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70)
270화 봉작 (3)
원래, 에드워드가 시오니아 수도 밀리온까지 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시오니아는 작지 않은 나라였으나, 군주가 치안을 확보하는 데 그럭저럭 선방한 편이었으므로.
혹여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지역 영주나 관리가 처리하지, 지나가던 기사 에드워드가 나설 일은 없었다.
그러므로 그의 발목을 붙잡는 사람들은 말썽꾼이 아니라, 대개 ‘소문의 주인공’을 보고 싶어 하는 유력인사들이었다.
푸른바위거성의 뒷받침을 해 주던 도시들은 물론이고, 그 너머 밀리온까지 가는 길목마다 유력자들이 보낸 안내인이, 혹은 유력자 본인이 나와서 에드워드를 맞았다. 그들은 에드워드가 자신의 본거지를 방문해 주길 바랬고, 에드워드는 ‘가능한 한’ 그 요구를 수용했다.
“다 좋은데 이러다가 너무 늦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요.”
스텔라의 말이었다. 에드워드는 어깨를 으쓱했다.
“걱정 마. 시간은 넉넉하게 잡았으니까. 초대란 초대는 전부 다 승낙하는 것도 아니잖아. 한 끼 식사만 대접받는고 떠난다든가, 돌아가는 길에 방문하겠다는 약속만 해 줘도 절반 이상은 넘기고.”
아예 근처 유력자들을 한자리에 모아 한꺼번에 만나는 방법도 당연히 썼다. 에드워드는 낄낄 웃었다.
“이게 다 인맥이 된단 말이지. 다들 눈빛이 무섭더군.”
스텔라는 에드워드와 자신 사이에 놓인 탁자로 시선을 돌렸다.
“인맥이란 게 참 비싸네요.”
은화, 은화, 은화. 그게 도박의 칩이었다. 접대 방식은 다양하지만 어느 시절 어디에나 있는 게 ‘접대 도박’이었다. 에드워드는 카드패를 들고 낄낄거렸다.
“즐거운 게임을 빙자해 돈을 몰아주는 접대라. 내 생애에 이런 걸 다 받아 보는 날이 오네.”
시오니아 공주의 부군이 될 자요, 적의 절반 이하 병력만으로 난공불락의 요새까지 무너뜨린 전쟁영웅. 유명인이 안 될 수가 없었다.
“축하드려요. 저도 이렇게 좀 따 봤으면 좋겠네요.”
스텔라가 카드 무더기에서 한 장을 빼면서 말했다. 지금 탁자에는 그녀와 에드워드, 그리고 다른 기사 하나만이 남아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자러 가거나, 근처에 널부러지거나, 자기들끼리 두런두런 이야기나 겨우 잇는 상태.
유력자들 틈바구니에서 스텔라는 에드워드와 좀 더 가까이 지내기 어려웠다. 결국 다들 널브러진 밤에야 겨우 시간이 났다.
“졌군.”
동석했던 기사의 말이었다. 이번 승자는 스텔라. 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만 쉬어야겠소. 마법사와 도박한 것치고는 선전했네.”
“얘 사실 맨날 져.”
에드워드가 낄낄 웃으면서 말했다. 스텔라는 그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맨날은 아니었어요.”
이제 일대일. 스텔라는 넌지시 찔러 보았다.
“기사님이 이번에 얻은 전리품 중에 지팡이 있죠?”
“있지. 어떻게 알았냐?”
“밴시가 꺼내서 닦더라고요. 닦을 필요도 없어 보였지만.”
“그렇지? 고급품이더라고. 그것도 뭔가 내력이 있는 물건 같은데. 베로니카라면 진가를 알아보겠지. 세트렛 녀석들, 그런 게 있으면 좀 더 빨리 꺼낼 것이지. 베로니카가 떠난 다음에 보내다니.”
“눈치 보고 상황 살피다 늦는 거죠. 흔한 일이네요. 그보다 그 지팡이, 정말 사제님한테 줘도 되는 거예요?”
“무슨 말이야?”
“기사님의 상황은 일부다처제랑 조금 다르긴 한데, 첫째 부인이 받은 선물은 둘째 부인도 똑같은 걸 받을 자격이 있어요. 의무에 더 가깝다고 해야 하나…… 똑같은 지팡이 마련할 수 있으시겠어요?”
“흠.”
에드워드는 생각하는 척 짧은 신음 소릴 냈다. 스텔라는 계속해서 말했다.
“엘프님이 그렇게 주장 안 하던가요?”
“자긴 선물 뭐 줄 거냐고 묻긴 하더라.”
“그거 봐요.”
실은 스텔라가 이러쿵저러쿵 충동질하더라는 이야기를 전부 이야기해 준 것이다. 에드워드는 스텔라의 표정을 살피다 말했다.
“그래서, 그 지팡이를 네가 갖고 싶다?”
“어머나, 그렇게까지는 이야기 안 했는데. 내기 도박에 거시는 게 어떠냐는 제안 정도는 하려 했지만.”
“그게 그거지, 뭘. 근데 너, 이미 지팡이 있잖아. 투리치에서 얻은 거. 번개철퇴 자루도 있고. 충분하지 않아?”
“투리치에서 얻은 지팡이는 전당포 구석에 있던 것 중 아무거나 집어 온 거였죠. 철퇴 자루는 오크 체격에 맞춘 거라 너무 무겁고. 게다가 그거 연구 재료지, 지팡이 재료가 아니에요.”
“흐흠.”
“아깝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부인들 간에 분란을 일으키느니 저한테 투자하시는 게…….”
“그게 새로운 주문을 만드는 데는 도움이 되나?”
스텔라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에드워드가 마저 말했다.
“지팡이는 위력을 증폭시키는 도구라지. 새로운 주문을 만드는 데는 차라리 철퇴 자루가 더 도움이 될 거라면서?”
“철퇴 자루가 힌트가 될 거라고는 했었죠. 지팡이는…… 아예 도움이 안 되는 건 아니고.”
“아예 안 돼. 너 헬레나한테 그렇게 말했잖아.”
엘프한테는 거짓말이 잘 안 통한다. 스텔라는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네가 한 이야기들, 헬레나가 그대로 다 나한테 전했거든.”
“에엑. 엘프님이요? 여자들 간의 이야기니 누설하지 말자고 했는데?”
“그건 헬레나가 판단할 일이지. 네가 판단할 일이 아니잖아.”
“와, 엘프님한테 배신당했다.”
“부부지간이 더 중하지. 뭐, 배신이랄 것까지 있나?”
에드워드는 낄낄 웃으면서 카드패를 내려놓았다. 이겼다.
“나나 헬레나나 마법사가 아니라서 잘 모른다만, 4대 속성과 그 파생 속성들을 마력의 힘으로 다루는 신비한 구절이 주문이라지?”
“네, 그렇죠. 형식은 수식, 명령, 선언, 노래 등으로 다양하고요, 내용 역시 부탁부터 통제까지 다양해요. 새 주문이란 곧 새 구절의 완성이죠.”
“넌 어디까지 할 수 있는데?”
“번개 속성 주문은 통제가 최상위권이지만, 드물죠. 저도 아직 그 아래요.”
“그럼 통제 주문이 적힌 철퇴 자루가 더 중요한 거잖아. 내가 이미 너한테 큰 전리품을 나눠 줬는데, 그 지팡이까지 줘야 돼?”
“제가 강해지면 기사님한테도 좋은 이야기잖아요?”
“먼저 투자 대비 효용으로 따진 건 너야. 철퇴 자루는 다른 데 팔기도 어렵지만, 지팡이는 그렇지도 않잖아.”
스텔라가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 와중에 에드워드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결정타를 꽂았다.
“뭐, 네 말이 다 틀린 건 아니니까 유예는 해 둘게. 선물하지 말고, 내 보물로 꿍쳐 두지.”
“엥? 저한테 안 주시고요?”
“그래.”
“언제까지 유예하실 건데요?”
“글쎄…… 일단은 네가 딸 때까지?”
스텔라는 오기와 승부욕이 찬 눈빛을 드러냈다.
“그 승부를 받아들이죠!”
하지만 승부의 세계는 잔혹했고 에드워드는 스텔라를 농락하는 데 큰 수고도 들이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연패 앞에서 스텔라는 카드를 내던지며 좌절했다.
“대체 뭔데, 이거!”
“아직 멀었구나야.”
에드워드는 낄낄 웃으면서 판돈을 쓸어담았다. 그리고는 빈손의 마법사를 향해 말했다.
“이제 남은 건 뭐냐? 침대 들어오는 거?”
스텔라는 갈등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박사 학위를 딸 때까지 미루고 또 미루고 싶은 과정. 에드워드는 카드를 정리하다 말했다.
“나는 부족해?”
“아뇨! 절대 그건 아닌데요! 그 뭐냐, 기사님의 자질이나 어떤 불운이 닥칠 가능성보다는…….”
몸매도 재력도 내세울 게 없는 자신의 문제라고 말할 수는 없다. 에드워드가 자기한테 질려 버리기라도 하면 어쩌냐는 걱정이 있다고는 더 말할 수 없다. 어물어물거리는 스텔라 앞에서 에드워드는 의자를 뒤로 젖혔다.
“왜? 즐거운 하룻밤 뒤에는 지원 끊을까 봐? 나 못 믿냐?”
“아뇨, 그것도 아닌데…….”
“내가 너보고 헬레나만큼 군대 뽑아 오래? 아니면 베로니카만큼 돈 퍼 오래?”
“기사님, 역시 다 아시는 거죠! 정말, 엘프님한테 못된 것만 배우셨다. 제가 저번에 오크놈의 벼락을 못 막았다고 그러시는 거예요?”
토라진 듯한 목소리. 에드워드는 웃어 버렸다.
“그거 아직도 신경 쓰고 있었냐? 뭐, 나는 지금 네 상태 그대로도 ‘정부’ 삼기에는 별 불만이 없다. 그럭저럭 이쁘고, 보고 있으면 재밌고, 말은 재치있고……..”
“재밌으셨나요…… 몸매 빈약한데 시끄러운 년 취급은 안 해 주셔서 그나마 감사하네요.”
빈정거리는 투였지만 에드워드는 신경 쓰지 않았다.
“재주는 나름 유용하고, 쓸 만한 조언도 해 주잖아? 네가 다 포기하고 거기 만족한다 해도 난 너 안 버릴 거다.”
거기까지 말하고, 기사는 카드 몇 장을 스텔라 앞에 날렸다. 스텔라가 반사적으로 카드를 집는 순간, 기사는 앞으로 몸을 날려서는 그녀의 팔을 우악스럽게 붙잡았다.
“꺅?!”
에드워드는 스텔라를 끌어당겨 탁자 절반 가까이로 이끌었다. 여마법사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탁자 위에 엎어진 채 에드워드에게 매달렸다. 에드워드는 다른 손으로 그녀의 가느다란 목을 어루만지며 나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예전처럼 그냥 내 맘대로 퍼다 줄 수는 없어. 이젠 정도를 정해야지. 알지?”
“후원금으로…… 장난치시게요?”
“그 반대지. 내키는 대로 주는 후원금이야말로 언젠가 끊길 불안정 요소야. 겪어 봤을 텐데?”
“그야…….”
“이제 나는 내 땅의 지배자이자 네 지배자로서 널 안을 수 있다. 네 종이나 호구가 아니라. 네 전부를 지배해 줄 거야. 그러니 이젠 네가 결정할 차례야. 그만한 가치를 보여 줄지, 평범한 정부로 남을지. 어느 쪽이든 난 거기 맞는 모습의 지배자로 네 위에 설 테지만.”
스텔라는 몸을 가늘게 떨었다. 에드워드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강압적으로 말했다.
“뭐가 되든지 결정하고, 복종해서, 침대에 들어온다면, 그리고 그게 내 마음에 든다면, 너한테 선물로 그 지팡이를 주지.”
스텔라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와, 기사님. 그런 걸로 여자를 유혹하는 타입이셨어요?”
열심히 태연한 척하는 허세. 에드워드는 쓰게 웃었다.
“넌 나한테 안 그랬냐?”
“할 말이 없네요.”
스텔라가 과장된 포즈로 고개를 숙이며 좌절하는 사이, 에드워드는 손을 놓고 몸을 일으켰다.
“카드는 네가 정리해.”
역으로 관리당하게 된 마법사는 붉어진 얼굴을 한 채 혼자서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 * *
봉작은 순조롭게 이어졌다. 에드워드는 밀리온에 도착하자마자 장미꽃잎과 밀알이 쏟아지는 짧은 개선식을 치루고, 궁성에 들어가 왕 앞에 한쪽 무릎 꿇었다. 그는 시오니아의 경건왕이자 베로니카의 오빠 루이 앞에서 충성을 서약했다.
“에드워드 드 클레어는 국왕 폐하와 그 후손에 변치 않는 충성을 맹세합니다.”
왕은 의자에 앉은 채 양손을 내밀어 에드워드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
“앵글리아에서 온 기사 에드워드 드 클레어. 한때의 잘못으로 태어난 땅을 떠났으나, 잘못을 뉘우칠 뿐만 아니라 선을 세우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그대는 우리가 오래전에 잃은 땅을 회복하였고, 우리 동맹의 옛 성 또한 빛의 진영으로 되돌렸으며, 고통받던 수많은 사람들을 구했다……
이제 그대의 충성에 답하여, 그대의 도시에 ‘카말라’라는 옛 이름을 돌려주고 그대를 그곳의 백작에 봉한다. 일어나라, 하르몬 주의 총독이자, 카말라의 백작이여.”
에드워드는 천천히 일어섰다. 왕은 근엄한 표정으로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리고 내 동생의 약혼자여.”
왕은 그의 어깨를 돌려 귀족들 앞에 나란히 섰다. 그리고 손짓으로 베로니카를 불렀다. 궁정 예복을 입고 제관을 쓴 공주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경건왕은 두 남녀의 손을 맞잡게 한 다음, 선언했다.
“내 여동생 베로니카와, 카말라 백작 에드워드 경의 약혼을 정식으로 공표한다. 빛께서 우리에게 더 많은 승리를 베푸시길!”
참석자들 사이에서 환성이 터져 나왔다. 에드워드와 베로니카는 쏟아지는 축하 인사에 정신없이 답례하였다. 어느 정도 인사가 줄어들 무렵, 베로니카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오랜만이네. 하지만 회포는 못 풀겠어. 행사 이걸로 끝 아니다? 약혼식에 연회까지 있으니.”
“발바닥과 무릎이 다 닳겠네…….”
“그나저나 행사 전에 헬레나 양이 보낸 편지를 읽었는데 말이야.”
“읽었는데?”
“스텔라 양이 목매는 물건이 생겼다고?”
“뭐, 그것만은 아니지만.”
“흐흥.”
베로니카는 눈을 가늘게 뜨고 에드워드를 흘겨보았다.
“스텔라 양에게는 여행 중 빚이 꽤나 있지. 협조해 줄게.”
“원한이 깊었나 보구만…….”
“기선 제압도 해야지.”
베로니카는 스텔라와 눈을 마주치고는 그녀한테도 손을 가볍게 흔들어 보였다. 시오니아의 공주는 여전히 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서열을 굳히려면 여행 때처럼 깐족거리게는 못하게 해야 하니까.”
에드워드는 그게 자기한테 하는 말처럼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