. 다양하게 개량해봐야지.”
“적당한 노획품도 하나 던져줬고?”
“시제품 중에 하나를 진창에 빠진 척 버려놨는데, 오크놈들이 가져갔겠지. 좀 아깝구만.”
“수레야 각 도시에서 계속 만들 테니 아쉬워하지 맙시다.”
가르달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다음은 지클린.
“안녕하세요, 기사님!”
“머리 쓰다듬으면 쫓아낼 거요.”
“어머나, 농담도 잘하시긴! 조르쥬 경은요?”
“로드리고 경이랑 같이 준비 중. 경험자가 필요해서.”
“경험자요?”
“에드워드식 야바위형 공성 경험자.”
“아하. 뭔지 몰라도 뭔가 준비하는 게 있으신가 보네요?”
지클린, 가르달, 리안나는 집결한 인간 부대들로 시선을 돌렸다. 그들의 발 아래에는 죽은 오크들이 산더미였다. 가르달이 먼저 물었다.
“이놈들이 그거요? 견제부대?”
“같잖게 간을 보길래 그냥 돌격해서 깨버렸어. 다 죽이진 못했고, 상당수는 도망쳤지.”
“젠장. 좀 더 일찍 오면 나도 끼는 건데!”
“그것보다 이 수레들 말인데. 위장이 가능하겠소?”
“엥? 위장?”
“나뭇가지 따위를 잘라다 얹어놓을 수 있냐고.”
“지금도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잔뜩 얹혀 있긴 한데.”
조립 전의 공성용 사다리들. 에드워드는 웃으면서 말했다.
“저게 안 보이게 해줬으면 좋겠소.”
“움직이는 숲을 만들라는 거요? 재미는 있겠구만. 근데 무슨 목적으로 위장하려는지 몰라도, 지금 겨울이라 이파리로 가릴 수도 없는데.”
“수레와 사다리의 외곽만 숨길 수 있어도 돼. 멀리서 보면 앙상한 나뭇가지 더미거나 잡목처럼 보이는 걸로. 안 되면 밀가루 포대를 덮어서 다른 짐으로 위장하던가.”
“노력해보지…….”
드워프는 수레들을 보며 머리를 싸매고 낑낑거렸다. 헬레나가 그 옆에 붙어 말했다.
“참고로, 엘프들이 쓸 거니까 그렇게 아세요.”
“응? 엘프들? 개척지 찾으러 간다고 들었는데 왜 공성용 사다리를…….”
가르달의 시선이 엘프 부대로 향했다. 그리고는 입가가 뒤틀렸다.
“기사양반?”
“왜?”
“내 눈이 잘못된 건 아닌 듯한데?”
“정답.”
가르달은 에드워드를 보고 씩 웃어버렸다.
“우리가 서로 적이 아니라 참 다행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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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라민의 오크 군대는 신속하게 출진했다. 좁은 길을 통과하는 적의 후미를 친다는 것은 시간을 다투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에드워드의 군대가 그 길을 내려가기는커녕 진형을 짠 채 대기중이었다는 것.
“안 내려갔다! 안 내려갔어!”
당황한 오크들이 소리치기 시작했다.
“속았다!”
발라민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일단 출진한 이상 물러날 수도 없는 법이었다. 급한 출진에, 후속하는 인근 부락의 오크 부대들이 뒤에 줄줄이 이어져 있었다. 섣불리 후퇴하면 모든 게 무너진다.
“선두 정지! 진형을 짜라! 서둘러! 늑대 기병 부대를 양익에!”
물론 이제 와서 멈춰봐야 최악의 상황을 간신히 막을까 말까 한 상황이었다.
카치운의 명적이 하늘을 가르며 날아갔다. 삐이이이익! 에드워드의 부대가 먼저 공격을 시작했다. 에드워드는 열쇠검을 뽑으며 소리쳤다.
“다 깨부숴라!”
에드워드가 짠 진형은 가운데 보병대가 모서리를 적한테 향하는 삼각형. 선두는 정예 엘프 보병대였다. 기병은 양익 배치.
오크들도 지지 않고 고함을 질렀다.
“밀리지 마라!”
뒤이어 우지끈 하고 뼈 부러지는 소리, 방패끼리 부딪히는 소리, 말발굽에 깔리고 발톱에 찢기는 소리가 터졌다.
오크들은 비록 진형을 제대로 못 갖췄으나, 태생적으로 인간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고 완력은 더 강한 종족이었다. 수는 두 배 이상 우위. 게다가 아껴둔 대형 늑대, 바르그 기병은 엘리트 중의 엘리트로 인간 기사들에게도 쉽게 밀리지 않았다.
싸움의 열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뭔가 이상합니다.”
한 오크 부하가 말했다. 발라민은 지휘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그 말을 간신히 챙겨 들었다.
“이상하다니, 뭐가 말인가?”
“제가 엘프들이랑 싸워본 경험이 적고, 저들은 처음 보는 타지 엘프들이긴 합니다만…….”
“길다! 짧게 말해!”
“저쪽 엘프들이 생각보다…… 못 싸우는 건 아닌데…….”
그제야 발라민은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정령의 가호를 받는 엘프들의 난전 치고는 무기를 휘두르는 게 너무 얌전했다. 오히려 인간 중보병에 가까운 모습.
눈을 부릅뜨고 유심히 엘프 부대를 살펴보던 발라민은 곧 한 엘프 중보병이 투구가 벗겨지며 쓰러지는 걸 보았다. 반쯤 벗겨진 투구는 가죽끈이 달려 주인에게서 쉽게 달아나질 않았는데, 때마침 한 오크의 칼날이 그 가죽끈을 끊었다.
“아뿔싸! 또 속았다!”
발라민은 비명을 질렀다. 선두의 적 보병대는 엘프가 아니었다. 아르데니아 엘프식 갑옷과 투구로 위장한 인간 보병대였다. 발라민은 황급히 돌아섰다.
“성으로 귀환한다!”
“예? 지금요?! 그랬다간 전열이 무너집니다!”
“상관없다! 서둘러! 주술사들은 독구름 주술이라도 써서 적의 추격을 차단해라! 남은 부대라도 수습한다!”
그 직후 오크 부대의 전열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동요는 순식간에 부대 전체로 퍼졌고 고함소리, 비명소리가 뒤섞여 아수라장이 만들어졌다.
전형적인 패주가 시작되었다. 에드워드는 무너지는 적 대열과 그 사이 치솟는 황색 구름을 보며 명령했다.
“생각보다 빨리 눈치챘군. 흩어진 놈들은 신경쓰지 말고, 적을 몰아가라! 꽁무니를 물어! 다소의 독구름은 사제님들을 믿고 돌파한다!”
“그러다 중독되면? 우리야 유니콘의 뿔 같은 것도 있지만.”
카치운이 묻자 에드워드는 단호하게 말했다.
“맹독이라도 증상 나타나기 전에 저 새끼들 다 조지고 치료 받으면 돼!”
카치운은 그 단순한 해법에 감탄을 겸한 폭소를 터뜨렸다.
“이것도 앵글리아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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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판이 난 전장에서 급히 돌아나온 발라민과 그 이하 부대들은 인간 기사들의 가열찬 추격을 받으면서 간신히 성 앞에 도착했다. 그러나 발라민 앞의 성문은 전혀 열리지 않았다.
굳게 닫힌 성문과 그 망루 위에는 이미 에드워드의 매듭 문장 깃발이 휘날렸다. 성벽 위를 점령한 건 인간들과 갑옷을 바꿔 입은 엘프들이었다.
헬레나는 성벽 위에서 피 묻은 글레이브와 깃발을 들고서, 싸늘한 표정으로 발라민을 내려다보았다.
“멍청이.”
발라민은 분노의 고함소리를 내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