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bad knight ahead of yourself RAW novel - Chapter (286)
286화 다구리의 미덕 (3)
교통체증이 걸린 바위산 대신, 그 아래쯤에서 잔적소탕을 하고 있던 마테오는 다른 병사들과 함께 작은 악마 하나를 다구리 치는 중이었다. 그는 팔다리를 차례대로 제압한 악마의 목에 검을 꽂아 결정타를 넣었다.
콰직!
“끄에엑…….”
악마는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졌다. 마테오는 숨을 씩씩 몰아쉬면서 로드리고를 돌아봤다.
“악마를 물리치는 건 기사나 가능한 업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빨리 기회가 올 줄은 몰랐습니다!”
쿠웅!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가리가 둘인 근육질 악마가 쓰러졌다. 마테오가 잡은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크기로, 로드리고보다도 컸다.
“방금 뭐라 그랬냐?”
전장 소음에 종자의 말을 놓친 로드리고가 질문했다. 마테오는 마른 침을 삼킨 다음 말을 바꿨다.
“역시 큰 악마는 보통이 아니군요.”
“그러게. 힘들다. 나 참. 그러고 보니 방금 듣기론, 레피림이란 악마도 거인급 체구라던데.”
“거인이면 지클린 양과 키가 같습니까?”
“지클린 양도 여자라 거인 중에서는 키가 그리 큰 편이 아니지. 흔히 말하는 거인급 체구란 남자들 쪽을 말하는 건데…… 어쩌면 오거급일지도.”
“오거!”
“오거는 거인족보다도 머리 하나쯤 더 크지.”
“놀랍습니다! 그런 게 존재하는군요!”
“뭐야, 오거 본 적 없나?”
“제 출신지에서는 보기 힘들었습니다.”
“흔하진 않지. 나도 고향 땅에서는 몇 놈 봤다만, 순례 중에는 딱 한 놈 만났으니.”
“물리치셨습니까?”
“고향 땅에서는 순례 중일 때 만난 놈은 못 잡았어.”
“그래도 대단하십니다!”
마테오는 진심으로 감탄해서 말했다. 속죄의 목걸이를 찬 여사제 디나는 그의 허영심을 지적했다.
“크, 크기가 공을 다 결정하는 게 아니에요!”
쩌적.
사교도 대가리에서 못 박힌 나무몽둥이가 떨어져나오면서 머리 가죽이 딸려 나왔다. 그녀의 회색 사제복에 튄 핏방울을 본 마테오는 미심쩍은 투로 물었다.
“그럼 수는?”
“어…… 많을수록 좋은 건 확실해요!”
“그럼 큰놈 둘이랑 작은놈 넷 중에서 뭐가 더 좋은 거죠?”
“지, 짓궂은 질문이네요!”
콰앙!
디나가 당황해서 얼버무리는 순간, 굉음이 터져 나왔다. 잔해를 사방으로 날리며 솟아 나온 거대한 팔. 가출 사냥꾼 소녀가 비명을 질렀다.
“산에서 팔이 솟았다! 산의 정령이야!”
“아무리 봐도 악마 같은데요!”
빌헬름이 덧붙였다. 리베르타는 발끈해서 반박했다.
“사냥꾼인 내 눈을 의심해?!”
“사냥꾼 아니잖아요! 사냥꾼의 딸이지! 그나마도 가출했고!”
“도중에 그만두기는 당신도 마찬가지인데, 말이 많아, 대학 중퇴생!”
“학생은 돈만 내면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데요!”
“당신은 돈 문제로 관둔 게 아니잖아!”
둘이서 티격태격하는 동안, 연금술사 미아가 사람들의 흐름을 헤치고 아래로 거꾸로 뛰어 내려오는 게 보였다. 로드리고는 그녀를 향해 질문했다.
“아, 미아 양! 에드워드 경은 어떻게 됐소?”
“레피림과 싸우는 중이요!”
“저게 그 레피림이오?”
“뭔진 모르겠는데, 저기 에드워드 경이 계신 건 확실해요! 잠시만요, 좀 지나갈게요!”
미아는 마테오를 밀치고 더 아래로 내려가 사람이 몇 없는 바위 위로 올라갔다. 마테오는 그녀와 악마의 팔을 번갈아 본 다음 비속어를 써가며 중얼거렸다.
“존나 큰 거 하나면 공이 존나 큰 거 맞네.”
“그, 그런!”
디나가 반박을 못하고 빌빌거렸지만, 미아는 그 대화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품에서 연막탄 하나를 꺼내, 심지를 짧게 자른 다음 거기다 불을 붙였다. 파직! 천천히 타들어 가는 심지를 보고 미아는 발을 동동 굴렀다.
“빨리, 빨리!”
심지의 불꽃이 연막탄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새빨간 연기가 높이 치솟기 시작했다. 로드리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신호요?”
“누군가를 부르는 신호죠.”
“누군가를?”
“이미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때였다. 연막탄에 자리를 뺏긴 유목기병 하나가 사막을 바라보다 소리쳤다.
“원군입니다!”
불행히도 유목민의 시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그 거리에 뭔가 있다는 걸 알아채기 어려웠다. 로드리고는 그답지 않게 투덜거렸다.
“나도 뭔가 특수능력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군.”
“있으시잖아요. 드워프도 학을 떼는 말술.”
“술은 영혼의 벗이지, 능력이 아니야!”
종자에게 새로운 가르침을 내린 다음, 로드리고는 유목기병이 가리키는 곳을 다시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놀랍게도 ‘원군’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로드리고도 놀랄 정도의 속도였다.
“굉장히 빠른 말들이군. 그런데 대체 어디의 누구길래……?”
원군은 기수마저 낙오시킨 채, 빨리 달릴 수 있는 사람들 소수만 남아서 달려오고 있었다. 이해가 안 가는 행동이었다. 잠시 뒤, 로드리고는 입을 쩍 벌렸다.
“아니, 잠깐. 설마?”
* * *
레피림을 제거한다. 제거가 안 된다면, 최대한 만신창이로 만들어 지옥으로 돌려보내고 그 문을 닫는다.
에드워드가 보기에는 그게 가장 좋은 계획이었다. 그 이상 지옥의 일에 간섭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다쉬사베스는 지옥의 다른 악마들과 입장이 미묘하게 달랐다. 유폐된 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자기 ‘문’이 열린다면 그 어떤 악마보다도 분명히, 지상에 발을 딛고 싶어할 게 뻔했다.
그리고 그걸 막는 건 온전히 에드워드의 몫이 된다.
“다쉬사베스를 불러다 레피림을 잡아가게 한다는 건 진짜 플랜B였는데 말이지…….”
에드워드는 다쉬사베스의 손아귀에 잡힌 채 패대기쳐지는 레피림을 보고 중얼거렸다.
“어쨌거나 꼬시다.”
쿠우우웅!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레피림이 다시 한번 바위에 처박혔다. 지옥에 남은 다쉬사베스의 자산을 훔쳐 탕진하고, 도망친 부하들과 결탁한 악마. 거기다 다쉬사베스도 악마니, 자비를 베풀 마음 따윈 없는 게 당연했다.
마지막 일격은 유독 강했는데, 실제로 결정타였는지 더는 비명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레피림은 축 늘어져 버렸고, 다쉬사베스의 팔은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에드워드는 문으로 빨려들듯 들어가는 팔을 멍하니 보기만 했다.
마침내 손목이 그의 눈앞에 나타난 순간. 레피림은 본모습이 아닌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피투성이에 헝클어진 머리카락은 영락없이 가련한 처녀였는데, 그녀는 에드워드를 보자마자 애원하기 시작했다.
“내, 내가 잘못했다…… 이놈을 멈춰줘! 날 구해주면 네가 시키는 대로 다 하겠어!”
그 순간 다쉬사베스의 손이 멈칫했다. 에드워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쉬사베스가 저 애원을 듣고도 더 빨리 레피림을 끌고 가지 않고 오히려 멈췄다. 에드워드는 쓰게 내뱉었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날 시험하고 싶어하는군.”
“부탁이다! 다쉬사베스는 네 말을 들을 테지! 아니면 네가 이놈을 물리친다던가…….”
“물리쳐? 내가? 이걸?”
“네 손이면 할 수 있잖아! 게다가 네 열쇠검은 다쉬사베스를 이미 한번 패퇴시킨 무기야! 문을 닫아 버릴 능력도 있지! 지금 닫아 버려!”
“지금 닫으면 이 팔 잘리나?”
“그냥 안으로 밀쳐져 버릴지도 몰라. 말을 안 들으면 먼저 손가락을 베어 버려!”
“흠. 만약 네가 저 안에 끌려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데?”
“고문당할 테지! 달아나더라도 헤매기만 할 거고, 다시 붙잡히겠지! 영원히 농락당할 거야!”
“최악의 맞선이군. 그 미모로 잘 달래봐.”
“악마는 인간 남녀가 아니야! 그런 일은 안 벌어져! 그는 영원히 날 고문할 거야!”
“인간 남녀도 보통 그런 관계로 시작하지는 않긴 한데.”
“말장난은 그만해!”
자기 말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에 레피림은 처절하게 소리쳤다. 그녀의 애원은 길게 이어졌다.
“네 적들을 물리쳐주고, 네 친구들에게 부를 안겨주마!”
“그거 꼭 네가 해야 돼?”
여전히 장난스러운 대꾸였다. 레피림은 다급하게 덧붙였다.
“맹세하겠다! 알잖아! 맹세를 깨는 악마는 없어!”
“정말? 별 의미 없는 것에 맹세를 걸거나, 말장난으로 우회하는 것쯤은 인간도 하는데.”
“절대 그딴 짓은 하지 않겠다! 의심스러우면 네가 어떤 조건을 걸어도 상관없어! 네 발가락을 핥으라면 핥겠다! 밤시중을 들라 해도 하겠어!”
레피림은 소매로 피를 닦고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말했다.
“어때? 나라면 네가 아지지야의 환각에서 본 걸 현실에서 구현해 줄 수도 있어!”
“호오.”
“전례가 없는 것도 아니잖아! 72악마를 부렸던 현왕의 예도 있어! 너도 내 주인이 될 수 있는 거야!”
다쉬사베스의 낮고 컬컬한 웃음소리가 문 너머에서 새어 나와 산 전체를 울렸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레피림은 핏기가 싹 사라진 하얀 얼굴이 되었다.
“제발! 네 욕망의 하인이 되겠다. 노예라고 불러도 좋아!”
“노예라. 진심이 안 느껴져. 말투부터 바꾸지?”
에드워드는 레피림의 입술에다 열쇠검을 겨누었다. 레피림은 덜덜 떨리는 입술을 오므려 검 끝을 피하다 마지못한 투로 뱉었다.
“인간님.”
“주인님이라고 불러볼 생각은 없어?”
“그건 너와 내가 맹세를 한 다음에…….”
“이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레피림은 흠칫해서 바로 말을 바꿨다.
“주인님.”
에드워드는 기다렸다는 듯 열쇠검을 내렸다. 레피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맹세를…….”
다쉬사베스의 낮은 웃음소리가 다시 울렸다. 레피림은 화들짝 놀라 손목을 곁눈질한 다음, 애원하는 얼굴로 에드워드를 돌아봤다.
“어서! 절 풀어주세요! 주인님!”
“맹세도 안 했는데 무슨 주인님.”
“그럼 얼른 맹세를 하죠! 지옥의 모든 악마에 걸고!”
“지옥의 모든 악마에 걸고, 내 명령에 복종할 텐가?”
“네!”
에드워드는 다쉬사베스의 손목을 향해 말했다.
“끌고 가.”
“이 악당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레피림은 목이 찢어져라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그 비명은 빠르게 작아졌다. 문 안으로 쑥 들어가 버린 것이었다. 에드워드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약관동의는 신중히.”
허리띠 캐슬린이 에드워드 옆으로 날아와 촐싹거리며 질문했다.
“의외네요. 저처럼 두들겨 패서 노예 삼으실 줄 알았는데? 악령이나 악마 따위, 얼마나 험하게 다루든 아무런 문제가 없잖아요?”
“그때는 그렇게도 했지.”
에드워드는 캐슬린한테 고개도 안 돌리고 답했다.
“지금은 아니거든.”
“헤헹. 나름 달라졌다 이건가요. 선착순이었네. 난 저 꼴 안 나서 다행이야.”
에드워드가 뭐라고 더 말하기 전에, 다쉬사베스의 머리통 절반이 불쑥 올라왔다. 딱 콧등까지만. 캐슬린은 혼비백산해서 날아가 버렸다. 에드워드는 그에게 짧은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년 좀 잘 부탁합시다. 질척질척하고 짜증 나는 데다 음모도 잘 꾸며대니.”
“그년은 심판의 날까지 다시는 지상으로 올라오지 못할 거요. 그건 걱정 마시지.”
다쉬사베스가 말했다. 움푹 들어가고 커다란 두 눈이 꿈뻑거렸다.
“왜냐면 내가 그년을 짓밟아 피라미드의 가장 아래에 처박아 두었거든. 이제 이대로 여길 나가볼까 하는데.”
“역시나. 문 닫을게. 물러서.”
“하하하하하…… 날 막겠다고?”
“그래도 공은 있어서, 다짜고짜 안 닫고 경고해 준 거야.”
“그대가 날 이길 수 있을까?”
“그러니까 니코스도 별말이 없었던 것 아니겠어?”
“글쎄. 지금 그 양반이 이 근처에 있나?”
없음. 에드워드는 혀를 찼다.
“그새 도망쳤나?”
“그 양반은 내가 나오든 말든 별로 관심 없거든. 뭐, 그대한테도 그리 위험한 짓부터 하진 않겠네.”
“뭐 하려고?”
“그간 멋대로 놀던 세트렛 도시들부터 짓밟아 줄 걸세.”
에드워드는 코웃음을 쳤다.
“그다음엔 그 도시들 다 통합해서 방주기사단을 물리치고 시오니아까지 쳐들어오겠지. 펠리샤가 여왕으로 등극하고 빛으로 전향한 아브멜렉도 당연히 도로 점령할 거고. 맞지? 닥치고 기어들어 가.”
“하하하하하하하…….”
다쉬사베스는 대답 대신 천천히 머리부터 빼냈다. 상반신까지 나온 다쉬사베스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할 수 있으면 해 보시지!”
“하는 건 좋은데, 내 원군이 오기 전에 나 이길 수 있겠냐?”
“원군? 그런 것도 있었나? 뭐, 얼마든지 불러 보…….”
“야, 에드워드!”
그 순간, 쩌렁쩌렁한 사내 목소리가 바위산을 울렸다. 에드워드와 다쉬사베스의 얼굴에서 동시에 핏기가 가셨다. 방금 전 절망한 레피림이 떠오를 만큼.
“그 새끼! 그 커다란 새끼 붙잡아! 절대 어디 보내지 마!”
광기에 찬 목소리였다. 다쉬사베스와 에드워드의 고개가 천천히 소리 나는 방향으로 돌아갔다.
바른생활 미치광이, 근육형 재난, 에드워드의 ‘영원한 악몽 버전’ 헐X 호건.
산 아래에서 꺽다리왕 로버트가 전심전력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망토도 채 벗지 못한 그는 환희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바로 저거야! 난 저런 것과 싸우고 싶어서 성지까지 온 거라고!”
다쉬사베스의 입가가 뒤틀렸다. 에드워드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야, 튀어.”
다쉬사베스는 뭐라고 말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러나 그가 입을 열기 전에 꺽다리왕 로버트가 다시 소리쳤다.
“네놈의 내장을 찢고 죽인다! 큰 덩치! 내장도 존나게 크겠지! 찢고 죽인다!”
다쉬사베스는 두말 않고 다시 피라미드로 처박혔다.