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67)
267화 알박기 (2)
주술사왕은 검은벽요새가 함락됐다는 소식에 대경실색했으며, 간신히 살아서 도망쳐온 오크들한테서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다. 레피림이 ‘악마의 선물’을 오크 사령관 발라민에게 제공하면서 충동질했다는 것까지 알았을 때 그는 격노했다.
“그 머저리 같은 악마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아니, 굉장히 똑똑한 년이지.”
같은 탁자에 앉아있던 다른 노인의 말이었다. 주술사왕은 분노가 가득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 넓은 영토를 떼다 준 것도 모자라 내 전략을 일그러뜨리는 게 똑똑한 짓이라고? 니코스, 네놈이 또 치매가 도졌는가?”
최고의 떠돌이 주술사, 악마도 도망치는 재앙 니코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당신이 레피림과 같은 편이라면 멍청한 짓이지. 하지만 아니잖나?”
주술사왕은 입을 다물었다. 언젠가 그가 레피림에게 비슷한 논리의 말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니코스는 최강의 주술사에게 말했다.
“레피림은 당신이 얼마나 큰 영토를 잃는지 관심이 없어. 악마는 인간의 논리와 영역 밖의 존재니까. 오히려 에드워드 경이 자네의 턱밑에 칼을 들이밀길 바랄걸. 그래야 자네가 진심으로 그 기사를 죽이려 들 테니까.”
발라민이 에드워드를 죽여도 좋고, 반대로 패해도 주술사왕이 경각심을 갖게 된다. 레피림의 계산이란 그런 식이었다. 주술사왕은 앓는 소리를 냈다.
“신흥악마란 놈들은 존중이 없어!”
“동의하네.”
그때 한 하녀가 물병과 컵을 올린 쟁반을 갖고 방 입구를 기웃거렸다. 니코스는 손짓으로 그 하녀를 불렀다. 그녀는 주술사왕의 눈치를 살피다 탁자 위에 쟁반을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잽싸게 자리를 떴다.
주술사왕은 하녀를 꾸짖거나 니코스에게 핀잔을 주지는 않았다. 니코스는 자신의 컵과 집주인의 컵에 물을 채우며 말했다.
“물 좀 마시겠네.”
“내가 물을 주든 말든 자네는 죽지 않을 텐데, 뭘.”
물을 주는 건 살려주겠다는 의미. 니코스는 껄껄 웃었다.
“친절한 사람들이 많아서 말이야. 여기까지 안내해 준 오크 족장도 참 친절하더군.”
“부락이 네 결함투성이 주술로 개판이 났으니까. 제발 네놈 좀 빨리 데려가 달라고 빌던데.”
“난 오크에게 주술 안 팔아. 인간에게만 팔지. 내가 봐준 건 이미 그들이 갖고 있던 주술도구들이야.”
“그거나 그거나.”
“다 엉터리였어. 그런 시행착오를 겪는 게 오크 주술사들이지만. 좀 괜찮다 싶은 건 다 자네 작품의 모방이더군.”
“그야 그렇겠지.”
“그걸로 오크들을 통제하는 모양이던데.”
“하고 싶은 말이 뭐냐?”
니코스는 물컵을 반쯤 비운 다음 말했다.
“자네는 어둠의 편에 서 있지만 그건 단지 장소일 뿐이야. 방식은 전혀 아니지. 인간도, 오크도, 오거도 복종시키는 주술사지만 복종은 주술이 아니야. 마음의 문제지.”
“내 통치방법에 의문이 있다면 지금 말해라.”
“빛과 어둠의 싸움터에서 악마의 권위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쥐고 흔드는 건 한계가 있단 말일세.”
주술사왕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니코스는 계속 말을 이었다.
“악마에게도 지지 않는 주술사, 오히려 악마로부터 부하들을 보호해 주는 주술사, 어둠의 법칙을 훔친 통치자…… 8백 년을 그렇게 살았겠지. 하지만 악마들은 그런 걸 싫어해. 시오니아 국왕만 아니었다면 자네는 진즉 악마들에게 공격받았을 거야.”
“그래서?”
“그러니 여기저기서 파열음이 나는 거야. 오크들이 자네 명령이 아니라 악마의 권위에 혹하거나, 심심하면 악마의 계시를 받은 세트렛인이 자네에게 도전하거나.”
“결론부터 말해라.”
“레피림을 치는 데 협조해 주게. 그리고 돌출부를 포기하게.”
“그건 또 무슨 개소리인지 모르겠군.”
“일진일퇴야. 지금 가장 좋은 건 양측을 자극하는 모든 요소를 없애는 거지.”
현상유지. 주술사왕은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그래서 시오니아의 차기 왕위계승자를 눈여겨보고 있나?”
“시오니아의 위기가 빛의 더 큰 움직임을 가져오지 않았나? 그럼 더 많은 인간이 죽겠지. 인간들의 최대행복을 추구하는 이 떠돌이 주술사 니코스는 그런 게 싫거든.”
“나한테 좋은 이야기는 하나도 없는데?”
“이대로 가면 자네 영역도 무사하지 못해.”
“균형이 필요하다는 놈들은 양측 모두에게 이단이지.”
“나야 원래 박쥐거든.”
“설령 필요하다 해도 그 지점은 내가 결정한다.”
명확한 거부. 니코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자네만 결정하란 법은 없지.”
주술사왕은 니코스를 향해 한번 이를 갈아준 다음, 전령을 향해 명령했다.
“인근 부락과 부대에게 연락을 넣어라. 어떤 기발한 방법으로든 검은벽요새를 탈환하는 자에게는 큰 상을 내리겠다고!”
* * *
“또 오크들이 지랄하는구만.”
성묘수호기사단원이자 은퇴를 번복한 노기사 마크의 말이었다. 검은벽요새의 성벽에 선 그의 시야에는 평원 한복판에서 발가벗고 조롱의 춤을 추는 소수의 오크가 있었다.
“방심하지 말고 똑바로 감시하십시오.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니까.”
성의 지휘관으로 임명된 성묘수호기사단원 올리비아의 딱딱한 말이었다. 마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성 아래 세트렛 마을들은 어쩐댑니까? 이대로 대군이 몰려오면, 항복한 그들은 몰살당할 텐데요.”
“그럴 여력이 있으면 진즉 왔을 겁니다. 적어도 당분간은 큰일이 없다고 봅니다. 와봤자 저런 소규모 약탈대 수준이겠죠. 촌장들에게도 그렇게 설명해놨고.”
과연 빛에 항복한 세트렛인들은 자기 마을 목책 밖으로 고개도 안 내밀었다. 마크는 그래도 뭔가 불안하다는 듯 말했다.
“가능하면 성안으로 들이는 게 안전할 텐데.”
“어지간히 큰일이 아니면 자기 땅을 떠나길 거부한 자들입니다. 게다가 아직 믿기 어렵습니다. 그게 오크들의 노림수일지도 모르니.”
“비정하시구만.”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정 어렵고 가엽다면, 예상 밖의 큰 사태가 벌어진다면 요새 안이 아니라 너머까지 잠시 이주시키는 수도 있지요. 어쨌건 우린 밖으로 안 나갑니다.”
피난한 세트렛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성문을 열어버린다면 그것도 곤란해지는 문제니, 요새 안에는 절대 안 두겠다는 것이 올리비아의 계획이었다.
마크는 주섬주섬 짐을 챙겨 일어나는 오크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흠. 이제 끝났나 보군. 잘 버티셨소.”
“그야 공주님의 부탁이었으니까…… 아아!”
올리비아는 비통한 신음을 토하며 몸을 비틀어댔다.
에드워드는 검은벽요새를 성묘수호기사단에게 넘겼다. 철통같은 규율을 가진 기사수도회라면 적 도발에 쉽게 안 넘어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덤으로 에드워드는 그 지휘관으로 올리비아를 지목했으며, 시오니아의 공주 베로니카는 그녀의 두 손을 꼭 붙잡고 말했다.
‘허락 없이 성 밖으로 나가면 죽는다, 너.’
그리고 올리비아는 눈이 삐뚤어져도 단단히 삐뚤어진 여자였다.
“지금 당장에라도 뛰쳐나가 저 오크 새끼들 다 쳐죽이고 싶지만, 아아! 그 가련한 공주님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당부하시는데! 어찌 감히 그 목소리를 어기겠습니까! 쇠사슬의 속박도 이보다는 헐거울지니!”
“중증이군.”
마크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는 그 공주님의 부군이자 자신의 기사 후배인 남자를 떠올렸다.
“에드워드 경은 지금쯤 바쁘겠구만.”
* * *
베로니카는 에드워드가 선정한 행정거점 터까지만 동행한 다음 바로 시오니아의 수도 밀리온으로 돌아갔다. 보고할 게 많은 탓이었다. 그리고 에드워드는 갖가지 방법으로 개척에 착수했다.
철광산은 물을 모아 수차를 돌려 공기를 강제로 공급하는 거대한 용광로를 건설 중이다.
엘프들은 농사와 교역에 적당한 터를 찾았으며 측량 중이다.
명망을 얻은 기사들은 갈라먹은 땅에서 무너졌던 거점들을 복원해 만약을 대비한 방어선을 형성하고 있다.
거기에 카치운이 유목민들을 모으기 시작하면서, 군대가 기동하기엔 힘들 샛길들까지 장악되었다. 잔존 오크 생존자들은 여기저기에서 사냥당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런 걸 알박기라고 하겠지. 다음에는 수도원들을 불러볼까?”
에드워드가 웃으면서 말했다. 가르달은 웃지 못했다.
“귀족 놈팽이들 모이는 곳 말고, 노동과 생산이 미덕이며 고급기술을 독점하는 수도회를 유치합시다.”
“당연히 그럴 거요.”
“부동산 투자는 다 좋소만, 기술 투자는 영 성과가 안 좋으니.”
“젠장.”
물론 에드워드한테도 실패가 있었는데, 자전거 페달을 응용하려는 시도가 그것이었다.
인류 역사상 대부분의 기계의 기본 메커니즘은 회전운동이었다. 그리고 페달, 체인, 크랭크는 다리 근육의 힘을 이용해 여러 기계에 동력을 편히 제공해 줄 혁신처럼 보였다. 에드워드는 어렴풋이 머릿속에 있는 개념만으로 어떻게든 그걸 구현해내려 했지만, 참담한 실패가 뒤따라왔다.
가장 큰 문제는 재료가 비싸다는 것이었다. 질 좋은 강철은 흔한 게 아니었다. 손에 넣은 철광산을 정상적으로 운영하더라도 요구성능 달성한다는 보장은 없고, 설령 완성되더라도 가격 대비 효용이 안 나온다는 결론이 나왔다. 나무 등 흔한 재료는 내구성 부족.
“볼베어링도 발상은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마땅한 재료가 없어서 현실화가 안 되지. 비슷한 문제에 봉착하셨구만.”
지휘관 천막 앞에서 시제품을 선보인 가르달의 말이었다. 에드워드는 힘없이 질문했다.
“그 뭐냐, 보통 이외의 재료는 없소? 괴물 새끼들한테서 얻을 수 있는 거라던가.”
“더 비싼 걸 찾아서 뭐하게.”
“내가 족치면 싸게 구할 수 있지 않을까…….”
“괴수 사냥꾼으로 전직하시게? 게다가 괴수들 멸종시켜도 원하는 양을 확보하긴 어려울걸.”
가르달은 덤으로 ‘기존 도구에 비해 기계적 이점 없음’ 판정을 내려버렸다. 겉모습만 그럴싸한 시제품은 우물가에 설치되어 고장 날 때까지 굴리는 것으로 최종결정.
가르달은 철광산으로 돌아간다며 떠나버렸고, 구경꾼으로 모인 사람들도 다 흩어져 버렸다.
“그냥 쓰던 대로 발로 구르는 발판을 쓰면 되죠. 뭘 그렇게 애를 써요?”
마지막까지 남은 헬레나의 말이었다. 그녀 말대로, 체인과 크랭커는 없지만 트레들이라 불리는 일종의 나무 발판 페달은 이미 이 세계에 실용화가 되어 있었다. 에드워드도 환생 전 앤틱 재봉틀 따위에서 본 적은 있었다.
“그럼 재봉틀을 만들까…… 아냐, 난 그거 내부가 어떻게 생긴 건지도 모르잖아…….”
“이상한 고민이 많군요.”
에드워드가 행정거점 건설에 착수한 이후 가장 잘 써먹는 건 외바퀴손수레도, 그의 다른 급조 발명품들도 아니었다. 검은벽요새 보물고에서 나온 ‘접히는 마법 배’였다.
수운 관련 시설이 작살난 지 오래요, 남은 배라고는 급조 뗏목이 고작인 이 땅에 갑자기 ‘커다란 배’가 튀어나온다는 건 개척 초기에 무시하지 못할 이점이었다. 그 배는 동서로 왕복하며 에드워드네 개척거점들이 필요한 것을 신속히 실어날랐다.
“그나마 배가 있어서 다행이군. 진즉 얻었으면 더 많은 병력과 물자로 요새를 공략할 수 있었겠지.”
“조만간 다른 배들도 만들어져서 투입되겠지만요. 그 배들은 엘프들의 개척도시 건설에 필요한 물자도 나를 테고.”
“아, 그러고 보니 그 터는 별문제 없어?”
“아직 없어요. 페트로스가 이미 진두지휘를 시작해 건설작업에 들어간 모양이에요.”
난관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전체적으로는 순조롭다. 나쁘지 않은 흐름이다.
“땅을 나눠주는 건 항상 어려운 문제지. 적으면 불만이 생기고, 많이 줬다간 도로 뺏지도 못하고. 크기만 중요한가. 연 수입이 얼마나 나오는가도 중요하지…….”
“기사들한테는 땅을 아끼든 말든 당신이 결정할 일이지만, 엘프들에게는 아낄 생각 마세요. 수틀리면 다들 그냥 관두고 돌아가 버릴 테니까.”
“그건 기사들도 마찬가지인데, 뭘. 적당히 신경 쓸게.”
에드워드는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새 터는 전체 영토의 정 가운데에서 약간 북쪽. 방어보다는 교역과 이동에 중점을 둔 위치선정이었다. 방어야 푸른바위거성처럼 성을 쌓아 올리는 방법도 있으니 다른 걸 더 중요하게 여긴 것이다.
이 땅의 옛 주인들도 똑같이 생각했는지, 새 터에는 파괴되고 남은 도시 잔해물들이 많았다.
“이 도시 이름이 뭐랬지?”
에드워드는 지휘관 천막 옆 어느 폐건물의 주춧돌을 슬쩍 밟으며 물었다. 헬레나는 고개를 저었다.
“의심 가는 이름이 두셋 있는데 정확히는 모른대요. 증언이 엇갈려서…….”
“겨우 백 년인가 2백 년인가 지났을 텐데, 옛 도시들의 정확한 위치도 알 수 없다니.”
“인간에게는 긴 세월이니까요. 그간 여기 접근할 수도 없었고. 잊혀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에요.”
에드워드는 ‘빛의 최전선이라는 건 그런 것인가’ 하고 생각했다.
“난 가능하면 오래오래 가고 싶은데 말이야.”
“그건 후손들에게 달린 문제겠죠. 우리 임무는 그 후손을 만드는 것일 테고.”
슬쩍 찔러 들어오는 말. 에드워드는 식은땀을 흘렸다.
“음, 그러고 보니까 말이야. 우리 했던 이야기…….”
“계속해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 여기는 다들 그러기 바쁜데 말이죠.”
천막과 오두막을 세우고 그 안에서 지내는 남녀들. 에드워드가 데려온 기사와 병사는 물론이고, 영토 탈환 소식에 누구보다 빠르게 달려온 남녀 개척민들.
그들 모두는 낮과 밤 모두 충실하게 일했다. 낮에는 밖에서, 밤에는 안에서.
“다들 그런 분위기긴 하지…….”
“뭘 또 망설이나요? 공주님은 자리를 비켜줬고, 우린 이제 자격도 갖췄다고 생각하는데요.”
“봉작 말이야. 아직 왕실에서 정식으로 소식이 온 게 없으니까.”
에드워드가 헬레나를 섣불리 건드리지 못한 이유는 격무만이 아니라 왕실의 눈치도 있었다. 가능하면 더 확실하게 처리하고 싶은 사항들이 많았다.
그러나 헬레나는 더 참지 않았다. 그녀는 에드워드의 팔을 껴안고는 천막으로 그를 이끌었다. 압도적인 중량감이 에드워드의 심장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걱정 마요. 이 정도 업적이면 아무도 부정 못하는 것 맞으니까.”
“그렇긴 하지.”
“그리고 하나 더 말하자면, 개척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장난감이 아니라…….”
헬레나는 에드워드의 정면에 선 채 천천히 그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더 많은 후손이죠.”
에드워드는 그 말을 부정하지 못했다. 은은한 촛불과 그 아래 드러난 폭력적인 육체미, 뱀처럼 움직이는 손길은 그가 잠시 봉인해뒀던 욕정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에드워드는 침을 삼켰다.
감히 손대기만 해보라던 차가움에서, 만지든지 말든지 상관없다던 무심함으로, 조건이 맞았으니 얼른 해결하자던 분위기를 넘어. 엘프의 진지한 구애는 먼저 옷을 벗기 시작하는 간절함으로 표출되었다. 헬레나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리고 공주님은 뒷일 걱정 안 하고 안았잖아요? 저한테도 그래 줘야 공평하지 않겠어요?”
에드워드는 ‘그건 걔 정체를 몰랐을 때 이야기’라고 항변할 수도 있었지만, 안 했다. 오히려 그녀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후손보다 강력한 건 없고, 이 정도 리스크는 짊어지는 게 맞다.
남자도 여자의 어깨에 손을 얹고 옷가지를 벗기기 시작했다. 헬레나는 떨리는 몸과 가슴을 그에게 밀어붙였다.
“이 몸은 오래전부터 당신 것이었죠.”
남자가 여자의 보물을 손에 넘치도록 힘껏 움켜쥐는 순간, 그녀는 갈증이 넘치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 땅의 시작으로, 내 모든 걸 먹어치워 줘요.”
엘프 처녀의 입에서 끈적한 신음 소리가 새어 나오는 데는 오래 걸리지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