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73)
273화 번갯불 (3)
급조 땅굴을 파서 피신해 있던 밴시 리안나는 악조건 속에서도 쿨쿨 자고 있었다. 천둥과 비명소리가 그녀를 깨우기 전까지는.
“호기심이 요정을 죽인다. 호기심이 요정을 죽인다. 호기심이 요정을 죽인다…….”
절대 밖으로 안 나가겠다는 의지를 다지기 위해 리안나는 아무 말이나 반복적으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유일한 환기구이자 채광창인 출입구는 유적과 반대 방향으로 파놓았는데도, 그 조막만 한 하늘에서 뭔가가 번쩍번쩍거려 어둠을 밝혔다.
사태 끝날 때까지 안 나갈 것이다.
밴시의 계획은 확고했지만 정밀함이 없었다. 언제 사태가 끝날지 모른다는 것. 유적과 반대쪽으로 뚫어놓은 출입구는 바깥 상황을 살펴보기에 영 좋지 않았다.
갑자기 주변이 조용해지자 밴시의 호기심이 부활했다.
“끝났나?”
당연하지만 응답이 없었다. 망설임 끝에 밴시는 기다시피 출입구를 나갔다. 몸을 반쯤 내민 리안나는 유적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고, 곧 기겁했다.
작은 폭풍이 유적 위로 치솟고 있었다.
“안 끝났네!”
그 말이 끝나는 순간, 폭풍에서 떨어진 번개들이 분수대의 물처럼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딱히 무언가를 노리는 게 아니라, 무작위로 떨어지는 벼락이었다. 밴시는 도로 몸을 돌려 도망쳤지만, 악운은 끝까지 그녀를 따라왔다.
벼락 맞은 밴시는 땅 위에 길게 누워 꿈틀거렸다.
* * *
마법사들의 광역공격이 세상을 제패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고대 사제의 주문은 그 이유들을 싸그리 다 무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에드워드는 파고든다는 선택지 속에서 약간 후회했다.
“뭐 저딴 게 다 있어?!”
고대 사제의 주변에서는 먼지 섞인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폭풍 안에서 번갯불이 번뜩였다. 폭풍 속을 맴돌던 번개들은 하늘로 높이 쏘아올려졌다가, 마치 투석기의 탄환처럼 지상에 내리 꽂혔다.
콰아아아앙!
도망치던 인부들 사이에서 비명소리가 나왔다.
베로니카와 스텔라는 갖은 주문과 도구를 써서 자신들에게 오는 공격을 파훼했다. 그러나 그녀들이 막는 건 작은 번갯불에 불과했고, 번개폭풍을 멈추거나 하진 못했다.
바람은 그 크기가 작으나 압력이 강해, 에드워드의 발걸음을 쉽게 전진시키지 않았다.
“과연, 자기가 뇌신이라고 착각할 만큼 재주꾼이네.”
에드워드가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스텔라는 더 심각했다.
“오크 때보다 상황 안 좋은데요! 저놈은 마법 전문가라 훨씬 정교해요!”
“2천 년 전의 전문가지! 길만 열어!”
에드워드가 소리치는 순간, 놈의 다른 주문이 완성됐다. 스텔라는 급히 에드워드의 왼쪽 어깨를 오른손으로 짚었고, 그 순간 열쇠검에서 하얀빛이 뿜어져 나왔다.
꽈르르릉!
고대 사제의 번개 주문이 열쇠검 끝에 부딪혔다가 사라졌다.
“방금 그거 어떻게 한 거야?”
“묻지 마요. 설명할 시간 없으니!”
“계속 그걸로 어떻게 할 수 없어?”
“상쇄라는 건데, 계속 할 수 있을지는…….”
“또 와요!”
베로니카가 소리치는 순간, 두번째 공격이 들어왔다. 직진해오던 번갯불은 사제의 보호주문에 가로막히는 듯 하더니, 마치 꽃의 술처럼 수십 갈래로 갈라졌다. 보호주문을 우회해오는 전격에 사제는 경악했다.
“뭐 이런 게 다 있……!”
그녀의 말이 끝나기 전에 스텔라가 나섰다. 그녀가 지팡이를 휘두르는 순간, 수십 갈래의 전격들이 그 자리에서 터져나갔다.
퍼퍼퍼펑!
“꺄악!”
“으억!”
스텔라와 에드워드는 충격파에 밀려 쓰러졌다. 베로니카가 다시 보호 주문을 조정하는 사이, 두 남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되네, 계속 그렇게만 해 봐!”
“방금 한둘은 놓쳤어요. 다행히 마법방호구가…….”
빠직!
그 순간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나면서 스텔라의 옷 아래로 흘러내렸다. 그녀는 황급히 손을 뻗어 허리띠에 걸린 걸 만져보고는 사색이 되었다.
“저기, 기사님?”
“왜?”
“오거 주술사한테서 뺏은 마법방호구 말이에요.”
“부서졌냐?”
스텔라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옥의 무기에도 부서지지는 않았는데…….”
에드워드는 짚이는 바가 있다는 듯 허리띠 주머니에서 납작한 원통형 물체를 꺼냈다. 찰리에게 남겼다가 도로 빼앗은, 유니콘의 뿔 밑둥이었다. 웬만한 주문도 버텨내던 물건이 이미 갈색으로 변색되어 부스러지는 상태였다.
“유니콘의 뿔도 무한정은 아니군…….”
“제 주문이나 사교도의 독은 아무렇지도 않게 막아내던 아이템이잖아요, 그거! 그것도 뚫렸다고요?!”
다음 공격이 들어오면 막는다는 보장이 더는 없는 상황.
그때 고대 사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베로니카가 그 말을 드문드문 번역했다.
“지팡이 도둑에게서 장물을 돌려받겠다는군요.”
“이거요? 주면 살려준대요?”
“일단 스텔라 양은, 전혀요. 사제도 아닌데 감히 뇌신의 힘까지 훔쳐 쓰는 년이라고 단단히 화가 났는데요. 스스로 신의 기적을 일으키지 못하는 반푼짜리 사제는 처음 본대요.”
“하아, 정말 구시대적인 기준이네. 하긴, 저 치는 마법과 신학에 분간이 없었으니.”
에드워드는 바람의 압력에 맞서면서도 두 여자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둘 다 하는 놈은 어정쩡한 거야?”
“오늘날에 둘 다 하는 사람은 눈 돌아가게 굉장한 거지만, 저 시대 기준으로는 글쎄?”
“원시적이라는 게 더 정확하죠. 저놈을 보니 확신이 들지만요.”
“그럼 2천 년 뒤의 마법사가 더 유리해야 하는 거 아냐?”
“그래도 격차가 느껴지네요.”
스텔라는 자신의 머릿속에서 실패의 나날들이 지나가는 걸 느꼈다. 길거리 글쟁이 내지는 점술사 수준까지 추락했던 때는 물론, ‘유력자의 최측근 마법사’도 간당간당한 지금의 상황까지.
반대로, 놈은 아무리 낮게 잡아도 유명 박사급 이상. 살아있을 때 이미 날고 기는 고위사제였던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적당한 비유를 찾아 뱉었다.
“야만전사도 근력이 놀랍도록 세면, 무기술의 달인인 기사들도 좀 놀라잖아요. 거기다 그놈이 머리통 하나 더 크다고 생각해 봐요.”
에드워드의 감상은 간단하고 짧았다.
“오크네, 그거.”
스텔라는 쿨럭거리기 시작했다.
“어쩌다보니 그런 비유가 됐네. 거인에 더 가깝지 않나 싶긴 한데…….”
베로니카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에드워드는 다시 머리를 굴렸다.
“기사라면 결국 무기술로 제압하겠지. 마법사는 어때?”
“마법사는, 그야…….”
기술과 기교의 문제가 심하기로 치자면, 마법이 더하고도 남을 것. 에드워드는 대답을 듣지 않고 바로 명령했다.
“2천 년의 간극과 그간 배운 게 다 헛것은 아닐 것 아냐? 해 봐. 뭐든지. 네 수준에 맞춘 주인님이 뭔지 보여 줄 테니까.”
“아직도 자신만만하시네요. 배우고 싶을 만큼. 어떻게 그럴 수 있죠?”
“글쎄. 다시 태어나면?”
스텔라는 그 말에 피식 웃어버리곤, 아지지야 일대를 오가는 엘프 여마법사 데스피나가 언젠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마법사는 조언자…… 내면의 변화를 겪은 기사들이 진짜 마법을 일으키는 법.”
스텔라는 다시 에드워드의 어깨를 붙잡았다. 빛에게 선택된 기사.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기사.
자기 가치를 보여 줄 남자.
그가 스텔라를 돌아봤다.
“아까 그거 다시 해 보게?”
“잠깐만 입 좀 닫아봐요. 제 스타일은 아닌 새로운 거 한번 시도해 보게!”
스텔라는 자신의 머리속에서 이제껏 쌓아놓은 것들을 총동원했다. 그녀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혔고 입은 쉴새없이 주문을 중얼거렸다.
학당에서 실패했던 실험들, 투리치 시에서 얻었던 종이뭉치들, 에드워드를 따라다니던 동안 했던 실험과 도전들, 아지지야 대도서관의 미궁에서 엿본 파편들, 발라민의 철퇴에서 해독한 지옥의 번개 속성 통제 주문, 왕성 도서관에서 연회도 마다하고 즐긴 2주간 밤샘 끝장 공부…….
마법사가 자신이 얻고 배운 것들 사이를 헤멜 때, 베로니카는 해골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보잘것없는 것이 남자 뒤에 숨어 애쓴다는데요.”
스텔라가 쓰게 웃었다.
“부정을 못하겠네요.”
“정정해 줘라. 프리시아 학당의 수재로.”
에드워드가 작게 중얼거렸다. 한 줄기의 주문을 완성한 스텔라는 그의 어깨를 약하게 때렸다.
“높게 평가해 줘서 고맙네요. 기사님, 제가 다시 어깨를 때리면, 이렇게 말하세요. 노와.”
“노와?”
에드워드가 물었지만 스텔라는 길게 설명하지 못했다. 그녀는 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형식은 이중창, 내용은 통제! 프리시아 학당의 이름을 걸고!”
그 순간 고대 사제도 자신만의 긴 주문을 완성하고 번갯불을 내뿜었다. 이번엔 그에게서 에드워드 일행에게로 곧바로 날아드는, 직접적이고 강렬한 번개의 흐름이었다.
스텔라는 주문 사이에서 에드워드의 어깨를 때렸고, 그는 바로 약속한 단어를 외쳤다.
“노와!”
에드워드가 외치는 순간, 번개는 열쇠검으로 빨려들어갔다가 다시 뛰쳐나왔다. 그 번개는 더 강해진 모양새로 고대의 사제를 불태웠다.
퍼어어어어엉!
샛노란 불빛 속에서 고대 사제의 옷자락이 불타 올랐다. 그러나 놈은 오히려 힘을 얻는 것처럼 보였다. 에드워드가 당황해 소리쳤다.
“더 강해진 것 같은데?”
“더 강해진 것 맞아요!”
“뭔 소리야, 그게?!”
스텔라는 대답 대신, 고대 사제를 향해 소리쳤다.
“네가 정말 신이라면, 이것도 다뤄 봐!”
열쇠검에서 다시 번개가 번뜩였다. 에드워드는 그제야 고대 사제의 상태를 알아챘다.
“엄청나게 먹어댔구만…….”
통제가 불가능한 수준의 번개들. 폭풍 속 번개들이 전부 고대 사제한테로 빨려들어 가고 있었다. 옷자락은 이미 불살라져서 남은 게 없고, 장신구들은 사방으로 흩날렸다. 빛 속에서 해골만 떠 있었다. 놈의 손발 끝부터 부서져 가는 모습이 모두에게 보였다.
고대 사제는 턱뼈를 크게 벌리며 괴성을 질러댔다. 놈의 정수리에서 커다란 번개 기둥이 치솟았다. 발라민의 철퇴는 물론이고 그놈이 이제까지 썼던 그 어떤 주문들보다도 밝고 강한 번갯불이었다.
그 순간 스텔라는 에드워드의 등을 힘껏 밀쳤다.
“가요!”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에드워드는 열쇠검을 들고 번개로 만들어진 길 위에 올라, 화살처럼 뛰쳐나갔다. 과장이 아니었다. 에드워드는 순식간에 빛덩이가 된 해골을 관통해 그 뒤에 서버렸다. 그는 놀란 표정으로 뒤를 돌아봤다.
“야, 방금 봤어? 이거 기술명 내가 좀 붙이자. 우사인 볼트 어때?”
에드워드가 농담하는 순간, 고대 사제는 마지막 형태를 잃고 대폭발을 일으켰다.
콰아아아아아앙!
번개가 섞인 먼지구름이 하늘로 치솟았다. 에드워드는 바로 나뒹굴었다. 베로니카는 스텔라를 붙잡아 같이 쓰러졌다.
저 멀리서 밴시가 소리쳤다.
“만세! 끝났다! 어쨌든 밴시는 더 안 다치고 끝났…… 뚜베룹?!”
주문의 잔해는 저 멀리까지 날아가 곳곳에 흩어졌다. 잔불과 번개에 맞아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나뒹구는 밴시를 무시하고, 베로니카는 자리에 일어나 앉았다.
“공주님!”
“괜찮으십니까, 공주님!”
보호를 나눠 받지 못해 멀리 도망쳐야 했던 근위기사들과 병사들이 곧바로 방향을 바꿔 달려왔다. 베로니카는 그들을 향해 손사래를 쳤다.
“난 괜찮아! 안 다쳤어!”
그러고서 그녀는 자기 옆에 누워버린 스텔라한테로 시선을 돌렸다.
“제가 마법 전문가는 아닌데, 이중창이 이런 형식이던가요?”
“아뇨. 보통은 마법사 둘이 함께 하죠.”
“통제 수준의 주문은 못 쓴다고 하지 않으셨던가요?”
“썼네요. 이번에.”
“그걸 기사랑 같이?”
“한 단어뿐이지만요. 아무 기사나 되는 건 아닐 거예요.”
“그 말씀대로면, 방금 그 주문, 에드워드의 어떤 특성을 이용한 듯한데?”
“네. 빛의 선택을 받은 기사라는 거요. 사람을 지팡이처럼 썼다고 해야 하나…… 빛의 힘은 촉매고. 약간 신학적인 요소지만.”
“그거, 거의 새 주문 아니에요?”
침묵. 스텔라는 한참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
“우기면 될지도?”
베로니카는 헛웃음을 흘렸다.
“피라미드 때도 그렇고, 궁지에 몰리니 강해지는 마법사라고 해야 하나…….”
“과제 마감이 닥친 학생의 심정이었지만요.”
베로니카는 바닥에 손을 짚어, 근처에서 잡히는 장신구들을 집어들어서는 스텔라의 평평한 가슴팍에 올려놓았다.
“좀 더 놀리고 싶었는데. 챙겨요. 이제 당신 전리품이니까. 차기 왕실 마법사 아가씨.”
스텔라는 좀 전의 속도감을 재현해보겠답시고 잔불 위에서 발을 놀리는 기사를 보며 웃었다.
“기사님 전리품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