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80)
280화 악마도 관심병을 앓는다 (2)
앵글리아 국왕 로버트.
전사왕. 별칭 : 꺽다리왕. 멸칭 : 근육형 재난. 오크들이 싸우는 것 대신 바다로 뛰어드는 걸 택하게 한 군주, 앵글리아 귀족들과 성직자들의 세금철퇴, 교황청 비공인 날강도, 시오니아 총대주교좌 사람들이 가장 보고 싶은 외국 국왕 비공식 1위.
그가 성지에 왔다.
베로니카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싫어할 사람이 누군가 했더니, 앵글리아 왕이라고?”
“싫어하는 것 맞잖아. 앵글리아는 미친놈들 뿐이더라며?”
“굉장히 거칠고 이질적이긴 하지…… 온다 온다 하면서 계속 연기되더니, 어느새 상륙한 거야?”
“네가 달려오는 사이. 남쪽 해안가를 따라서 세트렛 해안도시들을 개박살 내면서 왔다더라.”
“뭐? 그 소식은 처음 듣는데?”
“점령한 건 아니었거든. 세트렛 함대들을 전부 때려 부순 걸로 만족하고 그냥 오셨대.”
“함대들을? 전부?”
“어떻게 한 건지 나한테 묻지 마. 나도 궁금하다. 아, 근데 아브멜렉은 내전으로 항구 오픈한 통에 한 번 들어갔다 오셨다더라.”
“어…… 어떻게 됐는데?”
“도시가 통째로 회개하고, 펠리샤가 여왕이 되었어.”
“뭔데, 그게. 요약이 너무 심하잖아.”
“근데 그게 들어온 정보 전부야. 경건왕께서도 어이없어하더라.”
“그게 된다고?”
“나도 모른다고. 다쉬사베스의 피라미드에 들어가 보려는 걸 아브멜렉인들과 신하들이 필사적으로 뜯어말렸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시종일관 어이없다는 표정이던 베로니카는 마지막 말에 얼굴을 찌푸렸다.
“알고 있네. 우리가 거기 들어갔다 나온 거.”
“내가 들어갔다 왔으니 폐하께서도 한번 들어가 보고 싶으셨겠지. 안 들어가셔서 천만다행이구만.”
“그래, 하마터면 꺽다리 로버트가 영영 실종될 뻔…….”
“아니, 다쉬사베스가 위험할 뻔했지.”
베로니카는 입을 다문 다음에 잠깐 생각해보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말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내가 곧 레피림과 싸워야 하는데, 걔를 적대하는 악마를 놓치면 그게 무슨 낭패야.”
베로니카는 뒤이은 말을 ‘감히 악마의 도움을 바라느냐’고 태클 걸 정신도 없었다.
그때. 한 기사가 서쪽을 향해 손가락을 들었다.
“저기 옵니다!”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만 단위의 대병력과 순례자 무리가 꿈틀거리는 광경. 느리지만, 천천히 불어나면서 시야를 채우고 있었다. 깃발도 가지각색이었는데, 가장 큰 깃발들만 꼽아봐도 아퀴타니아 왕세자와 공화국 총재 등등의 것이 보였다.
베로니카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저 정도 규모의 순례자 무리가 오는 것도 참 오랜만이네.”
“가장 마지막이 언젠데?”
에드워드의 물음에 베로니카는 햇수를 세보더니 말했다.
“내가 다섯 살 때쯤.”
“까마득하구만.”
“안전한 순례를 가고 싶은 사람들이 기회 오니 다 붙었단 말이지. 남부 아퀴타니아가 개판 나고 트레베리아가 지옥이 된 이후로는 순례길이 험해졌으니.”
한 무리가 그곳에서 떨어져나와, 시오니아 국왕과 그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그 선두에 선 사람은 거구의 남자로, 머리 위에서는 간략한 왕관이 붙은 투구가 번뜩였다.
밴시 리안나가 조잘거렸다.
“꺽다리왕은 어떤 사람이에요? 전투라면 밥 먹다가도 뛰쳐나간다든가, 기사님처럼 야간전 혈기왕성하다든가, 엄청나게 비열하다든가 그래요?”
“중간에 난 왜 꺼내는 거냐?”
“기사님도 학을 뗄 정도라니까 그렇죠.”
“굉장히 신실한 분이다.”
“네?”
“금욕적인 성격으로 음식을 절제했고 물 외에 다른 음료는 마시지 않으신다.”
“네?”
“그리고 굉장히 점잖고 예의 바르신 분이지.”
밴시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그런 게 어딨어요? 소문이랑 사람들 반응만 보면 난폭하기 짝이 없는 개망나니인데?”
“너 베레스포드 공작님 기억나지?”
“네! 수플렉스 공작님요! 근데 그 공작님이랑 성격 똑같으면 재미없겠는데요.”
에드워드는 후자를 긍정하지 않았다.
“신실하고 점잖다는 분이 남들 앞에서 다짜고짜 수플렉스를 꽂아버리던 건 인상 깊지 않았냐?”
“그건 기사님이 맞을 짓을 한 탓 아니에요?”
“부정은 못하겠는데, 빌미만 있으면 또라이짓을 한다는 것이 신실하고 점잖다는 평과 양립하는 게 불가능은 아니지. 그리고 로버트 폐하는 그 분야에서 꽤나 독보적이고 공포스럽거든?”
“무슨 뜻이세요?”
“반란군 두목의 시체서 고환을 떼다 놈의 코에다 걸어놓은 적이 있어.”
밴시는 입을 쩍 벌렸다.
꺽다리왕 로버트가 경건왕 루이 앞에 서는 순간이 왔다.
에드워드는 환생 후 만난 사람들을 지구인에 빗대어 설명한 적이 거의 없었다. 완전히 똑같거나 누군가가 생각나는 사람은 드물었고, 설령 있더라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으면 설명이나 묘사가 안 된다고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꺽다리 로버트는 예외였다. 에드워드는 그를 처음 봤을 때 환생 전의 유명인을 떠올렸으며 입 밖으로 꺼낼 뻔했다.
헐크 X건.
별명에 맞게 경건왕은 물론이고 에드워드보다 훨씬 더 큰 키에, 터질 것처럼 우락부락한 근육질, 약간 달아오른 듯한 붉은 피부의, 턱까지 내려오는 흰 콧수염을 기른 사내.
외관은 헐X 호건.
태도는 바른생활 사나이.
전투는 야만인.
그런데 하는 짓은 광기 그 자체.
꺽다리 로버트가 그만큼이나 거대한 말에서 뛰어내리더니 시오니아 국왕 앞에서 꺼낸 첫인사는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격의 없이 소탈한 투였지만, 온몸에서 끓는 힘이 넘치는 아퀴타니아어였다.
“오, 드디어 신앙의 모범을 만나는군!”
“밀리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경건왕 루이도 밝은 표정으로 답했다. 두 왕의 공식적 만남에 베로니카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오빠가 지금 속으로는 웃지 못할지도 몰라. 주둔비용이 얼마나 깨질지, 본전은 뽑을지…….”
“과연 우리 짠순이 공주님다운 생각이군.”
에드워드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베로니카는 발끈한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치솟는 주둔비용의 문제 중 하나는 소금값이거든? 이제 로버트 국왕 폐하가 도착했으니 어쩔 생각인지나 말해봐. 설마 너 대신 레피림이랑 싸우게 한다는 건 아니겠지?”
“그랬으면 진짜 정말 끔찍하게 좋겠지만, 그건 무리고…… 배경으로 써드려야지.”
“배경?”
“뭐, 여러 가지 역할이지. 야, 네 차례다. 일단 인사하자.”
베로니카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에드워드를 한번 봐준 다음, 앞으로 나섰다. 로버트 왕은 바로 그녀를 알아보았다.
“아, 가출 공주님. 오랜만이군. 좌충우돌하는 그 소문은 자자하게 들었지. 여행길은 평안하셨소?”
“다 들으셨다면서요?”
“하하하하! 에드워드놈만 붙여준 건 좀 불안한데 싶긴 했소. 그래, 너 임마. 간 큰 도둑놈.”
바로 지목당한 에드워드는 등 뒤로 식은땀을 흘렸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폐하.”
밴시 리안나는 뒤에서 조그맣게 연호했다.
“수플렉스! 수플렉스! 수플렉스!”
에드워드는 당장 리안나를 거꾸로 매달아버리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그런데 리안나에게는 불행히도, 꺽다리 로버트의 광기 어린 언행은 그녀의 기대와 방향이 달랐다. 로버트는 밴시를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야. 너 다시 만나면 꼭 묻고 싶었는데, 저거 어디서 잡았냐? 엄청 유용한 것 같아서 나도 잡으려고 했는데, 하나도 안 보이더라.”
졸지에 밴시사회의 공적이요 만악의 근원이 된 리안나는 좌절해 버렸다.
* * *
꺽다리 로버트와 그를 따르는 순례자 무리가 밀리온에 도착했다는 이야기는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밀리온의 성산과 성묘만 찍고 바로 귀환하는 순례자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와 함께 싸우고 함께 돌아가기로 한 사람들이라는 사실도.
소금값은 연일 최고치를 갱신했다. 식량이나 소금 같은 필수품은 공급이 약간만 부족해져도 가격이 크게 오르는 경향이 있다. 대체가 힘들고 필요최소량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없으면 조금 적게 먹는다든가 하는 선택이 아예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보통 가격폭등 뒤에는 이에 맞춰 수입선 다변화가 이뤄지면서 가격이 점차 떨어지지만, 그전까지는 그 돈에 혹해 목숨 걸고 소금을 실어나르려는 몸부림이 격해진다.
레피림은 쓰러진 카라반들 사이를 거닐며 중얼거렸다.
“소금 상인들을 덮치는 건 시시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재밌네. 오길 잘했어.”
도마뱀이나 표범의 형상 따위로 일그러진 사교도들, 사티로스나 놀 같은 온갖 떠돌이 종족들이 타락해 뒤틀린 것들, 지옥에서 불러온 소악마들이 마구 뒤섞여 그녀의 새 군대를 이루었다. 정확히 말하면, 사막에서 오래 버티면서 날뛸 수 있는 구성이었다. 지옥에서 불러온 것들을 빼면 대부분은 주술사왕이 지원해 준 것들이었다.
그리고 이 병력들이 신출귀몰하게 해주는 마법아이템도.
“마법의 양탄자야, 이리 와라!”
레피림이 소리치는 순간, 뱀처럼 길쭉한 양탄자가 지면 위를 스치듯 달려왔다. 그녀의 새 부하들이 소금짐을 짊어진 채 레피림 주변으로 모이자, 양탄자는 울타리처럼 그들을 한 바퀴 둘렀다. 그 길이는 무지막지해서 백에 달하는 병력을 전부 에워쌀 수 있었다.
그 직후, 악마의 군대는 무시무시하게 빠른 속도로 모래밭 위를 질주했다. 낙타는 물론이고 말들보다 더 빠르게 달려간 그들은 어느 바위산 동굴에 도착했다. 악마의 수하들은 소금짐을 지고 좁은 산길을 올라, 그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 안은 카라반들이 가져오려다 실패한 소금들, 얇은 돌판 같은 소금 덩어리들이 그득그득 쌓여 있었다.
소금 부족에 시달리는 시오니아군이 몸이 달아오를 수밖에 없는, 보물 창고였다.
“꺽다리 로버트가 도착했다니 소금 부족이 더 심해지겠지. 탐욕스러운 인간들은 사재기를 시작했을 것이고. 기사 에드워드는 자기 본거지를 떠나 내 앞으로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레피림은 슬쩍 동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녀의 소금창고는 악마들이 쓰는 ‘문’조차 없는 벽지 중 벽지였다. 그런 조건에서 마법의 양탄자는 소수정예의 부대와 신흥악마한테 충분한 기동력을 주었다. 모래 위에서만 사용이 가능하고 담벼락 높이도 극복 못한다는 한계가 있는 아이템이지만, 모래사막에서는 전혀 단점이 아니었다.
사교도들과 뒤틀린 종족들은 그 활동량에 비해 물과 식량을 극도로 적게 소모하며, 그러면서도 충분한 난폭함을 보여 주었다. 카라반한테서 약탈하는 것만으로도 전투를 지속할 수 있었다.
주술사왕이 알려준 동굴은 웬만한 요새에 필적하는 바위산 위에 있었다. 기병돌격 따위는 당연히 막히고, 오르자니 공성전을 치르는 것만큼이나 힘들 장소였다.
주술사 왕이 내준 병력과 귀한 마법아이템, 그리고 지리적인 이점은 강력한 지원이었다. 레피림은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레이디의 치장은 끝났으니, 무대에 올라보시지. 기사 나리.”
때마침 난쟁이 크기에 날개가 달린, 돼지머리의 소악마 하나가 동굴 안으로 날아들었다. 전령 역할을 맡은 놈으로, 가장 가까운 문에서 날아왔지만 숨이 턱에 찬 표정이었다. 놈은 가장 최근의 소식을 레피림에게 전해 주었다.
“지옥의 고귀한 이여! 꺽다리 로버트가 소금 부족을 이유로 밀리온에 오래 머물지를 못한다 합니다! 그는 경건왕에게 공개적으로 기사 에드워드의 출진을 요구, 소금 부족 문제를 해결하라 했다 합니다!”
“그래서, 놈은?”
“총대주교좌 성당에서 기도 후 출진한다 합니다!”
레피림은 가볍게 몸을 떨었다.
“궁지에 몰린 기사만큼 알기 쉬운 게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