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81)
281화 악마도 관심병을 앓는다 (3)
사실부터 말하자면, 관심이 고픈 악마 레피림의 바람과 반대로, 꺽다리왕 로버트는 당장 소금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다. 소금 조달에 대한 그의 관심은 밴시 종족의 행방 이하였으며, 에드워드가 개발한 신형 손수레 이하였다.
“그야 자기가 가져온 소금도 있을 테니까요. 베레스포드 공작님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맺어놓은 공급계약들도 있을 테고. 당장은 괜찮겠죠. 근데 그렇다고 성지 오자마자 제일 먼저 관심 기울이는 게 우리 종족의 행방인가요!”
야영지 한복판. 리안나가 에드워드의 손에 거꾸로 매달린 채 소리쳤다. 헬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밴시들이 다들 어디로 숨었는지는 우리 밴시도 모른다. 이대로 폐하께 말씀드리면 되겠군요.”
에드워드는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찼다. 예상 못한 답변은 아니었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쩝. 폐하께 선물 하나 더 하면 일이 수월했을 텐데.”
“밴시 종족의 은신처를 선물 삼을 생각을 다 하다니, 교활한 기사님! 꼭 지옥 가세요!”
“뭐 어때. 다들 그렇게 사회화를 시작하는 거지.”
“사회화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밴시가 해야 하나요, 그거!”
“사실 다들 하는 건데, 노예는 필수로 해야 한다.”
티격태격하는 둘을 보고 베로니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요정은 찾는 사람이 생기면 싹 다 숨는 법이지. 공통의 은신처 같은 게 있는 경우도 있지만, 이번엔 다들 개별적으로 숨은 모양이네.”
“사제님도 그런 거 분석하지 마세요! 밴시들 잡아서 뭐하게!”
“난 관심 없으니까 걱정 마.”
“사제님이 관심 없어도 꺽다리는 관심이 있고, 밴시 종족의 큰일은 이미 벌어졌는데요!”
에드워드는 낄낄 웃었다.
“밴시가 동족애가 있더란 말은 빼자. 말 안 하고 숨기는 걸로 알지도 모르니까.”
“그러죠.”
모닥불 불빛에 의존해서 보고서를 끄적이던 스텔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르달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
“밴시 같은 것보다 유용한 것들이 많을 왕마저 혹하다니. 욕심이란.”
크고작은 소란은 카치운이 돌아오면서 끝났다. 아들 무클과 같이 나타난 그는 구석으로 대피해 투덜거리는 밴시의 모습을 보고 물었다.
“쟨 왜 저래?”
“꺽다리 로버트를 저주하는 중이오.”
“그 인간이 저주로 죽을 양반은 아닐 텐데.”
“뭐, 그렇지. 정찰 결과는 어떻소?”
“부하들을 나눠서 여기저기로 보냈는데, 아직 감감무소식이오. 아, 이 일대도 소금값은 이미 금값이더군. 가축에게 먹일 저질 소금도 부족해서 다들 쩔쩔매고 있소.”
“저런.”
“그나마 아직 날이 선선해서 다행이지.”
카치운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했다. 에드워드의 부대를 따라오는 꺽다리 로버트의 군대 일부가 그의 시선 끝에 있었다. 그 외에도 시오니아 국왕이 붙여준 부대와 현지에서 합류한 소부대 다수.
“우리도 저 앵글리아 친구들처럼 미리미리 소금을 계약해놨어야 했어.”
“그것도 겹쳐서 소금값이 폭등한 거지만. 이번에 온 연합군이 소금부족에 시달리지 않는 건 오래 못가. 비축된 양이 떨어지는 순간 마찬가지 꼴이 날걸.”
“그 전에 해결해야겠군.”
“외국 군주들의 시선과 지원은 양날의 검이지. 성공하면 그들 앞에서 인정받지만, 잘못하면 체면 구겨.”
그때였다. 약간 소란스러운 소리가 나던, 야영장을 가로질러 열 명 남짓한 유목기병이 달려왔다. 그들은 카치운 앞에 서서 가볍게 고개를 숙인 다음, 뭐라고 떠들어댔다. 굉장히 빠르고 투박한 사투리였다. 무클이 번역했다.
“카라반의 생존자라는 사람을 마을에서 찾았답니다. 상처가 있어서 돌아가질 않고 치료 중이었다네요. 연이은 변고에 마을 사제가 치료 주문을 아끼던 참이라 회복이 늦었답니다.”
에드워드는 바로 흥미를 보였다. 이번 사태에서 카라반 생존자는 별로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연하지만, 가까스로 도망친 카라반 생존자들은 빈손으로 북쪽으로 가는 게 아니라 도로 돌아가는 게 보통이었다. 밀리온의 경건왕이 정보를 얻은 건, 지방관이나 지방영주가 그들을 맡았다가 보고한 게 고작.
“언제 당했대?”
“일주일 전이랍니다.”
“비교적 최근이군. 데려왔어?”
“예.”
무클이 마라기가 무섭게, 한 기병이 쭈글쭈글한 피부의 남자를 데려왔다. 몇 단계의 통역을 거쳐 에드워드는 대충 상황을 파악했다. 이번 생존자는 근처 영주들이 맡았던 다른 생존자들보다 좀 더 세부적인 사항까지 알고 있었다.
“마법의 양탄자라. 램프의 지니인가. 지가 알라딘인 줄 아는 모양이네.”
“예?”
“그런 게 있어. 여하튼 골치 아프군. 백 명 정도의 정예와 그걸 순식간에 실어나르는 마법의 도구라니.”
카치운이 분석을 덧붙였다.
“백 명보다 더 많을지도 모르지. 소금을 망치는 게 아니라 가져갔다는 걸 보면, 저장고가 따로 있을 테니. 포로는 안 잡았다니까, 소금만으로 꽉꽉 채워놨을 거요.”
“티가 너무 나는 미끼군. 이 생존자도 일부러 남겨둔 것 아냐?”
“그런 것 치고는 ‘어디로 오라’는 냄새는 안 나는데.”
그다음 보고는 다른 유목기병들이 뒤이어 들어와 말했다. 이번엔 에드워드도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였다.
“보고드립니다! 남쪽에서 카라반 하나가 습격당한 것을 샤하브 조가 발견해 교전했지만, 열세입니다!”
“적 발견 보고보다 패배 보고가 먼저 들어오게 생겼군.”
에드워드가 투덜거리자 카치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적들의 기동력이랑 전투력이 만만찮다는 뜻이겠지. 바로 지원 갑시다.”
* * *
그다음부터 이어지는 상황은 거의 반복적이었다. 악마들은 카라반이나 마을을 습격해 물자를 빠르게 약탈한 후 사라졌다. 어쩌다 현장을 발견하더라도, 에드워드 본대는 항상 뒷북을 쳤다.
가까스로 싸움이 붙어도 전투는 매번 불리했다. 괴물들의 실력은 하나하나가 보통이 아니었는데, 에드워드의 군대는 분산되니 당연한 결과였다.
“이 새끼들, 기사 양반이랑 비슷한 방법을 쓰는 것 같군.”
가르달의 평이었다. 에드워드는 코웃음을 쳤다.
“흉내 내기는.”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것 같소. 흔적을 찾자고 조를 더 쪼갰다간 잠시 버티는 것도 못해. 이대로 가면 외국 지원군들 앞에서 카말라의 백작이 망신을 당하는 거요.”
카치운도 걱정스레 말했다. 레피림을 따르는 사교도들과 괴물들은 분명 그 정도 수준이 되고도 남았다.
“이딴 수를 함부로 쓰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줘야지. 교역로가 더 좁아지고 한정되는 남쪽까지 기동한다. 수틀리면 소금광산까지라도 갈 거야.”
“우리가 직접 소금 카라반으로 전업하게 생겼구만.”
“비용 대비 효율이 안 나오지만, 그것도 고려는 해놓자고.”
“진짜 하시게? 백작이? 직접?”
“고려는 해놓자고.”
베로니카도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지는 않았다. 그녀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우리는 여기 오래 못 머무르지만, 악마는 아니지. 지칠 때까지 괴롭힐 심산인가 봐. 꺽다리왕한테서 빌려온 병력과 깃발도 이러면 짐밖에 안 돼.”
“그다음에 바늘구멍만 한 희망을 보여줘서 대차게 낚는단 말이지.”
“대처법 있어?”
“몇 가지는. 근데 신중히 골라야겠지.”
“어떻게 고를 건데.”
“나 잠깐 혼자 좀 있자.”
“뭐? 왜?”
“그런 게 있어.”
“너 설마 지금 당장 널 미끼로 던진다던가 그런 생각하는 건 아니지?”
“그건 아니니까 좀 물러나 있어. 헬레나랑 같이 있던가.”
엘프의 시력은 닿는 정도의 거리. 베로니카는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지만, 다른 방법도 없는지라 그 말을 따랐다. 그녀는 말머리를 돌렸다.
“위험한 짓은 하지 마라?”
“이놈의 팔자에 안 위험한 짓이 있어야 말이지.”
에드워드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잠시 뒤, 그의 곁에 남은 건 낮은 천막 하나뿐이었다. 에드워드는 말에서 내리자마자 그 천막 그림자 뒤에서 한 남자를 발견했다.
“올 줄 알았소, 니코스.”
“놀라지도 않는구만.”
주술사 니코스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에드워드는 어깨를 으쓱했다.
“레피림의 일이라면 슬슬 등장하지 않을까 했지. 그런데 당신도 알겠지만, 레피림은 환각과 속임수를 쓰는 악마라. 잠깐 실례 좀 합시다.”
“뭐? 으악!”
에드워드는 니코스의 팔을 거칠게 붙잡아 그의 등 뒤로 꺾었다. 관절기에 당해 제압당한 니코스가 꽥꽥거리자 그의 후드 안에서 조그마한 연기뭉치가 뛰쳐나왔다.
“거, 기사양반 성격이 급하구만? 죽일 생각은 아니겠지?”
“안녕하쇼, 다쉬사베스. 진짠가 보군.”
에드워드는 바로 니코스의 팔을 놓아주었다. 니코스는 팔과 어깨를 주무르며 투덜거렸다.
“그냥 다쉬사베스를 보여달라고 하면 되는 것 아니었소?”
“아니, 다쉬사베스를 부르려던 게 아니라, 댁이 내 손에 잡히고도 멀쩡한가 본 거요. 환각이라면 손에 안 잡힐 것이고, 악마라면 상처 입고도 남겠지.”
에드워드는 하얗게 빛나는 손을 들어 보였다. 성인의 축복. 니코스는 입을 삐죽였다.
“거 참 편리한 판명법이구만. 응용 잘 하네.”
“그러라고 받은 것 아니겠소? 좀 아팠던 건 사과할게.”
에드워드는 낄낄 웃으면서 말했다. 니코스는 짧게 더 투덜거린 다음, 이야기를 이어갔다.
“곤경에 처한 사람을 찾아왔는데 대우가 험한 건 하루 이틀이 아니긴 하지. 이번엔 기사 양반의 곤경을 해결해주러 왔는데. 꺽다리 로버트의 군대까지 뒤에 달고 온 것 보면, 급하긴 하지?”
“귀한 혈통의 여자 둘이 툭하면 으르렁거려서 내 피를 말리는데, 혹시 화해의 주술 없소?”
“아주 적절한 도구가 있……기는 한데 그게 문제요, 지금?”
“레피림 따위, 그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냐.”
“양다리 유부남의 애환인가, 망나니의 패기인가 모르겠군.”
“꺽다리 로버트의 군대는 내가 궁지에 몰려서 빌린 게 아니야. 내가 궁지에 몰린 것처럼 보여야 니코스건 레피림이건 다 튀어나올 테니까 빌린 거지. 물론 유용하게 쓸 거지만.”
좌중침묵. 니코스와 다쉬사베스는 잠시 얼이 빠진 표정으로 에드워드를 보았다. 에드워드는 계속 말을 이었다.
“레피림이 기껏 주술사왕의 영역까지 와서는 그와 함께하지 않고 단독행동을 벌인다는 건, 걔를 족칠 때가 왔다는 말이지. 주술사왕이 그년을 버린 거야. 레피림은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걸 상상도 못하는 것 같고.”
“그걸 이미 직감했다고? 별 정보망도 없는 상태에서?”
“신출귀몰하는 악마가 주술사왕 본대에서 잠시 떨어져 나가봤자 전략적 행동이지, 버림패로 쓰인다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이긴 하지. 근데 난 버림패라고 봤어. 왜냐면, 댁들이 있거든. 레피림을 작살 내고 싶어서 안달 난 당신들 말이야.”
에드워드는 좀 더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하나 묻지. 여기에 ‘문’이 있나?”
“없소.”
니코스의 빠른 답변. 에드워드가 다시 물었다.
“있었나?”
“그렇소.”
이번엔 다쉬사베스가 답했다. 에드워드는 열쇠검의 손잡이를 어루만졌다.
“여기가 당신들이 레피림을 작살 내기로 한 장소 맞나 보군.”
다시 침묵. 잠시 뒤, 다쉬사베스는 짧게 투덜거렸다.
“피라미드에서 이미 느낀 바지만, 항상 생각보다 더 많이 위험한 기사양반이군.”
“갱신시 보험료가 인상될 수 있으며, 뭐 그거?”
에드워드가 낄낄 웃으면서 추억을 헤집자 다쉬사베스도 마주 웃었다.
“우리 놀래킬 건 더 있으면 지금 다 털어놓으쇼. 사실 또라이 로버트가 저 깃발 아래 변장해 있다던가.”
“에이, 변장할 분은 아니지.”
“하긴.”
“흥밋거리가 보이면 한달음에 달려올 분이지.”
에드워드는 웃음을 멈추고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다쉬사베스의 웃음소리가 작아졌다. 허튼짓하면 그 양반이 달려올 줄 알아라. 대충 그렇게 해석이 가능한 말이었다.
“농담이 아니라는 게 무섭구만. 나 못 믿나?”
“피라미드에서 자크와 펠리샤를 홀려 장난질 친 전적이 있잖아.”
“아지지야와 게 소동에서는 그런 흑심 없이 당신을 도와줬잖소.”
“이번에도 그러길 바라지. 해결책 내놓으쇼.”
맡겨놓은 것처럼 당당히 말하는 그 모습에 다쉬사베스는 잠시 투덜거렸다. 에드워드는 다시 목소리를 낮췄다.
“정말 주술사왕이 레피림을 버리기로 했다면, 댁들이 알고 있을 것 아뇨? 레피림의 소금창고 위치.”
주술사 니코스는 피식 웃었다. 그는 품속에서 돌돌 말아놓은 지도를 꺼내며 말했다.
“자네, 함정을 보면 오히려 들어가서 짓밟아놓는 타입이었던가?”
에드워드는 그 지도를 받으며 말했다.
“같잖은 연놈들한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