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78)
278화 선물에는 이유가 있다 (2)
급하게 꾸린 짐더미 사이에서, 에드워드는 카말라의 베로니카에게 보낼 편지 내용을 구상해보았다. 왕실의 호출로 수도 밀리온에 가봐야겠다는 내용으로. 베로니카가 도시에서 사 오라고 지시한 물건들은 에드워드의 행로와 별도로 보낼 것이며, 선물도 같이 동봉한다고.
자기 짐을 꾸리며 지나가던 미아가 참견하고 나섰다.
“엘프님께도 편지 쓰세요. 아, 마지막 인사는 똑같이 써야 돼요?”
“알아, 안다고.”
“좀 더 달달하게. 예상 못한 기간연장이잖아요. 달래야죠.”
“왕실이 미리 편지를 준비해놓은 거 보면 베로니카도 눈치를 이미 깠을걸.”
“모르는 일이잖아요. 기왕이면 시작부터 달달하게 써요. 부인 마님들 싸움 안 나게.”
포장이 끝난 짐더미를 탁자 삼아 에드워드 대신 깃펜을 붙잡고 있던 스텔라는 비명을 질렀다.
“정리 좀 해서 말씀해 주세요! 자꾸 덧붙여야 되잖아! 아니, 기사님! 문맹도 아니시고 이제 손도 잘 쓰시는 분이 왜 제게 이 일을 아직 맡겨요?”
“귀족이 비서의 손으로 편지 쓰는 거야 평소 하던 대로잖아. 새삼스레 왜 묻냐?”
“저 이제 박사거든요!”
“난 백작이고 이제 네 주인이다. 앞으로도 편지는 네가 써.”
“박사를 겨우 이런 데 쓰는 건 비효율적이지 않아요?”
“마법사가 맨날 공방에서 못 나가며 숙식을 다 해결하는 게 아니잖아. 고용주의 식탁에 앉아 고기 뜯는데, 뭘. 비서 더 늘릴 때까지만 참아.”
“그게 언젠데요?”
“적어도 지금은 아니지. 여행길에 주머니 거덜난 지식인 줍는 건 너 하나로도 충분하지 않냐? 이젠 심사해가면서 받아야지.”
“기쁘면서도 기쁘지 않은 말이네요, 그거!”
“기뻐해. 공개 경쟁 채용으로 바뀌기 전에 들어와 벼슬 얻는 막차 탄 거잖아. 행운 아니냐?”
“그게 제 노림수긴 했는데요…….”
미아가 다시 끼어들었다.
“스텔라 양이 하기 싫으면 제가 할까요?”
“언니, 내가 싫은 일이라도 내 영역에 먼저 손 뻗기 없기예요!”
“어머나, 갑자기 앙칼지게 말씀하시네. 어젯밤은 귀여웠는데.”
“꺄악! 그건 좀 잊어요! 설마 또 하게요?!”
에드워드는 퉁명스레 말했다.
“어차피 가는 동안은 숙소 조건이 가지각색이라 단체합방은 무리일 텐데, 뭘.”
“그것참 다행으로 들리네요. 잠깐, 조건 되면 하겠다는 뜻처럼 들리는데요?”
“안 되나?”
“지나간 이벤트는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는 안 해요! 내가 술김에 미쳤지…….”
“아쉽게시리.”
에드워드가 낄낄 웃는 중에, 미아가 스텔라한테 추가타를 때렸다.
“그럼 단둘이는 하시겠네?”
스텔라는 부정하려다 말고 얼굴을 붉혔다.
“그만 놀리고 언니 짐이나 마저 싸요! 딱딱하던 사람이 언제 이렇게 능글맞아졌어?!”
“전 딱딱하다 변한 게 아니라 공무와 사무를 분간하는 거예요. 그리고 아지지야의 얼간이와 얼치기와 사기꾼들 사흘만 상대해봐요. 놀리기 비꼬기 실력이 안 늘까.”
“와, 그건 탐 안 나는 영역이다.”
두 인텔리의 잡담에 에드워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면 나도 그 부류 꼴 날지도 모르지.”
미아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무슨 뜻이세요?”
“시오니아 귀족들 중에 내가 못마땅한 사람도 있는 모양이더라고. 켈러핸을 더 지지한다든가 하는 경우도 있고.”
“그건 백작님의 대승리와 약혼식으로 끝난 것 아닌가요?”
“결혼을 해도 안 끝날지도 몰라. 지금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을 뿐…… 내가 조금만 불리해지면 뛰쳐나올지도 모르지.”
“어머나. 정치 이야기는 무섭네요.”
미아도 높으신 분들의 탐욕 때문에 죽을 뻔한 경우. 그녀는 걱정스레 물었다.
“이번 호출이 그것과 관련된 일일까요?”
“몰라. 아니면 좋겠다. 그것만 아니면 웬만한 건 다 넘길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말이 나오는 순간, 마지막 짐의 포장이 끝났다. 짐꾼들이 짐말에 짐을 싣기 시작하자 에드워드는 스텔라를 향해 말했다.
“일단 카말라로 보내는 편지는 저거 다 싣기 전에 끝내자.”
“카말라로 가는 것 말이죠. 다른 데 또 편지 쓰실 것 있어요?”
“몇 군데. 켈러핸한테도 한 통 써야겠고. 가는 중간중간에 쓰자고.”
“알았어요. 또 누구요?”
“아르데니아에도 좀 더 지원을 더 보내달라고 아쉬운 소리 좀 해 봐야지. 베르세바는 페트로스한테 흥미가 없는 것 같은데 다른 미끼를 던져봐야겠고. 베니아 시의 대주교님은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모르겠네. 거기 좀 안정됐나? 요하나는 이쪽으로 올 상황이 되려나?”
마지막 말에 스텔라는 입을 삐죽였다.
“기사님을 시기하는 놈이 있다면, 걔는 기사님의 여자관계만 파헤쳐도 될 것 같은데요.”
에드워드는 코웃음을 쳤다.
“너도 거기 끼는데.”
“앗.”
“뭐, 어지간해선 여자 문제로 태클 안 걸려. 경건왕이나 켈러핸 같은 경우가 특이한 거지…… 뭐, 네가 어마어마한 악당이라든가 하면 모르겠다만.”
“에이, 기사님. 저처럼 성실한 마법사가 또 어디 있다고…….”
그걸 들은 리안나가 귀신같이 끼어들었다.
“역배당 대폭동!”
스텔라는 깃펜을 집어던지고 번개같이 일어나 리안나의 입을 틀어막았다.
* * *
에드워드 일행은 시오니아 수도 밀리온까지 곧바로 달려갔다. 이번엔 개선식 같은 번거로운 행사 없이 바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부하들을 숙소에 보낸 다음, 에드워드는 바로 경건왕 루이를 알현했다.
왕은 정중히 인사하는 카말라 백작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영지를 경영하는 와중에도 또 새로운 사건을 해결했더군. 수천 년을 잠들어 있던 고대 이단 사제라니, 놀랍기 그지없는 일이야. 그리고 여러 가지의 쓸 만한 물건들도 얻었다던데.”
다소 과장이 있는 말이었다. 삭거나 부서지거나 도굴된 물건들도 많았으니까. 고대 이단 사제가 걸치고 있던 것들은 그나마 멀쩡한 편이었지만, 상당수는 에드워드나 그 일행이 쓸 만한 물건이 아닌지라 카말라 성 보물고에 처박혔다.
하지만 그걸 일일이 지적하고 밝힐 정도로 에드워드는 눈치가 없지는 않았다. 그중에 왕이 뭔가 원하는 게 있다면 상납할 일이고, 단순히 칭찬할 목적으로 언급하는 거라면 겸손을 떨 일이다. 에드워드는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신앙의 승리에 도움이 될 일이면 꺼리지 않아야 할 일입니다.”
“거기다 전속 마법사가 새로운 마법을 완성하는 데도 성공했다던데. 좋은 일이 겹치는군. 극적이라고 해도 좋고.”
에드워드는 왕이 ‘너 근데 그년이랑 무슨 관계냐, 내 동생 두고 뭐하냐’고 캐묻는 상상을 해 버렸다. 그는 왕의 눈치를 슬쩍 살피고는 역시 상투적인 말을 꺼냈다.
“그 덕택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다른 학문도 박사가 되기는 어렵지만, 마법은 특히 더 심하오. 성전을 앞두고 인재들이 빛을 발하는 건 좋은 일이오. 하지만…….”
드디어 본론. 에드워드는 침을 삼켰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할지도 모르오.”
“세태에 밝지 못해 감히 여쭙습니다. 어떤 것 때문에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요?”
“카말라 시와 하르몬 주의 약점이 뭔지 아시오?”
에드워드는 가장 돈 깨지는 부분을 떠올렸다.
“식량 공급입니다.”
“그렇소. 농지를 개간한 게 아니라 상업도시, 군사도시로 출발했기 때문에 지금 카말라 시는 빨아들이는 인력만큼이나 많은 식량을 필요로 하오.”
시오니아 공주 베로니카의 투자금 상당수를 잡아먹는 문제 중 하나. 이젠 철괴가 쏟아져나와 식량 구매 대금 정도는 상쇄하겠지만, 그래도 만만한 액수는 아니었다.
“곧 앵글리아 국왕의 군대마저 도착할 텐데, 그럼 필요한 식량의 양은 폭증하겠지. 사실 이 문제는 시오니아 전체의 문제기도 하오. 앵글리아군의 규모가 3만 명은 될 거란 이야기가 나오고 있거든.”
에드워드는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3만!
“제가 베레스포드 공작한테 듣기로는, 총병력이 1만 명 규모라고…….”
“늘었소.”
짧지만 납득 가능한 설명. 에드워드는 할 말을 잃었다.
“알고 보니 아퀴타니아 함대와 그 왕세자, 다티니아 공화국의 총재도 합류했다는군. 방주기사단 일부도 합류했고…… 그뿐만이 아니오. 여기저기서 많은 사람이 꺽다리왕의 순례에 흥미를 보이고 동행하기 시작했소. 군대가 커지고 있지.”
“하르몬 주는…… 그들을 다 수용할 수 있을 겁니다.”
“공간으로는.”
“식량도 최대한 힘을 써 보겠습니다. 각 농경지마다 일단…….”
“그중에서도 소금이 문제요.”
에드워드는 입을 다물었다. 소금.
“굶어서는 싸울 수 있을지 몰라도 소금 없이는 못 싸우지. 목숨과 직결되는 문제니까.”
“확실히 그렇습니다.”
“시오니아의 소금 공급 경로는 다양하지만,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사막의 암염이오. 그런데 그 소금을 실어나르는 대상들이 주술사왕의 수족으로 추정되는 세력에게 공격받기 시작했다는 거요. 아마 카말라의 소금값은 조만간 금값이 되겠지.”
에드워드는 이를 악물었다. 확실히 대책이 필요한 일이다.
“공성전의 정석은 물자 공급을 끊는 것이지. 검은벽요새만 지킨다고 영지를 보전할 수는 없게 된 거요.”
“하르몬 주 안에서 암염 광산을 찾아보겠습니다. 석유가 있는 곳은 암염이 있을 확률도 높고, 초빙된 기술자들 중에는 소금산의 드워프들도 있으니.”
“물론 그래야겠지. 하지만 대상들을 공격하는 놈들을 쳐 죽이는 게 더 빠를 거요.”
“위치와 정체를 말씀해 주십시오. 가서 왕의 근심을 해치우고 오겠습니다.”
그게 왕이 원하는 대답이었음은 분명했다. 경건왕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짧게 박수를 세 번 쳤다. 짝, 짝, 짝. 그러자 그늘 속에서 대기하던 하인들이 짤랑거리는 쇳소리와 함께 나타났다. 그들의 손에 들린 건 묘한 광택의 사슬갑옷이었다.
“왕가의 보물 중 하나인 ‘십자성 갑옷’이오. 십자성의 파편 일부가 지상으로 떨어졌다는 전설의 별철로 만들었고, 온갖 마법의 힘과 주술에 대항할 수 있지. 물론 그대도 화염저항의 마법반지나, 유니콘의 뿔 같은 신묘한 물건들을 지니고 있는 것을 알지만…….”
반지는 불 속성에만 탁월하고, 유니콘의 뿔은 소모품인데다 질병을 치료하는 데 더 특화되어 있다. 왕은 사슬갑옷을 넘겨받으며 마저 말을 끝맺었다.
“주술사왕과 그에게 빌붙은 악마들을 상대하는 데는, 이게 더 좋겠지. 받으시오. 이제 그대 것이오. 좀 더 일찍 줄 수 있었으면 그 고대 이단 사제 때도 도움이 되었을 텐데.”
“황공합니다.”
에드워드는 마른침을 삼키고는 그 갑옷을 받았다. 계승 1순위 여동생의 약혼자에게도 쉽게 넘겨주지 못한 왕가의 보물. 경건왕은 쓰게 웃었다.
“내가 신의 기적을 경험할 때 그 갑옷을 입고 있었소. 이젠 당신한테 더 필요할지도 모르지.”
“그럼 폐하께서는?”
“다른 갑옷도 있고, 어차피 내가 또 주술사왕에 맞설 기적을 불러올 거라 믿는 건 만용이오. 기적은 필요하다고, 부른다고 오는 게 아니니까. 이젠 다른 사람한테서 빛의 미덕을 찾아봐야 할 때겠지.”
에드워드는 긴장한 표정으로 갑옷을 내려다보았다. 기념비적인 사건에 있었던 물건. 그는 나지막하게, 했던 질문을 다시 꺼냈다.
“어디의 어떤 놈이 문제입니까?”
경건왕은 더 낮은 소리로 답했다.
“스스로를 레피림이라 칭하는 악마요.”
에드워드는 왕 앞이지만 앓는 소리를 낼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