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71)
271화 번갯불 (1)
밴시는 비밀유지의무란 것에 대해 쥐뿔도 관심이 없었고, 에드워드의 재산목록 중 일부는 딱히 비밀도 아니었으므로, 고대 궁정제사장의 지팡이가 존재함을 대놓고 말할 수 있었다. 그것도 연회장에서.
“네 주인이 부자인 건 너랑 상관이 없잖아? 오, 손님분들은 물론 재산만큼 여러분의 노예한테 자비로우시겠지만요!”
좌우가 각자 색과 형태가 다른 복장을 하고 얼굴까지 색칠한, 궁정 광대의 과장된 언행이었다. 먼 이국에서 온 집요정을 그와 싸움 붙인 관객들은 박장대소했다.
그리고 밴시 리안나는 지지 않았다.
“상관 있는데요!”
“오, 그래? 어떤 상관이 있지?”
“제가 아저씨 가발 금액보다는 돈 많이 벌거든요! 대머리 깎아라!”
“이놈! 대머리 놀리면 곰이 와서 찢어간다! 경전도 안 읽어봤니?”
“곰 따위가 밴시를 찢을 줄 아나요! 대머리! 대머리! 대머리!”
“왕실이 여흥을 위해 키우는 곰이 진짜 있거든? 확 던져줄까?”
“대머리! 대머리! 대머리!”
어린애의 욕설은 치졸하고 강렬하며 단순한 공격의 무제한 반복인 법. 리안나는 입력된 언어들을 총동원해 ‘대머리’를 연호했다. 각지에서 온 기사들과 귀족들은 자기 고향 언어가 나올 때마다 감탄사와 함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한 귀족 아가씨가 깔깔 웃다가 포도알들을 그 둘에게 내던졌다.
“옛다, 대머리! 널 닮은 과일이다!”
“아이고, 숙녀분! 너무하십니다요!”
“그럼 더 큰 과일 던져줄까?”
“전 포도알 같은 대머리입니다. 살려 주십쇼.”
여자들이 사과를 집어 드는 순간 광대는 바닥에 엎드렸고 연회장은 다시 웃음소리로 뒤덮였다. 엎드린 채 머리를 철저히 가드한 광대의 등 위로 사과와 오렌지 같은 과일들이 빗발쳤다. 잠시 뒤 리안나와 광대는 과일들을 한아름 안고 퇴장했다.
“야, 이 요정 꼬맹이야. 넌 왜 내 과일을 가져가?”
“제 지분도 있는데요!”
“과일에 두들겨 맞은 건 난데?”
“그러게 누가 맞고 다니래요?”
“난 이게 일이거든?”
“맞고 다니는 일도 있어요? 머리칼만 없는 줄 알았는데 배알도 없나 보다!”
모두는 마지막까지 티격태격하는 그들의 모습에 웃어버렸다. 스텔라는 빼고.
“망할 꼬맹이. 입이 너무 싸다니까.”
그녀가 보기에, 베로니카가 당장 ‘궁정제사장의 지팡이’에 욕심이 동한 것 같지는 않았다. 에드워드한테 ‘선물로 달라’고 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게 뭘까’ 하는 표정으로 돌아보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무대서 퇴장한 밴시가 들고서 쪼르르 달려온 지팡이를 살펴본 뒤, 시오니아의 공주는 짧게 말했다.
“예쁘네.”
갖고 싶다거나 나 달라는 소리는 절대 아니었지만, 스텔라 귀에는 그렇게 들렸다. 여마법사가 괴로워하는 사이에, 주변의 눈치 빠르고 귀 좋은 사람들이 아부를 시작했다.
“과연 공주님이 드시면 아름다울 것이…….”
“참 기품 있는 색입니다.”
베로니카가 스텔라를 말려 죽이는 방법은 대단한 게 아니었다. 이 과정을 반복하기만 해도 되는 것이었다.
“어떻습니까, 백작? 저 보물 지팡이를 공주님께 약혼선물로 드리는 게…….”
한 참석자가 에드워드에게 운을 띄웠고, 스텔라는 기절할 뻔했다. 하지만 베로니카는 지팡이를 도로 밴시에게 맡겼다.
“좋은 물건이지만 사제가 들기에는 너무 호사스러울 것 같군요.”
“아, 사제로서 지팡이를 드는 경우…….”
한 발 빼는 겸손함 중에도 무리는 아부를 끊질 않았다. 그들 중에는 골동품 전문가에 가까운 이도 있었다.
“시오니아보다 훨씬 더 옛 시대의 왕조 물건이군요. 니사였던가? 그 출처가 카말라 백작의 영역 안에 있기는 했을 텐데…….”
“출처가 짐작이 가시나요?”
베로니카가 다시 흥미를 보이는 듯한 발언을 했고, 스텔라는 창자가 꼬이는 느낌을 받았다. 골동품 전문가 귀족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대 신앙의 잔재지요. 빛과 선을 숭상한 건 오늘날과 같지만, 신앙이 보다 원시적이라 불, 번개 따위를 빛 그 자체인 것처럼 섬기던 시대입니다. 형태를 보건대, 지팡이 단품이 아니라 다른 것과 세트였을 겁니다. 목걸이나 반지쯤…….”
“어머나, 그렇군요. 에드, 이거 반지랑 같이 있었어?”
“아니, 난 못 봤는데. 항복한 세트렛 애들이 아직도 숨기고 있으려나?”
“짠돌이들. 뇌물로 쓸 거면 세트를 함께 줘야 할 거 아냐.”
“뭐, 세트였던 물건도 세월이 지나면 서로 흩어져서 도로 모으기 힘든 경우가 많잖아.”
“하긴 그렇네.”
짧은 대화 후, 베로니카는 스텔라를 돌아봤다.
“스텔라 양?”
“네?”
“연회를 즐기는 중에 미안하지만, 혹시 이것에 관해서 조사 좀 해볼래요? 세트렛 놈들의 간악한 수가 숨어 있을지도 모르니.”
“어머나, 신중하시군요…….”
스텔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베로니카 곁으로 와서는 조심스럽게 지팡이를 받아들었다. 베로니카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말했다.
“대신이라기엔 뭣하지만, 왕실 도서관과 마법사관의 무제한적 접근 권한을 드리죠. 연회는 며칠을 더 이어질 테니까, 그동안 느긋하게 살펴보시면 될 듯해요.”
스텔라는 입을 살짝 벌렸다가 고개를 숙였다.
“굉장한 특권이네요. 기대해주시니 황송하군요.”
“특히 반지 쪽 정보를 찾아봐 주세요.”
“말씀대로 하지요.”
스텔라는 바로 몸을 돌려 연회장 바깥쪽으로 향했다. 베로니카는 슬쩍 한마디 덧붙여 보았다.
“오늘은 좀 즐기고 내일부터 하시죠?”
“마법사의 지적 호기심이 작동해서요. 사실, 이것도 나름 즐겁답니다?”
스텔라는 애써 태연한 척하면서 자리를 떠났다. 에드워드는 베로니카를 향해 몸을 기울여 속삭였다.
“아직 자기 것이 아닌 물건을 끌어안고 낑낑거리게 생겼네. 그런데 믿고 맡길 수 있겠어?”
“도박중독자에 수단 방법 안 가리는 마법사라는 건 분명 신뢰에 마이너스지만…… 적어도 우리 편에 자기 전문성으로 거짓말을 할 사람은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
“설령 그렇다 해도 남는 장사 아니야? 겨우 지팡이 하나로 거짓말쟁이, 좀도둑, 배신자, 남편의 정부를 쳐낼 수 있다면?”
베로니카는 서늘한 미소를 지었고, 에드워드는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뭔가 정치적 술수 같은 이야기군.”
“원래 훈련도와 충성심을 알아보는 방법은 먹이를 앞에 던져놓는 거야. 개는 물론이고, 고양이도.”
“고양이도?”
“훈련이 되긴 되거든.”
“되긴 되지. 안 쉬워서 그렇지…….”
“뭐, 개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은 존재하잖아. 발정난 우리 멍멍이가 동네 암캐들 다 임신시키고 다닌다던가.”
에드워드는 찔끔한 표정을 지었다. 베로니카가 이어서 꺼낸 말은 앞서 한 말들보다 더 작았지만, 연회장의 그 어떤 소리보다 선명히 에드워드의 귀를 파고들었다.
“헬레나 양이랑 했지?”
“어…… 밴시가 말했어?”
“걔 입을 안 빌려도 뻔히 알 수 있는 일이지.”
베로니카는 에드워드한테로 고개를 돌렸다. 약혼녀가 약혼자에게 속삭였다.
“각자의 영역에서는 자신이 제1부인. 여긴 내 영역인데, 연회 내내 기회가 없진 않을 테지?”
에드워드는 훈련된 개새끼가 된 기분을 느꼈다.
* * *
원래 봉작, 약혼 등의 행사는 행사 자체보다 전후의 일이 더 긴 법이다. 연회는 개선식 준비 시간보다 약간 더 긴 기간을, 거의 2주 가까이 지속됐다.
밴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보다 빨리 끝나서 다행이네요.”
“원래 일주일은 더 할 수도 있다던데, 로버트 국왕 폐하가 오니까 우리 쪽 영지 정비도 서둘러야 한다 해서 말이다. 뭐, 즐거웠지?”
“안 즐거워요! 왕실 이벤트는 감당이 안 된다 이 말이에요!”
밴시가 비명을 질렀다. 연회 마지막 밤, 그녀는 진짜로 곰과 한 우리에 갇혀버렸다가 혈투 끝에 탈출한 것이다. 분노한 요정은 출발 준비의 막바지인 에드워드 앞에 서서, 자기 이마에 남은 이빨자국을 가리켰다.
“이곳 하인들은 너무 무례하고 장난기가 심해요!”
“안 다치고 안 죽는다고 호언하니까 당한 거야. 자기 능력은 그렇게 자랑하는 거 아니다.”
에드워드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밴시는 툴툴거리며 말했다.
“네, 네. 기사님 혼자 즐거운 이벤트셨죠.”
“그러게. 정말 즐거우셨을 거야. 피임은 제대로 하셨어요? 허리띠한테 듣자니, 벌써 애 만들 기세라던데.”
그 2주 동안 도서관에서 살다시피한 스텔라는 간신히 에드워드 앞에 섰다. 그녀는 충혈된 눈을 비벼댔다. 에드워드는 어깨를 으쓱했다.
“교리에 어긋나지 않거나, 적어도 베로니카가 아니라 내가 책임져야 할 방법으로.”
“조만간 애 보겠네. 엘프님은 그나마도 아예 안 하시지 않아요?”
“하려니까 화내더라. 그래서 좀 걱정이긴 한데. 너무 일찍 임신해도 골치니…… 뭐 어떻게든 되겠지. 마법사는 내 가족계획보다 내가 준 과제부터 해결해라. 도서관서 뭣 좀 건졌냐?”
“그럼요. 진즉 끝낸 다음 제 개인적인 수양에도 썼죠. 2주 전의 저와 지금의 저는 다른 사람이라고 봐도 좋다고요?”
“자신만만하네. 지팡이 이야기는?”
“세트인 반지의 마지막 기록은 니사의 고대 신전이에요. 그곳 위치는 적어도 기사님의 도시 터보다 위치를 특정하기 쉽더군요. 철광산 서남쪽에 버려져 있대요.”
“그러고 보니 그 근처에 폐허가 좀 있긴 했지. 다들 관심은 없었지만.”
“그간 인간과 어둠 양쪽 모두 기대할 만한 자원이 없었으니까요. 탐사대를 꾸려서 발굴작업을 시작하도록 지시할까요?”
“가는 길에 꾸리고, 나도 참여한다.”
“기사님도요?”
“철광산 근처잖아. 가는 길에 들르면 되지.”
뒤이어 나타난 건 오랜만에 사제복 차림으로 돌아간 베로니카였다. 달라진 게 있다면, 직계왕족의 상징인 자줏빛 망토를 추가했다는 것 정도.
“그리운 옛날로 돌아간 기분이네. 오래전도 아닌데 말이야.”
베로니카의 말이었다. 스텔라는 안 좋은 표정을 지었다.
“공주님도 따라오시게요?”
“못 들었어요? 에드워드네 새 도시에 좀 머물려고요. 헬레나 양한테 전할 물건도 있고.”
“으. 그런데 그럼 설마…….”
“니사 유적도 가야죠. 사제 없이 하시겠어요?”
“이제 기사님도 아랫사람들 많은데요…….”
“그래서 스텔라 양도 실직 위기시죠.”
“아픈 데만 찌르신다!”
에드워드는 둘의 대화에 낄낄 웃어버렸다.
“아니, 실직은 아닌데. 박사 못 따면 마법사로서 받을 돈은 줄어들지도 모른다, 그 정도지.”
스텔라는 툴툴거렸다.
“그나마 완전 해고는 안 하실 거라는 게 천만다행이네요. 쳇. 자비롭고 다정하기도 하셔라.”
“어쨌든 해 보라고 지원해 주는 후원자가 있는 게 어디냐? 다행 아냐?”
“반은 진심으로 고맙고, 반은 진심으로 불만요. 제가 정말 박사 따면 기사님한테 제일 먼저 자랑할 거예요. 지팡이도 달라 해야지.”
“열심히 해라.”
“그리고 돈 내놓으라고 해야지.”
“할 수 있으면 환영이지.”
“그리고 기사님이 제 옷자락 붙잡고 애타게 해야죠.”
“그건 무리겠는데?”
침묵. 공주의 부군이자 주의 총독이며 한 성의 백작은 박사급 마법사라고 해도 어쩌지 못한다. 오히려 박사들이 줄을 서야 할 판. 결국 스텔라는 꼬리를 내렸다.
“부디 한 번만 더 굽어살피사…….”
에드워드는 피식 웃고는 방향을 돌렸다.
“네 공로 안 잊을 테니까 걱정은 마라. 가자.”
스텔라는 궁시렁거리며 그 뒤를 따랐다. 밴시는 깡충깡충 뛰며 그 뒤통수에 속삭였다.
“마법사는 자기 가족계획 걱정이나 하라 이거에요. 기사님이 정부는 공주님이나 엘프님처럼 사정 안 봐줄걸.”
“그야 그렇…… 긴 한데, 이 못되고 발랑 까진 요정!”
스텔라와 리안나는 행렬의 말미에서 서로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투닥거림은 몇 날 며칠을 이어 니사 유적지에 도착해서야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