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84)
284화 다구리의 미덕 (1)
대학중퇴생 빌헬름은 자신보다 키가 커서 오크 수준인 홉고블린을 앞에 두고 식은땀을 흘렸다.
“홉고블린이 보기 힘든 것이긴 한데…… 이렇게 컸나?”
놈은 크기만 큰 게 아니었다. 등에서는 어린애 머리통 크기의 보라색 혹들이 주렁주렁 솟았는데, 하나하나가 역겨운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여사제 디나는 그 정체를 바로 알아차렸다. 그녀는 소맷자락으로 코를 가리며 소리쳤다.
“독주머니에요! 섣불리 찌르거나 베면 안 돼요!”
“고블린이 두꺼비마냥 독도 만들어?”
빌헬름은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홉고블린은 비릿한 웃음을 흘리면서 양손의 무기를 치켜들었다. 보통 크기의 고블린이었을 때는 양손 무기였을지 모르나 지금은 단검 같은 사이즈의 낫이 하나. 그리고 전투 시작 후 인간 병사한테서 뺏은 듯한 검이 하나.
“이걸 베지도 찌르지도 말고 죽이라고?”
검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를 내며 빌헬름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그는 작은 방패로 그 검을 흘려 쳐내고는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도시의 패싸움판의 선봉대장 출신이라고 몬스터에는 손을 못 쓰는 건 아니지만, 상성이 너무 안 좋았다.
“야, 밀쳐!”
다른 병사들이 뛰어들어 창과 폴암을 들이밀었다. 강하게 찌르지는 못했지만, 놈도 달려들지는 못했다. 창날 끝이 놈의 피부를 슬쩍 파고들다 물러서면, 그 자리에서 보라색 증기 같은 게 피식피식 뿜어져 나왔다.
“이게 악마의 힘인가! 한낱 고블린조차 이렇게 강해지다니!”
그 독기에 기겁한 한 기사가 탄식하듯 말했다. 공격측이 단기결전을 강요할 수 있다는 건, 애석하게도 공격측이 쉽게 이긴다는 뜻이 아니었다. 목적을 달성하기 전에 손실률이 치솟는다면, 압도적인 병력으로도 마지막 보루를 못 넘는다면 공격측이 먼저 무너지지 말란 법이 없었다.
빌헬름은 무너진 돌무더기 사이로 하나하나 걸어 나오는 각양각색의 홉고블린들을 보고 식은땀을 흘렸다.
“로드리고 경, 일단 물러서는 것을 건의합니다. 저것들은 어설픈 하급 악마보다 더 골치 아픈 듯합니다.”
그러나 로드리고는 건의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어디선가 묘하게 계속 정보를 얻고 있는 카말라 백작 에드워드의 말에 따르면, 현재 공격이나 방어나 둘 다 물자와 준비가 충분치 못한 상태다. 그리고 둘 다 단기결전을 상정하고 싸우고 있다.
공격자는 단기간에 방어자를 섬멸하는 것으로.
방어자는 공격자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혀 공격의지를 꺾는 것으로. 물론 악마가 직접 지휘하는 판이니, 역으로 공격자가 섬멸당하지 말란 법도 없다.
이 상황에서 공격이 물러선다는 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다시 공격할 수 있을 것인가? 로드리고는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결론은 내려야 했다.
“퇴각명령은 없었다.”
로드리고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어차피 물러서지도 못한다.”
퇴각명령 없이는 뒤의 기사들과 병사들도 그저 전진할 뿐. 선두 역시 압력에 밀려 전진할 수밖에 없었다. 곧 빛의 세력이 발 딛은 곳은 서로 어깨가 부딪혀서 활을 당기거나 칼을 휘두르기도 힘들 북새통이 되었다.
“밀지 마, 밀지 마!”
“앞으로 가라고!”
“왜 안 가는 거야?”
“숫자로 밀어붙여!”
점점 꼬여가는 소음들. 로드리고는 이를 악물었다.
“무슨 독인지는 모르지만 멈춰 있을 수도 없지. 사제 아가씨, 해독 주문을 준비하시오.”
“독 가진 놈이 한둘이 아닌데요!”
“다 베고 마지막에 해독 주문을 쓸 거요!”
“그러다 도중에 죽어요! 약한 독구름을 헤치고 달려가는 거랑은 상황이 다르다고요!”
디나의 말이 끝나는 순간, 멀리서 쩌렁쩌렁한 외침이 들려왔다.
“비켜어어어어어어어!”
드워프 가르달의 비명이었다. 공기의 압력을 이겨내고 소리 지르는 데 성공한 드워프는 사람들의 머리 위를 날아 홉고블린들 위로 떨어졌다. 그는 손에 쥔 도끼 머리를 거꾸로 잡고는, 홉고블린의 머리통에다 내리꽂았다.
꽈아아앙!
샛노란 섬광이 번뜩이더니 홉고블린은 그 자리에서 쓰러져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가르달은 가까스로 일어나 소리쳤다.
“두 번 다시 투석기에는 안 올라가!”
“그나마 작은 급조 투석기라서 다행이네요. 앵글리아제 투석기였으면 제가 잡으나 마나 드워프는 피떡이 됐을 텐데.”
드워프를 붙잡아 준 허리띠가 조잘댔다. 로드리고는 아래를 내려다보고는 실소했다. 나무 막대기들을 엮어 만든 인력식 투석기가 대열 뒤에서 재장전을 서두르고 있었다.
“맙소사, 저걸 타고 날아 온 거요? 목숨은 내다 버렸군.”
“기사양반이 말하길, 드워프는 점프하면 더 강해진다더군! 맞는 말 같소!”
가르달은 홉고블린들한테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도끼는 다시 샛노란 번갯불로 충전되었고, 그의 눈에서도 마찬가지로 불똥이 튀었다.
“업그레이드된 드워프식 전쟁 인사를 받아보라!”
“꽤애애액!”
그가 홉고블린들을 번개 맺힌 도끼머리로 때려잡는 사이, 에드워드도 나타났다. 그 역시 사람들의 머리 위를 날아왔는데, 방법은 완전히 달랐다. 번개줄기 속을 날아오더니 한 홉고블린의 가슴팍을 걷어찬 것이다.
퍼억!
“쿠엑!”
“말 타고 쓸 수 있으면 최고겠는데, 이 번개질주 마법.”
에드워드가 쓰러진 홉고블린 위에서 중얼거렸다. 그는 가공할 손아귀 힘으로 놈의 두개골을 붙잡았고, 홉고블린은 얼굴의 모든 구멍으로 피거품을 뿜기 시작했다.
“크륵! 크륵! 크르르륵!”
홉고블린은 에드워드의 팔을 붙잡고 그 손을 떼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곧 잠잠해졌다. 첫인사를 끝낸 에드워드는 열쇠검을 거꾸로 잡고 홉고블린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홉고블린이 되어도 잡졸의 본성은 변하질 않는지, 마법의 투구에서 불사조 장식이 빛나자 고블린들은 공포에 질려 흩어지기 시작했다.
“날으는 드워프에 날으는 기사가 왔노라!”
가르달이 덧붙였다. 에드워드는 살짝 정정해 주었다.
“난 안 날았는데.”
“아, 발이 땅에 안 닿으면 그게 난 거지!”
드워프가 정정 의사 없음을 확인시켜 주는 사이, 더는 물러설 곳이 없어진 홉고블린들은 괴성을 지르며 자포자기식으로 덤벼들었다.
“철퇴, 철퇴를 쓰라고! 베지도 찌르지도 못하면 때려 죽이면 되잖아! 철퇴 가진 사람들에게 길을 내줘! 좀 지나가자고!”
베로니카가 투덜거리는 소리가 후미에서 들렸다. 캐슬린은 후다닥 그쪽으로 날아가며 소리쳤다.
“급행 말고 완행으로 가실 분?”
헬레나는 둘 다 선택하지 않고 스스로 인간들의 어깨 위를 달렸다. 그녀에게 밟힌 병사들이 기겁하며 소리쳤다.
“뭐야, 방금 그거!”
사소한 불평은 무시하고, 헬레나는 재주넘기 하듯 선두로 달려가 발뒤꿈치로 홉고블린의 두개골을 내리쳤다.
콰직!
“겨우 이깟놈들에게 쩔쩔매요?”
엘프 여전사의 핀잔에 기사들은 수치심으로 얼굴을 붉히고는 용기백배했다.
“까짓 독이 문제냐! 중독되면 공주님이 해독해 주실 거다!”
“다 짓밟아 버려!”
베로니카가 다시 소리쳤다.
“방금 소리친 놈 누구야! 멋대로 부도수표 남발하지 마! 해도 내가 할 거야!”
불행히도 그 소리는 함성에 묻혔다. 에드워드, 가르달, 헬레나를 선두로 공격군은 다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홉고블린들은 물론이고 그 뒤의 다른 적들도 쓰러지기 시작하면서, 다시 한 층을 넘겼다.
가르달이 제일 먼저 다음 층으로 올라서며 소리쳤다.
“선두는 역시 드워프가 맡아야 하는…… 으억?!”
쿠우웅!
호기로운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드워프는 다시 하늘을 날았다. 뭔가와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에드워드가 황급히 외쳤다.
“캐시, 가르달 잡아!”
“아니, 잠깐, 끼약!”
캐슬린은 완행을 택한 스텔라를 내던지고, 재빨리 날아가 가르달을 붙들었다. 가르달은 스텔라의 사소한 불평을 묻을 큰소리로 외쳤다.
“악마요!”
드워프식 요약이었지만 의미는 충분했다. 다음 타자인 에드워드는 자기 눈앞에서 검붉은 외골격의 이족보행 생물체를 발견했다.
키는 거인과 맞먹었는데 훨씬 호리호리했다. 날카롭고 삐죽삐죽한 껍질들의 모임은 여성의 외양처럼 둥근 구석이 있지만, 부드러운 살점 따윈 어디에도 없었다. 머리 위에서는 커다란 뿔이 그 권위를 나타내고 있었고, 몸보다 훨씬 더 긴 꼬리가 층 하나를 뱀처럼 거닐었다.
에드워드는 아랫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네가 누군지 알 것 같군.”
레피림은 입을 열었다. 그 안에 도사린 건 축축한 살점과 혀가 아니라 지옥불 같은 불꽃이었다.
“이 모습으로 네놈과 맞서고 싶지는 않았는데.”
“나도 그 모습은 좀 부담되는데. 다른 거 없어? 원래 인간 여자 모습 아니었나?”
“네놈에게 보여 줄 건 죽음으로 족하다!”
에드워드는 그 말에 피식 웃었다.
“내 죽음? 네 죽음이겠지. 음모도 환각도 동이 난 뒤의 본모습 데뷔는 희극에서도 패배로 가는 지름길 아니던가?”
“같잖은 소리를!”
긴 꼬리가 횡으로 날아들었다. 방금 가르달을 쳐서 날려 보낸 것임이 분명했다. 에드워드는 잽싸게 뛰어올라 그걸 피했다. 검이나 주먹으로 타격을 입히기 위해 직격을 맞아 줄 필요는 없었다. 그건 위험했다. 다른 기회가 분명 올 것이다.
“다들 물러서!”
에드워드는 주변에 경고한 다음, 연거푸 날아오는 꼬리 공격을 몇 차례 피했다. 레피림은 불타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 웃기는 축복과 마법무기들을 믿고 멧돼지처럼 달려들 줄 알았는데.”
“꼬리는 안 잡아. 공손히 내미는 손만 잡아 주는 편이라.”
“흥. 묘한 데서 감이 좋군.”
에드워드의 검과 주먹에 닿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휘두르는 꼬리. 뭔가 위험한 게 있을 거라는 계산 정도는 가능했다. 환각을 쓰는 악마는 근접전에 약할 거라는 얕은 판단은 아지지야 대도서관에서 이미 실패했던 바 있다.
레피림의 몸에서 껍질들이 열기를 쏟아냈다. 가시들은 악의를 갖고 꿈틀거렸다.
마법의 갑옷이나 유니콘의 뿔 정도만 믿고, 악마들도 경계하는 신흥 악마에게 덤빌 수 있는가? 완력으로 제압이 가능할까? 축복이 걸린 손이야 저 껍질을 부수겠지만, 검은? 손은 안 다치겠지만, 다른 곳은 안 다칠 수 있을까?
에드워드는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그 신중한 모습은 레피림을 만족시켰다.
“그래, 네놈도 겁이 나긴 나는 모양이구나! 한낱 인간은 어쩔 수 없지! 네 공포와 불안감이 느껴진다! 네 두근거림이 내 촉각을 간지럽힌다!”
“취향이 독특하시네.”
“난 널 찢어 죽여서 시건방진 악마들에게 내던지고, 네 친구들을 회쳐 인간들 머리 위에 뿌릴 것이다! 교회의 문짝마다 네 여자들의 내장을 내걸어 줄 것이고…… 언제까지 피할 거냐! 종말이 올 때까지?”
레피림이 다시 고함을 내질렀다. 그러나 그녀의 도발에도 에드워드는 달려들지 않고 꼬리를 피하며 제자리를 맴돌았다. 그는 작게 중얼거렸다.
“속성 암기는 잘 못하는데.”
“무슨 속셈이냐?”
“일단 네 뜻대로는 달려들어 주고 싶진 않아서. 대신 달려들어 줄 걸 찾아보는 중이야.”
“뭐?”
레피림이 묻는 순간, 에드워드는 허공을 향해 열쇠검을 휘둘렀다. 검 끝에서 흘러나오는 어두운 냉기에 에드워드는 식은땀을 흘렸다.
“하필 이거네. 제일 만나기 싫은 거.”
“뭐?”
레피림이 다시 묻는 순간, 허공에서 커다란 시커먼 바닷물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콰르르르릉!
천둥소리 같은 물소리가 바위산을 쩌렁쩌렁 울렸다.
“이 무슨……?!”
레피림이 질겁하는 순간, 바닷물보다 검고 불길한 무언가가 파도를 따라 뛰쳐나왔다. 사막에서는 절대 만날 리가 없는 물건. 레피림은 비명을 질렀다.
“선장놈!”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포경선의 뱃머리가 파성추처럼 레피림을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