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74)
274화 백작으로서 (1)
“이야, 거하게 했구만. 주술사왕이 여기 오기라도 했나?”
드워프 가르달의 말이었다. 철광산에서도 보이는 무지막지한 크기의 번개기둥을 본 그는 ‘또 무슨 일이 터졌구나’ 짐작해 완전무장한 모양새였다.
야전병동 꼴이 난 인부들 숙소를 돌던 베로니카가 그를 보고 반색했다.
“어머나, 생각보다 빨리 왔네요?”
“철광산에서도 난리 난 게 보였거든. 중간에 전령을 만나서 사정은 대충 들었소. 뭐 필요하시오?”
“최대한 많은 의약품, 의사, 그리고 치료 전문 사제요.”
“적은 거만 요구하는구만.”
“그럼 뭐가 많은데요?”
“쌈박질할 남정네들.”
베로니카의 눈이 가르달의 뒤를 향했다. 인간과 드워프들. 베로니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빠른 행동이 오히려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온 거려나요?”
“아예 없지는 않소. 그리고 전령이 계속 광산 쪽으로 갔으니, 추가 지원이 올 거요.”
“그건 다행이네요. 전령이 생각 없는 게 아니라.”
“일단 부상자들 병수발 들지, 뭐. 아예 재주 없는 사람은 유적 쪽에 보내고. 못된 고양이랑 기사양반은 어딨소?”
“유적에요. 무사한 사람들로 계속 발굴 작업 중이에요.”
가르달은 두말없이 유적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는 부상자 수발과 인연이 영 없는 드워프였으니까. 그는 곧 구덩이 속의 에드워드를 발견했다.
“여어, 기사양반. 삽질이 늘었구만?”
“댁이 본 내 삽질은 저주 풀리기 전의 것이잖소. 삽자루 뽀개 먹을 뻔한 거.”
“사교도 보물찾기할 때 말이군. 역시 저주 풀리니 좋구만. 근데 순례 중도 아닌데, 귀족 체면에 삽질도 직접 하쇼?”
“인부가 반절은 넘게 자빠져서 기사들도 하고 있소. 이 빌어먹을 유적에 대체 뭐가 있을지 불안해서.”
가르달이 돌아보니, 과연 기사와 병사로 추측되는 자들도 있었다. 스텔라는 그들을 쫓아다니며 쏟아져나오는 발굴품들을 빛나는 고양이 눈으로 주시하고 있었다.
“앗! 그거!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아! 비켜봐요!”
스텔라는 한 인부를 제치고는 커다란 돌 깔대기 같은 것 앞에 섰다. 그녀가 나무작대기로 내부를 긁어보자, 붉은 줄이 있는 검녹색 무언가가 묻어나왔다.
“뭐냐, 그게?”
에드워드가 물었고 대답은 가르달이 했다.
“석유요. 여기 시추공이 있나 본데.”
“석유?!”
에드워드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하지만 가르달은 심드렁했다.
“연료, 접착제, 방수처리 등 여러 가지로 유용하게 쓸 수 있지. 시오니아의 화염꽃 재료 중 하나로 추측되는 것이기도 하고.”
“대박이 났군.”
“대박? 암염이 진짜 대박이지. 소금산에서는 어쩌다 저런 게 찔끔 나오기라도 하면 돈 날아간다고 난리인데…….”
단순히 가치만 따지자면 소금이 만만찮게 비싼 시대. 하지만 에드워드는 씩 웃었다.
“어차피 여긴 소금 없잖소. 석유도 무진장 유용한 자원 아냐?”
“모르지. 더 파봤더니 석유는 찔끔 나오는 데 그치고 오염된 암염층이 나오더라 그러면 기사양반은 땅을 칠걸.”
“뭐, 그건 좀 더 파보고 이야기합시다. 산유지가 내 땅에 있다니, 기분 묘하네.”
“그리 좋아할 일이오?”
후손들은 좋아할지도 모르는 일. 에드워드는 그 말이 목구멍까지 나오려는 걸 밀어 넣었다. 당대에 오일머니를 만져본다는 꿈은 못 이룬 걸 한탄하면서.
“음. 일단 철광산에 연료로 쓰면 어떻소?”
“나쁘지 않은 이야기군. 안 그래도 철광산 주변의 나무들이 좀 부족할 것 같아서 걱정이었는데. 다만, 문제는 수송비요.”
“내 손수레로 어떻게 안 되나?”
“연료라는 게 원래 무지막지하게 들어가는지라, 가능하면 수운을 쓰는 게 단가를 낮추는 데 도움이 되오. 근데 철광산에서 여기까지는 물길이 없잖소. 가장 가까운 물길을 쓰려면 좀 돌아가야겠고…….”
에드워드는 입맛을 다셨다.
“할 수 없군. 그냥 두 방법 다 써봅시다. 야, 스텔라! 이 유적지에 대해 좀 더 알아낸 거 있냐?”
“천상의 빛과 지상의 불이 만나는 곳, 번갯불로 밝혀 영원히 타오르는 불…… 석유 구덩이에 번개가 떨어져 불이 붙은 걸 성지화한 유적이네요. 여름엔 무진장 더웠겠다.”
“그리고?”
“이 돌 깔때기가 더 굉장한 물건이에요. 어딘가로 석유를 보내던 물건이니까요.”
“보내?”
“마법의 문이에요. 지금은 막혔지만…… 대체 석유를 어디다 보냈을까요?”
“흠. 한번 열어보면 알겠지. 열어 봐.”
스텔라는 마법의 주문을 찾아 외웠다. 그러나 돌깔대기는 미동도 안 했다. 여마법사의 미간이 좁아졌다.
“안 열리는데요.”
“그래? 마법이 깨졌어?”
“마법은 멀쩡해요. 근데 뭔가…… 물리적인 건 아니고, 마법적인 힘이 문을 강제로 닫아놨어요.”
“눈길의 도적단 녀석이 생각나는군. 우물에 잠금마법 걸어서 사람들 약올리던 놈 말이야. 기억나?”
“기억나고 말고요. 기사님 덕에 제가 그놈에게 정전기 32연발 콤보를 연습해볼…… 아, 그때보다 골치 아프겠네요.”
“그래?”
“아까 기사님과 제가 쓰러뜨린 그 해골바가지 있죠? 그놈 솜씨 같아요. 수법은 단순한데 힘이 무지막지하거든요. 술사가 죽었는데도 이 정도라니…… 파훼하려면 시간이 좀…….”
“우리 시간 많아?”
“아뇨! 저 여기서 찾은 것들이랑 이번에 개발한 주문 얼른 정리해서 학위 심사받아야 해요! 솔직히 머리 터질 것 같아요! 아아, 밤 새기 싫다.”
“그럼 비켜봐.”
에드워드는 깔때기 앞에 섰다. 스텔라가 나지막하게 경고했다.
“기사님 손아귀 힘으로 다 해결될 문제면 제가 진즉 떠올렸을…….”
“캐시, 검 가져와.”
구덩이 옆에 비스듬하게 늘어져 있던 허리띠가 잽싸게 날아왔다.
스르릉.
열쇠검이 검집에서 뽑히면서 섬뜩한 소리를 냈다. 스텔라는 침을 삼켰다.
“그만 떠들게요.”
“아니, 너한테 겨누려던 거 아닌데.”
에드워드는 깔때기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그 구멍에 열쇠검을 푹 꽂았다. 기사의 팔뚝이 몇 개는 들어가고도 남을 그 구멍의 가장 안쪽. 검 끝이 잔여물을 건드렸다. 스텔라는 신음 소리를 흘렸다.
“뚫렸어요. 아니, 열렸어요.”
스텔라와 가르달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에드워드는 열쇠검을 꺼내 검 끝에 묻은 검댕을 바라보았다.
“발라민의 철퇴가 고장 난 게, 무게추의 상처 때문만은 아닌 것 같군.”
에드워드는 검을 다시 깔때기에 넣어 푹 찔렀다. 그가 스텔라를 돌아보자, 그녀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반복. 스텔라는 연거푸 고개를 끄덕였다.
“열렸어?”
“네.”
“흠. 어디로 이어지는지는 알겠어?”
“어, 잠시만요. 너머를 알아내는 것도 만만찮게 힘든 건데…… 아, 어딘지 알겠다.”
“빠르네.”
“마법의 공간을 타고 소리가 들렸거든요.”
“무슨 소리?”
“가르달 씨를 수전노라고 욕하는 소리인데요. 벤야민이 누구예요?”
“소금산에서 온 드워프 광부 놈이야! 이노무 새끼! 나 없다고 입을 놀리고 있구만!”
가르달이 버럭했다. 에드워드는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철광산과 이어져 있다고?”
“네.”
에드워드는 가르달을 돌아봤다.
“철광산에 난방이나 하자고 기름을 보낸 것 같지는 않은데.”
“어떻게 보면 사치스럽고 어떻게 보면 효율적이군.”
“사람들 생각하는 건 고대나 지금이나 다 똑같은 것 같소. 나무값 굳었네.”
스텔라도 고개를 끄덕였다.
“용광로에 연료를 대는 용도가 맞는 것 같네요. 하지만 그 괴물딱지 사제 때문에 이 도시는 하룻밤 만에 멸망했고, 그 이후 철광산은 석유를 잊은 채 나무를 연료로 제련을 해낸 모양이에요.”
“그리고 그 철광산도 어둠의 침공으로 몰락해 버렸단 말이지.”
“반대쪽은 물리적으로 막힌 듯하네요. 아마도 흙이나 모래…… 소리가 좀 먹먹해요.”
“뚫을 수 있겠어?”
“제가 철광산 가서 발굴 작업 지도해야 할 것 같은데요.”
“가르달이랑 같이 가서 위치만 확인해 줘. 그가 벤야민을 응징하면서 발굴도 해 줄 거야.”
“묵사발을 내놓겠소!”
“난 그 친구 안위는 관심 없는데, 혹시 석유 채굴해봤거나, 관련 장비 아는 광부면, 사지 멀쩡하게 데려오쇼.”
“모를 거요!”
“확인은 하라고. 없으면 다른 사람 데려오고. 명심하쇼.”
“끄응. 알았소.”
“스텔라, 넌 바로 학위 심사 준비 들어가.”
“기사님, 사랑해요!”
스텔라는 바로 가르달의 덜미를 붙잡고 구덩이를 나갔다. 드워프는 툴툴거리며 말했다.
“넌 언제쯤 그 허언을 멈출 거냐?”
“엥? 허언처럼 들렸어요?”
“여전히 허언처럼 들린다.”
“진심을 증명하기란 어렵군요.”
깔깔거리는 스텔라의 웃음소리를 뒤로 하고, 에드워드는 구덩이 반대편으로 나갔다. 그는 찬바람에 식어가는 땀을 수건으로 닦으면서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아지지야에 출장 간 미아 루이스한테 급히 전령 띄워. 석유 채굴과 정제, 그 활용에 관한 연구가 있으면 닥치는 대로 다 사오라고 해.”
“옙!”
“카말라에도 전령 보내서 이런 유적 발굴해본 사제나 마법사 찾으라 해. 나머지 발굴 맡기게.”
“옙!”
“나머지 인원들은 귀환 준비. 조만간 공주님 모시고 간다.”
“목적지는 카말라입니까?”
“그렇게 하지, 뭐. 아, 베로니카! 헬레나에게 전달해 줄 물건 있다고 하지 않았어?”
“맞아! 카말라나 케라시움 어느 쪽으로 가도 돼! 헬레나 양은 어디 있는데?”
“나 오는 날짜에 맞춰서 카말라에 오겠지! 그쪽으로 가자고!”
“알았어! 사제들 추가로 도착하면 곧바로 출발할 수 있게 해 놓을게!”
시오니아의 공주와 그 부군이 격의 없이 소리 질러 대화하는 걸 본 근위기사들은 얼굴이 묘해졌다. 한 근위기사가 에드워드에게 새 수건을 한 장 더 건네면서 말했다.
“두 분 다 묘하게 익숙해 보이시는군요.”
“순례라는 게 원래 그랬거든. 사건 터질 때마다 뒷수습이 항상 이랬어.”
에드워드는 낄낄 웃으면서 답했다. 근위기사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공주님이 켈러핸 경보다 당신을 택한 이유가 있군요.”
묘한 발언이었다.
* * *
카말라는 놀랍도록 빠른 속도로 건설되는 도시였다. 통치자인 에드워드의 거처는 벌써 붉은 벽돌로 2층까지 건설이 끝나 적색탑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내가 성 건축은 잘 모르는데, 벽돌성이라는 게 이렇게 빨리 지어 올리는 거였나?”
“방어용이라기보다는 당장 거처로 쓸 2층 탑이잖아. 이 정도는 오래 안 걸려. 이 성탑과 그 주변이 몇 년 동안 증축과 개축을 거치면서 점점 커지는 거지.”
근위기사들을 그 탑 밖까지 물리치는 데 성공한 베로니카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켈러핸이라…… 골치 아프네. 아직 있거든. 없으면 더 이상하지. 그를 내버려 두고 왜 널 택했냐는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 특히 그에게 줄을 댄 사람들. 정치가, 귀족, 기사, 상인 등이 있지.”
에드워드는 코웃음을 쳤다.
“멋대로 줄을 대고 멋대로 실망하기는.”
“공주님을 두고 마법사나 엘프한테 홀리는 남자라는 평도 있더라.”
“엥? 나 시오니아의 공식 석상에서 스텔라나 헬레나를 낀 적은 없는데?”
“여기선 꼈잖아. 소문은 원래 그런 거야.”
헬레나의 눈매가 사나워졌다.
“벚나무 씨족과 새 도시 케라시움의 위세에도 그 소리가 나오나 두고 보죠.”
아쉽게도 스텔라의 반응을 볼 기회는 없었다. 적색탑 추가 공사 현장 옆 임시공방에 처박혀 자료 정리 및 논문 작성에 여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에드워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불만이 있으면 덤비라 해.”
“걱정 마. 내가 뒷공작으로 철저히 밟고 있거든.”
“공주님, 무섭다.”
“근본적으로는 네가 더 잘나가야 해결되는 문제야. 수단과 방법 가리지 마.”
“알았어. 젠장. 남편의 책무란. 그럼 이제 뭘 해야 하지?”
“꺽다리 로버트가 도착하기 전에 최대한 정비하기. 구색은 갖춰야지.”
“흠. 일단 성사 가능성이 높은 것부터 따지자면, 우리 마법사 아가씨의 박사 학위부터 따야겠군. 근데 어디서 어떻게 따는 거지?”
“적당한 학당에 가야지. 푸른바위거성의 뒤에 있던 비단생산지들 있지? 그중에 학당을 유치한 도시도 있어. 그쪽으로 가면 될 거야.”
“그렇군.”
“너도 가야 될걸.”
“엥? 왜?”
“증거물. 마법은 잘 모르지만, 새 주문에 대해 설명하려면 스텔라 양이랑 네가 같이 가야 할 거야.”
에드워드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거 언제 출발하지?”
“스텔라 양에게 물어봐. 자, 우린 우리 일부터. 헬레나 양?”
“네?”
“시오니아 왕성으로 벚나무 씨족의 소포가 왔더군요.”
“카말라나 케라시움이 아니라 밀리온에요?”
“밀리온에 전통과 위세를 자랑하고 싶은 모양이죠. 경탄할 만한 물건이더군요.”
베로니카는 손가락을 따악 튕겼다. 그녀의 뒤에서 두 남자 하인이 길쭉한 나무상자를 들고나왔다. 그걸 열어본 헬레나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건…….”
“당신 조모님의 무구라더군요.”
구성은 지금 헬레나의 것과 비슷했다. 비늘갑옷, 글레이브, 짧은 칼. 그러나 비늘갑옷은 가죽이 아니라 번쩍이는 백금색 금속이었고, 글레이브의 날은 헬레나의 것보다 한둘레 더 컸다. 글레이브날 옆은 벚나무 가지와 꽃을 형상화해 그려 넣었다.
겉모습만 달라진 게 아니라 그 성능도 놀라운 물건일 게 뻔했다. 에드워드는 곁눈질로 갑옷을 보다 말했다.
“조모님이면 그 뭐냐, 폰티아 엘프들과도 싸웠다던?”
“네.”
“유품인가?”
“재수 없는 소릴. 아직 살아 계세요.”
헬레나는 갑옷 옆, 완충재인 지푸라기 더미 속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내용을 읽어본 헬레나는 웃어 버렸다.
“은퇴하신다네요. 이제 이 무구들은 제가 쓰래요. 이것들을 신병이 물려받으려면 한참 기다려야 할 거라고 하신 게 엊그제 같은데.”
때로는 가보, 때로는 정체성의 상징인 갑옷. 에드워드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좋아 보이네. 저번의 갑옷 바꿔입기 놀이 전에 이게 왔으면 난 그 제안 못 꺼냈겠어.”
“도구와 목적을 헷갈릴 바보짓을 하진 않아요.”
헬레나는 새침한 투로 말한 다음 갑옷을 들어 보였다. 그 갑옷을 아래서 올려다보던 밴시 리안나가 중얼거렸다.
“이것도 여자 갑옷이죠?”
“응. 왜?”
“그런데 이 사이즈라니…… 그럼 엘프 언니네 할머니도……?”
밴시의 눈초리가 헬레나의 무지막지한 가슴팍 아래를 파고들었다. 헬레나는 크게 당황했다.
엘프와 사제는 동시에 외쳤다.
“뭘 보니?!”
“뭘 보니?!”
말하는 대상은 달랐다. 베로니카는 ‘깊은 감명을 받은 표정인’ 에드워드의 옆구리를 힘껏 팔꿈치로 가격했다.
카말라의 백작이 자기 신혼집 겸 첫 성탑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아랫입술을 물고 쓰러져 꿈틀거리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