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77)
277화 선물에는 이유가 있다 (1)
고대의 지팡이와 세트인 반지까지 갖추었지만, 스텔라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진정시키느라 애를 좀 먹어야 했다. 그녀를 에스코트하는 척 부축한 에드워드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 정도면 효과는 확실하겠지?”
“글쎄요. 감정의 영향을 받는 주문은 불확실하고 불안정해서요. 특정 문구를 좀 더 세련되게 다듬거나 다른 신호로 대체할 시간이 있으면 좋겠는데, 그건 주문 새로 하나 만드는 급이라…….”
“그 난리를 쳐놓고도 불확실하다고?”
“이게 몇 시간짜리 심사라고 생각하세요? 재연은 제일 마지막이라고요.”
“그래서 좀 격하게 했잖아.”
“격하긴 했죠. 젠장. 공주님과 엘프님은 환장하길래 기분 좋기만 할 줄 알았더니, 이 정도로 심각하게 아플 줄은.”
“조절한 거야. 네가 운동부족인 탓도 크지. 다리 유연성이 특히 문제더라. 그리고 너도 아픈 거 좋다며?”
“누가 들으면 오해할 소리 하지 마세요! 기억과 감정을 남기기에는 차라리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뜻이었죠!”
“그게 그거 아닌가? 그리고 너도 마지막에는…….”
“기사님, 아, 좀!”
둘은 소리 낮춰 티격태격하다가 학당 건물 앞에 섰다.
이곳의 학당도 여타 어느 대학들처럼 도시 안의 건물들을 몇 개 빌려 형성된 곳이었다. 그러나 그 건물만큼은 처음부터 학당의 목적에 맞게 설계되었다.
제일 윗부분이 잘려 나간 듯한 돔 지붕이 올라간 석조건물. 위치도 도시의 성벽 안이 아니라 밖이었으며, 주변엔 다른 건물이나 행인도 적었다.
“딱 봐도 알겠다. 주문을 하늘로 쏴라, 이거네. 튼튼한 벽은 만에 하나를 대비하는 거고.”
이름은 길고 길었는데 뜻은 대충 ‘학당 설립자 유수프 기념관’. 설립자 이름을 딸 정도면 돈을 들일 만했다.
“보통 위험한 주문이다 싶으면 들판에서 하지만요. 유수프는 평생에 걸쳐 새 주문만 다섯 개를 만들어낸 대학자였다죠.”
“누구는 하나 때문에 이 난리인데 다섯 개라.”
에드워드는 새 건물을 지을 정도의 명성이 어떤 것인지 실감했다. 정문 앞에 나와 있던 안내인이 에드워드와 스텔라를 보고 미소 지었다.
“환영합니다, 백작님. 그리고 그 전속마법사님. 조금 일찍 오셨군요.”
“늦어서 좋을 건 또 뭐 있소?”
실은 스텔라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늦을까 봐 일찍 출발한 거지만, 에드워드는 그렇게 긴 설명을 하지 않았다. 안내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찍 오셔도 나쁠 것 없지요. 교수님들은 이미 안에 계십니다. 바로 들어가실 건가요?”
“그렇소만.”
“다만, 백작님은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에드워드는 스텔라를 돌아봤다. 그녀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말했다.
“유사시엔 들어오세요.”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데?”
“제가 요청해 봐야죠, 뭐.”
“안 되면?”
“행운을 빌어 주시죠.”
안내인이 몸을 돌려 문을 두드리는 순간, 에드워드는 스텔라의 턱을 붙잡고 잽싸게 입맞춤을 했다. 여마법사는 놀란 표정을 했고, 에드워드는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보험.”
“가끔 얄밉다, 기사님.”
문이 열리자 안내인과 스텔라가 그 안으로 들어갔다. 에드워드는 근처 적당한 의자에 앉고는 중얼거렸다.
“기다리는 입장에서는 진짜 할 거 없는 장소네.”
누군가 무엇을 기다리는 장소에는 잡상인이 꼬이기 마련이지만, 마법사의 건물에는 그런 게 꼬이지도 않았다. 장소부터가 유동인구 많은 곳은 아닌데다, 마법박사 심사를 받으러 오는 사람이 없는 게 문제였다.
에드워드는 벽에 등을 기대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뭐, 기다리면 되겠지.”
그리고 해 질 녘. 에드워드는 자기 앞에 선 의외의 여자를 보고 당황했다.
“뭐야? 너 언제 왔어?”
“조금 전에요.”
연금술사 미아 루이스였다. 그녀는 말에서 내리고는 말했다.
“스텔라 양이 마법박사 심사 본대서 한번 와봤어요. 아지지야에만 있는 것도 재미없고.”
“일은 어쩌고? 왕복 시간까지 생각하면 며칠 안 있었던 거 아냐?”
“무슨 소리예요? 시오니아 남부 항구를 쓰면, 배 타서 아지지야의 큰 강까지 가면 며칠 안 걸려요.”
에드워드는 이마를 짚었다. 그들 일행은 뱃멀미와 악마선장과 경로탐색과 재판 등 다양한 요소 때문에 고생고생하며 육로로 가야 했지만, 미아는 아니니까. 연금술사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당장 살 수 있는 연구는 샀어요. 시간을 들여 설득해야 되는 경우는, 어차피 하루 이틀 만에 될 것도 아니고. 이번엔 출장소를 차리는 게 목적인 거죠.”
“그렇군.”
“게다가 엉터리 연구를 들이밀며 돈 받으려는 사기꾼들한테 시달렸더니 심신이 피폐해지더라고요. 저도 휴식은 좀 해야죠.”
“석유 정제나 채굴, 제철 관련 연구 캐오라고 전령 보냈는데. 그 소식은 받았어?”
“받았어요. 출발 직전에요. 거기에 대리인 남겨놓고 왔으니까.”
“재하청이냐…….”
“제가 계속 거기 있으면 좋으시겠어요?”
에드워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럴 리가 있나. 오랜만에 보네.”
“기사님도요. 만나자마자 반갑다는 말보다 일 걱정부터 하다니, 속상할 뻔했어요.”
미아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에드워드는 약간 뜸을 들이다 말했다.
“미안해. 지금 여러 가지 신경 쓸 게 많아서.”
“농담이에요. 스텔라 양은 좀 어때요? 들어간 지 얼마나 됐어요?”
“점심 지난 오후에 들어갔는데 아직 안 나와. 나 들어오라는 소리도 없고. 괜찮은 건지 모르겠네.”
“아직도요?”
“조건이 많고 까다로운 주문이더라고. 이중창에, 서로 생각을 맞춰야 하고.”
“어느새 주문 전문가도 되셨네요.”
“벼락치기 공부를 좀 했지.”
그 순간, 빠직! 하는 소리가 하늘을 갈랐다. 에드워드와 미아의 시선이 동시에 건물로 향했다. 뭔가 심상찮은 분위기.
“또 사건이면 사양인데.”
“스케일 크게 하기로 했던가요?”
“그것까지는 모르는데.”
에드워드는 벽면에 귀를 붙여보았다. 약간 품위 없어 보이는 모습이었으나 별 도리가 없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문짝으로 자리를 옮겼다. 뭔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두런두런거리는 말소리는 형태가 불분명했다.
“아, 젠장. 소리가 안 들리네. 미아, 가방 좀 열어봐. 이 너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좀 알 방법 없어?”
“그런 편리한 마법 같은 건 연금술사한테 없는데요……”
“잠깐 가방 좀 털어보자. 뭐 쓸만한 거 없나.”
에드워드의 말에 미아는 옆으로 멘 가방을 열고 거꾸로 들어 내용물을 쏟아냈다. 벽돌바닥 위에 쏟아진 온갖 잡동사니들 사이에서 에드워드의 시선이 멈췄다.
“이것 좀 쓸게.”
“깔때기를요?”
은으로 만든 깔때기. 특정 약품에 쓰는 듯했지만 일단 깨끗했다. 에드워드는 깔때기 입구를 문짝에 대고, 출구를 귀에 꽂았다. 안의 소리가 희미하게 에드워드의 귀를 파고들었다.
“자, 잠시만요! 이게 감정 영향이 큰 주문이라…… 밖에 백작님 좀 모셔와도 될까요? 전에 같이 해봤는데…….”
“그 주문의 한계는 우리도 알겠네, 스텔라 양. 그러니 재연은 좀 미루지. 이론적인 부분으로도 충분하니. 그만 심사를 진행하고 싶…….”
물론 이론만으로도 박사 따지 말란 법은 없지만, 피하고 싶은 사태임에는 분명했다. 에드워드는 짧게 중얼거렸다.
“좆됐네.”
콰르르르릉!
그 순간 건물의 지붕 위로 큼직한 번개기둥이 치솟았다. 에드워드는 놀라서 자빠졌고, 미아는 눈을 가리며 말했다.
“이번 주문, 이중창이랬던가요? 방금 스텔라 양이랑 같은 생각하신 것 같은데요. 두 분 다 생각의 깊이가 별로 깊지 않아서 다행이군요.”
“으익. 나 방금 욕먹은 것 같은데.”
“그리고 방금 그 깔때기 사용법, 메모 좀 해 둘게요.”
“응?”
“여기저기 응용할 구석이 있을 것 같거든요.”
에드워드는 잠시 뒤, 자기가 청진기 비슷한 개념을 선보였음을 깨닫고 헛웃음을 흘렸다.
“여긴 그런 게 없었군. 그러고 보니.”
그 직후, 스텔라가 기진맥진한 표정으로 문을 열고 나왔다.
“됐대요…….”
세상 허탈한 표정으로 울먹이는 여마법사를 향해, 백작과 연금술사는 짧은 인사말밖에 못 꺼냈다.
“수고했어.”
“수고했어요.”
* * *
숙원을 성취한 여마법사는 폭포 같은 눈물을 쏟아낸 다음, 광란적인 음주가무에 빠져들었다. 덕택에 에드워드는 벌거벗은 세 여자 사이에서 일어났다.
그는 자신의 오른쪽을 차지한 마법사와 왼쪽을 차지한 연금술사, 그리고 발치에 나자빠져 침대에 몸을 반쯤 걸친 허리띠의 하녀 캐슬린을 보곤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한 번에 여자 셋은 나도 처음이구만…… 정실부인들보다 정부들로 먼저 해보네.”
“그 난이도가 낮으니 정부인 거겠지만요. 아, 근데 쟤 포함이에요?”
뒤따라 반쯤 몸을 일으켜 앉은 미아의 말이었다. 그녀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캐슬린을 가리켰고, 허리띠의 하녀는 볼멘소리를 뱉었다.
“정부라기보다는 하녀죠. 그런데 연금술사님이 먼저 저 찾으셔놓고는 취급이 박하시네요. 신나게 갖고 놀으셨으면서.”
“신기하긴 했어.”
미아는 얇은 잠옷을 대충 걸치고는 침대 밖으로 걸어나가 물주전자와 컵들을 가져왔다.
스텔라는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는 신음 소리를 흘렸다.
“주, 죽을 것 같아…… 고비만 대체 몇 번을 넘기는지 모르겠어…….”
“음. 주문 실패만 두 번이고, 숙취가 한 번이지? 세 번이네.”
“기사님의 해악은 쏙 빼놓고 집계하셨는데요! 어젯밤만 해도 또, 정말……!”
미아가 에드워드 대신 그 항변에 태클을 걸었다.
“이제 전 기사님의 노예에요오오. 기사님 없이는 못 살아요오오.”
허리를 뒤트는 미아의 성대모사에 스텔라는 폭발할 것 같이 새빨개진 얼굴을 베개에 처박았다. 에드워드는 낄낄 웃었다.
“기념비적인 3대 1인데, 주역은 내가 아니라 스텔라였네.”
“간밤의 주인공은 우리 마법사 아가씨니까요.”
미아가 웃으면서 말했다. 두 여자와 한 남자에게 붙잡혀 밤새 농락당하고 천국과 지옥을 오간 여마법사는 훌쩍거렸다.
“이 일행은 주인공 취급이 좀 안 좋아…….”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에드워드는 바지만 대충 주워입고는 말했다.
“누구야?”
“밴시예요! 거기 마법사 아직 안 죽었나요? 죽었으면 무덤매장꾼 불러다 묻어버리게요.”
스텔라는 기어이 폭발했다.
“넌 왜 날 죽었다고 생각하는데?!”
“죽을 것 같이 비명 질러대는데 그럼 죽었다고 생각하지, 뭐라 생각해요? 첫날에도 비명만 질러대길래 드디어 저 사기꾼 인텔리가 주인한테 악행을 걸려서 시체 치우는가 했는데.”
“너 왜 나한테 시비니?! 그러려고 노크했어?”
“아뇨. 시오니아 왕실의 메시지란 게 간밤에 왔어요. 기사님 앞으로요. 연회 중이라 제가 보관했지만요. 지금 읽어보실래요, 아님 나중에 읽어보실래요?”
에드워드는 문을 열었고, 쬐끄만 손이 품위 없이 들어왔다. 그 손에 쥐어진 두루마리를 넘겨받은 에드워드는 리안나가 방안을 엿보거나 말거나 그 내용을 읽어보았다.
“직속마법사가 새로운 마법을 완성해 빛의 승리에 기여한 데 기쁨과 축하를 보내며…… 미리 준비한 편지로군. 실패했을 때를 대비한 편지도 있었겠지.”
“아, 소름 돋는다. 왕실에서 뭐래요?”
에드워드는 두루마리를 돌돌 말고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젠장. 봉작 끝나고 며칠 지났다고 또 수도행이야? 좋은 일이라 거절도 못 하고. 다들 짐 챙겨.”
“네?”
“무슨 일인데요?”
“지금 당장요?”
여자들의 물음에 에드워드는 두루마리를 침대 위로 던졌다.
“고대의 이단 사제를 물리치고 새 마법을 완성한 건으로 잠깐 좀 보자신다. 포상 준대. 근데 또 뭔가 시킬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두루마리를 펼쳐본 여자들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먼저 말을 꺼낸 건 미아였다.
“카말라에서 백작님을 기다리는 정실부인들께 돌아가는 건 며칠 더 미루셔야겠군요.”
“대신 정부 여러분들과 하녀가 붙어야겠죠.”
캐슬린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스텔라는 천장을 향해 한숨을 내쉬었다.
“좋다고 해야 하나, 이거…….”
“좋잖아요? 짧지만 정실부인들 눈치 안 봐도 되는 여행. 우리끼리 잔뜩 시시덕거리다 돌아가면 되는 거잖아요.”
미아는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숙취해소제와 강장제를 꺼내 에드워드에게 던졌다. 스텔라는 아쉽다는 듯 입을 삐죽였다.
“어쨌거나 축하연회는 하루로 땡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