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83)
283화 신의 작은 주먹 (2)
전투의 첫인사는 육중한 돌덩어리였다.
쿠우우웅!
바위산의 굴곡 하나에 돌덩이가 작렬하는 순간, 그것과 표적 모두가 파편을 흩날렸다.
마치 사람이 아니라 거인족이 쓰기 위해 만든 듯한 거대한 투석기.
“와, 저거 맞으면 뼈도 못 추리겠다. 저게 ‘작은 주먹’이라고? 그럼 ‘큰 주먹’은 얼마나 크고 세다는 거야?”
허리띠 캐슬린의 감탄이었다. 뒤이어 밴시의 신세타령이 뒤를 이었다.
“작은 X이건 큰 X이건 간에, 내가 왜 이 짓을 또 해야 하냐 이 말이에요. 와, 저기 전투마들 좀 봐. 이번엔 기병돌격 안 해서 그런가. 놀고 있어! 또 말팔자 상팔자! 말보다 못한 요정 신세!”
“시끄러. 저번보다는 쉽지. 이번엔 적진에 내려앉아 불붙이는 게 아니잖아.”
“적진에 불탈 게 있으면 시켰을 거예요. 없으니 이 짓 시키는 거지. 그나저나 좀 빗나갔죠?”
“응. 약간.”
그 둘은 바위산 위 하늘을 날고 있었다. 한 번에 높이 날 능력은 안 되는지라, 투석기가 조립되는 동안 우회해서 징검다리 뛰듯 올라간 것이었다. 그녀들은 적들의 뒤통수를 보면서, 약간 더 높은 장소에서 포격관측을 해냈다.
“거리…… 150야드?”
“아니, 아니, 아니. 가로세로로 하랬잖아. 직각으로.”
“밴시는 그런 거 못 해요! 수학 못 해요!”
“수고료 은화 3닢짜리 옷 15벌을 해치웠는데 기사님이 3분의 2를 가져가 버리고 사제님이 남은 액수의 5분의 1을 용돈으로 더 주면 남는 게 얼마야?”
리안나는 빠르게 대답했다.
“18닢이요!”
“못하긴 개뿔! 돈은 잘 세네! 너 통장 잔고 얼마야?”
“그건 까먹어서 모르는데요!”
“그걸 왜 까먹어? 너 다람쥐야? 요정은 금전감각이 꼬였어!”
약간 투닥거린 뒤, 하늘에 매달린 밴시는 팔다리를 파닥파닥거리면서 온몸으로 거리와 방향을 표현했다.
파닥파닥 대롱대롱 파닥파닥.
“눈이 빠질 것 같네요.”
투석기 위에 올라간 헬레나의 말이었다. 그 아래 있던 카치운도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다음엔 깃발이라도 들려서 보낼까?”
“어머나, 못 알아보겠어요?”
“조금이라도 보기 편하면 뭐 어때. 어차피 지금 표적에 맞는 게 안 보여서 애들을 저기까지 보낸 것도 아니잖아?”
아무리 크고 강한 투석기라고 해도, 돌덩이가 어디 떨어지는지 안 보이는 경우는 많지 않다. 특히 지금처럼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던질 때라면 더욱.
에드워드는 어깨를 으쓱했다.
“놈들이 안 숨는 것도 아니니, 조금이라도 정확하게 맞을수록 좋긴 하지.”
“방향은 맞고, 사거리 모자라대요! 100야드!”
헬레나가 외쳤다. 재장전을 마친 공성기술자들이 곧바로 그 말대로 움직였다. 잠시 뒤, 공격군이 가장 먼저 맞이할 최대 장애물인 돌무더기 위로 포탄이 떨어졌다.
꽈아앙!
그 뒤의 악마들이 나동그라지는 것이 보였다. 투석기는 이후로도 동일한 돌무더기를 향해 몇 차례 더 석탄을 날렸다.
꽈아아앙!
세 발째에 어설프게 쌓여 있던 돌벽이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좋아, 끝. 다음 표적은 이 방향에 맞춰서…… 저기 저 절벽으로 하지.”
에드워드가 새 표적을 할당했다. 사거리는 탄환이나 추의 무게로 어떻게든 해도, 방향을 돌리는 건 분해 후 재조립이 차라리 쉬운 게 거대 투석기였다. 이미 설치된 방향 안에서 최대한 많은 표적을 조질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했다.
재집결하던 악마들 위로 다시 포탄이 떨어졌다.
“순조롭군. 하지만 슬슬 저 새끼들도 감 잡고 피할 때가 됐는데. 방향을 바꿀까…… 아니다. 슬슬 작은 투석기들도 내보내야지.”
“에드, 불도 좀 질러보면 어때? 더 넓은 범위를 공격할 수 있을 텐데.”
베로니카가 물었다. 에드워드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불탈 게 없을 바위산인데.”
“포탄이 혼자 잘 타면 되지.”
“응?”
“왕성 병기창에서 좀 가져왔거든. 잘 타는 포탄.”
베로니카는 손가락으로 후방을 가리켰다. 한 덩치 하는 짐마차를 본 에드워드는 그 내용물이 커다란 항아리들임을 깨달았다. 방주기사단이 쓰던 것을 본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화염꽃? 저것 시오니아의 비밀병기 아냐?”
“왜 아니겠니?”
“내가 써도 돼?”
“내가 누구니?”
시오니아의 공주. 에드워드는 낄낄 웃으면서 말했다.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공주님. 놈들을 열기와 연기로 괴롭혀보자고.”
* * *
물 한 방울로 석 달을 버틸 수 있는 마물이라 해도, 시뻘건 색으로 타오르며 그을음을 토해내는 불덩이 앞에서는 갈증을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 끈적한 불은 높은 곳에서부터 낮은 곳으로 흘러내렸고, 연기는 낮은 곳에서 위를 향해 솟아올랐다. 그사이에 낀 사교도들과 악마들은 고통을 호소하다 조금이라도 안전한 곳을 찾아 흩어졌다. 일부는 바위 틈새의 모래들을 박박 긁어모아 불에 끼얹는 등 발버둥을 치기도 했다.
술고래 기사 로드리고는 돌격 전 술을 홀짝이며 말했다.
“고향 생각나는군.”
“고향요?”
그가 얼마 전에 거둬들인 소년 부하 마테오의 질문이었다. 로드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향 루시타니아의 산자락이 저런 바위산이었지. 여기보다는 녹색이 좀 더 많지만.”
“아, 그래서 선봉을 맡으신 겁니까?”
“그것도 있고…… 악마 새끼들을 가장 앞에서 죽일 수 있는 자리라면 기사로서 명예니까. 조르쥬 경도 같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뭐, 그 친구는 그 나름대로 명예를 찾겠지. 데스피나라는 엘프 마법사도 만만찮은 모양이니.”
그는 나무 술잔을 싹 비운 뒤 허리춤에 차고는, 검을 뽑았다.
“준비하라고 일러라. 불길이 잦아들면 첫 엄호사격과 같이 돌격한다.”
“옙!”
마테오도 투구를 쓰며 대답했다.
탈 것이 없기 때문에 시오니아의 화염꽃은 오래 못 타고 곧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그때 하마기사와 보병들을 가로지르며 나타난 건 앵글리아 장궁병들과 유목기병들이었다. 그들은 각자의 활을 들고는 각자의 지휘관 명령에 따라 시위를 당겼다.
“쏴라!”
“쏴라!”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화살이 바위산을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서로의 돌과 화살이 빗발치기 시작하는 순간, 기사들이 먼저 발을 떼었다.
“돌격!”
로드리고는 선두에서 서서 달려갔다. 그는 무너진 돌무더기 위로 반쯤 익은 채 기어 올라오는 악마를 보았다. 겉모습은 위아래로 잡아 늘린 인간 같은데, 등에 팔이 여러 개 돋았고 그것들 하나하나마다 돌덩이를 쥔 악마였다. 놈은 혼자서 투석병 10명만큼 돌을 던져댔고, 로드리고는 방패를 앞세운 채 그 돌 폭풍 안으로 뛰어들었다.
“오거가 던지는 비버보다는 버틸 만하네!”
“로드리고 경, 그 모험도 기묘하게 들리는데 나중에 꼭 들려주시죠!”
“밀리지나 마라!”
그 말과 함께, 로드리고는 힘껏 도움닫기를 해 돌 던지는 악마의 가슴팍으로 뛰어들었다. 놈의 목에 검이 꽂혔다.
푸욱!
그러나 몸뚱이가 길쭉한 탓인지 급소는 피한 듯했다. 몸부림치는 악마를 향해 로드리고와 그 부하 마테오는 칼날을 난도질하듯 내리쳤다.
콰직!
다른 기사들과 전사들은 그 주변의 적들을 맡았다. 전직 이단 여사제 디나를 포함한 사제들의 보호 주문과, 바로 등 뒤까지 따라온 리베르타를 포함한 쇠뇌병들의 엄호 아래.
“과연 호걸 로드리고 경이다! 그와 같이 전열에 서다니, 큰 명예군!”
“로드리고 경의 부하들은 어려도 감투정신이 뛰어난데! 과연 그 기사에 그 부하다!”
“로드리고 경을 따라라!”
자극받은 기사들이 더 날뛰는 가운데, 파란색의 액체 같은 게 적진에서 솟아올랐다. 액체 형태의 두발짐승 같은 그 모습에 로드리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정말 기괴한 악마성이로군.”
“유령일까요? 그럼 제 검이 먹힐 겁니다! 에드워드 경께 받은, 유령 잡는 마법검이거든요! 사제의 축복이나 정결한 소금 없이도 바로 쓸 수 있…….”
‘옛 검의 3기사’ 중 발터가 흥분한 마테오의 말을 끊었다.
“저건 타락한 요정이다, 소년. 네 검으로 못 죽여.”
발터는 자신의 검에 묻은 피를 장갑으로 훔쳤다. 요정을 죽이는 검이 검날을 번뜩였다. 그는 로드리고 옆에 서며 말했다.
“저놈은 내 몫이다.”
* * *
천혜의 요새라고 했지, 진짜 요새는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세심하게 설계된 구조도 아니고, 레피림 측의 농성준비는 허술했다. 그리고 에드워드가 데려온 부대들은 절대 약한 졸개들이 아니었다.
선두는 주로 로드리고와 기사들과 – 못 박힌 나무 몽둥이를 휘둘러대는 좀 인상적인 여사제나, 자기가 감당하기 힘든 쇠뇌를 가져와 쏘며 엄호하는 소녀 등 이질적인 사람 몇몇이 섞여 있지만, 어쨌든 대부분은 – 건장하고 중무장한 전사들이 방어선을 돌파하고, 무클이 지휘하는 유목기병들이 그 뒤를 따라 뛰어들어가 전과를 확대했다.
“스와디아와 케르지트의 고급 병종은 말에서 내려도 역시 강하더라고.”
“그게 어딘데? 처음 듣는 지명인데.”
“[말과 칼>이라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가상의 나라들.”
“희극이니?”
“보통은.”
에드워드가 낄낄 웃었다. 그는 선봉대가 돌무더기와 시체를 짓밟으며 전진하는 것을 살펴보다 말했다.
“1차 방어선은 통과했고, 2차 방어선도 곧 뚫겠는데, 우리 공세의 예리함은 좀 깎였군.”
“어쩔 수 없어. 적은 강하고, 우린 지형의 불리함을 안고 싸우니까. 게다가 악마 하나하나는…… 아, 로드리고 경이 물러선다.”
“응?”
“대신 발터 경이 나서는데.”
“그럼 ‘옛 검의 3기사’가 맞서는 게 더 나은 악마가 등장했다는 소리겠지. 오, 뭔가 이상한 게 나와 싸운다.”
반은 액체 같고 반은 고체 같은 파란색의 무언가가 솟아올랐다가, 폭발하듯 터지는 게 보였다. 에드워드는 낄낄 웃었다.
“다들 실력 발휘하기 바쁘군.”
“시오니아의 공주가 보는 앞이라 더 그러려나?”
“너 잘났다.”
“너도 잘해라?”
“삼가 받들겠습니다.”
헬레나의 시선도 내리꽂혔다.
“걱정 마요. 엘프가 인정한 짝은 그 가치를 하는 법이니.”
에드워드는 주술사 니코스가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화목한 가정 등 온갖 기원이 필요한 판이니.
“그 뭐냐, 기대해 줘서 고맙긴 한데 갑자기 뒤에서 둘이 냉기 뿜지 말라고. 사막인 거 잊겠다.”
콰르르릉!
바위산 쪽에서 지축을 흔드는 소리가 들렸다. 스텔라가 깐족거렸다.
“여성분들 순서로 따지면 이제 레피림 등장이려나요?”
베로니카와 헬레나가 바로 반응했다.
“죄악 좀 부추기지 마세요.”
“악마년이 우리 다음일 리가 있나요?”
스텔라는 몸을 배배 꼬았다.
“어머나, 그럼 제가 그다음…….”
미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그런 이야기할 때가 아닌 것 같은데요. 이 일행은 항상 이렇나요?”
가르달은 껄껄 웃었다.
“뭐, 악마년은 인간 곁에 못 두는 법이라 걱정은 마쇼.”
“그런 의미가 아닌데요.”
“그리고 기사 양반이 은근히 금욕적이거든.”
“어머나, 정말요?”
“드워프 기준 미녀를 마다하더라니까.”
“그건 다른 기사님들도 미덕 삼을 것 같군요.”
에드워드는 배경음악같이 깔리는 만담들을 뒤로 하고, 하늘에서 쏜살같이 도망쳐오는 밴시와 허리띠를 보았다. 리안나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굉장히 위험하게 생긴 년이 자기보다 두 배는 더 큰 악마한테 귀싸대기를 날리고는 동굴에서 내려오던데요.”
성깔 알 것 같다. 에드워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검을 뽑았다.
“드디어 나왔군. 그년은 내 몫이다. 엄호해. 우리도 돌격한다.”
“그럼 전 이만…….”
“어디 가, 임마. 캐시, 걔 끌고 따라와.”
“넵!”
“으악! 요정 살려!”
바동거리는 리안나를 밀치고, 에드워드는 앞으로 나아갔다.
“주먹질 하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