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82)
282화 신의 작은 주먹 (1)
나머지 일행은 헬레나의 청력을 통해서 에드워드가 누굴 만났는지,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파악했다. 베로니카는 니코스의 등장에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을 꼽으라면 꺽다리 로버트보다는 주술사 니코스가 더 우선일걸. 그놈이 또 나타나다니…….”
“잘 참았네. 냅다 철퇴 들고 달려오는 건 아닐까 했는데.”
“네가 그놈 팔을 잡아 제압했다니까 참았지. 그나저나 여기까지 와서 힌트를 주는 게 니코스일 줄은…….”
베로니카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헬레나 역시 동조했다.
“자기 멋대로 돌아다니는 자니까요. 다시 만나고 싶은 자도 아니고…….”
악마와 계약한 주술사, 교회가 주시하는 말썽꾼. 각종 민담의 주역이 되기까지 하는 자. 그 성정이 어떻든 일행이 보여 주는 거부감은 분명 존재했다. 에드워드는 그에게서 받은 지도를 흔들어 보였다.
“지금 우리가 수단과 방법을 안 가려야 할 처지도 아니잖아. 악마와 직접 거래하는 것도 아니고.”
베로니카는 고개를 저었다.
“니코스는 때때로 악마보다 위험해.”
“악의가 있거나 건망증이 작렬한다면 말이지. 뭐, 일단은 우리 은인이기도 한데.”
“아지지야 대도서관에서 탈출을 도와준 건?”
“아니, 그것도 있지만, 난 정력강화부적 이야기였…….”
짜악!
베로니카는 등짝 때리기로 개드립을 진압한 뒤 계속 말했다.
“다쉬사베스나 다른 악마가 편승하려 할지도 몰라. 내용은 확인했어?”
“당연히 확인했지.”
에드워드는 베로니카의 눈앞에서 지도를 펼쳐보았다. 다른 일행들도 그 앞에 모여들어 지도를 기웃거렸다. 카치운이 제일 먼저 반응했다.
“한 장이 아니군.”
지도는 큰 것과 작은 것이 있었다. 큰 것은 악마 레피림의 소굴까지 가는 길을, 작은 것은 그 소굴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적어놓은 것이었다. 그런데 후자는 거의 보물찾기 수준으로 시시콜콜하게 적어놓았다. 무엇으로부터 오른쪽으로 열 걸음, 무엇으로부터 다섯 걸음 등.
“이게 그들과의 대화에서 나온 ‘문’들인가요?”
헬레나가 물었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 도착하기 전까지 이거나 달달 외워야지.”
연금술사 미아가 읽는 것은 제일 빨랐다. 마지막까지 다 읽은 그녀는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신기하게도 한 곳에 몰려 있군요.”
“그 동굴이 크기도 하고, 옛날에는 일종의 중개지 역할도 했던 모양이야.”
“지옥의 악마들한테 중개지라니.”
“옛날 큰 전쟁들마다 썼던 모양이지. 어쩌면 지금도 비슷한 역할을 하는 곳 자체는 존재할지도 몰라. 아지지야 대도서관 생각나?”
“경멸스러운 장소네. 그런데다 지금은 악마의 은신처라니.”
“문이 다 닫힌 중개지는 길이 끊긴 시장과 다를 게 없겠지. 오가는 이 없이 잊혀진 곳 말이야. 숨기는 딱이지.”
에드워드는 자신의 열쇠검을 천천히 뽑아 들었다.
“열쇠검이라는 새 이름에 맞는 새 능력이 있을 거라더니, 딱 쓰기 좋은 전장이지.”
“마법의 문을 열고 닫는 것 말이죠.”
스텔라가 말했다. 이미 눈앞에서 에드워드가 마법의 통로를 열고 닫는 것을 본 적 있는 마법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베로니카는 작은 소리로 투덜거렸다.
“성자의 계획에 처음부터 있는 건지, 아니면 악마들과 주술사놈이 편승한 건지 모르겠네.”
“편승이면 뭐 어때. 도와준다는데. 어차피 피할 수 있는 싸움도 아닐 거고.”
에드워드는 열쇠검을 도로 검집에 넣었다.
“설령 다쉬사베스의 함정이라 해도 짓밟아버리는 수밖에.”
* * *
악마 레피림은 차곡차곡 쌓여가는 소금 덩어리에 어떤 매력까지 느낄 지경이었다. 보물의 가치에는 주관적인 기준도 적잖은 영향을 주는 것임을 생각해보면, 이상한 현상도 아니었다.
이 소금덩어리 때문에 사람들이 곤경에 처하고, 서로 싸우고, 죽음을 무릅쓴다.
시오니아가 다른 수입선을 찾는 순간이 오기야 하겠지만 그 시간이 짧지는 않을 것이며, 그때가 오더라도 이미 발생한 피해를 수습하는 것은 별개의 이야기다. 폭등한 물가는 짐승의 크고 날카로운 발톱과 같아 여기저기 상처를 남긴다. 그리고 쉽게 아물지 않는다.
“이다음엔 소금 말고 또 뭘 건드려볼까…….”
레피림은 즐겁게 판을 그려보기 시작했다. 주술사왕이 그녀의 고집과 난동에 항복하고 계획을 제시, 지원을 해 준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녀는 소금산 오로트와 투리치 시 등 여러 곳을 한꺼번에 엮는 음모를 좋아했고, 주술사왕은 그녀의 비위를 맞춰줬다.
“소금만큼 중요한 거라면 물이겠지. 상수원을 건드려봐야 하려나. 하지만 오로트 때처럼 공사할 병력과 여유는 없어. 그래, 독을 타자. 가능하면 주술사왕도 기겁할 악마의 독이 좋겠어. 지옥의 독사들을 풀어놓으면…….”
그때였다. 뭔가 우당탕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작은 악마 하나가 동굴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놈은 레피림 앞에 엎드려 외쳤다.
“적입니다! 적이 나타났습니다!”
“뭐야, 이 외진 곳에? 적이 누구냐?”
“깃발이 많습니다! 선두는 붉은 바탕에 노란색 매듭 문장입니다!”
에드워드 드 클레어의 가문 문장. 레피림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뭐야? 놈과 결전을 치를 장소는 여기가 아니잖아! 다른 곳에서 치를 작정이었는데?”
생각할 수 있는 건 여러 가지. 남은 흔적을 쫓아왔다던가, 지도를 보고 숨을 만한 곳을 마구잡이로 뒤졌다던가, 간신히 포로로 잡은 적병한테서 정보를 캐냈다던가.
가장 설득력 있는 가설은, 배신자가 있다는 것이다.
“대체 누가…… 날 쫓아올 수 있을 정도면…… 주술사 니코스? 아냐, 그놈도 단서 하나 없이 날 쫓아오긴 힘든데. 여길 알고 있는 놈은…….”
주술사왕뿐.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레피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말이 안 된다.
‘마법의 양탄자와 부하들을 내주고 아껴두던 계획까지 꺼낸 그가, 그 모든 걸 포기한다고?’
“그럼 저쪽 정찰병들이 열심히 돌아다닌 탓이거나, 포로로 잡힌 얼간이 중 하나가 이곳의 위치를 알아챈 상태였단 뜻이군. 완벽한 계획일수록 어딘가에서 꼭 망가진다니까.”
레피림은 짧게 투덜거렸다. 그녀는 동굴 안에서 밖으로 나갔다. 따가운 햇살 아래에서 산 아래를 굽어보니, 과연 멀리서 다수의 군대가 몰려오는 게 보였다. 선두만 해도, 아무리 적게 잡아도 소금동굴 주변에 포진한 레피림의 부하들보다는 수가 많았다.
하지만 레피림도 믿는 구석은 있었다.
“할 수 없지. 여길 전장으로 삼는다. 지형을 이용하면 별 것 아니야. 내 부하들은 하나하나가 일당백이고…… 그래, 양탄자! 양탄자야, 이리 와라!”
레피림의 말에 마법의 양탄자가 쏜살같이 나타났다. 레피림은 자기 머리 위를 맴도는 그것을 향해 명령했다.
“너는 이 산에 널린 돌과 바위를 닥치는 대로 실어날라 놈들의 머리 위로 떨어뜨려라!”
그러나 양탄자는 계속 레피림의 머리 위를 맴돌기만 했다. 의아해진 레피림이 다시 명령을 내렸다.
“뭘 하는 거냐! 내 명령을 수행해라!”
그러나 그 순간, 양탄자는 순식간에 돌돌 말리더니, 하늘을 향해 높이 치솟아 버렸다.
퍼어어엉!
공기를 압축하여 밀어내는 듯한 소리에 레피림 주변 악마들이 모두 나동그라졌다. 레피림은 양탄자가 도망쳐 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이곳은 문이 없다.
이동수단은 없어졌다.
만약의 사태가 벌어져도 전장을 옮기거나 탈출할 수가 없다.
그제야 레피림은 이 일을 기획한 게 주술사왕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이를 뿌득뿌득 갈기 시작했다.
“이 빌어먹을 인간놈! 주제에 감히 날 배신해?!”
레피림의 포효가 산을 울렸다.
* * *
에드워드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입을 삐쭉였다.
“뭔진 모르겠지만 개년이 좆됐다는 건 알겠다. 맞게 온 것 같네.”
“적의 소굴이 가깝긴 한가 보군. 사막 고블린들이 나타났소.”
카치운의 말이었다. 에드워드는 저 멀리서 꾸물거리는 것들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레피림이 몰고 다니는 것 중에 고블린이 있다는 이야긴 없었지?”
“없었소. 하지만 상관은 있겠지.”
“악마와 그 군세를 눈치채고 빌붙으려는 본능이 발동한 것이겠지. 수는?”
“대략…… 50에서 70 정도? 안 보이는 것들까지 포함해도 100 남짓하겠지.”
“별 볼 일 없네.”
“산으로 후퇴하고 있소.”
“흩어지는 놈은?”
“없소.”
“산에 뭐가 있긴 있군.”
“여자와 짐승을 섞은 것 같은 소릴 쩌렁쩌렁하게 뱉을 수 있고 고블린들이 모여들 만큼 강력한 것. 흠. 뻔하네.”
그때 베로니카가 에드워드한테로 달려왔다. 그녀는 걱정스레 말했다.
“현지인 부대들에게 물어봤는데, 이 근방은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라 사람들이 안 온대. 우물도 없다는 거야.”
“물을 조달할 수 없단 말이군. 지금 갖고 있는 물은?”
“돌아갈 것 빼면 최소 3일치. 보급대가 도착하면 좀 더 여유가 생기겠지만, 여기까지 오는 동안 보급대가 쓰는 물도 만만찮을걸.”
도착하는 물의 양을 기대할 수는 없다는 뜻. 에드워드는 나지막하게 물었다.
“최대는?”
“사람이 죽고 물만 남으면 늘겠지. 계산하고 싶어?”
에드워드는 짧게 혀를 찼다. 사막에서의 공성전, 그것도 물 없이. 그에게는 경험 없는 일이었다.
“물이 없으니 시간도 없군. 이제까지처럼 야바위를 쓸 여유가 없어.”
“포위해서 저쪽이 먼저 말라죽길 기다려보고 싶지만, 악마가 물 없이 얼마나 버틸지는 모르겠어. 숫자만 보면 우리가 먼저 말라 죽을지도 모르고.”
베로니카의 말은 정확했다.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카치운이 신음처럼 말했다.
“그럼 정면 돌격밖에 못한단 건데…….”
깎아지른 듯한 바위산. 그 중간에 보이는 동굴. 굴곡 하나하나마다 인간 같지 않은 사교도들과, 흉칙한 모양의 악마들이 있었다. 숫자가 100에서 200 남짓하다고 얕볼 수가 없었다.
에드워드의 본대 병력은 사막의 개활지 수색과 전투를 염두에 둔 유목기병과 기사 위주. 시오니아와 앵글리아 등의 연합군은 보병이 적잖았으므로 가까스로 균형을 맞춘 셈이지만, 전투마 상당수는 일단 쓸모가 없어지는 셈이다.
“공성전 비슷한 꼴이 나지 말란 법은 없으니 아예 준비를 안 한 건 아닌데…….”
“준비했어? 뭘?”
“앵글리아 친구들이 해왔어. 꺽다리 로버트가 가져온 초대형 투석기 ‘신의 큰 주먹’의…….”
“항복을 무시하고 아퀴타니아 이단 도시에 냅다 포격을 갈겼다는 그 미치광이 체급의 투석기?!”
“축소판 ‘신의 작은 주먹’을 가져왔다는군. 하나뿐이지만. 지금은 감지덕지하지.”
“감지덕지긴 한데. 뭐야, 그게. 이름 구려.”
“나한테 항의하지 말고 로버트 폐하께 따져. 어쨌든 그 지원포격만 믿고 돌격해 봐야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에드워드 곁으로 무클이 다가왔다. 소년 장수는 에드워드를 향해 말했다.
“백작님, 저도 이 전투에 나설 수 있습니까?”
에드워드는 슬쩍 카치운을 돌아봤다. 온갖 감정이 넘쳐나는 표정이었지만,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투에서 물러서는 것도 남자답지는 못하지. 처음으로 겪는 큰 전투지만, 차라리 이런 걸 먼저 겪어보는 게 나을지도.”
에드워드는 마주 고개를 끄덕인 다음, 도로 무클을 돌아봤다.
“기병들도 저걸 공략할 수 있겠나?”
“말에서 내리면 됩니다. 하마전투는 기사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잖습니까?”
에드워드는 유목기병들의 활로 시선을 돌렸다. 유목기병들한테서 하마기사들보다 더 특출난 장점을 찾자면, 활에 훨씬 더 익숙하고 항상 쓴다는 것.
에드워드는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사격전부터 시작해야겠지. 투석기 조립이 끝나는 대로 시작한다. 병사들 지휘하고, 명령 내려오면 돌격해.”
“감사합니다!”
무클은 바로 자기 부하들한테로 돌아갔다. 소년 장수의 뒷모습을 본 에드워드가 중얼거렸다.
“실력 발휘할 전장은 항상 반가운 법이지.”
“그건 저쪽도 마찬가지인 것 같네요.”
헬레나가 입을 열었다. 모두들 엘프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갑자기 적의 숫자가 불어나기 시작했는데, 증원된 적 대부분은 사막 고블린을 뻥튀기한 것처럼 생긴 것들이었다. 스텔라가 미간을 찌푸렸다.
“홉고블린?”
고블린의 강화판.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군. 나도 홉고블린이란 건 처음 보는데. 숨겨둔 전력일까?”
헬레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작은 고블린들이 안 보이네요. 안에 있는 무언가가 고블린을 홉고블린으로 바꿨어요.”
“그걸 전부 다?”
“전부 다 바꾼 것 같네요.”
홉고블린들이 괴성을 지르기 시작하자, 다른 악마들과 사교도들도 전의고양의 함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겨우 200이 내지르는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함성. 1천을 넘기는 연합군이 오히려 압도될 지경이었다.
에드워드는 피식 웃으면서 투구를 집어 들었다.
“저쪽도 단기결전을 각오한 모양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