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64)
264화 번개질주(1)
전투 배치 전, 에드워드의 ‘요청’을 들은 페트로스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엘프와 인간의 갑옷을 바꿔 입자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릴! 아르데니아 엘프들의 갑옷은 보통 물건들이 아닙니다! 엘프 기준으로도 몇 대는 거슬러 올라가는 가보 같은 것들도 있고, 인간의 갑옷보다 비쌉니다! 무엇보다도, 단순한 도구가 아닌 인간과 엘프를 구분 짓는 정체성 중 하나인데…….”
길고 긴 거부의 말이었다. 에드워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중요한 물건인 건 알고 있소. 그런데 안 그런 갑옷이 있나?”
“인간 기사 앞에서 이런 말을 하긴 좀 그렇지만, 병사들의 탐욕 앞에서 갑옷이 멀쩡할지 남아날지 걱정되는 건 어쩔 수가 없군요. 빼돌려놓고 이탈해버리면 어쩝니까?”
“아르데니아 엘프 갑옷은 인간의 갑옷들과 양식이 다르니까 눈에 쉽게 띌 것 같은데. 웬만하면 찾아 족칠 수 있지 않을까? 여기가 복잡한 도시도 아니고. 뭐, 일단은 제정신 박힌 정예들과 바꿔 입힐 테니까.”
“아니, 악의가 없더라도 전투 중 손망실은 당연히 일어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아르데니아에 편지 써. 물자 보충 좀 하자고. 수리비용은 이쪽이 지불할게.”
“말은 참 쉽습니다만…….”
“갑옷 바꿔 입으면 뭐 아르데니아에서 잡으러 와? 씨족에서 제명돼?”
“그건 아닙니다. 바꿔 입지 말란 법은 없습니다. 없는데…….”
페트로스가 말꼬리를 흐리는 순간, 헬레나가 동생의 멱살을 붙잡아 들어올렸다.
“크헉? 누님?!”
헬레나는 싸늘한 표정이었다.
“할 거야, 말 거야?”
“누님, 이것 좀 놓고……!”
“옷 좀 바꿔 입기 싫다는 이유로 다 된 죽에 재를 칠 거냐고, 이 귀쟁이 자식아.”
낮게 으르렁거리는 목소리와 그 내용에 페트로스는 충격 받은 표정을 지었다. 에드워드도 입을 쩍 벌렸다.
페트로스는 간신히 항변했다.
“아니, 누님. 요즘 너무 인간 편을 드시는 게……!”
“아르데니아 엘프와 벚나무 씨족의 자존심이란 게 겨우 갑옷에 달렸어? 그게 신성한 제단이나 동족의 운명에 비견할 만한 거야? 그딴 사소한 거 하나하나가 중요해? 싸우다 귀라도 잘리면 아예 고블린 행세 하고 다녀야겠다, 응? 내가 뭣 때문에 몸을 던져서 이 지랄을 하고 있니?”
대롱대롱 흔들흔들.
“아니, 누나, 이것 좀 놓고 말해!”
“여기서 극적인 공을 세워야 이야기가 풀릴 것 아냐? 그것도 몰라? 지금 이 방법보다 더 좋은 거 있어?”
“옷을 바꿔 입지 않아도 별동대로 움직이는 건 가능하잖아?”
“여기 엘프 없다고 광고하면 오크들이 성 밖으로 기어나오겠니?”
“그건 해봐야 아는……!”
“할 거야, 말 거야?”
당황한 페트로스는 에드워드를 돌아봤다. 에드워드는 이때 취해야 할 행동에 대해 잘 알았다. 그는 최대한 정중하게 입을 열었다.
“저기, 헬레나 양? 흥분한 건 알겠는데 동생분은 일단 놓고 이야기하는 게…….”
“엘프들 사이의 이야기니까 인간은 입 닥치고 계세요.”
“넵.”
날이 선 목소리가 에드워드를 향하자 그는 냅다 물러섰다. 그는 페트로스와 눈이 마주쳤다. 다행히도, 페트로스가 보는 인간 기사의 얼굴은 이 모든 것을 뒤에서 조종하거나 방관하는 자의 얼굴이 아니었다.
‘저걸 어떻게 말림?’
오히려 희생자의 얼굴에 가까운 표정. 진실성을 의심할 수 없는, 동지애적 안타까운 눈빛은 덤. 페트로스는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겠습니다. 갑옷을 바꿔 입죠.”
“좋소. 아, 엘프만으로는 부족할 테니 인간 병사들과 기사들도 붙여주지. 발판이 될 공성사다리는 저걸로 옮길 거요.”
에드워드는 외바퀴 손수레들을 가리켰다. 헬레나는 페트로스의 멱살을 놓아주었고, 그는 쿨럭거리면서 그 손수레들을 살펴보았다.
“나귀 같은 짐승에 안 얹으시고?”
“사다리가 생각보다 크고 튼튼한 물건이라 나귀 등에 직접 올려서는 많이 옮기기 어렵소. 뭐, 물자만 옮기는 게 아니라 저대로 해자에 던져서 발판으로 쓴다거나 할 수도 있겠지. 운용은 현장 지휘관이 알아서 하쇼.”
“해자를 메꾸는 데는 모래주머니가 더 효과적일 테니 그걸 같이 쓰겠습니다. 저 수레로 나르면 되겠지요.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그런데, 과연 오크 놈들이 엘프 갑옷을 입은 인간에 속을까요?”
“내가 심심해서 부대들을 분산해 오크 부락들을 불태운 게 아니오. 관찰할 놈들을 없애려고 한 거지.”
“예?”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고, 안 보여주고 싶은 건 안 보여주는 거지. 그건 우리 편도 마찬가지요. 지금 집결하고 있는 부대들은 엘프들이 파견된 소수를 제외하면, 아르데니아 엘프들이 어딨는지 누군지도 몰라.”
“그야 그렇겠지요.”
“그들한테 엘프 식민도시 개척 이야기를 파다하게 퍼뜨렸지. 다들 그게 사실인 줄 알고 떠들 거요. 운 좋은 오크 생존자나 정찰병은 그걸 주워 듣겠지.”
“그렇게 잘 풀릴까요?”
“적 사령관은 정보를 탐하는 신중한 녀석이니까. 그리고 듣는 순간 그걸 사실이라고 믿어버릴 거요. 오크 부락들의 연결망이 붕괴되면서 들어오는 정보가 너무 적어졌으니.”
에드워드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 다음엔 공성사다리와 엘프들을 숨겨서 우회시키면 그만이지. 성벽 넘는 건 자신 있지 않으시오?”
“방어병력이 얼마나 남느냐에 따라 다르겠습니다만…….”
“거의 다 끌고 나올걸. 1천 명의 견제부대도 내가 작살을 내놨으니. 여유 부렸다간 못이길 거라고 생각할 거요.”
페트로스는 잠시 침묵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어떻게 그리 딱딱 맞아 떨어질 거라 예측하십니까? 그것도 베레스포드 공작의 기사 교육 과정입니까?”
“그것도 있고…… 공작님보다는 로버트 국왕 폐하 방식이지. 사실 이렇게 예측할 수 있는 이유는 단순하오.”
“예?”
“내가 일이 그렇게 될 때까지 다 죽이고 불태우며 돌아다닌 거니까.”
어떻게 생각하면, 섬뜩한 말이었다. 페트로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앵글리아식 맞는 것 같군요.”
에드워드는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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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계산이 맞아떨어진 지금. 분노하는 발라민을 내려다보던 헬레나는 슬쩍 옆의 남동생한테로 시선을 돌렸다. 페트로스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쏴라!”
투투투퉁! 엘프들의 화살이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폭포처럼 쏟아졌다. 발라민의 군대는 화살의 사정거리 안에 이미 들어와버렸고, 높은 데서 쏘는 화살은 더 멀리까지 날아가니 거의 일방적으로 맞는 구도가 펼쳐졌다.
오크 무리들이 방패를 들고 사령관 주변에 모이는 걸 본 헬레나는 인간 기사들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놈들이 어떻게 나오느냐가 문제군요. 그런데 또 술 드시나요, 로드리고 경?”
“승전주요.”
“아직 안 끝났는데요.”
“요새를 뺏은 기념. 그나저나 곧 재정비가 끝나는데, 성문을 열고 나갈 거요?”
“아르데니아 엘프들이 일당백이더라도 그런 짓은 하고 싶지 않네요. 만에 하나 놈들이 성문 앞으로 들이닥치면 다시 닫을 수 있겠어요? 다른 방법이 있어요.”
“어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르데니아 엘프들이 굵직한 밧줄들을 갖고 성벽에 올라왔다. 로드리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놈의 행동이 문제군. 부인 말씀대로.”
화살에 노출된 채 추격당하면서 그대로 성벽을 따라가다 샛길이라도 찾아 남쪽으로 이탈. 그러나 요새를 관통하는 대로는 물론이고, 그 앞의 샛길들은 모두 투사무기 사거리 아래 있다. 도주를 선택해도 발라민은 큰 피해를 치러야 한다.
어쨌거나 그를 포함한 운 좋은 일부는 주술사 왕의 영역으로, 돌출부로 탈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발라민은 화살비를 무릅쓰고 탈출하질 않았다. 그는 돌아섰다.
“역시 오크라고 해야 할까요? 무모하군요. 진형은 무너졌고, 성은 뺏겼고, 앞뒤로 포위당할 판인데.”
“뭐, 예상 못한 건 아니오. 이대로 패주했다간 주술사 왕이 쟤 모가지를 잘라다 장식품으로 쓸걸.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인 거지…….”
“패장의 말로군요.”
“그렇소. 패배해도 다시 기회를 얻는 예야 많지만, 이번 패배는 워낙 치명적일 테니 주술사왕이 그럴 것 같진 않군.”
때마침 내부 잔적 소탕을 마친 기사 조르쥬도 성벽에 올라와 그 광경을 보았다.
“역시! 도망치지는 않는군요. 도망치는 건 잡병입니다.”
몇몇 오크 부대들이 명령을 따르지 않고 제 살길을 찾아 질주하는 게 보였다. 물론 다수는 화살세례를 받고 있지만.
헬레나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성벽 아래로 늘어뜨린 밧줄을 붙잡았다. 그녀는 설명 없이 아래로 몸을 날렸고, 다른 엘프들이 그 뒤를 이었다.
인간 기사들은 그 모습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경은 저럴 수 있나?”
“장갑 끼고 성벽에 발 딛고 얌전히 내려간다면.”
“엘프들이 소수라도 전란에 안 사라지는 이유를 알 것 같군.”
그때 리안나가가 그들 곁으로 쪼르르 달려와 물었다.
“우와! 간만에 펑펑 울었어요! 이젠 엘프들의 ‘진지한 부탁’도 거부할 줄 알아야 할 것 같아! 밴시는 공성병기가 아니에요! 잔적소탕 도구도 아니고! 요정을 뭘로 아는 거야! 그나저나 기사님들, 저흰 안 내려가도 되겠죠? 여기서 활 쏘고 돌 던지는 것도 중요한 일일 텐데…….”
두 기사는 서로를 마주 본 다음, 주머니에서 천쪼가리를 꺼내 귀를 막았다. 그 다음, 리안나의 어깨를 한쪽씩 붙잡았다.
어리둥절한 표정의 밴시를 향해 로드리고가 말했다.
“유감이다, 요정. 에드워드 경이 너는 꼭 성문 앞에 매달라 했거든.”
밴시는 냅다 비명을 질렀다.
“다들 꼭 지옥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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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 주술사들의 독구름은 다행히 맹독이 아니라 눈코입을 자극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독구름 주술은 면적과 독성이 반비례.
광활한 전장에 쓰면 안 그래도 낮아진 독성이 더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흥분한 기병대는 그런 사소한 독성 정도는 기꺼이 무시하고 달려가, 적을 짓밟을 위력이 있었다.
“으아아아아악!”
오크들은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정예라던 늑대기병들은 전열이 무너지는 꼴을 보자마자 제일 먼저 달아나버렸고, 지금은 각자 샛길을 찾아 흩어진 상황이었다.
뒤로 돌아 달려가던 중의 오크 창병들은 인간 기병들을 막을 진형을 짜지 못했다. 한번 무너진 진형을 다시 짠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화살도, 주술도 기병대를 막기엔 불충분했다.
“남김없이 짓밟아라! 적을 살려두는 놈은 내 손에 죽는다!”
그제야 전면에 나선 에드워드가 소리쳤다. 그는 열쇠검을 휘둘러 오크들을 마구 베어넘겼다.
“에드워드 경! 저쪽에 적 사령관이 있습니다!”
한 기사가 소리쳤다. 그의 손가락 끝에는 과연 남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데다, 피부에 색칠놀이를 해놓은 오크가 있었다.
놈은 다각형의 추가 달린 철퇴를 들고 에드워드를 노려 보고 있었다.
“저놈이다! 저놈을 죽여라!”
에드워드의 명령에 그의 군대는 급속도로 세가 줄어든 발라민의 부대를 에워싸 공격하기 시작했다. 아직 수는 많지만 사방에서 포위당하고 무너지기 시작한 이상 전멸은 시간 문제였다.
그때 발라민의 철퇴가 샛노란 섬광을 내뿜었다.
콰르르릉!
섬광이 좁은 부채꼴로 터지면서 달려나가던 기사들과 병사들을 휩쓸었다. 범위 안의 오크들도 감전되어 나뒹굴었다. 사거리는 투척무기 수준으로 짧지만 위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철퇴 주변에 번갯불이 튀는 걸 본 에드워드는 투구를 들어올린 채 혀를 찼다.
“저건 웬 토르 짝퉁이야? 야, 스텔라. 마법사가 근처에 있냐?”
“아닌 것 같은데요! 적어도 번개마법사는 아니에요!”
스텔라가 비명처럼 말했다. 그녀는 빠르게 상황을 분석했다. 마법사가 일반 무기에 주문을 건 것은 아니었다. 그럼 남는 건 처음부터 마법의 힘을 가진 무기들. 그런데 위력은 일반적으로 보이는 것들 이상.
“시약도 마법사도 없이 단독으로 저 정도의 위력을 내는 무기라면…… 악마의 선물, 지옥에서 건너온 물건일 가능성이…….”
“악마의 선물이라. 골치 아픈 게 있었군.”
에드워드는 잠시 생각해보더니 스텔라를 돌아봤다.
“그래도 번개 속성이면 어떻게든 대응 가능하겠지? 너도 번개 속성이잖아.”
“이제야 불 속성 주문을 안 하시네요. 어떻게든 해보죠.”
에드워드는 피식 웃으면서 투구를 도로 내렸다.
“엄호해,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