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75)
275화 백작으로서 (2)
베로니카는 어디서 빈약하다는 소리를 들을 몸매가 아니었다. 그러나 헬레나의 몸매는 압도적인 수준이었고, 그녀들의 예비 남편은 거기에 홀리고도 남을 종자였다.
헬레나의 조모가 보낸 갑옷에서 밴시와 에드워드가 주목한 지점은, 두 여자가 다시 서로를 견제하는 신호가 되기에 충분했다.
“난 억울하다. 뭘 선택해도 억울하다.”
백작성 적색탑 1층 홀의 점심 자리. 에드워드의 짧은 항변이었다.
“기사님이 선택한 부인들이니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 이거예요.”
리안나가 신축 백작성 창문에 매달리기 업적 1호를 달성했다.
백장성인 적색탑은 시작부터 두 여자의 침실을 따로 배정하는 설계였고, 에드워드도 이를 승인했다. 문제는 둘 사이의 기류가 이상해질 때, 하나를 택할 경우 골치가 아파진다는 것.
평소엔 넉살 좋게 끼어들 스텔라가 학위 심사 준비로 혼이 날아가기 직전이라, 둘 사이에 완충 지대가 없다는 문제도 추가.
“한 팔에 열두 명씩은 넣겠다던 내 야망은 잠시 보류. 둘도 버겁네. 깜빡 실수인 척하고 한곳으로 다 몰아넣는 설계로 할 걸 그랬나.”
“그랬으면 더 난리 났을지도 모르지…… 감당 가능하시겠소?”
카치운의 짧은 추측이었다. 에드워드는 부정하지 못했다. 결국 귀환 첫날 초저녁부터 두 침대를 오갔으니까.
“언젠가는 몰라도…… 일단 지금은 둘 사이에 말썽이 날 경우에 대한 예상 시나리오를 좀 더 늘려야겠군. 증축과 개축 때는 좀 더 교묘한 설계가 필요할지도 몰라.”
“그 둘과 원활한 관계를 맺는 게 카말라 백작으로서는 필요한 일이겠지. 하지만 그것 말고도 할 일 많다는 걸 잊지 마시오.”
백작이 부재중이던 동안 그 업무를 대행한 자의 말이었다. 에드워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백작으로서 말이지.”
두 여자 중 먼저 일어난 건 헬레나였다. 아침을 건너뛰고 뒤늦게 일어난 그녀는 베로니카가 아직 안 온 것을 확인하고는 에드워드 옆에 앉았다.
에드워드는 다른 화제가 나오기 전에 바로 엘프 쪽 이야기를 진행했다.
“페트로스 쪽은 무슨 이야기 있어?”
“폰티아와 베르세바 양쪽 모두한테서 혼담이 들어오긴 했던 모양이에요. 그런데 베르세바 쪽은 영 적극적이지 않네요.”
“왜지?”
“내륙 쪽 정보나 인맥이 더 급한 건 폰티아라서 그런 게 아닐까요? 추측이지만.”
폰티아는 그 시민이 바다 엘프라고도 불리는 해양 도시. 아주 근거 없는 추측은 아니었다. 어쩌면 신도시 케라시움의 건설에 아르데니아의 지분을 조금이라도 빼고 싶은 술수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엘프들 사정은 에드워드가 깊게 생각할 건 아니었다.
“흠. 페트로스 생각은 어때?”
“조건만 나쁘지 않다면 신부 후보를 만나 보겠다는데요.”
“중매쟁이가 된 기분이군. 각자 후보 쪽 이야기 있어?”
“베르세바는 뚜렷하게 미는 아가씨가 없고, 폰티아 쪽은 데스피나의 증손녀를 내세웠더군요.”
에드워드는 마시던 물을 뿜을 뻔했다.
“증손녀? 그 여자, 증손녀도 있었어? 아니, 그 성격에 결혼도 했어?”
“했었죠. 지금은 독신이지만. 이혼했다나.”
“엘프도 이혼해?”
“웬수랑 천 년을 마주 보면 끔찍하지 않을까요?”
“아, 그런가. 그래도 증손녀라. 거 참.”
“할망구잖아요. 그 나이에 없으면 더 이상할 걸요.”
에드워드는 데스피나의 은근한 유혹을 떠올리고는 입맛이 쓴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들으니 미묘하군. 엘프들 나이는 별로 분간이 안 간단 말이지…….”
헬레나의 눈매가 사나워졌다.
“그래서 인간 기사들을 농락하는 못된 할망구들이 가끔 나오죠.”
다른 년은 몰라도 그년만은 안 된다. 에드워드에게는 그렇게 들렸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헬레나는 데스피나와 첫 만남 때부터 그녀가 에드워드에게 마수를 뻗는 데 질색팔색했으니.
“흠. 나야 최고의 엘프가 옆에 있지만.”
데스피나는 입장을 보나 성정을 보나, 백작령을 운영하는 데 그리 도움 될 마법사가 아니었다. 그녀의 술수에 낚인다면 힘만 뺄 가능성이 컸다. 아깝지만 그녀에 맞서고 본때를 보여 주는 건 다른 사람에게로 패스.
“하지만 이야기를 진행하려면 데스피나와 그 주변 사람들 사이를 오갈 필요가 있단 말이지. 흠. 대행을 골라야겠군.”
“여자로 찾아볼까요? 대쪽 같은 성격일수록 좋겠죠. 올리비아 경이라든가…….”
“올리비아는 이런 일 맡을 성격도, 지위도 아니야. 이미 검은벽 요새를 지키는 역할을 맡고 있기도 하고.”
“켈러핸 경은?”
“걘 왕실 근위 기사단장이잖아. 내가 마음대로 못 해.”
에드워드는 식사 중인 사람들로 시선을 돌렸다. 현지에서 자기 영지를 꾸리는 게 아니라, 손님이나 월급 기사로 남은 자들의 모습이 여기저기 있었다. 에드워드는 그들 중 하나를 찍었다. 그는 접시를 교체하던 하인에게 슬쩍 지시를 내렸다.
잠시 뒤, 방문객 조르쥬 드 발로뉴가 그의 앞에 섰다.
“무슨 일이십니까, 에드워드 경?”
“혹시 엘프 레이디가 내리는 시련과 보상에 흥미 있소?”
“없는 기사가 있겠습니까? 설마 헬레나 양이나 그 씨족의 일입니까?”
“아니. 데스피나라고, 폰티아 출신의 엘프 여마법사가 있소.”
“처음 듣는 이름이군요. 폰티아 쪽과는 연이 없다 보니.”
에드워드는 약간의 과장과 왜곡을 섞어 말했다.
“내 영지의 투자자가 될 사람 중 하나기도 한데, 자신이 내리는 시련을 극복하고 정의를 세워 줄 진정한 기사를 찾아다니지.”
“호오. 에드워드 경도 참여하십니까?”
“애석하게도, 나와 그녀는 서로 지향점이 다른 데다 내가 할 일이 많아서.”
“유감이군요.”
“괜찮다면 경이 한번 참여해 보시겠소?”
“옥셀레의 주교께서 내린 사명에 지장이 없다면야…….”
“그 사명이 뭔지는 몰라도 큰 지장은 없을 거요. 조만간 그녀와 이쪽 간에 사절이 여러 번 오갈 텐데, 그쪽에 한번 참여해 보시는 게 어떻소? 어쩌면 사명에 도움이 될지도 모를 텐데.”
“기사가 이런 인연을 거절하면 안 되겠지요. 그녀의 시련에 도전할 가치가 있길 빌어야겠군요.”
“나는 말도 안 되게 큰 거대 전갈이랑 싸움 붙이더라고.”
보통 기사라면 질겁할 이야기지만, 조르쥬는 달랐다. 오히려 눈이 빛났다.
“레이디가 내리는 고난과 시련은 클수록 좋지요! 명예로운 일입니다!”
희희낙락해서 자리로 돌아가는 조르쥬를 보고 헬레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불쌍해지는데요. 붙여도 하필 할망구랑 붙여 주세요?”
“인간에게는 큰 차이 없다니까. 뭐, 조르쥬도 만만찮은 기사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에드워드는 고기 한 점을 입에 집어넣고는 중얼거렸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오히려 데스피나가 더 긴장해야 할걸.”
헬레나도 그걸 아주 부정하지는 못했다.
“하긴 조르쥬 경은…… 기사들이 갖는 피학적인 면이 유독 두드러지는 성향이니까요. 거기다 실력도 있고요.”
“딱 데스피나가 원하는 타입의 기사지만, 오버스펙이기도 하지. 난 그년이 조르쥬 경을 감당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안 들어. 마조와 심술쟁이라니, 볼만하겠지. 일단 폰티아 쪽 관계는 이렇게 하고, 베르세바는…….”
헬레나는 에드워드를 흘겨보았다.
“슬슬 사람 쓰는 통치자다운 구석이 보이긴 하는군요.”
* * *
사람 다음은 물질이었다.
간단히 정제한 기름을 연료로, 소금산의 것만큼은 아니지만 꽤나 큰 수차로 공기를 불어 넣어.
드워프들이 만든 용광로는 오크들의 조잡한 소규모 용광로와 차원을 달리했다. 크기와 둘레부터가 사람 키 몇 배를 훌쩍 넘겨서, 거대한 벽돌탑 같은 모양새였다. 광산에서 내려보내는 철광석을 다루는 부속 건물에, 번갈아 작동해 공기 공급이 끊이질 않는 풀무까지 갖췄다.
용광로에서 뜨거운 쇳물이 흘러나와 미리 파 놓은 길로 나뭇가지처럼 쏟아져 나오는 순간, 제철소 사람들은 일제히 환성을 질렀다. 가르달의 목소리가 제일 컸다.
“성공이다!”
갈라진 쇳물을 철괴로 만드는 순간, 최전선의 병기창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학위 심사 직전의 마법사 스텔라와 동행하여, 가는 길에 행사를 참관하러 온 에드워드는 천천히 박수를 치면서 말했다.
“보기 좋은데. 문구 하나 써 붙여 둘까?”
“무슨 문구?”
옆에 서 있던 베로니카가 물었다. 에드워드는 ‘제철보국’을 최대한 현지에 맞게 어레인지 해 보려고 머리를 굴렸다.
“철이 빛의 권세를 보호하리?”
“나쁘지 않네. 가르달이 들으면 좋아하겠어. 근데 저쪽 건물은 뭐야?”
“공방. 미아가 돌아오면 저거 맡기려고.”
“연금술사 공방? 카말라에 안 차리고?”
“그건 따로 차릴 거고, 여긴 연금술사보다는 광산개발자들과 금속장인들의 연구소지. 아지지야에서 사 오는 채굴과 금속제련 관련 연구는 이쪽에서 마저 진행해야 맞을 거야.”
“꼼꼼하네. 근데 아까부터 박수 이상하게 치고 있다, 너?”
“김씨 3대식 박수.”
“무슨 소릴 하는 건지 모르겠네.”
베로니카가 핀잔을 줬다. 에드워드는 짧은 해명을 남겼다.
“어느 동네 지배자인데, 뭐가 잘나간다고 자랑할 때 이런 박수를 치더라.”
“그 사람 동네는 잘사니?”
“아니. 매우 못 살지.”
“그럼 뭐 하러 그런 인간을 흉내 내니. 운 떨어지게.”
베로니카가 재차 핀잔을 줬다. 에드워드는 낄낄 웃어 버렸다.
“권력 하나는 절대적이거든.”
“안 그런 영주가 있니?”
“더 심해.”
“흠. 상상이 안 가네. 그만큼 권력을 많이 쥐면, 할 일도 많겠어. 너도 그렇긴 하지만. 판결은 내리고 가라?”
영주의 권한 중에는 독자적인 사법권도 포함되어 있고, 에드워드는 재판관 노릇까지 해야 했다. 철광산 아래 제철소 기공식에 오기 전에, 이미 재판 두 건과 맞닥뜨렸던 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니, 아직 사람보다 땅이 남아돌지 않나? 토지 분쟁이라니.”
하나는 오크 부락들이 남겨 두고 도망친 잡곡 밭에 대한 각 정착민 집단 간의 권리 싸움. 다른 하나는 통행료를 두고 벌어진 소영주들 간의 갈등. 특히 후자는 각자 성채를 급조해 제2 방어선의 일각을 맡는 무장 세력들이다. 베로니카는 피식 웃었다.
“사람의 욕심을 너무 얕봤네.”
“내가 유명한 판사를 알아. 쏠로몬 재판이라고.”
“그게 뭔데?”
“일단 뭐든지 반으로 쪼개고 보는 거야.”
“자기들끼리 그렇게 해결될 문제였으면 영주 앞까지 끌고 오지는 않지.”
“젠장. 도와줘요, 쏠로몬.”
“네 박수 치는 법의 원조인 가난한 동네 지배자는 어떻게 하는데?”
“다 광산으로 보내.”
“뭐 그딴 재판이 다 있니?”
“그러게.”
“도움이 되는 것 좀 보고 다녀. 이상한 것만 보지 말고. 나도 직접적으로는 못 도와줘. 법관이긴 한데, 세속법 전문가는 아니라서.”
“법학 대학교 설립은 너무 먼 이야기고. 일단 외부에서 법관들을 불러 법원을 세워야겠군…….”
“백작의 재판정을 운영하려면, 필요하겠지. 그렇게 구색을 갖춰 나가는 거야.”
베로니카는 슬쩍 즐거운 표정을 비춰 보였다.
“남편이 통치자로서 다듬어지는 걸 보는 건 재밌네. 여하튼 이제 행사도 끝났으니, 갔다 와. 나도 카말라로 가서 네 대행 노릇 하고 있을 테니까. 아, 스텔라 양은?”
“저 여깄어요오오오오.”
스텔라가 다 죽어 가는 신음 소릴 내며 나타났다. 베로니카는 며칠 밤샘 몰골이 된 그녀를 보고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반대로, 에드워드는 입을 삐죽였다.
“유적 발굴 현장을 떠날 때만 해도 신나 보이더만, 며칠 새에 시체가 다 됐네.”
“업무 면제하고 시간 준다는데 반색 안 할 사람이 있나요? 그거랑 별개로, 심사 준비 과정은 골 팬다고요. 아아, 죽을 것 같아. 이제 그만 출발하시죠, 백작님.”
에드워드는 베로니카를 돌아봤다. 그녀는 짧은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스텔라 양의 건투를 빌지요. 그리고, 잘 갔다 와, 백작. 갔다 오는 길에 내가 사 오라는 거 다 사 오고.”
비단 생산지의 도시들은 아직 에드워드의 개척지에 다종다양한 물건들을 공급해 주는 곳들. 에드워드는 심부름 맡은 남편의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조만간 저 철괴들과 함께 가는 날도 오겠지.”
* * *
백작성, 제철소, 간이재판정, 전선이 더 동쪽으로 옮겨가 이제는 전략적 가치를 상당수 상실하고 텅 비어서 앵글리아군 선발대만 머무는 푸른바위거성, 그 너머 이웃 도시까지 부지런하고 번개 같은 움직임.
에드워드는 자신이 순회 스타일 영주가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개척 초기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아, 오늘도 참 보람찬 ‘백작으로서의 일과’ 끝이군.”
비단 생산지 중 유명 마법 학당이 들어선 도시, 유로푸스의 첫 저녁을 보낸 에드워드의 말이었다. 기분 좋게 취기가 올라오는 날이었다.
모험순례자이자 전쟁영웅, 시오니아 공주의 부군, 하르몬주의 탈환자, 카말라시의 재건자, 곧 쏟아져 나올 철괴의 주인을 만난 도시 유력자들의 접대는 극진했다. 어느 집에서 묵겠다는 제안을 받아들였다간 싸움이 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당연했다. 에드워드는 몸이 하나뿐이고, 이번 볼일이 끝나면 유로푸스시를 다시 지나갈 거란 보장도 없으니.
결국 에드워드는 가장 중립적인 영역의 한 숙소를 빌렸고, 밤은 거기서 보내게 되었다. 어차피 동행한 마법사, 스텔라의 학위 심사도 고려하면 에드워드는 그녀와 가능한 한 가까이 있는 게 옳다.
“끝장 접대를 못 받으니 좀 아쉬운 구석도 많지만, 구매 계약도, 판매 계약도…….“
에드워드가 이것저것 중얼거리면서 자기 방이 있는 복도로 들어서는 순간, 희미한 달빛 아래 쪼그려 앉은 스텔라가 눈에 들어왔다. 마법사의 복장이 아니라 조금 더 편한 복장이었는데, 에드워드의 방문 앞을 지키듯 앉아 있었다.
“엥? 너 뭐 하냐?”
에드워드의 질문에 마법사는 울상이 된 얼굴을 들어 보였다.
“주문 재연이 자꾸 실패하는데요…….”
에드워드는 만사가 순조롭다는 생각을 잠깐 접어 둬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