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68)
268화 봉작 (1)
마법사 스텔라는 가르달을 따라다니느라 초주검이 되었다.
가르달은 에드워드에게 거의 공짜로 봉사하는 드워프였고, 새 영지 개척에서 맡은 일이 정말 많았기 때문에 돌아다니는 곳도 마찬가지로 많았다. 그의 고향 동료 드워프들이 몰려 있는, 제일 중요한 자원인 철광산만 해도 몇 번이나 들러야 했다.
그리고 스텔라는 가르달이 가는 곳마다 기록관으로 일하느라, 그리고 번개의 철퇴를 분석하느라 드워프한테 붙잡혀 있어야 했다.
“번개철퇴 그거 분석 좀 하려면 느긋하게 한자리에 앉아 있어야 하는 것 아니에요?”
“잠깐잠깐 보면 되지, 뭘.”
“그래서 언제 재가공해요?”
“악마의 선물이 망치 몇 번 두드린다고 무해한 물건이 되는 건 줄 아냐? 어차피 너도 천천히 읽어볼 시간 필요잖아?”
“그 천천히 읽어볼 시간이 빡세게 돌아다닌 뒤의 야근이라면 좀 문제거든요! 창조적인 작업은 [하루 10시간 이상 수면 보장>에서 나온다고요! 이 일행 합류하고서 편히 자 본 적이 몇 없는 것 같아! 다들 그러다 단명해요!”
“일 바쁠 때 빼면 다들 7시간에서 8시간은 자. 네가 너무 많이 자는 거야.”
“그건 사람마다 달라요! 저한테 8시간은 횡포예요! 10시간이 적정 수준이에요! 그리고 찾아보면 저 같은 사람들 많을걸요! 게다가 지금 이 시간을 보세요! 우리 밤샘 이동을 했다고요! 이게 말이 돼요?”
“시간을 맞추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그리고 여비와 횃불 값은 내가 냈다. 불만 더 있으면 도끼로 받는다. 이상.”
가르달과 투닥거리던 스텔라는 새벽에야 에드워드의 개척지에 도착했다. 그녀는 천막, 움집, 흙집 따위의 온갖 급조 주택들을 지나치며 말했다.
“이 시간에 여길 지나가는 건 처음이네요. 조용하네.”
“다들 지쳤을 테니까. 밤일도 진즉 끝났겠지.”
“흐흥. 밤일이라. 저하고는 별로 관계 없지만요. 그나저나 이제 겨울은 끝났지만, 밭을 개간한다든가 하는 건 오래 걸리겠죠?”
“농지 자체는 짧아도 2년에서 3년이 걸리겠지.”
“여기가 도시 꼴을 갖추려면요? 그보다 더 걸리려나요?”
“그 반대야. 군사도시나 상업도시는 자본과 사람만 있다면 1년 안에도 일어서지. 그 경우 농지는 배후지에 불과해. 여기도 3개월만 지나면 몰라보게 변할 거다.”
“그렇게 빨라요?”
“나도 이야기로만 들었다만, 알레마니아와 그 일대에는 쇠못 하나 안 쓰고 나무만으로 도시와 요새를 건설하는 족속들도 있다지. 말 그대로 번개처럼 도시를 짓는대. 그곳 출신들도 가끔 시오니아까지 온다던데.”
“세상은 넓고 별별 족속들이 다 있군요.”
에드워드의 천막 근처에 도착했을 때쯤, 가르달은 발걸음을 멈췄다.
“기사양반이 밤놀음 하고 있나 본데. 귀 밝은 족속은 좀 빠져줘야겠군.”
“엑. 설마 아직 하고 있어요? 곧 해 뜨는데?”
“그 양반이 그렇지.”
“공주님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으니, 상대는 캐슬린이려나…… 전 제 천막 쪽으로 갈게요. 어차피 전 귀 그리 밝은 편도 아니니. 마침 잘됐네요. 곧 보고하고 오전 내내 자죠 뭐.”
“그러던가.”
가르달과 스텔라는 서로 반대로 방향을 잡았다. 뒤따라오던 다른 사람들도 해산.
잠시 뒤, 스텔라는 에드워드의 천막을 기웃거리는 밴시를 발견했다.
“야, 밴시. 아직 안 자니?”
“쉿! 지금이 한참 좋을 땐데요!”
“발랑 까진 요정 같으니. 어떤 흥미진진한 플레이길래…….”
그때 에드워드의 천막에서 짧은 목소리가 들렸다. 여자가 달콤하게 아양 떠는 용도의 단어들. 스텔라는 그게 누구 목소리인지 바로 알아채곤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지금 상대가 엘프님이야?”
“공주님은 좀 짐승 같이 노시는데 엘프님은 달달한 취향이라서 훔쳐보는 재미가 있…….”
스텔라는 밴시를 붙잡아 좀 더 멀리 떨어진 곳까지 질질 끌고 갔다. 바동대는 요정을 향해 마법사가 질문했다.
“아니, 엘프님이 왜 벌써 기사님한테 안기는 건데? 아직 봉작도 안 받았잖아?”
“따 놓은 당상인데 더 미룰 이유가 어딨냐고 저질러버리시던데요. 이미 며칠 됐어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뒹굴고.”
“아니, 이 도시나 저 도시나 이제 겨우 시작인 판에……!”
스텔라는 자신의 계산이 빗나갔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밴시 리안나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여마법사에게 물었다.
“왜 안 기뻐하세요? 부인들 다음은 정부 차례일 게 뻔한데.”
“아니까 안 기쁜 거야!”
“왜요? 연금 안 받을 거예요?”
“받아야지! 받긴 할 건데…….”
스텔라는 소맷자락을 물어뜯으며 생각에 잠겼다. 대체 언제 안겨야 가장 극적이면서도 최대한의 연금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고민이 그녀의 머릿속을 채웠다. 계산 짧은 밴시도 곧 그녀의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있을 만큼 표정이 드러났다. 리안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인텔리가 나쁜 생각한다아아아.”
그때 에드워드가 바지만 입은 채 물병을 들고 천막 밖으로 나왔다. 그는 밴시의 뺨을 힘껏 꼬집는 여마법사를 발견했다.
“스텔라? 언제 왔냐?”
“앗! 조금 전에요! 가르달 씨는 쉬러 갔고요, 저는 제 천막이 이쪽이라…….”
“밤 새서 걸은 거야? 위험하게시리.”
“그러게 말이에요. 호호호호. 드워프 아저씨가 저 걸음 느린 게 짜증 난다고 수레에 태워 버리지 뭐예요. 자세한 건 저도 좀 자고 나서 나중에 서면과 같이 보고드려도 될까요?”
“그렇게 해. 리안나, 여기 물 좀 채워와라.”
“넵!”
마법사의 손가락에서 해방된 밴시는 잽싸게 물통의 물로 물병을 채워왔다. 에드워드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는 스텔라의 발자국을 보고는 피식 웃은 다음 천막으로 들어갔다.
“스텔라 양이 당황한 것 같던데요.”
귀 밝은 엘프의 말이었다. 대충 만든 짚 침대 위에 나신으로 길게 누운 그녀는 담요를 끌어당겨 추위를 막고 에드워드가 앉을 자리를 만들었다. 에드워드는 바로 그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뻔하지, 뭐. 다음은 자기 차례일 거라 생각하나 본데.”
“그래서, 생각 없어요?”
“그야 뭐, 지금은.”
에드워드는 요를 덮어도 굴곡이 다 드러나는 엘프 여자한테로 시선을 돌렸다.
마음이 끌린다 해도, 처녀상실의 두려움과 자신의 안을 이종족 남자로 채운다는 불안감이 일말이나마 남아 있던 몸.
에드워드는 그걸 직감적으로 느꼈고, 첫날밤부터 바로 대응했다. 부드럽게, 그러나 강하게. 얼마 못 가 헬레나는 행복에 겨워했지만, 방심하면 안 된다.
끝까지, 단 한 순간도 허술하면 안 될 일.
“눈에 꽉 차는 게 있어서 말이야.”
“흐음…….”
미묘한 숨소리가 헬레나의 입 안을 맴돌았다. 에드워드는 그녀 옆에 드러누우며 말했다.
“일단 잠시 눈 좀 붙이자고.”
헬레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는 남편의 팔을 끌어안았다.
“머릿속으로는 이미 못된 생각이 싹트고 있을 것 같은데요.”
에드워드는 빠르게 잠드는 걸로 그 의혹을 회피했다. 헬레나는 그의 뺨에 입 맞추며 속삭였다.
“그래서 당신을 좋아하는 거지만.”
* * *
헬레나가 에드워드의 천막을 밤마다 드나들게 된 이후로, 그의 갖은 행정 처리는 다른 사람들의 아침보다 약간 늦은 시간대에서 시작되었다. 점심도 약간 늦어졌는데, 바로 그 시간대에, 스텔라는 에드워드 앞에서 보고서 한 장을 내민 채 침울한 소리로 말했다.
“오크놈들이 기사님 만나고 싶대요.”
“엥? 왜?”
“카치운 씨가 기사님한테서 받은 권리증서들 뿌리면서 유목민들을 끌어모으고 있잖아요?”
“그래서?”
“그들이 아주 자비 없이 오크들을 족치는 모양이더라고요. 샛길의 오크들이 도망치는 것만이라도 허용해달라면서 인간노예들로 인질극을 벌이고 있어요.”
“그럼 계속 인질극 벌이지, 왜 날 만나고 싶대?”
“카치운 씨 스타일 아시잖아요. 유목민들이 노예 인질이 있대서 사냥을 멈추겠어요?”
“아.”
미련함을 비웃으면서 그냥 화살을 쏠 확률이 더 높다. 에드워드는 보고서를 잠시 읽어보더니, 그것을 뒤로 돌렸다.
“어차피 무사히 도망친 오크놈들이 인질 놔줄 거라는 희망도 없잖아?”
“그렇죠.”
“근데 응하지 않으면 무자비하다는 이야기도 듣겠지?”
“인기 있을 선택지는 아니죠.”
“덮자. 난 그거 못 들은 거다.”
“그래도 되나요?”
“대신 카치운에게 인질들 좀 신경 쓰라고 한마디 전하기만 해.”
“그러죠. 욕은 유목민들이 먹겠네요.”
“그게 카치운 그 친구 역할이니까. 그리고 검은벽요새는…… 거기도 인질극이 벌어지나 보던데?”
“상황 끝났지만요.”
요새 앞에 인간 노예들을 끌고 와 학대하고 희롱하며 올리비아를 도발했던 오크들은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그 멍청한 선택지는 올리비아가 아니라, 요새 근처의 항복한 세트렛인들을 유혹했다.
‘저 오크 새끼들 족치면 노예가 우리 것이 되네?’
세트렛 민병대들이 각자의 목책을 뛰쳐나가 소수의 오크를 섬멸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올리비아는 태연히 그 마을들한테 대금을 치르고 노예들을 해방, 회수했다.
“유인책은 쉬운 게 아니거든. 오크 새끼들이 덜 똑똑해서 다행이네.”
“기사님은 그거 뚝딱 해치우는 것 같던데 말이죠.”
“뚝딱 아니다. 꺽다리 로버트 폐하 밑에서 개처럼 구르면서 배운 거지…….”
에드워드는 바로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
“미아한테서는 아직 소식 없지?”
“출장 출발한 지가 얼마나 됐다고. 그렇게 금방 소식이 있겠어요? 근데 ‘술의 이슬’을 어디다 쓰시게요?”
증류로 얻는 알코올. 지금은 아지지야 주변에서 술의 도수를 높이는 데나 쓰이고 있지만, 그 활용법은 사실 굉장히 다양했다. 약을 담그면 그 성분을 추출할 수 있고, 향료를 담그면 그 향을 추출할 수 있다. 증류주 자체도 수익성 높은 재원이 되어준다.
“다 쓸 데가 있으니까 제조법과 도구를 사 오라고 하는 거야. 뭐, 그것 말고도 이것저것 사 오면 좋지. 내가 생각을 좀 잘못했어. 내가 처음부터 개발하느니, 여기 사람들이 이미 먼저 머리 굴리는 걸 사 오는 게 더 효율이 좋은 거야.”
포경선의 악마 선장이 들고 다니던 것이기도 했지만, 널리 퍼진 것은 아닌 물건.
찾아보면 그런 게 한둘이 아닐 것은 뻔했다. 보수적인 구석이 많고, 교통과 통신이 불편하며, 인쇄매체는 없는데다, 도시와 그 밖의 괴리가 무지막지하다. 이 세계는 발상지에서 퍼지지 못한 지식이 더 많다고 봐도 된다.
에드워드는 뻐근한 목을 두드리며 말했다.
“물론 공주님의 투자금은 한정되어 있으니, 철광산에 도움이 될 지식과 기술부터 사 오는 게 먼저지만. 이런 건 드워프들만 믿어도 안 돼.”
“가르달 씨가 들으면 화내겠어요.”
“채굴기술은 드워프들한테서만 발달하리란 법이 없잖아. 기댈 수 있는 곳은 모조리 알아놓는 게 좋아.”
“흐응. 마법사는 그러지 말길 바라야겠네요.”
“일단 아지지야의 고위 마법사인 데스피나 쪽에도 운을 띄워놨는데.”
스텔라는 바로 반응했다.
“와, 기사님 악당!”
“페트로스랑 결혼할 만한 적당한 엘프 처자 없냐, 내가 기술들 좀 사들이는데 협조해 줄 수 있냐 뭐 그런 내용이었어. 내 직속 마법사는 너 혼자야. 더 필요하다면 네가 제자를 들이는 게 맞지.”
“어머나, 기분 좋은 말씀을 다 해 주시네요. 근데 일단 박사학위부터 따야지…….”
“오래 걸릴 것 같아?”
“감을 잡기 어려운 문제에요. 정령은 친화력의 문제고, 주술은 기원의 문제며, 연금술은 탐구의 영역이지만…… 마법은 ‘주문 그 자체’를 연구하니까요. 새로운 주문을 만들고 그걸 교수들 앞에서 해설할 수 있어야 박사가 되어요.”
“새로운 주문이라. 까다롭군. 그게 만들고 싶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닐 텐데.”
“네. 사실 오래 전에 상실한 기록이나 악마의 지혜에서 찾는 게 더 많아요. 다행히 이번 기사님의 노획품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번개 철퇴?”
스텔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끔찍한 무기더군요. 지옥의 번개들과 연결된 철퇴였어요. 비유하자면, 아주 작은 문으로 번개들이 흘러나오고 있던 거죠. 기사님이 무게추에 열쇠검으로 상처를 내서 그 연결이 끊어진 거예요.”
“아, 그래서 고장 난 거군. 그럼 이제 못 써?”
“네. 그래도 무게추를 번개 속성의 무기로 재가공 할 수 있을 거예요.”
“흠. 그건 잘 됐군. 그건 가르달 줘야겠다. 그간 수고가 많으니. 네 주문 연구에는 어떤 게 필요한데?”
“자루요. 번개 통제용 주문은 거기 적혀 있더라고요.”
“딱 좋군. 둘이서 갈라먹으면 되네. 좋아. 이쯤 하자. 잠깐 몸 좀 움직여야겠어.”
에드워드는 천막 밖으로 나갔다. 교대하듯 들어온 건 리안나였다. 그녀는 에드워드의 짐꾸러미를 헤집으며 말했다.
“마법사 언니, 혹시 지팡이 못 봤어요?”
“응? 무슨 지팡이?”
“기사님이 공주님한테 선물한댔나 뭐 그랬어요. 잘 닦아서 관리해놓으래요. 여기 있댔는데…….”
“뭐 귀한 지팡이인가?”
“검은벽요새 근처 세트렛인들이 공물로 바쳤대요. 빛이 돌아올 때를 대비해서 땅에 묻어둔 뇌물이었다네요. 고대 궁정제사장의 지팡이라나 뭐라나…….”
“나한테는 그런 거 찾았다는 말씀 없으셨는데?”
“제사장의 지팡이니까 그런 거 아니에요? 마법사용은 아닐 테니.”
호기심이 발동한 스텔라는 짐꾸러미에 달라붙었다. 여마법사와 밴시는 한참 뒤 하얀 색으로 염색한 지팡이 하나를 찾아낼 수 있었다.
스텔라의 입이 절로 벌어졌다.
“세상에…….”
백향목으로 만들어지고 금동으로 테를 두르고 금강석을 박은 지팡이. 도구가 스스로 힘을 가진 수준의 최고급품.
여마법사의 눈이 탐욕으로 빛나는 걸 본 밴시가 경고했다.
“손대면 울어 버릴 거예요.”
스텔라는 방범벨 앞에서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