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79)
279화 악마도 관심병을 앓는다 (1)
에드워드가 스텔라의 박사 학위 심사를 놓고 지지고 볶기 며칠 전.
검은벽요새가 함락당한 후, 주술사왕의 군대가 간계로 그걸 탈환한다는 건 이미 불가능한 일에 속했다. 적의 사령관 올리비아는 놀라운 자제력으로 어떤 도발에도 넘어가지 않았다. 그 요새 안을 채운 성묘수호기사단원들은 웬만한 속임수는 다 겪어본 베테랑들이었다.
덤으로, 요새 주변 세트렛인들은 이제 주술사왕보다 당장 자신들을 때리거나 보호해줄 수 있는 요새쪽의 영향을 더 받았다. 기사단원들이 이들의 협조까지 얻으면, 소규모 정찰대나 몇몇 재주꾼들 따위로 뭘 어떻게 한다는 건 만용에 가까웠다.
“내 휘하의 오크들과 오거들과 세트렛인들은 그 머릿수를 세기도 힘든데, 단 한놈도 계략을 짜낼 수 없다는 게 믿기질 않는군.”
“이럴 땐 어차피 적이 안 나온다는 걸 염두에 두고 다시 작전을 짜야 하는 것 아닌가?”
니코스의 훈수였다. 주술사왕은 얼굴을 찌푸렸다.
“빛의 기사들은 꼭 그러다 튀어나오지.”
치고 빠지기. 오크들만 하라는 법은 없다. 주술사왕은 니코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식량을 축내는 데 재미 붙인 게 아니라면, 그만 가라. 내 초조한 모습만 보여주니 체면이 영 안 서는군.”
“체면 불고하고 도움을 청하는 이들을 위해 니코스가 있지.”
주술사왕은 코웃음을 쳤다.
“멍청한 소릴. 네게 도움을 청한 사람 치고 제대로 된 결말을 맞은 사람이 있나?”
“다들 과장된 소문만 듣고 그렇게 말한단 말이지. 정말 내가 매사 개판을 놨으면 행운의 주술사라고 불리겠나? 건망증은 가끔 터지는 문제라고.”
문제는 주술사왕도 ‘행운의 주술사 니코스’라는 말을 들어본 적 없다는 것. 그는 신뢰도가 없는 항변을 다시 비웃었다.
“내게 필요한 건 자칭 행운이 아니야. 다른 주술사의 힘을 빌릴 정도로 수준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조언은 빌리겠지?”
“조언?”
니코스는 작은 두루마리를 하나 꺼내 들었다. 그는 그걸 주술사왕에게 내밀었다.
“방금 자네도 말했잖아. 계책이 필요하다고.”
주술사왕은 잔뜩 미심쩍은 표정을 지은 다음, 그 두루마리를 받아들었다. 그걸 펼쳐 읽어 본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뭐야, 이게? 이젠 내가 네 부하인 줄 아는 거냐?”
“왜? 좋은 제안이라고 생각하는데.”
“난 성벽을 빼앗을 계책을 요구한 거야! 레피림을 골탕 먹일 계책이 아니라!”
“난 거기 레피림을 골탕 먹이라고 쓴 적 없는데.”
“레피림으로 시오니아의 소금 수입경로를 흔들라고 써놨더군! 그리고 자네는 선장과 다쉬사베스와 연합해 그년을 제압하려 하지! 그곳에 함정을 파놓은 게 아닌가?”
“부정은 안 하겠네. 하지만 그게 자네한테 분명 도움 되는 계책이야.”
“헛소리를.”
“생각해 보게. 레피림이 소금 수입경로를 흔든다면, 누가 그녀를 제압하러 달려오겠나?”
“경건왕?”
“에이, 경건왕은 쉽게 못 움직이지. 그건 자네가 더 잘 알지 않나?”
“옛 검의 3기사?”
“다들 실력은 나쁘지 않지만, 그들은 대악마의 상대가 될 본성이나 기연을 갖지 못했어.”
“그럼…….”
“자네도 알 텐데. 온다면 경건왕의 후계자와 그 부군이야.”
“무슨 농담을. 한참 영지를 개발하느라 바쁠 영주가 자리를 비운다고?”
“중요한 문제라면 그러고도 남지. 시오니아 안에서도 그의 영지가 소금이 가장 많이 필요할걸.”
주술사왕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소금이라. 하지만 시오니아의 소금 수입 경로는 여기서 멀지. 사교도 나부랭이들만으로 카라반들을 위협하기는 어렵고…… 그래, 악마쯤 되면 쉽게 감당이 안 되겠지. 하지만 레피림이 겨우 그런 일에 나서줄까?”
“통제가 안 되니까?”
“통제가 안 되니까.”
“그게 오히려 열쇠 아닌가?”
“뭐?”
“그녀 앞에서 화를 내라고. 이 사태를 책임지기 위해 뭔가 해야 할 거라고. 지원을 해 줄 테니. 그러다 에드워드 경이 나오면 둘이 붙겠지. 안 나오더라도, 자네가 에드워드 경을 치기 위한 밑준비라고 하면, 레피림이 거절하지 못할 거야. 오히려 신나서 달려갈걸.”
“그렇게 쉽게 될 리가…….”
“돼. 신흥악마의 돌발행동이 왜 벌어지는지 생각해 봐.”
주술사왕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잠시 뒤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조급증과 얕은 생각 때문이지. 그래. 가능하겠군.”
니코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머지는 자네가 생각해 보게. 난 그만 가겠네.”
“그래. 가서 레피림을 끝장낼 준비를 해야겠지.”
주술사왕은 건성으로 대답했다. 니코스는 그의 거성을 나서 세트렛 도시들과 오크 부락들과 오거 부락들 사이로 길을 잡았다. 어깨에 조그맣게 붙어있던 연기뭉치가 입을 열었다.
“진짜 수락했어. 레피림을 자기 전력이라고 생각을 안 하는군.”
“그가 말했듯, 통제가 안 되니까. 오히려 방해만 되니까. 레피림은 이제 끝나야 돼.”
“꺽다리 로버트 등 빛의 세력과의 일전을 앞두면 아무리 지랄 맞은 악마년이라도 같은 편에 두고 싶어할 줄 알았는데.”
“그녀가 없어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 실제로 그는 강대한 군주고. 아무리 부정적으로 봐도, 쉽게 질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아.”
다쉬사베스는 껄껄 웃었다.
“뭐, 싸움이란 원래 한 치 앞을 모르는 법이지. 내 마지막 전투도 그랬고.”
“주술사왕의 선전을 바라나?”
“자네는 그럴지도 모르겠군. 균형론자니. 하지만 난 상관없어…… 지옥에 남은 내 자원을 훔쳐가는 레피림과 소대가리놈만 응징할 수 있으면.”
주술사 니코스는 자길 보고 기겁해서 물러나는 오크들 사이를 헤집으며 말했다.
“뭐, 나도 누가 이기든 지든 상관은 없어. 얼른 가자고.”
* * *
베로니카와 헬레나가 수도 밀리온까지 득달같이 달려오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카치운까지 병력을 이끌고 급히 상경했는데, 두 여자는 유목기병들보다 빨랐다.
왕궁 귀빈관에 들이닥친 그녀들은 피로에 절었다. 특히 베로니카가 그랬다. 이제까지는 일행 중 하나가 어설프게 번갈아 대행하던 백작 업무를 보다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선발한 대리인들에게 맡긴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무, 물 좀 더.”
“천천히 오지 그랬어.”
에드워드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새 물컵을 내밀었다. 베로니카는 헌 물컵을 하녀에게 넘기고, 낚아채듯 새 물컵을 받고는, 이를 갈았다.
“넌 아주 편해 보인다? 여자들 틈바구니에서?”
“에이, 편하지는 않았지.”
공주와 거의 동시에 들어온 헬레나는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말했다.
“늘어난 하녀들부터 변명해 보시죠.”
에드워드는 하녀들로 시선을 돌렸다. 새로 고용한 여자들.
“스텔라랑 미아한테 하나씩 붙여주느라고.”
“둘보단 많은데요?”
“나머지는 너네 온다는 이야기에 추가로 좀 고용했어. 급하게 오느라 수행원도 많이 못 데려왔다며?”
에드워드는 슬쩍 팔을 벌렸다.
“부인들이 출장지까지 달려온다는데 준비를 소홀히 할 수 있나?”
“말이나 못하면.”
베로니카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러나 그 하녀들 덕을 보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미아는 피식 웃으며 에드워드에게 속삭였다.
“우린 이렇게 고생하며 달려오는데 남편놈은 시시덕거리고 있었냐는 게 불만이신가 본데요.”
“나도 알아.”
에드워드는 다시 베로니카와 헬레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화제 변경.
“이번 소금 소동은 시오니아 동남부쪽에, 꽤나 넓은 범위에 신출귀몰하는 사교도 집단과 그 수장인 신흥악마 레피림을 잡아야 해결돼. 말을 타야 쫓아갈 수 있을 거야. 그래서 유목기병들을 좀 보내달라 한 거고.”
“네 영지와 완전히 반대편이잖아.”
“남북으로는.”
문제의 소금 수입로는 돌출부 남쪽 아래. 에드워드의 영지 하르몬 주는 돌출부 북쪽. 헬레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보통은 그 지역 영주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 아니에요?”
“그쪽 힘으로는 부치니까 왕에게 지원요청을 한 것이겠지.”
베로니카는 왕궁 방향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그 왕이란 오빠놈은 자기가 쓰던 갑옷까지 넘기면서 널 해결사로 내세웠지.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뭐 하는 짓이야?”
“일단 갑옷을 준 이유는 알겠다.”
“뭔데?”
“부르지도 않았는데 달려오는 공주님이 걱정되어서. 너 지키란 뜻이겠지.”
베로니카는 새침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상한 데로 신경 써 주기는. 그 방향이면 차라리 조르쥬 경을 보내는 게 빠르잖아. 지금 아지지야로 향하고 있을 텐데. 사명을 가진 기사면 나름 악마한테 대항할 힘이…….”
“전령을 보내도 이미 늦었어.”
“옛 검의 3기사는?”
“걔들한테 악마 잡는 무기는 없더라고.”
“별별 무기를 다 가진 것들이 꼭 그건 없네. 캘러핸 경은?”
“걔는 걔 일이 따로 있더라. 경건왕께서 잘 굴리시데.”
베로니카는 다시 이를 갈았다.
“그럼 다른 기사들이…….”
“왕이 제공하는 식탁에 앉는 기사들 중에는 분명 악마를 상대할 능력자가 없지야 않겠지. 하지만 경건왕이 내가 맡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어.”
“이유는? 난 그건 못 들었어. 단지 성인이 내린 손아귀 힘 때문이라면 납득 못해.”
“그년이 내 이름을 언급하면서 돌아다니는 모양이더라고.”
갑자기 정적. 에드워드는 그 정적 속에서 불만을 표출했다.
“다들 무슨 생각하는지 알 것 같다.”
그 직후, 문이 열리면서 카치운과 그 아들 무클이 나타났다. 그리고 드워프 하나가 무클이 미는 작은 손수레에 실려 들어왔다. 드워프는 다 죽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여어, 기사 양반. 드디어 그 말썽 많은 여자 악마도 허리띠 취급을 하실 예정인가?”
“아니야.”
에드워드는 짧게 부정했고, 스텔라가 간단히 설명을 이어갔다.
“레피림은 결국 주술사왕이 기사님이랑 싸우게 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직접 기사님을 치는 걸 택한 모양이더라고요. 주술사왕의 지원을 받아서요. 왜 그렇게 마음을 바꿨는지, 그쪽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베로니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어쨌거나, 그년이 에드워드를 불렀다?”
“좋은 유인이죠. 제가 왕이라도 그 기사를 안 부르면 그 악마년 못 잡겠다 싶었을 거예요.”
“에드워드는 순순히 응했고 말이죠. 야, 에드.”
“왜?”
“악마는 회개가 불가능해. 캐슬린같이 두드려 패는 걸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
“흠. 설화에서는 주인공한테 잘못 걸려 한참 부려먹히다가 풀어주는 순간 도망쳐서 다시는 코빼기도 안 비치는 악마의 경우도 많던데.”
“왜 악마 이야기인데 제 이야기 같죠?”
밴시가 중얼거렸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베로니카가 계속 말을 이었다.
“그건 설화고, 잡졸이나 가능할까 말까야. 악마는 죄악으로의 유혹자이며 돌이킬 수 없는 타락 그 자체야. 회개가 불가능 해. 괜히 하반신에 휘둘려 만용 부리다가 망하는 꼴은 못 봐줘.”
“이하 동문이에요.”
헬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스텔라 양 때문에 ‘즐거운 여행’을 눈감아줬는데, 역시나 눈을 뗐더니 미아 양까지 불러서는…….”
“내가 부른 건 아니었는데.”
헬레나는 에드워드의 변명을 무시했고, 베로니카는 그녀만이 가능한 심문의 기술을 사용했다.
“리안나.”
“네?”
“나 없는 동안 뭘 알게 됐어?”
여주인의 질문에 집요정 리안나는 뒷일 생각 안 하는 주둥아리를 놀리기 시작했다.
“연금술사 언니는 기사님이 대낮에 몰래몰래 만져 주는 거 즐기시고요, 불성실 인텔리는 기사님한테 매달린 채 욕 들으면 오히려 좋아라 까무러쳐…….”
“야, 밴시!”
스텔라는 당황해서 팔로 리안나의 목을 졸라대기 시작했고, 미아는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리안나는 발버둥 치면서도 끝까지 조잘댔다. 그녀의 고발내용을 듣고 있던 베로니카와 헬레나의 고개가 옆으로 크게 기울었다.
“여자 악마의 유혹에 안 넘어갈 거란 확신이 안 들어.”
“악마년한테 져도 걱정, 이겨도 걱정이죠.”
에드워드는 피식 웃어버렸다.
“뭐, 설화처럼 유용하게 부려먹어볼까 하는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니야.”
“역시나.”
“안 하는 게 더 이상하겠죠.”
“하지만 이기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겠지. 그리고 난 그년의 원대한 계획을 너희랑 같이 뭉개버린 기사야. 졌다간 듀라한 꼴이 난 똥개 찰리가 차라리 부러울 정도로 고문당할걸. 지금까지 이룬 것들이 다 물거품이 되는 건 물론이고. 너희들 안전도 보장 못해.”
좌중침묵. 에드워드는 슬쩍 열쇠검의 손잡이를 만졌다.
“왕국을 위해서도 아니고 빛을 위해서도 아니야. 내가 가진 것들을 위해서, 여유 따윈 전혀 챙기지 않을 생각이다.”
베로니카는 헬레나를 힐끗 보았다. 이미 설득 완료가 된 표정이었다. 그녀는 도로 에드워드한테로 시선을 돌린 다음, 한숨을 내쉬었다.
“말이나 못하면. 그래서, 계획은?”
에드워드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네가 무진장 싫어하는 사람 하나를 기다리고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